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0일부터 13일까지 제12회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이 개최되었다. 행사명으로만 보면 공연 등등의 작품을 프로그래밍하여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예술축제로 짐작하게 되지만, 이 행사는 여타 예술축제와는 성격이 다르다. 이 행사는 쇼케이스와 부스전시로 이루어진 아트마켓, 세미나, 포럼, 네티워킹 파티 등 교류협력 네트워크 프로그램, 초청작과 프린지로 구성된 제주인 페스티벌로 구성되어 있다. 제주인 페스티벌이 일반적인 예술축제에 가까운데 축제 프로그래머나 예술감독이 따로 있지 않다. 이름과 달리, 이 행사의 메인 프로그램은 ‘아트마켓’이다. 그리고 이 행사를 주관하는 기관은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이하 한문연)이다.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 홈페이지의 조직구성을 보면 위원장, 주무부처, 주최·주관기관 후원기업, 페스티벌 등 관련전문가로 소개되어 있다. 아트마켓이라 하더라도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전문인력의 구성이 보이지 않는다.) 행사 주관만이 아니다. 이 행사의 메인프로그램인 아트마켓의 구매자는 전국의 문화예술회관이다. 전국 문화예술회관 프로그램 공급을 위한 마켓인 셈이다. 그간 공연예술을 중심으로 운영되어왔던 데에서 올해는 전시와 문화예술교육까지 분야를 확대했다.
행사는 확대되었는데, 올해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은 개최 직전부터 SNS에서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하여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계속되었다. 비판은 주로 쇼케이스, 부스전시에 참여하는 예술가, 예술단체들로부터 쏟아졌다. 올해 행사에 대해서 만이 아니다. 그간 누적된 불만들이 터져나온 것이다. 행사장 객석 배치, 부스배치의 위계, 구매자라 할 문예회관 관계자들의 참여가 저조한 쇼케이스 공연 등등이 지적되었다. 제주 지역언론은 제주 예술단체 및 도민 참여가 저조하다는 비판 기사를 썼다. (이 행사에 제주도도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SNS의 특성 상 격한 발언들이 쏟아졌는데, 운영 미숙이라 할 문제들이 예술가 예술단체에 대한 공공기관의 ‘갑질’로 비판되었다. 예산을 가진 공공기관의 위계 폭력이라는 것이다.
제기된 비판 중에는 문예회관 관계자들은 기관의 출장비로 참여하는 반면 민간인 예술가, 예술단체들은 높은 참가비와 체류비를 지출해야 한다는 것도 있었다. 공적 지원의 수혜는 공공기관이라 할 문예회관에게만 돌려지고 중소 규모의 민간단체에는 참여비용 등의 장벽이 높다는 것이다. 논란의 와중에 이 행사를 통해 작품 유통의 기회를 얻었다는 증언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사례가 팽팽했던 비판 여론을 누그러뜨리지는 못했다. 성공사례보다 비용을 회수하지 못한 사례가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단지 그뿐일까.
논란은 이 ‘마켓’이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아트마켓’이라는 행사만이 아니다. 이 마켓의 구매자는 문예회관이다.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는 시설에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마켓을 공적 자금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정작 작품 생산부터 유통(마켓 참여)까지 민간단체에 그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다음과 같이 반론할 수도 있다. ‘마켓’ 즉 유통 플랫폼을 공적 자금으로 지원함으로써 유통활성화를 꾀하고 이를 통해 민간단체 역량강화에 기여한다면 수혜는 민간단체에 돌아가는 것이라고. 수긍할 수 있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 질문이 뒤따른다. 과연 이 행사가 공연예술유통활성화에 기여했는가. 그리고 아트마켓이라는 형식이 공연예술유통의 수혜를 좀 더 직접적으로 예술가, 예술단체에 되돌려주는 방식인가.
아마도 이번 논란은 이 두 질문에 대한 예술가, 예술단체들의 부정적인 답일 것이다. 올해로 12회를 맞는 이 행사가 행사의 규모, 정확히는 행사에 투여되는 예산은 확대되었지만, 전국 문화예술회관 이외의 새로운 구매자를 발굴하는 시장 확장에 기여했다거나 이 행사를 통해 지역문화예술회관의 (자체) 구매력이 제고되었다는 지표는 없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 아트마켓이 공연예술유통에서 생산자에게 좀 더 실질적인 수혜를 줄 수 있는 형식인가. 중소규모 예술단체에게는 진입장벽이라 할 높은 부스 참가료와 체류비 그리고 쇼케이스 공연에 대한 정당한 공연료도 논란이 되었다. 정상적인 마켓이라면 생산물을 판매하기 위한 견본(쇼케이스)을 생산자, 판매자가 제공할 수 있다. 문제는 공연예술은 필름처럼 복제가 불가능하고 1회적인 생산물이라는 것이다. 쇼케이스로 축소했다 하더라도 공연자와 스태프가 현장에서 생산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 때문에 최소한으로 지급되던 참가 경비가 있었을 게다. 그런데 올해는 이마저도 지급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왜? 공적 자금으로 시장을 열었으니 판매자들이 판매에 따른 비용을 부담하라는 것일 게다. (이중 지원의 논리다.) 역시 정상적인 마켓이라면 비용과 이익을 따져서 쇼케이스로 치루는 비용이 기대되는 이익보다 낮다면 쇼케이스를 거부할 것이다. 아무런 비용 제공 없이 예술단체가 참여했다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기대 이익이 있다는 것 아닌가. 행사에 대한 리뷰를 보면 쇼케이스 참여를 통해 실현될 수 있는 기대 이익은 직접적인 판매 계약 성사라기보다는 방방곡곡문화공감 사업 선정이었다. 아트마켓 쇼케이스 참여 비용이 다른 공적 지원사업에 대한 이익으로 상쇄되는 것이다.
이처럼 전국의 문화예술회관은 그 자체가 공적 자금으로 조성된 일종의 시장이다.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은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문화예술회관 프로그램 공급 시장을 위한 행사인 셈이다. 새로운 구매자들을 발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존 구매자들의 구매력이 이 행사를 통해 제고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행사가 아트마켓이라는 허상을 벗고, 지역문화예술회관과 예술단체들의 정보 교류에 집중하라는 제안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공연예술계에 ‘아트마켓’이 등장하는 것은 2000년대 중반이다. 2004년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마켓이 문화관광부 후원, 한문연 전신인 (사)전국문예회관협회(이하 전문연) 주최로 개최되고 이듬해인 2005년에는 우수 공연 프로그램을 추가하고 전문연과 (사)한국공연예술매니지먼트협회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예술프로그램마켓’으로 행사가 변화한다. 두 행사 모두 전문연이 주관기관인 이유는 이 행사의 취지가 문화예술회관 활성화에 있기 때문이다. 2006년 개최된 ‘2007 지방문예회관 우수공연 프로그램마켓’(전문연 주최)은 복권기금으로 지원되는 ‘지방문예회관 특별프로그램 개발 지원사업’에 2007 우수 공연프로그램으로 선정된 120개 작품을 지원대상인 지방 문예회관 기획자들에게 소개 상담하는 행사였다. (그러고 보면 올해 제주해비치아트마켓이 분야를 확대했다기보다는 초기 아트마켓을 다시 복원했다는 것이 더 적절하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인 2005년 국제교류를 목표로 한 서울아트마켓이 시작된다. 모두 문화관광부의 정책사업이었다.
아트마켓이 시작될 때의 기대는, 기존의 공연예술유통이 사적 네트워크에 의존하던 데에서 좀 더 합리적이고 폭넓은 유통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문연, 한문연 등 공공기관을 회원사로 둔 기관이 공공기관 이외의 민간예술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합당할까. 지금과 같이 한문연이 주최 주관하는 아트마켓이라면 지역문화예술회관으로 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역문화예술회관을 통한 공연예술시장활성화, 공연예술시장 확대에 지금과 같이 운영되는 아트마켓이 필요할까? 지역문화예술회관을 통한 시장 확대라면 프로그램 공급 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외에 어떠한 방법이 가능할까. 예산을 확대하고 지역문화예술회관의 공공성에 부합하는 프로그램 기획력을 제고함으로써 다양한 작품들의 유통을 활성화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 하나 난제는 지역문화예술회관의 프로그램 공급 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린다는 것은 제작은 민간에 맡기고 공공은 유통만을 담당하겠다는 것인데, 공공제작의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는 것이다. 지금도 유통에 대한 공적 지원에 비해 정작 제작의 열약한 환경에 대해서는 정책적으로 방치되어 있다는 비판이다. 게다가 지금과 같이 공적 자금으로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방식의 ‘시장’이 민간 자율성을 위축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결국 현재 진행되고 있는 아트마켓, 그 용어가 떠올리게 하는 자유로운 거래로서의 시장과는 다르다. 지역문화예술회관이라는 공적 시설에 공적 자금으로 (민간제작)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공적 지원 정책이다.(국공립단체들의 작품도 포함된다.) 그런데 왜 ‘마켓’이라는 용어가 필요했을까. 그리고 도대체 시장이란 무엇일까. 사고파는 행위가 벌어지는 곳은 모두 시장일까. 공적 자금으로 이루어지는 거래는 이윤을 목표로 한 민간의 상업 행위와 어떻게 구별될까. 어떻게 구별될 수 있을까. 또한 공적 자금으로 인위적으로 형성된 시장이 생태계의 다른 부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도 세심하게 살펴야 할 것이다. 시장이라는 용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적 지원 정책의 합리적 기준과 목표가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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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연극평론가. <컬처뉴스> 예술경영> 편집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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