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발전의 방향성은 잘 모르겠지만 일상생활에 편리함을 가져다준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물론 편리함은 단지 기술발전의 측면만은 아니다. 편리함은 몸의 고단함을 대체하는 것만은 아니다. 고단함의 과정을 유지하는 시간과 장소를 자유롭게 한다.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그 절약된 시간에 대해 그동안 사회적으로 개인화의 가치를 언급하기도 했다. 여기서 개인화의 가치라고 하는 것은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토대의 긍정적인 가능성을 희망하는 것이다. 실존하는 개인에게 시간은 마치 그냥 주어진 것이고 한정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그렇기에 시간에 항상 쫓기고 시간은 관리하는 것이라고 한다. 시간은 희소하지는 않지만 축적될 수 없기에 관리해야 하는 자원이 된다.
어릴 적 놀고 싶은 마음과 공부해야 하는 상황에서 손오공처럼 분신술을 써서 하나의 나는 공부를 하게하고, 다른 하나의 나는 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비단 어릴 적 공상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나를 여러 개로 나눠서 일하면 좋겠다는 푸념을 하기도 한다. 손오공처럼 도술로 나를 동시에 여러 개로 만들 수는 없지만 여러 개의 나를 대행할 수 있는 대행자는 있다. 즉 내 몸의 고단함을 대신하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서비스란 이름으로 이런 내 몸의 고단함을 대신하고 있다. 편리할수록 익숙해진다. 편리할수록 (편의성이 높을수록) 서비스 이용이 많다는 것이라 하겠다. 여행을 하고 싶다고 항공, 숙박, 여행 일정 등을 정해야 하는데 내 몸이 고단하지 않으려면 여행사에 맡기면 된다. 손오공처럼 도술을 하지 못하는 나는 내 몸의 고단함을 대행하기 위해서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편리함은 비용이고, 편리함과 비용은 정비례 관계이다. 편리함의 비용은 시간을 구매하는 비용이다. 나의 편리함은 다른 누군가의 시간을 구매하는 것이다. 시장에서 경쟁은 가격경쟁을 동반하는데 이를 혁신하는 방안은 구매자를 위한 판매자 시간을 줄이는 것인데 기술발전은 이를 가능하게 한다. 내 몸의 고단함을 대신하는 비용이 낮아진다는 것은 시간의 단가가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나를 구매할 수 없다면 구매하는 시간은 나와 분리 되어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나와 분리되어 있지 않은 시간에 나는 분리 되어있는 시간을 구매하기 위해 나의 시간을 판매하고 있는 것일까? 영화 <인타임(In Time)>은 미래가 아니라 이미 익숙한 현재가 아닐까?
지금은 너무 익숙하지만 약 20여년 전 문화예술정보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때 문화예술정보포털에 대한 검토가 있었다. 다양하게 산재되어 있는 문화예술정보를 한 곳에 모아 서비스를 하면 문화예술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고 그에 따라 국민들의 문화예술활동도 높아지고, 그만큼 문화예술경험이 풍부해질 것이란 기대다. 포털을 통해 정보접근성을 높인다는 것은 내 몸의 고단함을 대신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은 이러한 정보접근성은 너무도 당연한 상식이 되었다. 문화예술정보포털은 다양한 정보를 모아 보여주는 것이다. 일종의 문화예술정보 좌판(진열대)이라고 하겠다. 좌판에 올린 상품의 배치나 우선순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좌판은 그냥 나열이고, 나열된 상품의 선택은 수용자가 한다. 그래서 문화예술정보포털은 좌판을 만드는, 즉 선택을 위해 준비하는 내 몸의 고단함을 대신하는 것이다. 구성된 좌판을 둘러보고 예정하지 않았던 상품을 발견하게 되는 시간은 좌판을 준비하는 시간을 대체할 수 있다. 그런데 좌판 서비스의 일상화는 이제 더 이상 편리하지 않다. 한두 개의 좌판이 아니라 수십, 수백 개의 좌판을 둘러보아야 한다. 선택을 위해 둘러보는 시간은 편리함을 불편함으로 제약하고 있다. 세분화한 섹터, 자연어 검색 등 둘러보는 시간을 줄여보지만 한계가 있다. 둘러보는 시간이 많다는 것은 선택을 위한 시간이 많다는 것이고 이는 곧 구매행위 시간이 감소하게 된다. 구매행위 시간의 감소는 구매량, 구매비용 등에 영향을 미친다. 앞서 포털의 편리함도 검색-선택-구매행위의 전체 시간 축소에서 검색의 시간을 대신하는 것이고, 이제는 선택의 시간을 대신하는 편리함이 필요하다. 추천 서비스는 선택의 시간을 대신하는 것이고 곧바로 일방향 터치(클릭)로 구매로 직통하는 것이다.
좌판 서비스시 상품 배치에 특정한 목적을 의도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대표적인 불공정행위이다. 좌판 서비스에서 수용자는 개입을 하지 않는다. 개입할 수 있는 근거, 계기, 토대가 없다. 좌판 서비스에서 선택하는 행위는 개인이지만 대상은 수용자 전체이다. 그래서 좌판 서비스는 전지적 시점이다. 그런데 추천 서비스는 전지적 시점이 아니라 일인칭 시점이다. 선택하는 행위는 추천으로 대체되고 구매하는 행위는 개인이고, 대상도 개인이다. 논리적으로는 추천 서비스는 수용자가 개입한다. 추천의 근거, 계기, 토대가 개인 수용자의 행위이다. 개인 수용자의 행위가 데이터이다. 데이터사회는 모든 개인의 행위를 토대로 하여 이를 데이터화 하는 기술에 근거한다. 즉 데이터에 기반한 추천 서비스는 나의 문화예술상품 구매 행위를 근거로 나에게 다음에 구매할 문화예술상품을 추천하는 것이다. 나의 행위는 시간을 수반한다. 해당 추천 서비스에 제공되는 시간은 다른 시간을 구매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전지적 시점의 좌판 서비스는 좌판을 구성하는 대행자(시간 판매자)의 의도와는 별개로 펼쳐진 공간을 둘러보기를 통해 어슬렁거리며 경계를 가로지를 수 있다. 선택 전에 탐색을 할 수도, 한 눈 팔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수평적이라고도 하겠다. 일인칭 시점의 추천 서비스는 과거의 나의 구매행위가 미래의 나의 선택 행위를 결정한다. 그러한 선택 행위는 추천으로 제공되고 추천에 따른 구매행위는 다음의 구매행위를 결정한다. 추천 서비스에서 나의 행위는 단절 없는 구매 행위의 연속이다. 추천 서비스는 대행자(시간 판매자)의 의도에 따라 격자와 같은 폐쇄된 공간에서 회전할수록 깊어지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수직적이라고도 하겠다. 또 데이터사회는 굴착격자사회라고도 말 할 수 있을까?
문화예술경험의 시작을 어떤 행위(어떤 시간)로부터 고려하는 것이 적절할 것인지를 확정하지 못하지만, 좌판 서비스를 통한 문화예술경험과, 추천 서비스를 통한 문화예술경험이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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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사)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대학 시절 연극이 좋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문화운동과 조우하였다. 90년대 초반 석사 과정 시절 국내 최초로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생활실태조사를 했다. 2000년대 초 인디문화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게임산업 진흥기관에서 정책, 기획 업무를 총괄하고 문화산업과 예술 분야 정책 및 법제도 개선에 참여했다. 지금의 관심은 예술과 문화산업에서의 공정 환경, 문화예술 분야의 노동 환경, 디지털시대의 문화운동은 무엇일까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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