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기획연재_ 인류세와문화정책⑥] 코로나19와 사회적 거리두기

CP_NET 2020. 4. 1. 02:53

1. 문화와 신진대사

 

인류세는 인류의 신진대사와 지구의 신진대사가 얽혀들어간 지질학적 시대를 의미한다. 인간의 신진대사란 무엇인가? 인류는 지구의 어마어마한 자원들을 채굴해서 도시를 만들고 도시를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어머어마한 에너지를 사용하며, 식량과 물을 소비하며, 거대한 폐기물을 만들어낸다. 지구 시스템은 매우 다양한 행위자들 사이의 물질순환과 영양순환과 같은 다양한 피드백루프들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인류의 신진대사로 인해 네트워크가 파괴되거나 피드백 루프들이 임계점을 넘어서서 작용하고, 여러 피드백루프가 동시다발적으로 임계점을 넘어서는 카오스적인 상태로 지구의 시스템 상태가 전환될 수도 있다.

 

인간의 생활양식은 바로 이 산업적 신진대사와 뗄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일상을 구성하는 모든 일과 놀이, 먹고 마시며, 모여서 떠드는 일들이 이 산업적 신진대사와 연계되며, 이 산업적 신진대사는 지구의 물질, 에너지, 영양순환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지구의 도시는 지속적으로 팽창하고 있고, 도시 너머의 농촌들은 도시의 식량을 공급하기 위한 장소로 재구성된다. 즉 농촌은 도시를 위한 식민지가 된다. 도시와 농촌 모두에서 생태적 다양성이 사라지고 대규모 멸종이 일어난다. 그래서 인간의 생활양식은 제고되어야 한다.

 

인류세의 문화정책은 바로 생태학적 관점, 또는 지구시스템적 관점에서 문화를 질문한다. 이전까지는 서로 분리된 영역으로 인식했던 도시의 신진대사와 자연의 신진대사를 동시에 문제설정한다. 이는 도시에 대한 권리Right to the City 개념과 유사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도시의 신진대사에 대한 권리 Right to Urban Metabolism를 요청한다. 도시의 신진대사에 대한 권리는 기존의 예술정책이나 생활문화정책, 문화예술교육정책, 문화복지정책이나 예술노동정책과는 다른 관점에서 문화에 대해 질문한다.

 

인류세의 문화정책은 시민의 도시 신진대사에 대한 권리를 제기한다.

중대한 위기 국면에서 국가는 그리고 국민은 체제의 신진대사를 늦출 수 있어야 한다.

 

 

2. 코로나 19가 열어놓은 가능성

 

코로나 19로 인해 국가는 도시 봉쇄나 사회적 거리두기, 자택에서 머무르기를 정책으로 채택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라는 개념은 에드워드 홀이 개념화한 것으로 이른바 프록세믹스라고 부르는 다양한 사회적 시간과 공간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관찰하여 개념화한 것이다. 인간만 아니라 동물도 사회적 거리두기와 유사한 행위를 한다. 사자는 일정한 거리 안으로 들어오면 위험을 느겨 공격하거나 반대로 도주한다. 에드워드 홀에 따르면 영국은 사람은 중동 지역사람들보다 사회적 거리를 더욱 멀게 유지한다. 중동 사람들은 대중버스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타인의 무릎에 자신의 무릎을 붙이고 선다.

 

전세계가 코로나 19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활용하는 방법은 특별한 의료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매우 기본적인 문화적 수단이다. 이때의 문화가 예술도 생활문화도 미디어문화도 하위문화도 아닌, 더 기본적 층위에 있으며 동물들에게서도 관찰되는 사회적 거리를 수단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적 거리는 인간과 비인간을 넘어서는 횡단적 매개변수로서 등장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한 것은 바로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택 머무르기가 인류의 신진대사를 전체적으로 늦추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이 아니라 전염력이 강하고 잠복주기가 늦게 나타나는 바이러스가 신진대사를 통제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개월전 연재 글에서 윌 스테픈이 제시한 거대한 가속 Great Acceleration 개념을 인용했다. 이 개념은 인류가 대략 1950년 부터 급속한 인구 증가와 에너지 사용, 폐기물 투하와 같은 신진대사들을 가속시켜왔음을 데이터로 제시한 것이다. 인류세의 시기를 이 거대한 가속이 일어난 1950년대로 설정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 거대한 가속 개념에 있다.

 

어쩌면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온 코로나19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거대한 가속에 제동을 거는 비인간 행위자로 등장했다 점. 그리고 코로나19가 인간과 동물 모두의 문화적 기초가 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작동시켰다는 점은 뭔가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이윤이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지역문화 및 영화 관련 독립연구자. 전 부천문화재단 정책팀장. 씨네21 객원으로 칼럼과 기사를 쓰며 영화정책을 연구했다. 2007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10개의 통섭 연구소를 만드는데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2009년 한예종 사태로 학교를 나와 자유예술캠프/자유상상캠프를 기획했다. 인류세의 문화와 도시에 대해 질문하며, 부끄럽지 않은 생활방식과 기준을 모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