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7일,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은 공덕역 인근 ‘경의선공유지’에서의 5년간의 활동을 마무리 짓고 자진 퇴거를 결정했다. 국가철도공단(당시 철도시설공단)이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 활동가와 경의선공유지에서 활동하는 주민들에게 소송가액이 36억에 달하는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철도공단은 강제철거로 쫓겨났던 아현포차 이모들, 성동구에서 강제철거로 주거지를 잃은 청년, 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해 홍보관을 운영하던 장애인단체를 소송대상에 포함시킴으로써 경제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들을 겁박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국가철도공단의 치졸한 대응에 대한 분노와 경의선공유지 문제를 사회적으로 쟁점화 하고자 제기된 소송에 정면대응을 고려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승소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과 어려운 환경에 놓인 이들에게 소송의 부담을 지게 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고민으로 끝내 소송 취하를 조건으로 하는 자진 퇴거를 결정하게 되었다.
경의선공유지라는 물리적 공간에서는 떠나게 되었지만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은 경의선공유지 문제 해결과 철도유휴부지 활용에 대한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갈 계획이다. 다만 경의선공유지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다양한 커먼즈적 실험과 실천들은 현실적인 전환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5년간 경의선공유지를 중심으로 진행했던 활동들이 어떤 의미였는지 성과와 한계들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첫째로 ‘경의선공유지’와 같은 공유지가 어떻게 소수에 의해 사유화되고 시민들은 배제되는지를 알리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론화했다. 이 과정에서 경의선공유지 사례와 비슷한 전국의 다양한 현장들과 커먼즈네트워크라는 연대체를 만들었고, 커먼즈 연구자들과 함께 매년 ‘커먼즈네트워크포럼’이라는 행사를 진행했다. 이 포럼은 공유지 운동에 대한 경험과 고민을 나누고 연대하는 자리로서 2020년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경의선공유지 외에도 도시의 다양한 공유지에 주목하고, 공유지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되찾으려했다. 그중에서도 주목한 대상은 도시공원이다. 경의선공유지와 직접 맞닿아 있는 경의선숲길공원은 홍대입구역-서강역-공덕역이라는 도심을 관통하며 인근 지역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시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하는 도시공원으로 볼 수 있지만, 실상은 민원을 넣는 지역주민(주로 주택 소유자)과 민원을 중심으로 관리하는 행정에 의해 사유화되어 관리 운영되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공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다. 우선 보행이나 산책 이외에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행정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마저도 행정은 ‘행사로 인한 소음’이나 ‘미관상 보기에 좋지 않다’와 같은 민원이 조금이라도 들어오거나, 또는 들어올 것 같으면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한번은 경의선숲길공원에서 공유지를 주제로 하는 영화제를 진행했는데 끝내 허가를 받지 못해 벌금을 내면서 행사를 강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공원의 운영방식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퍼포먼스로 이어졌다. 작은 리어카에 이것저것을 싣고 행진을 하면서 중간중간 예술전시를 하거나, 음악 틀고 춤추기, 칵테일 만들어 먹기, 파전 부쳐 먹기 등을 하는 것이었다. 행사는 경찰이나 관리자들이 오면 적당히 실랑이를 하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방식이었으나, 의외로 영문도 모르는 지나가던 시민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기도 했다.
또 하나 의미 있는 활동으로는 ‘26번째 자치구 선언’이 있다. 26번째 자치구는 강제 철거를 통해 삶의 터전을 잃고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 도시 난민들이 일시적으로 머무르며,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운동과 연대를 위한 거점으로 경의선공유지를 활용하며 시작한 활동이다. 기존 서울의 25개 자치구를 넘어 새로운 자치구를 선언함과 동시에 공유지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공생과 공존을 모색하는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이를 통해 재개발, 재건축, 건물주의 횡포 또는 도시 경관 사업 등으로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경의선공유지에 모이게 됐다. 상인들은 중단된 장사를 이어나갔고 자신의 권리 찾기를 위한 운동거점으로 삼기도 했다. 경의선공유지는 이들 도시 난민을 위한 후원행사나 기자회견의 장소가 되기도 했고, 지지와 연대자를 모으는 홍보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경의선공유지는 이들에게 최후의 보루가 되었으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실제로 건물주에게 부당하게 쫓겨난 한 음식점 사장은 경의선공유지를 임시 거처로 삼아 활동하여 합의 끝에 분쟁을 잘 마무리 짓는 사례를 만들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경의선공유지에서 펼쳤던 다양한 실험적 활동이 있다. 경의선공유지는 교통이 편리한 도심에 있다는 점과 점유를 통해 자발적인 운영을 함으로써 행정의 간섭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래서 실험적 활동이나 사회적 비주류들을 위한 활동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예를 들어 경의선공유지에서는 자본과 권력에 저항하는 동아시아 활동가들의 축제였던 <노리미트서울>, 평소에 발언의 권리를 박탈당한 청년세대의 축제였던 <층간소음 페스티벌>, 지금은 보편화되었지만 당시에는 낯선 주제였던 <비건 페스티벌>과 <반려동물 페스티벌> 등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는 경의선공유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된 행사도 있지만, 외부에서 제안이 들어와서 함께 진행하게 된 행사도 다수였다. 그밖에 커뮤니티 모임, 파티, 워크숍, 소규모 라이브공연, 영화상영회, 체육대회 등 다양한 주제와 방식의 행사가 열렸다.
그간 경의선공유지에서의 활동을 돌이켜보면 공유지란 무엇이며 이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시기마다 활동했던 사람들이 달랐고, 또 그들이 하고 싶었던 활동도 매번 달랐기 때문이다. 활동을 하다 떠난 이도 있고, 나중에 합류한 이도 있었다. 경의선공유지가 꼭 필요해서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의지와 욕망이 무엇이냐에 따라 경의선공유지는 그때그때 다른 모습이 되었다. 그러한 경험들이 쌓여서 어렴풋한 무언가를 함께 상상하는 과정이 공유지가 되었다. 경의선공유지에서의 활동 중단은 이러한 변화의 경험들을 더 이상 함께 쌓아갈 수 없기 때문에 아쉬울 수밖에 없다. 이는 공유지 운동이 현재진행형이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시민의 자산이자 공유지인 철도유휴부지가 특정 기업의 수익을 위해 사용되는 것은 막고, 커먼즈적 가치에 기반한 공유지의 활용에 대한 실험과 실천을 만들어가는 시민모임이다. 2016년 2월부터 공덕역 인근 철도유휴부지인 ‘경의선공유지’를 점유하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활동을 통해 공유지에 대한 대안적 모델을 만들어가는 활동을 시작했다. 또한, 도시에서 끊임없이 쫓겨나는 도시난민을 위한 거점으로서도 활용되며, 도시에서 배제되는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위한 활동과 도시의 공간이 누구의 것이며 어떻게 활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질문도 함께 제기해왔다.
-------
박선영.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팀장. (사)문화사회연구소 이사. 20대 초반 축제 기획에 대한 경험을 시작으로 문화예술 분야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게 되었다. 이후 문화연대에서 활동가로 활동하면서 문화정책과 문화연구, 다양한 연대활동을 통해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기획연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시와 문화정책 ⑭] 권력과 도시건축 (0) | 2021.01.06 |
---|---|
[기획연재_ 도시와 문화정책⑬] 코스모폴리턴 금촌金村 (0) | 2020.12.03 |
[기획연재_ 도시와 문화정책 ⑪] 도시계획과 아이들의 놀이문화 (0) | 2020.10.06 |
[기획연재-도시와 문화정책 ⑩] 두 번째 쓰는 기획의 변 _ 대안적 도시문화운동을 향하여 (0) | 2020.09.10 |
[기획연재_ 인류세와문화정책⑥] 코로나19와 사회적 거리두기 (0) | 2020.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