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정책을 다루는 일을 하다보면 문화예술의 자생력이란 말을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된다. 동시에 문화예술의 자생력이란 개념 자체가 본원적으로 존재하는 것인지, 혹은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 의구심을 품게 되는 측면도 있다. 특히 경제적인 측면에서 그런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대량복제가 가능하고 멀티미디어 환경을 통해 대규모로, 또한 지역적으로 국제적인 수준에서 유통이 이루어지는 산업화된 대중문화 분야(문화산업)가 아닌 개별적이거나 소규모로 창작과 활동이 이루어지고 향유와 소비 자체도 개별화되어 이루어지는 기초예술분야에서 문화예술활동의 경제적 입지는 취약하기 짝이 없으며 공공지원 없는 자립의 가능성은 무망하다고 하겠다. 물론 예술 역시 주류 경제학의 논리에 따라 상품화의 대상이 되거나 경제에 기여해야 한다는 경제주의가 강조된 문화경제학 분파에서는 기존의 재화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학 개념에 예술, 공연, 더 나아가 콘텐츠 산업의 분야에 있어서 경영기법 도입을 통해 시장실패의 요인을 줄여보려는 시도가 있어왔다. 하지만 특수한 몇몇 사례를 제외하고 일반화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
예술의 형성과 발전과정에 대해 경제적인 측면에 접근한 연구서인 『예술의 역사 – 경제적 접근』(이재희)에서 근대 사회로 넘어오면서 예술의 자율성이란 개념이 만들어지고 예술이 모든 외부 환경으로부터 독립적이라는 관념이 힘을 받게 되었으나 실상 예술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것으로 생활을 영위하고 예술작품이 소비자의 선택을 둘러싸고 다른 재화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라 지적하고 있다. 예술은, 문화예술계 내부에서 다른 예술과의 경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사한 사회적 재화와의 경쟁구조에 있으며 이 안에서 경제적 효율성을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시대를 막론하고 예술은 사회적 성격을 지녀왔고 이에 따라 통치세력과 사회공동체로부터의 일정한 경제적 부조에 의해 유지되어왔음을 지적하며 근대 이후에 다른 공공적 요소와 마찬가지로 문화예술도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에 내몰렸지만 결국 국민국가, 복지국가로 이어지는 근현대 국가 시스템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다시 공공지원 구조가 만들어진 과정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문화예술의 자생력이란 개념은 그 출발에서부터 경제적 측면에서의 산업적 자립이란 일면으로 해석되기 힘든 측면이 있다.
통제의 시대를 넘어, 문화적 자율성이란 측면에서의 자생력
문화예술 자생력이란 개념이 한국 사회에 어떻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인지 연대기적으로 따져보면 대략 1980년대 중반으로 소급된다. 신문 지상 등에서 문화예술의 자생력이란 표현이 처음 등장하기 시작하는 시점이 1985년, 86년 무렵이다. 우선 1985년에 문화예술과 관련하여 자생력이란 표현이 언론지상에서 쓰이는 것은 두 가지 상반된 사안에 관련해서였다.
우선 첫 번째, 그해 10월 말 경 정부 주최로 열렸던 “85대문화회의”에 관련된 경향신문의 사설에서이다. 1980년대 내내 경향신문은 대표적인 어용언론 내지는 준정부기관지였기 때문에 당시 경향의 사설은 전두환 정부의 여러 정책을 대놓고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사설은 당시 관제행사로 치루어졌던 문화의 달 행사를 마무리하는 성격으로 치루어진 ‘관제’ 문화정책 대토론회에서 다루어진 주요 의제들을 소개하고 있다. “문화예술의 본질을 생각한다”라는 제목의 이 사설에서는 정부에 의해 열린 약 70여 개의 문화행사의 성과를 언급하며 “이러한 행사가 문화의 질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문화의 자생력을 북돋아주고 문화예술의 진폭을 넓히는 데는 더없이 좋은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상찬하고 있다. 과연 당시의 신군부정권의 전시성 문화행사들이 어떤 긍정적 파생효과를 낳았을까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이미 매우 정부 편향적이었던 언론에서조차 “문화의 질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아놓았듯이 썩 미학적인 질의 측면에서 자랑스럽게 내세울 것이 없던 행사라는 점은 자인하고 있다. 또한 역설적으로 당시에도 지역문화 자생력에 대한 우려가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반면 같은 해 12월의 동아일보 사설에서는 문화예술의 자생력이 전혀 다른 측면에서 다뤄진다. 당시 정부의 창작과비평사의 출판사 등록 취소 결정에 대해 문학인과 출판인들이 성명을 통해 출판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비판하고 나선 것을 다루면서 정부가 “문화의 자생력”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문화예술에 대한 지나친 개입과 간섭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듯 문화예술 자생력의 초창기 개념은 주로 관치행정의 지나친 통제에 대응하는 개념이었다. 1986년의 주요 언론에서 다뤄지는 방식도 마찬가지인데 정부가 행사 중심의 지나친 관치행정을 멈추고 문화예술 활동을 해당 영역에 맡겨두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말하자며 초창기 문화예술의 자생력이란 자율성의 의미가 더 큰 부분을 차지했다.
민주화와 개방의 시대, 자율성과 경쟁력이 공존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에는 이와는 좀 다른 개념에서 문화예술의 자생력이 다루어지기 시작한다. 주로 해외문화예술의 개방을 둘러싼 이슈가 등장하면서 이에 상응하는 “한국” 문화예술의 자생력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우려와 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는 특히 당시 외국영화에 밀려 고사 직전인 한국 영화계를 다루는 기사에서나 당시 문예진흥원의 문학지 지원사업의 문제를 다루는 기사 등에서 많이 등장한다.
1988년 영화산업의 자생력이 주된 이슈로 다루어진 것은 당시 영화법 개정으로 영화시장이 사실상 전면 개방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전까지 영화를 ‘보호육성’과 ‘이권’(외화수입쿼터)으로 묶어 문예영화, 새마을영화 제작 등의 제작이 강요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개별 영화사의 존속은 가능할 수 있었던 환경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던 것이었다. 공산권 영화와 일본 영화를 제외한 외국 영화 수입이 자유로워지면서 외화수입쿼터를 얻기 위해 더 이상 국책성 영화를 만드는 등의 억지춘향식의 편수 채우기를 안 해도 되는 상황이 되었고 영화제작 환경이 자율성이 강화되는 쪽으로 정책방향이 변화되었지만 그 이면에서는 외국 영화와의 직접적인 산업적 경쟁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이 당시 등장했던 자생력의 개념이란 그 이전까지 보호란 미명 하에 한국 영화계에게 가해졌던 통제와 관리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앞서 사용되었던 자율성의 개념도 일부 함의하고 있었지만 외국 영화와 경쟁에서 산업적 경쟁력과 문화적 정체성에서의 차별성을 포함한 미학적 자구력을 함께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었다. 문학지에 대한 지원금 문제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문예진흥원 지원 사업에 대한 논의도 유사한 측면이 있었는데 당시까지의 문예지 원고료 지원 사업이 영세한 문예지의 존속을 가능하게 하는 젖줄이었던 반면에 원고료 지급 과정에서의 불투명한 전용이 이루어지는 등의 잡음이 있었고 지원기관이 지원 과정에서 문예지에 대해 정부비판적인 작가들에 대한 배제를 요구하는 등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지적되며 ‘지원을 통한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문예진흥원의 문예지 지원이 문학계의 자생력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지적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요컨대 1980년대 중반 등장한 문화예술이 자생력이란 개념은 87년 민주화와 그 이후 진행된 문화예술계에 대한 정책변화, 문화시장의 개방이란 상황에서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정리될 수 있겠다. 하나는 87년 이전까지 정부의 일방적 통제주의적 문화정책에서 벗어나 문화예술계의 자율성 강화라는 측면이었고, 다른 하나는 90년대 이후 시장개방과 세계화의 상황에서 시장경쟁력과 자립가능성에 대한 고민이었다. 이런 논의에 공통적으로 깔려있는 시각은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 문화예술계는 정부의 통제 정책 속에서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관리되는 대상인 동시에 보호받는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의 지원정책 틀 바깥에서 자생하고 있는 문화예술이 존재하고 있지만 이것은 당시까지의 유사 파시즘적인 정부에 강하게 반발하며 직접적으로 저항하거나, 혹은 거기까지는 이르지 않더라도 스스로 체제 내로 들어가기를 거부하며 주류문화예술계에 포함되지 않는 하위문화 지향을 자발적으로 보이고 있었음을 상상하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87년 민주화라는 정치적 상황의 격변과 문화시장의 전면적 개방은 더 이상 국가의 권위적(관료적) 통제가 사회문화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을뿐더러 (그러나 불과 사반세기가 흐른 이후 이런 권위적 통제를 재현하려는 시도가 “블랙리스트”란 이름으로 이루어졌다) 다른 측면에서 그런 통제적 시스템을 통해 유지되는 주류 문화예술이 쏟아지는 다양한 문화적 홍수 속에서 아무런 경쟁력이 없는, 존재적 불구(不具)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뼈아픈 자각을 담고 있었다. 여기서 자생력이란, 혹은 자생력의 회복이란 자율적 유기체로서 문화예술의 힘을 독립적 변수로서 복원해야 한다는 의미가 좀 더 강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90년대 후반 IMF를 겪으며 새로운 의미로 또다시 변화한다.
경제적 가치의 사회적 전면화와 자생력 해석의 변화
문민정부(김영삼 정부) 말미에 불어닥친 IMF사태는 한국 경제를 근간부터 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의 대대적인 축소가 시작된 빌미였다. 물론 그 이전부터 1980년대 서구 사회에서 벌어진 경제적 효율을 중심으로 정부의 역할 축소와 사회적 구조조정, 즉 신공공관리행정으로의 전환 필요성은 조금씩 제기되고 있었다. 그러나 사회적 저항에 부딪치며 전면화 되지 못하고 있었는데 초유의 국가 부도 사태는 신공공관리행정을 통한 공공부문 축소 혹은 사회적 기능의 시장화에 대한 강력한 명분을 제공한 셈이다.
문화예술 분야 역시도 이런 흐름에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 1990년대 말 문화부가 제시했던 <문화비전2000>에서는 이런 흐름을 피상적이나마 읽어낼 수 있다. 1997년부터 부처를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준비된 <문화비전2000>은 다음의 다섯 가지로 그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첫째, 우리나라가 2000년대 세계 주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둘째, 문화적 풍요를 통한 진정한 삶의 질을 위해서, 셋째, 문화적 창의성이 국가 발전을 주도하기 위해서, 넷째, 한국의 세계적 이미지를 확립하기 위해서, 다섯째, 통일국가의 본질적 통합과 역량을 제고하기 위해서. 이를 위한 정책목표로 첫째 문화복지의 확산, 둘째 문화의 정보화, 산업화, 과학화, 셋째, 전통문화의 보존과 현대적 개화, 넷째, 국가의 문화이미지 일류화, 다섯째, 통일국가로서의 통합된 민족문화 재조명이 제시되었다. 문화예술 분야에 있어서도 경쟁에서 성장할 수 있는 역량을 만들어 국가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사회적 자원으로서 적극적인 활용이 고민되어야 한다는, 국가경쟁력으로서의 문화예술이라는 논리가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통해 문화산업의 육성이 대대적으로 사회적 의제로 자리잡으며 현재의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 이르는 문화산업 분야 지원기관과 자금이 만들어지고 사회적 문화인프라 구축과 이에 따른 제도적 정비가 급속히 이루어진다. 그 이전까지 문화에 대한 접근이 추상적이고 정신적 가치에 좀 더 방점을 찍고 이루어졌다면 문화예술도 하나의 산업으로 이해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산업적 경쟁력을 촉진시킬 수 있는 원동력, 혹은 산업의 자원으로 이해하는 논리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던 시기이다.
이런 배경 하에 2000년대 이후 다루어진 문화예술의 자생력에 대한 논의는 문화예술을 국가 산업구조의 일부로 인식하거나 국가경쟁력의 촉매로 보는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여기서 특히 힘을 얻었던 것은 한류로 대표되는 문화산업의 성공사례를 중심으로 예술의 산업화를 통해 공공의 자원구조에 일방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고 문화예술의 자생력과 국제적인 경쟁력을 기르겠다는 것이었다.
시장중심적 예술산업화 정책은 특히 이명박 정부에서 강조되었지만 이미 그 이전 참여정부 시절부터 문화부 정책의 주된 관심사였다. 2006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예술의 산업적 발전을 위한 정책방안 연구>를 진행하여 발표하였는데 당시 연구의 취지를 살펴보면 “예술의 경제적 가치에 주목하여 신성장동력으로 문화산업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여러모로 가시적인 결과를 생산해내기 시작”하였다는 점을 강조하며 “발전의 뒷자리에 순수예술 분야가 다소 경제의 논리나 시장의 논리에 밀려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 연구의 취지에서도 순수(기초)예술의 비영리적인 특성은 인지되고 있는데 다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향으로 예술의 가치사슬체계에 근거한 예술과 산업의 연동가능성을 활성화시키고자 하고 있다. 즉 순수(기초)예술 그 자체의 산업적 파급력은 취약하지만 여기서 생성되는 문화적·지적가치는 산업적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만들어지는 등 예술 산업화 및 시장성 확대를 위한 제도적 지원기구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국가의 예술자생력에 대한 입장이 시장을 중심으로 한 방향으로 전환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문화예술 자생력이란 난제를 다시 돌아보며
짧게 훑어봤듯이 문화예술의 자생력은 시기마다 다른 관점으로 해석되어왔다. 한국의 문화정책이 국가의 강력한 통제정책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초창기의 자생력에 대한 요구는 이런 통제와 보호에 대한 간섭과 의존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8.90년대 민주화와 세계화가 맞물린 흐름 속에서 자율성의 회복과 자립적 지속발전의 가능성을 찾는 동시에 국제적 문화경쟁시대에서의 경쟁력 확보가 강조되기도 했다. IMF를 거친 이후 현재까지의 20여 년간은 거시적으로는 시장에서 문화예술의 위상을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를 상이한 측면에서 다루었다고 할 수 있다. 국가적 산업질서 속에서의 창의적 자원의 원천으로 다루어지기도 했고 공공적인 사회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에서 문화예술의 자생력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물론 시장 그 자체에서 경쟁자로서 문화예술의 콘텐츠산업적 측면을 강조한 접근도 존재했다. 얼핏 다양한 시각을 갖고 있는 듯 보임에도 공통점이 존재한다. 국가경쟁력 측면에서 문화예술의 효용성에 대한 경제주의적 접근과 국가적 필요를 전제로 한 문화예술을 상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창기 자생력에 대한 논의에서 강조되었던 문화예술의 자율성에 대한 “거친” 고민들이 경제적 가치중심으로 전면화된 1990년대 후반 이후 거의 사라졌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자생력 논의에 대해 문화예술계가 그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무망함을 느끼는 것은 바로 자율과 자립이라는 자생의 양면이 경제적 산술로만 계산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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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신규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 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 겸임교수.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문화예술분야에서 발을 들여놓았으며 창작자, 기획자, 정책활동가 등 깊이 없이 다방면으로 경험을 쌓았다. 최근에는 문화정책(제도) 연구와 문화 연구의 틈새를 메우기 위한 작업들을 고민하고 있다. 특히 관심 있는 분야는 국민국가 성립 과정에서의 문화적 제도화의 문제, 노동자 문화정체성에 대한 비전형적인 방향에서의 탐색 등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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