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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예술인고용보험] 쟁점1. 시혜가 아닌 권리

CP_NET 2019. 9. 1. 20:35

고용노동부는 연초 <업무계획>에서 모든 국민을 빠짐없이 보호할 수 있도록, 고용안전망을 강화하겠다면서 고용보험의 저변 확대 및 사각지대 해소를 첫 손에 꼽았다. 여기엔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논의되었던 특수고용노동자들과 예술인에 대한 고용보험 가입범위 확대가 포함되었다. 내용에 따르면, 2019년 내에 <고용노동법>을 개정하고 이와 별도로 노사가 참여하는 고용보험 제도개선 TF'를 통해서 세부 적용방안을 마련하고 시행령 등 하위 법령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이런 과정이 시작부터 막힌 상태다. 당장 201811월 한정애 의원이 발의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에서조차 논의되고 있지 못하다. 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고용보험의 확대가 어렵다는 점에서, 사실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기간만큼 예술인 고용보험은 적용될 수 없다. 현재(20198월 말)의 상황을 고려하면 국회에서 <고용보험법> 개정이 주요 법안으로 다루어져 올 해 안에 통과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결국 2019년 하반기에 시범사업을 진행하면서 세부적인 적용방안을 찾겠다는 애초의 계획은 달성하기 어려워 보인다.

 

고용보험이 제대로 도입되는데 시간이 다소 걸리는 것이 크게 문제이겠냐는 시각도 있고 타당한 관점이다. 예술인을 적용대상으로 한다는 데 이견이 없는 상황에서 법 개정 시기까지 세부적인 적용방안을 잡는 것으로 논의를 진행하면 나중에라도 속도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한 측면은 고용보험 자체의 내부논리에 의한 한계이고 다른 측면은 예술계 내의 논리에 따른 한계 때문이다.

 

 

재원 안정성

 

고용보험은 크게 대상자로 구분하면 노동자와 자영업자에 대한 제도로 분류할 수 있다. 예술인 고용보험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기존에 자영업자로 분류하여 보호했던 제도에서 예술 창작활동을 노동으로 포괄하여 노동자성에 기반한 사회보장으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이와 연관되어 있던 것이 기존에 자영업자로 분류되어 있던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고용보험 적용과 관련한 사항이었다.

 

노동자에 대한 고용보험은 크게 한편으로는 실업급여 항목으로 구직급여와 모성보호육아지원이라는 정책지원과 더불어 고용안전, 직업능력개발 사업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재 논의되는 예술인에 대한 고용보험은 실업급여 중에서도 구직급여의 항목에 한정된다. 즉 모성보호육아지원이나 고용안정, 직업능력개발 사업이라는 대상은 점차 확대되어야 할 영역이고 실제로 예술인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제도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예술인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은 단순히 가난한 예술인에게 정부가 돈을 지원한다는 시혜적 차원의 의미가 아니라, 예술인의 창작활동이 노동으로서 존중을 받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노동을 유지하기 위한 각종의 고용보험 지원 제도내의 사업들을 당연한 권리로서 보장받는 것과 연관된다. 결국 실업급여 적용에서 시작한 예술인 고용보험 논의는 사실상 1단계 논의로 제도화 경로에 겨우 올라탄 상황이다.

 

문제는 현재 고용보험과 관련하여, 재원의 고갈 위험성이 지속적으로 이야기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지난 7월에 나온 국회예산정책처의 <고용보험기금 임금근로자 실업급여 계정 기준선 전망 및 재정전망(2019~2040)>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구조와 대상자가 유지된다는 조건에서 2024년이면 고용보험기금의 재원이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는 일차적으로 실업이 늘어나 고용보험 지원대상자가 늘어났고 보장기간을 늘려 지급기간을 확대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고용보험의 재정에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부분이 매우 협소하기 때문이다. , 사용자와 노동자가 내는 고용보험료가 실업급여의 유일한 재원이고 정부는 육아휴직 등에 필요한 재원만 부분적으로 보조할 뿐이다(2017년 기준으로 전체 9조의 수입 중에서 정부가 출연하는 금액은 1천억원이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상 새로운 고용보험 대상자를 포괄하는 예술인 고용보험의 적용은 시기적으로 서두를 요인이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국회에서 계류 중인 법률 개정안을 핑계로 적용시점을 차일피일 미루더라도 정부 입장에서는 크게 아쉬울 것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예술인 고용보험을 요구해왔던 입장에서 보자면 재정 문제에 발목잡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들 수밖에 없다. 특히 예술인복지정책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얼마나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이런 기대를 가지고 있는 예술인 당사자가 별로 없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저 대통령 임기 내에 도입하면 되지 않겠나수준으로 관리될 개연성이 크다.

 

 

예술계의 복잡한 계산들

 

이런 상황에서 고용보험 제도를 도입하는데 있어 예술계 내부의 상황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8년 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통해서 사회보험료 지원을 받고 있는 예술인은 4,500명 수준이다. 재단은 사회보험에 가입하고 있는 예술인 및 사업주의 자기 부담금 중 50%를 보조해주는 지원정책을 하고 있는데 산재보험의 경우 무용이나 연극 쪽의 비중이 높은 반면 고용보험은 기존의 산업 체계에 포함된 영역의 비중이 높다. 실제로 최근 3년 사이에 기존 고용보험 체계에 들어가 있던 영화 쪽 예술인들이 활동증명제도를 통해서 예술인 사회보험 지원제도로 편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재단에서 운영하는 사회보험료 지원 정책은 노동자 지원뿐만 아니라 사용자 지원항목도 있어서 가능하다면 보장 지원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작 고용관계가 모호하거나 혹은 필요 노동일수가 부족해서 고용보험에 가입하기 힘든 예술인들은 지속적으로 배제되는 한계를 가진다. 즉 현재 고용보험 제도가 노동관계를 전제로 해서 짜여져 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의 제도 개선에도 그 일차적인 효과는 상대적으로 산업화가 진행된 영역에서 우선적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소위 고용보험 가입 효과의 장르 간 편차가 나타날 개연성이 높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생활예술인에 대한 고용보험 가입 확대 역시 이런 측면에서 우려가 된다. 전반적으로 사회보장 정책이 강화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각각의 영역에 존재하는 예술활동을 모두 예술인 고용보험의 틀로 담으려고 하면 결국 출발도 하기 전에 몸집이 너무 커진다. 이를테면 영화와 같이 산업화된 영역의 경우 사용자의 책임이나 영화발전기금과 같은 재원들을 통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비슷하게 출판계라고 한다면 사용자 단체 격인 출협 등이 적절한 기여금을 납부하는 구조를 마련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예술계의 속성 상 사용자와 고용자 간의 특수한 관계가 일반 고용관계에서의 역할을 모호하게 만드는 경향이 크다. 생활예술인에 대한 논란도 그런데, 스스로 예술인이라고 주장하는 자임의 영역과 제도적으로 모든 국민이 부담하는 재정을 바탕으로 특별하게 그 을 보호해야 한다고 하는 사회보장의 대상을 특정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더구나 고용보험 자체가 사용자와 노동자의 기여금을 가지고 진행하는 소득의 재분배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 분배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 형평성의 관점 역시 매우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기존의 자영업자 격으로 인정되던 프리랜서 예술인들을 사실상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로서 접근하여 고용보험을 적용하자는 것은 기존의 이미 산업화된 예술인에 대한 보호나 혹은 아마추어 활동에서 파생된 전문 예술인으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문제설정이다. 논쟁이 더 필요한 부분에 논쟁을 우회한 민원성 문제제기만 반복되는 상황이 재연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시기가 전부는 아니지만

 

도입하기로 한 것이니 언젠가는 도입될 것이라 기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의 출발은 결국 해당 제도에 의한 구체적인 이해관계자들이 나타날 때만 가능해진다. 지금과 같은 예술인복지정책의 한계는 이 제도에 연관되어 있는 예술인들이 해당 제도의 주체로서 등장하고 있지 못하다는데 있다. 이것은 기존의 사회보장 정책과 떨어져서 예술인에 대해서만 시혜적으로 진행되는 듯한 인상을 갖기 때문이거니와 이런 정책들이 기존의 사회보장 정책 변화와 다소 동떨어져 진행이 되다보니 민감성이 낮은 것도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인 고용보험의 도입은 예술인에 대한 복지정책이 갈라파고스의 새들처럼 일반적인 사회정책과 동떨어져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함께 속해 있는 것이라는 것을 새롭게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의미도 깊다. 그런 점에서 예술인 고용보험의 시행은 예술인이 별도의 지원을 받는 특별한 대상이 아니라 보편적인 사회보장 내에서 예술인의 상황에 맞춘 정책의 당사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고용보험 제도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연대의 의미와도 이어진다.

 

현재 이런 저런 사정으로 기차가 연착되어 승강장에 멈춰 있는 상태다. 이때를 짐을 더 실어야 하는 타이밍으로 볼지, 아니면 채근을 해서라도 빨리 출발시켜야 하는 상황으로 볼지는 서있는 자리에 따라 다를 것이다. 둘 다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구태여 고르라면 빨리 출발을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으면 작년부터 기차에 실어 놓은 것들이 상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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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문화연대 집행위원. '밥먹고 예술합시다'라는 집담회를 계기로 예술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인들의 공정한 보상과 문화산업 내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모임인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창립에 참여했다. 블랙리스트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혁신을 위한 TF 위원, 1기 현장소통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문화/예술 재정과 예술활동과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