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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8기 예술위의 과제

CP_NET 2022. 3. 14. 15:27



1973년에 출범한 독임제 기구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하 진흥원)이 2005년에 예술인 중심의 합의제 기구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로 전환되었다. 32년간 지속된 관성을 돌파하여 이러한 전환을 만들어낸 것은 정치권의 의지보다 여러 예술단체와 몇 천 명에 이르는 예술인의 조직된 의지가 더 결정적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로부터 17년이 지난 지금, 예술위가 그동안 예술 현장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면 어떤 답이 되돌아올까. 안타깝게도 부정적인 평가가 대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왜 그런가에 대해서는 여러 이유를 들어볼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예술위가 예술인 중심의 합의제 기구라는 정체성을 내세우며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코비전 2010에도 명시했던 공공성, 투명성, 현장성을 실질적으로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박근혜 정부에서 자행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라는 이름의 끔찍한 화마가 예술위를 통하여 예술 현장으로 광범위하게 번진 원인이기도 하다. 블랙리스트 실행기구라는 오명을 역산하면 예술위가 그려온 궤적은 공공성, 투명성, 현장성이라는 가치와 예술인 중심의 합의제 기구라는 정체성의 형해화로 수렴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형해화된 예술위에 남은 선택지는 무엇이었을까. 크게 두 가지 정도의 선택지일 것인데, 하나는 철저한 반성과 혁신을 통해 예술위의 가치와 정체성을 재구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더 이상 반성과 혁신을 위한 내부동력 그리고 예술위 외부의 비판적 지지를 얻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서 예술위의 권한을 광역단위 문화재단에 완전히 이관하고 해체에 준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하는 것이다. 벼랑 끝에 선 예술위의 시간은 결국 전자의 방향으로 흘렀고 이에 따라서 문재인 정부에서 출범한 6기 위원회와 7기 위원회는 폐허가 된 예술위를 이끌어야 할 무거운 책임을 맡았다.
  

호선제 복원 취지 살리기 위해 8기 위원 선임에서 해야 할 일


6기 위원회의 주요 결과물을 이야기해본다면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한 책임자 징계 및 피해자와의 소통 개시 그리고 아르코혁신 과제, 아르코비전2030을 통하여 예술위의 가치와 정체성을 재구축하기 위한 방향성 수립을 꼽아볼 수 있다. 이어서 2020년 5월에 출범한 7기 위원회의 주요 결과물은 아르코 혁신 과제의 계승과 코로나19 장기화로 위기에 처한 예술 현장에 대한 긴급대응이었다. 잘 알려진 바대로 코로나19는 예술현장에 엄청난 여파를 미쳤다. 가령 공연예술계의 경우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실시하는 공연예술조사를 살펴보면 공연시설과 단체 매출액이 2019년에 8,500억 원 규모였다가 2020년에 3,900억 원 규모로 하락하여 무려 45%의 하락세를 기록했으니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코로나19에 대한 예술위의 대응은 코로나19 TF의 연구 및 공론화 활동 그리고 각종 자원사업의 기준 완화 및 예산 확대, 추경을 통한 긴급지원 사업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렇게 보면 예술위의 코로나19 대응은 부족한 점이 많은 게 사실이다. 더 공격적이면서 전략적인 재정투입이 필요했다. 또한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감염병 확산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 시스템 마련도 필요했다.


한편 아르코 혁신 과제와 관련한 7기 위원회 시기의 결과물로는 2020년 6월에 개정된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을 통하여 위원장 호선제와 위원 임기를 2년에서 3년으로 복원한 것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미온적 태도로 6기 위원회 때부터 정체되었던 양 기관의 자율운영협약을 2021년 3월에 자율운영보장 공동선언으로 풀어낸 것을 꼽아볼 수 있다. 이 중에서 위원장 호선제와 위원과 위원장의 임기 동기화가 취지에 맞게 실행되기 위해서는 위원 선임 제도의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그 이유는 과거 7기 위원 후보자2 배수 공개 단계에서 여성후보 0명, 청년후보 0명 사태가 벌어짐에 따라서 성별, 세대 균형성과 대표성을 강화한 위원 선임 제도가 요구되었고. 이에 따라서 위원 구성 시 특정 성별이 60%를 초과하지 않아야 하며 세대 대표성을 고려하며 위원추천위원회 구성에 있어서 법인 미등록 단체,개별 예술인까지 추천 가능하도록 하고 위원 후보자2 배수를 공개한다는 개선책이 7기 위원 재공모에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개선책도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것이었기에 8기 위원 공모 과정에 문체부와 예술 현장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위원 선임 제도는 얼마든지 후퇴할 수 있다.


7기 위원회 구성 때 적용된 개선책은 후퇴해도 안 되지만, 이 개선책에 머물러서도 안 되는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7기 위원회 때와 다르게 8기 위원회부터 위원장 호선제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8기 위원회 구성 과정에는 7기 위원 재공모 때 적용된 개선책보다 더 진전된 위원 선임 제도가 필요한 상황이다. 가령 8기 위원회 구성 시에는2 배수 위원 후보자들이 각자의 직무수행 계획을 공개함과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예술 현장과 더 입체적인 소통이 이뤄질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 토론회를 진행할 필요가 있겠다. 한편 자율운영보장 공동선언의 경우는 예술위와 문체부 간의 구조적 한계 때문에 결국 협약의 형태가 아니라 선언의 형식으로 귀결되었지만, 어떤 정부, 어떤 장관, 어떤 위원회가 있더라도 자율운영보장 공동선언이 사문화되지 않도록 계속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며 예술현장도 이를 항상 주시할 필요가 있다.


7기 위원회는 이 외에도 아르코 혁신 과제와 관련하여 일부 진전을 이뤄냈지만, 아르코 혁신 과제에서 핵심 중의 핵심인 예술위의 국가예술위원회 전환 과제에 대한 논의는 2018년에 국가예술위원회 전환 연구가 완료된 이후 진전을 만들지 못했다. 그러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작성되고 실행된 시기의 집권당이 20대 대선에서 대통령을 배출한 현시점에서 블랙리스트가 재발할 수 있는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예술위의 앞날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가예술위원회는 큰 틀에서 블랙리스트 재발방지를 위한 구조적 차원의 대안으로 예술위를 국가예술위원회로 전환함으로써 문체부의 예술정책 기능을 국가예술위원회로 이관하고 이를 기반으로 상향식 현장 권력형 국가 예술 기구를 만들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국가예술위원회는 일면 올해 7월에 출범할 대통령 직속의 행정위원회인 국가교육위원회와 유사한 맥락이 있다. 사실 이 사안은 정부조직 개편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여 이번 대선에서 각 정당의 주요 문화예술정책 공약으로 다뤄질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해야 했으나 위원회의 역량 부족으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런 상황들을 고려하여 올해 5월에 출범할 윤석열 정부는 이제라도 과거의 과오를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라도 국가예술위원회라는 화두를 통하여 구조적으로 블랙리스트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


예술 현장 참여 확대를 위해


마지막으로 7기 위원회 활동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올해 중순에 출범할 8기 위원회에 바라는 점들 중 몇 가지만 더 언급해보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선 앞서 언급한 예술위의 가치와 정체성 재구축은 7기 위원회에서도 충분히 진전되지 못했기에 8기 위원회에서도 지속함이 당연하다. 이를 위하여 8기 위원회에서 6기~7기 위원회의 성과와 한계를 자세히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술 현장과 함께 8기 위원회의 로드맵을 수립하여 공개하기를 바란다. 가령 아르코 혁신 의제 추진 상황과 문화예술진흥기금 안정화 과제는 예술위 블랙리스트 재발방지와 회복을 위한 TF의 활동 내용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또한 이 TF에서 논의 중인 블랙리스트 피해자 및 피해단체별 소통을 문체부 중심으로 진행해나갈 블랙리스트 재발방지를 위한 사회적 기억 사업과 연계하는 작업도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


예술위의 가치와 정체성을 재구축하기 위한 내부 동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7기 위원회에서 연말마다 개최한 아르코대토론회 그리고 현장소통소위원회와 한국지역문화협력위원회가 진행한 권역별 지역간담회를 정례화해서 그 결과물들을 예술위 내외에 반영하는 체계 수립도 중요하겠다. 성평등예술지원 소위원회와 청년예술TF의 향후 과제 지속도 중요하다. 예술위는 2020년에 있었던 Y작가 성희롱 사건 이후로 위계에 의한 예술 현장의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대응력을 높여가기로 약속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하여 예술위는 성평등예술지원 소위원회를 중심으로 성희롱·성폭력 고충 처리 규정 신설에 대한 논의 지속하여 조만간 규정을 완성 및 적용할 예정이다. 따라서 8기 위원회에서는 이 규정이 예술위나 예술위 유관기관 그리고 문체부와 체계적으로 맞물려 나갈 수 있도록 계속 심혈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청년예술TF의 제안으로 2022년에 추진될 (가칭)청년참여예산제는 8기 위원회에서 더욱 고도화하여 예술위의 예산과 사업 수립 과정에 더 많은 예술인이 권한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나가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국회, 기획재정부, 문체부 등과의 관계에 있어서 예술위가 최대한의 주도권과 견제력을 가질 수 있도록 위원장과 사무처 간부 단위에 폐쇄적 대외 소통을 위원회, 소위원회 차원으로 최대한 확대하고 대외소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중대한 쟁점은 보도자료나 위원장의 담화문 등을 통해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 이로써 화이트리스트 성격의 국회 쪽지예산 및 문체부의 일방적인 업무 전가나 문화예술진흥기금 활용에 대한 견제 그리고 문화예술진흥기금 편성에 대한 기획재정부에 대한 협상력을 높여 예술인 중심의 합의제 기구라는 예술위의 정체성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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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태림: 우리의 삶 속에서 정치와 예술이 어떻게 마주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두고 미술비평가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문화비평 웹진 크리틱-칼(www.critic-al.org)을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운영했다. 2020년 5월부터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7기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