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기획연재-도시와 문화정책 ⑩] 두 번째 쓰는 기획의 변 _ 대안적 도시문화운동을 향하여

CP_NET 2020. 9. 10. 14:13

 

 

문화도시가 어느덧 담론적 수사를 넘어 명시적인 국가 정책 개념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문화도시라는 말이 각종 정책 문서, 홍보물에 아주 흔하게 쓰이고 있고 전국의 지자체들이 정부의 문화도시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거의 매주 각지에서 문화도시에 관한 행사들이 열린다는 소식들이 들려온다. 꼭 문화부 문화도시 사업뿐만 아니라 국토부의 도시재생 뉴딜이나 농림축산부 등에서 하는 농촌 마을 관련 사업 등 각종 도시 및 지역 활성화 사업들에 있어서도 문화적 방법론은 필수적인 것으로 제시 된다. 바야흐로 이 땅의 시민들이 아주 문화적인 환경에서 살게 된 것일까? 그런데 이런 각종 국가 주도 문화정책 사업과 함께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반드시 아름답거나 문화적인 이야기들만은 아니다.

 

도대체 문화도시를 왜 하는지 모르겠어.” 얼마 전 어느 지역의 예비 문화도시 사업지에서 일하고 있는 중견 문화기획자로부터 이런 푸념어린 메시지를 받았다. 말로만 시민 주도와 거버넌스를 통한 문화도시를 얘기하고 있지 거의 모든 사업들을 지역 관료들의 의지대로 좌지우지 하며 지엽적인 자율성도 잘 허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모든 게 상명하달식으로 진행되는, 그 자체가 대단히 비문화적인 상황에서 지역 문화 사업을 기획해야 하는 상황자체가 모순적이고 잘 납득 안 되어 열패감만이 밀려든다고 토로한다. 지역 관료들이, 그 기획자와 함께 일하는 사업 추진조직의 총괄 책임자를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해임하려든다는 것을 예로 들기도 했다. 해임의 표면적 이유는 당장의 눈에 띄는 성과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그 이유가 석연치 않은 것은 그 조직이 출범한지 겨우 반년 정도밖에 안 되었다는 점이었다. 즉 성과를 따져묻기도 힘든 상황에서 무리하게 책임자를 교체하는 것인데 그 이면에는 담당 공무원과의 불협화음이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간접적으로 한 다리 건너서 전해들을 얘기이기 때문에 사실 유무를 따지긴 힘들고 세부적인 정황도 알 수 없다. 무엇보다 아직 그 책임자에 대한 해임절차가 진행된 것도 아니기때문에 명확하게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 문화도시를 비롯한 각종 지역의 재생사업과 연계한 문화정책사업의 장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행정의 일방적 독주는 비단 그 지역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며 이런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기획자나 활동가들은 모두 적건 많건 경험하고 있는 일이다. 그리고 더욱 씁쓸한 노릇은 이런 상황이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니란 것이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어온 기획자나 정책가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들이다.

 

중앙 정부의 문화도시 사업 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와 다른 듯, 비슷한 씁쓸함은 도처에서 부딪히게 된다. 예를 들어 최근 세간의 논란이 되고있는 마포의 홍대관광특구 사업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지역을 관광특구로 개발하겠다는 사업 아이디어는 벌써 오래전부터 끊이지 않고 등장했었다. 홍대 지역을 외래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점에 착안하여 지역의 침체한 상권과 경제를 살리기 위해 중앙정부의 투자를 유치하고 각종 규제를 풀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이 계획에 관하여 홍대를 둘러싼 민간 영역은 오래전부터 양분되어 논쟁을 거듭해왔다. 지역에 대규모로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거나 상업시설을 운영하는 이들이 주로 관광특구 사업의 추진을 환영하는 입장이라면 반대로 홍대라는 문화적 장소성의 원천이 되었던 문화예술계나 특색 있는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특구 사업이 지역의 문화적 특성에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끼쳐 문화의 사막을 만들게 될 것이라며 오히려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홍대 인디씬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문화평론가 김작가는 이전에 이 사업이 논의되었을 때 명동의 사례에서 보듯 관광특구로 지정되면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호텔과 면세점만 우후죽순 늘어날 것이며 그나마 남아 있는 홍대의 문화적 특성마저 사라지게 될 것이라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홍대, 관광특구로” vs “문화 사막화될 것”, 동아일보 20161026 ) 단지 우려만이 아닌 것이 이미 홍대 지구는 문화적 명소로 주목받은 2000년대 초반 이후 지나치게 상업화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심각하게 이루어진 대표적인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이 지역이 문화지구로 지정되었던 2000년대 초중반부터 결과적으로 지역 문화를 파괴하는 문화지구란 역설적 상황을 거듭해온 곳이다. 홍대뿐만 아니라 과거 인사동이나 이태원, 최근의 익선동 같은 곳을 돌아보면 문화를 통해 지역을 재생, 혹은 성장시킨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음을 인식하게 된다. 과연 문화도시란 것이 행정의 일방적인 지역개발논리의 새로운 외피에 불과한 것인가? 혹은 겉으로는 공동체의 발전을 이야기하면서도 결국은 부동산을 중심으로 지역 자산을 독점하고 있는 소수 지역 기득권자의 이해관계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귀결되고 마는 것인가?

 

그런데 이런 문제들은 단지 한국 사회의 졸속한 성장주의가 문화도시, 문화적 재생의 개념을 잘못 차용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만은 아니다. 지난해 우연한 기회에 터키 이스탄불 발랏 지구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거의 20년째 문화적 도시재생을 진행하고 있는 곳이다. 본래 유태인들의 집단 거주지였던 발랏 지구는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유태인들이 집단적으로 떠나버리면서 오랫동안 불량거주지로 손꼽혀왔다고 한다. 이 지역에 덧씌워진 가난과 범죄라는 이미지를 벗고자 2000년대 초반부터 이스탄불시와 터키 정부, 그리고 유럽연합의 지원을 받아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지역을 특성 있는 문화관광지구로 변화시키기 위한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거의 20년의 계획으로 진행되는 이 사업에 대한 얘기를 들으며 길어봐야 4, 5년의 사업기간으로 진행되는 이 땅에서의 문화도시 사업과 비교되어 상당히 부러웠던 것이 사실인데 한편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에 대한 현지 이스탄불 시민의 입장은 의외로 냉담했다. “뭐 그래봐야 결과적으로는 지가와 임대료만 오르고 있다.” 뿐만 아니다. 예술을 통한 지역재생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히는 일본의 나오시마 예술섬에 대해서도 그 가시적 성공의 이면에서는 정작 지역 주민들이 섬에서 벌어지는 사업으로부터 거의 소외되고 있고 인구 자체가 줄어들며 빈집이 증가하고 있다는 뜻밖의 관찰 결과를 접하기도 했다. 문화도시 사업은 결국 국가나 지역을 막론하고 그 지역의 매력을 끌어올리며 상생을 이야기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대자본 유치를 근본적인 지향으로 가져가는 것이 일종의 패턴처럼 자리잡아가고 있다. 우리가 성공적 문화도시, 문화를 통한 지역재생의 성공사례라고 열광하는 것들의 이런 이면들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근대산업도시에 대한 일방적 열광이 낳았던 폐해가 또 다시 반복될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도시계획자의 입장을 벗어던지는 질문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과 다시 만나게 된다.

 

 

활용을 넘어 문화적으로 작동하는 삶

 

역병이 뒤덮은 시대, 도시와 지역의 문화에 대해서는 또 다른 참여를 통해 만들어지는 질문과 실천들의 탐색이 필요하다. 지난 1년 정도의 [도시와 문화정책]의 기획에서 주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문화도시 류의 사업들에 대한 비판적 리뷰가 주를 이뤘다면 앞으로는 이 기획을 통해 도시에 대한 문화정책의 접근에 있어서의 고민되어야 할 보다 근원적인 관점에서의 접근과 논의를 이끌어내고자 한다. 이를 몇 가지로 범주화해서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도시화가 갖는 문화적 속성의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알다시피 도시화는 근대화 기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의심의 여지 없는 사회발전의 지향으로 형태를 달리하며 거듭해왔다. 김태훈의 책 시민을 위한 도시스토리텔링에 따르면 200년 전만 해도 세계 인구의 약 3퍼센트만이 도시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체 인구의 절반 정도가 도시에 살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경우는 전체 인구의 90퍼센트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될 지경이다.(국토교통부 2015년 자료에 따르면 92%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이런 도시 밀집은 잘 알다시피 주거환경 악화, 부동산 폭등, 교통난 같은 문제의 원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최근 감염병 사태에 있어서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과연 도시화란 일상의 문화를 어떻게 재구성해왔는가에 대해 근본적 질문들을 꺼내들고자 한다.

 

두 번째, 문화정책과 문화운동에서 지역주의의 갱신에 대한 논의를 함께 다루고자 한다. 한국사회가 중앙집권국가로서 성장을 거친 이후 그 과정에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역의 자치분권을 새로운 가치로 꺼내들고 있지만 최근에는 이것이 새로운 형태의 지역이기주의, 폐쇄적 지역 인식, 지역 안에서의 독점과 배제, 위계의 문제를 낳고 있기도 하다. 지역이 그 안으로부터 개방성과 민주적 의사소통의 통로를 만들지 못한다면 지역주의는 대안적 가치로서의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도시정책과 지역자치의 문화적 기반을 변화시키기 위한 방향을 위해 지역주의라는 틀 안에 무엇을 담을 것인지, 혹은 그 틀에 한계가 있다면 어떤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를 담아보고자 한다.

 

세 번째, 문화도시 개념에 대한 적극적 재해석의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한다. 기존의 문화도시 정책은 결과적으로 지역의 무형적 문화 자산을 채굴(관찰, 조사)하고 제련(스토리텔링)하여 상품화(브랜딩)하는 전략으로 귀결되고 있다. 근대 산업도시를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론이라고는 하지만 산업의 매커니즘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상으로 구조화될 뿐이다. 휴경지의 여백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기획은 유휴지의 활용이 아닌, 유휴지 그 자체의 문화적 의미를 재발견하는 차원에서 문화도시 정책에 대한 개념의 재해석을 시도해보려고 한다.

 

아직 많은 것이 부족하고 구체성도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도시에 관련한 두 번째 삐딱한 대화걸기를 시작하는 것은 나름 절실함의 발로다. 대안적 도시 문화운동으로서 문화도시를 힘들게 다시 구성해보려는 것은 우리가 더 이상 현재와 같이 살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문화가 잘 활용되는 도시를 넘어서, 문화적으로 작동하는 일상을 되찾지 않는다면 감염병으로 점령된 문화도시는 포장된 인공낙원, 대형 놀이공원의 꼴을 벗어나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브랜드로서의 문화도시가 아닌 일상의 문화적 재구성이란 측면에서 문화도시의 새로운 해석을 구성하려 한다. 많은 관심과 다양한 의견이 함께 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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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신규.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 겸임교수.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문화예술분야에서 발을 들여놓았으며 창작자기획자정책활동가 등 깊이 없이 다방면으로 경험을 쌓았다최근에는 문화정책(제도연구와 문화 연구의 틈새를 메우기 위한 작업들을 고민하고 있다특히 관심 있는 분야는 국민국가 성립 과정에서의 문화적 제도화의 문제노동자 문화정체성에 대한 비전형적인 방향에서의 탐색 등을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