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2일 광주광역시의회에서는 발의 예정인 <광주광역시 예술인 지위와 권리 보장 조례안>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조례안을 마련한 김나윤 의원이 좌장을 맡고 임인자 민관협치TF 부위원장, 정윤희 전 예술인권리보장법 입법 추진 TF 위원이 발제를 맡았다. 토론에는 광주여성예술인연대 김화순 작가와 김소진 큐레이터, 장도국 민관협치 TF 위원과 정종임 문화도시정책관이 참여했다. (*관련한 자료집과 토론회 영상은 [여기]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임인자 부위원장은 각 조항별로 쟁점이 되는 사항들을 살펴보면서 해당 조례가 좀 더 실효성을 갖기 위한 방안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정윤희 위원은 정부 차원의 입법 과정과 법 제정 이후 발생한 표현의 자유 침해 사건들을 언급하면서 조례 제정에서 의미를 찾는 것의 한계를 지적했다. 토론에서는 연 1회 정도로 머물러 있는 성폭력 방지 대책이 가진 한계를 지적하면서 피해자 개인이 싸우도록 할 것이 아니라 구조적 안전장치를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제안(김화순 작가), 청년 예술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조건, 새로운 의제를 제안할 수 있는 기구로서 위원회의 기능에 대한 의견(김소진 큐레이터), 제도 운영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치로 독립성을 제안하면서 권리보장 및 피해구제의 과정이 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자체의 권한을 가지고 작동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장도국 배우)는 의견들이 제안되었다. 이런 지적들에 대해 조례의 발의자인 김나윤 의원이나 정종임 문화도시정책관은 공통적으로 운영과정에서의 보완을 주요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조례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실행과정에서 수행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가능성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
중앙 정부 법령 한계 보완
전국적으로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에 대한 사항을 보호하는 조례는 많다. 자치법규시스템에 따르면 예술인 복지 증진 조례, 또는 문화예술증진과 예술인 복지를 묶어 제정된 경우 등 70개 정도가 된다. 각 조례에서는 세부 조항을 통해서 예술인의 지위와 직업적 권리에 대한 보장이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조례들은 거의 사문화된 것으로 보인다. 정보공개포털이 제공하고 있는 정부3.0 ‘결제문서 원문정보’ 검색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예술인 복지’, 혹은 ‘예술인 권리’라는 표제를 단 문서도 소수이지만 위원회 운영이나 주요 쟁점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사항은 하나도 없다.(정보공개포털 )즉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관련 용어를 키워드로 하는 행정문서가 생산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아예 목록을 비공개하면 정부3.0 결제문서 원문정보 검색에서 아예 누락되기도 한다. 그런데 예술인 복지나 권리에 대한 사항이 비공개 사항인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특히 <예술인복지법>에 근거를 둔 각종 예술인 복지조례는 조례 상 위원회 구성을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로 운영되는 사례 역시 찾기 어렵다. 이를테면 서울시의 경우 예술인 복지조례 상 별도의 위원회를 두도록 하면서도 기존에 있었던 ‘문화시민도시정책위원회’의 분과로 갈음하도록 했는데 해당 위원회 자체가 2018년 이후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서울시 위원회 정보공개 사이트) 당연히 예술인 복지조례에 근거한 위원회 역시 열리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조례에 따르면 위원회는 예술인복지증진계획, 예술인 복지제도 등에 대한 심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위원회 회의가 없었다는 것은 조례에 따른 주요한 시책들이 전혀 실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다시피 <예술인복지법> 제4조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를 명시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조례들은 이를 근거로 조례를 제정해왔다. 법 제16조의2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할 수 있고 이를 시행령으로 정한다고 했지만 시행령에는 구체적인 위임의 내용이 없다. 법령의 허술함에 형식적인 의무 규정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조례를 만드는데 역할은 했지만 조례를 작동시키는 것까지는 해내지 못한 셈이다.
현행 <예술인권리보장법>의 경우에는 제5조(국가기관등의 의무)를 통해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와 더불어 공공기관의 의무까지 광범위하게 명시하고 있다. 오히려 <예술인복지법>에 비해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의무를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해당 법에 ‘국가기관등’에 대한 정의가 누락되면서 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명시적인 의무 규정과 위임이 없다고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제2조(정의) 4호에서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이하 “국가기관등”이라 한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정의가 아예 없다고 할 수 없지만 별도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실제 광주광역시 조례 제정 과정에서는 명시적인 위임 규정의 부재가 조례 제정의 요건에 있어서 중요한 논쟁거리로 나타났다. 사실 명시적인 위임 여부와 상관없이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에서 정한 입법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국가의 기능을 보완할 책임을 가지고 있으며, 이와 같은 보완적 특징은 지방자치단체를 별도로 설립하는 목적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 이후, 가장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제정과정을 거친 광주광역시 예술인권리보장 조례는 중앙정부의 법령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보완하는 중요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적어도 이후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예술인권리보장조례가 제정된다면 하나의 기준 사례로 기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적어도 법령의 명시적인 위임이 부재하더라도 타 지방자치단체의 입법례가 있다면 조례 제정의 정당성이 확보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권리 침해가 발생할 때, 조례는 어떻게 작동할까
발의 예정인 광주광역시 예술인권리보장 조례는 한편으로는 포괄적인 보장의 범위를 담고 있다는 것(일반적인 권리침해, 성폭력 등에 대한 예방과 가해처벌, 피해구제 등의 내용과 더불어 안전한 작업환경의 조성 의무 등)에서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예술인권리보장법의 약점인 작동의 과정에 있어서 구체성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이를테면 하나의 사건이 벌어졌을 때 광주광역시 예술인권리보장조례가 어떻게 작동하게 될지 모호하다는 말이다. 법에서는 예술인보호관이 권리침해행위 및 성희롱 성폭력에 대한 조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이 명시되어 있고 분쟁조정을 지원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제27조). 그런데 예술인보호관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선임하도록 함으로서 실제 조사와 지원 업무를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할 수 있는가라는 쟁점이 생긴다. 여기서 법 제12조에서 명시된 예술인보호책임자의 지위와 권한을 조례에 어떻게 명시하느냐에 따라서 실질적인 피해조사와 지원의 내용이 결정된다. 하지만 조례에는 법률상의 조항을 그대로 인용했을 뿐, 불만처리와 평가업무의 구체적인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조례안 제16조). 그렇다 보니 법에서는 예술인보호관의 조사 사항을 의결하는 기능을 핵심적으로 가지고 있는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의 기능과 조례에서 구성하도록 한 심의위원회의 기능은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법에서는 신고 사건에 대한 사항 일반과 더불어 구제절차 및 요청에 대한 사항부터 시정명령 요청에 대한 사항까지 문제 상황에 대한 명시적인 개입 근거를 가지고 있지만 조례에서는 기본시책, 지원계획, 지원사업에 대한 내용으로 제한되어 있다.
광주광역시 예술인권리보장조례의 제정에 배경이 된 광주광역시립극단의 문제의 경우, 만들어질 조례에 의하면 어떻게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명시적인 사항을 확인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여타의 쟁점에도 불구하고 가장 본질적인 측면, 예술인 권리침해가 발생하는 현장으로서 지역 예술계의 구체적인 문제 해결에 현재 준비중인 조례가 기능할 수 있을지 모호하다는 것이 가장 큰 약점으로 보인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각종 지원사업을 전담하는 지원센터의 설립이나 10명 이내의 위원회가 할 수 있는 기능은 별로 없다. 12일 토론회에서는 운영과정에서 충분히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의원이나 담당 공무원이 강변하지만, 정작 광주광역시나 광주광역시의회가 가해기관이 되었을 경우에도 명시화되지 않은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부분은 애당초 블랙리스트가 공공기관에서 실행된 범죄라는 것을, 그래서 예술인의 피해 조사와 구제는 공공기관을 통해서 작동하지만 동시에 공공기관을 향해서 작동해야 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고려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에 대해 조례 제정 이후 시행규칙을 통해서나 이후 조례 개정을 통해서 보완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애당초 법령과 다르게 조례는 좀 더 구체적인 실무적 매뉴얼로서 기능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수많은 조례들이 실제 작동도 하지 않고 잠자고 있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야
예술인권리보장법 이후 지역 조례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문제가 발생하는 곳은 구체적인 예술현장이고 당연히 각 지역사회에서 발생할 개연성이 크다. 중앙정부야 법을 통해서 프로세스를 마련했다고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입장에서는 그러면 지역에서 벌어진 일들도 다 법령에 따른 중앙정부 프로세스로 이관하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자체적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야 하는지 곤란함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조례 제정을 통해서 예술인권리보장법의 영역과 구분되는 처리 내용과 방식을 정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보면 조례 제정에 있어서 가장 집중해야 할 것은, 그것이 구체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조례는 구체적인 집행과정에서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마치 요리를 할 때의 레시피처럼 명확한 지시사항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조례를 두리뭉실하게 제정하는 것은 음식 맛을 담보할 수 없는 레시피로 요리하는 것과 같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새롭게 설치하는 기관이나 기구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그 기관이나 기구 간의 역할과 관계를 정하는 것이다. 또한 기관이나 기구가 자동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정례적인 안건이나 규칙적인 회의 개최의 요건을 마련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그러니까 안건이 있으면 회의를 개최한다는 방식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회의를 할 수 있도록 그에 적절한 안건을 기능으로서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많은 경우 조례가 사문화되는 것은, 위원회 등의 기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광주광역시 조례를 사례로 보면, 현행 ‘광주광역시 각종위원회 구성 및 운영등에 관한 조례’가 정하고 있는 내용과 비교할 때 더욱 형식화되어 있다. 광주광역시 예술인권리보장조례는 제8조를 통해서 위원을 시장이 임명 또는 위촉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각각이 시의회의 추천, 활동 경력 등으로 나열되어 있다. 하지만 위원회 조례에 따르면, 위촉위원의 경우에는 시보 및 홈페이지에 공고하는 등 공개모집 방법으로 시장이 위촉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면 예술인권리보장조례에는 위원회조례에서 명시한 공개모집의 절차를 더욱 구체화할 필요가 있었다. 추천위원회 구성이랄지, 아니라면 단체나 연명 방식의 추천절차랄지 하는 것들이 조례에 명시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12일 플로어 토론에서는 전임 시장이 약속했던 문화센터 운영방식에 대한 변경 사유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조례는 이와 같이 행정절차의 임의성을 최소화하는 기능을 하기 위해 제정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조례의 내용이 임의규정이냐 강행규정이냐의 쟁점에 대해 질문을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최악의 상황에서도 해당 조례에 근거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있다’는 구속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도는 합의의 과정이 아니라 합의의 결과다. “어떤 경우에도 이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기로 한다”라는 명시적인 절차에 대한 합의다. 이것이 명확하지 않으면 조례는 이를 집행하는 행정에서도 그것을 활용하고자 하는 시민의 입장에서도 모호하기 짝이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 광주광역시 예술인권리보장조례는 다층적인 의미의 선행 사례로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다른 지역에서 구상 중인 예술인권리보장조례가 광주광역시 조례와 좋은 경합을 보이는 방식으로 제정되길 기대한다. 적어도 광주광역시 조례가 예술인권리보장법 이후 지역 조례의 가장 최선의 모델로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해당 조례가 불필요하다거나 부족하다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복사해서 붙여넣기 방식으로 차용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더 많은 논의들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광주광역시 조례 제정과정에서 애써온 많은 지역 예술인들, 이들과 함께 예술인권리보장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 활동가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김상철.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문화연대 집행위원. '밥먹고 예술합시다'라는 집담회를 계기로 예술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인들의 공정한 보상과 문화산업 내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모임인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창립에 참여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제1기 현장소통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예술인금고의 전 단계인 예술인생활안정자금 관리위원회 위원이다. 현재는 문화/예술 재정과 예술활동과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2022년에 '예술인의 사회적 지위와 가치에 대한 연구'(한국예술인복지재단)와 '동네 예술일자리 연결센터 실행방안 연구'(성북문화재단)의 책임연구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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