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32

[기획연재_인류세와 문화정책④] 인류세는 누가 어떻게 정의하는가2

지난 호에서는 인류세를 정의하는 주체로서 국제층서위원회와 인류세워킹그룹을 살펴보고, 인류세워킹그룹이 제안하는 네 가지 중 첫번째 기준인 표준층서그래프 상에서 인류세의 위치 설정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인류세워킹그룹이 제안하는 두번째 기준인 '경계설정의 표준방법', 세번째 기준인 1950년대의 '거대한 가속', 그리고 네번째 기준인 '표식'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나. 경계설정 표준방법 : GSSP 일명 ‘황금 못’ 현재 국제층서위원회ICS는 각 지질시대의 경계를 GSSP(Global Boundary Stratotype Section and Point, 일명 ‘황금 못’)를 이용하여 절(Stage) 단위까지 구분하고 있다. GSSP가 성립 할 수 있는 기본 조건으로서 다음과 같은 7가지를 제..

기획연재 2020.01.31

[기획연재_ 도시와 문화정책⑦]도시재생의 딜레마(3) - 경제에 포획된 도시, 도시정책, 문화도시

미셀 드 세르토의 유명한 글 “도시 속에서 걷기”는 하필이면 이제 9.11테러로 인해 더 이상 볼 수 없어져버린, 그 유명했던 “오리지널” 세계무역센터 110층에서 시작한다. 이건 단지 우연에 불과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기가 막힐 정도로 절묘하고 지독한 은유다. 1970년대 개장된 세계무역센터는 근대의 위용과 승리를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뉴욕 맨해튼은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부였고 이곳에 우뚝 서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400미터가 넘는 마천루는 그 자체가 자본주의 근대의 승리를 상징하는 바벨탑이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세계의 정상, 세르토는 그 건물 정상인 110층에서 내려다보는 맨해튼의 묘사를 통해 도시라는 인간 사회를 텍스트들을 전체화(totalizing)하는 쾌락에 대한 고찰을 보여준다. 그는 그것을 찬..

기획연재 2019.12.30

[기획연재_인류세와 문화정책⓷] 인류세는 누가 어떻게 정의하는가?

인류세는 누가 어떻게 정의하는가 인류세는 지질학적 개념이다. 인류세의 정의를 주도하는 과학자들과 학회 등으로 구성된 과학사회가 이 인류세에 대한 개념 정의를 주도한다. 따라서 이 개념의 주창자와 학제간 거대과학 프로그램과 현재 이를 주도하는 과학자 그룹을 살펴보는 것은 인류세를 이해하는데 기초 중의 기초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어떤 과학은 (특히 인류세나 기후변화과학은) 과학자들에 의해서만 정의되지 않는다. 이해관계자가 매우 많고, 체계의 복잡성도 매우 높다. J.R. 라베츠는 이런 과학을 일컬어 이른바 '탈정성과학(post-normal science)'이라고 불렀다. 토마스 쿤의 에서 이야기한 정상과학(normal science)과는 거리가 있다. 그는 결정에 따르는 위험과 시스템의 불확정성이 모..

기획연재 2019.12.29

[기획연재_ 도시와 문화정책⑦]도시재생의 딜레마(2) - 문화의 왜곡, 정치의 왜곡

언제인가부터 유행처럼 쓰이는 도시에 문화를 입힌다는 표현이 있다. 물론 여러 가지 변주로 쓰인다. 어느 지역에서는 “도시 재생에 문화의 옷을 입힌다”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있고 또 다른 지역에서는 “천년의 도시에 문화예술의 옷을 입힌다”(경주는 아니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겠는데 사실 따지고 들어가면 말이 안 되는 소리인 동시에, 관점에 따라서는 매우 불편한 표현이기도 하다. 우선 문화라는 개념을 다루는 방식에서 보이는 부정확함이다. 문화의 옷을 입히건, 문화예술을 입히건, “문화를 입힌다”는 표현은, 본래 문화가 부재하던 어떤 장소나 공간을 상정하고 있다. 그런데 문화란 것은 학문적으로 따지고들지 않더라도 인간의 삶이 있으면 일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다는 이해는 이제 상식이다..

기획연재 2019.12.02

[기획연재_인류세와 문화정책②] 인류세란 무엇인가

‘인류세(Anthropocene)’는 지질학적 연대를 지칭하는 비공식적인 용어이다. 대기화학자인 파울 크뤼천과 생태생물학자인 유진 스토머에 의해 2000년대부터 제기되어 자연과학 분야는 물론 인문사회 분야에서도 널리 인용되고 있지만 국제지질과학연맹으로부터 아직 공식적으로 승인을 받지 못한 비공식적 개념이다. 그러나 인류세 개념이 등장하자 과학계와 사회 전반에 걸쳐 큰 반향을 일으키며 논란의 중심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는데, 이는 인류세가 기존의 층서명과는 달리 그 속에 함축된 의미가 지질학적 범주로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환경 등 인류의 활동과 관련된 다양한 인문사회학적 요소와 관련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류세를 보는 관점은 낙관주의에서 비관주의 까지 폭넓게 위치한다. 기후위기가 이미 변곡점을..

기획연재 2019.12.02

[기획연재_인류세와 문화정책①] 자연의 권리

팻 시프먼은 『침입종 인간』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침입종이며, 늑대-개와의 공생을 통해서 네안데르탈인과의 생존경쟁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한다. 침입종이란 황소개구리나 베쓰처럼 외부 생태계에서 새롭게 진입한 종이자 다른 토착종을 멸종시킬 정도로 지배적인 종을 말하는데,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태계에 진입했으며, 진입한 생태계에서는 예외 없이 거대포유동물이 멸종을 당했고 같은 인류인 네안데르탈인도 멸종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팻 시프먼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오늘날 지구상의 육상포유동물 전체에서 인간이 30%이고, 인간이 먹기 위한 사육동물이 67%이며, 야생동물은 단 3%에 불과하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침입종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현생 인류는 스스로를 공식적인..

기획연재 2019.11.04

[기획연재_ 도시와 문화정책⑥]도시재생의 딜레마(1) - ‘시민주도성’의 전제

도시재생과 문화도시에 대한 고민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정부의 정책사업이 의욕적으로 만들어지고 있고 이에 따라 지자체들은 여기 참여하고 싶은 욕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나서고 있다. 비전에 대한 지역의 공감대, 결과에 대한 구체적 검증이 충분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전국적으로 도시재생 사업은 현재 진행형의 대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부동산 가격은 급상승하고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원주민이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원인이라는 비판도 따르고 있다. 최근 10년 간 부산 지역 도시재생을 비판적으로 리뷰한 기사는 도시재생 사업 10년 만에 부산의 산토리니라며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감천문화마을이 지역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도시재생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주민 상생에서 실..

기획연재 2019.11.04

[기획연재_ 도시와 문화정책⑤] 한국의 도시는 주술로부터 해방되었는가

1933년 나치당의 선거 승리로 수상으로 취임한 히틀러는 1937년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와 함께 제국수도 ‘게르마니아’를 구상한다. 슈페어는 32세의 젊은 나이로 “제국수도 건축 총감독관”에 임명되었고, 18만 명을 수용하는 국민대의회당, 파리 개선문에 10배가 큰 개선문을 포함해 제국 시민들을 위한 완벽한 도시를 구상했다. 나치는 개인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강력한 국가(정치)권력으로 국민생활을 통제하기를 원했고, ‘게르마니아’는 이에 부합하는 도시였다. 2019년 한국에서 ‘히틀러와 슈페어’가 강제소환됐다. 이유는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와 함께 수도 서울을 건설한 건축가 김수근을 변론하기 위해서다. 김수근은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사장으로 5.16혁명광장이 있는 ‘여의도 개발’에서 독재정..

기획연재 2019.10.01

[기획연재_ 도시와 문화정책④] 도시재생이냐, 도시강탈이냐 – 현장에서 바라본 도시재생의 명암

목포에서 일어난 현역 의원 투기 의혹으로 5년 동안 50조라는 단군 이래 최대의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도시재생 뉴딜 사업이 전국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도시재생 뉴딜 사업은 문재인 정부에서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정책이다. 최근 사건으로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었지만, 1~2년 사이 이미 이 사업은 많은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었다. 도시재생 선도지역인 서울의 한 성곽 마을에서는 도시재생 총괄계획가로 활동하며 해당 지역의 도시재생 정보를 잘 아는 인물이 해당 지역의 집을 다수 매입해 ‘이해충돌’의 문제를 일으킨 곳도 있었다. 목포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도시재생 뉴딜 사업의 문제는 크게 세가지다. 첫째는 투기와 젠트리피케이션에 취약하다는 점, 둘째는 주민참여가 부족한 상태에서 관 주도의..

기획연재 2019.09.01

[기획연재_ 도시와문화정책③] 먼길을 돌아 새로 짓는

1998년 한 세미나에서 당시 한국문화행정연구소 소장이셨던 이종인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역문화행정의 역할은 주민과의 공동 작업이 필수적인데 관련 공무원과 예술인들은 공급자와 수혜자의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종속관계에 머무르고 있다”고 꼬집고 있다. 또 “지역 문화 활동은 주민 쪽에서 시작되고 그 뒤에 행정을 이끌어 지역 전체를 움직여 나가는 방향으로 진행시켜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현재, ‘법정’ 문화도시가 전국을 흔들고 있다. 그렇다면 20년 전의 바램에서 얼마나 변화했고 진화했는지 의문이 가는 것이 지금 생각이고 본고에서는 그런 생각을 한번 정리해 보겠다. 소위 ‘문화도시’는 어느 도시나 상상 해볼 만한 아련한 바램 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문화도시라는 것을 건..

기획연재 2019.08.01

[기획연재 _ 도시와 문화정책②] 혁신도시 옆 도시재생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급속한 도시화와 도시쇠퇴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1968년에 36.8%였던 도시화율이 2018년에는 81.5%에 이르렀다. 그리고 국토부에 따르면 전국 3,470개 읍면동 중 2,239개(65%)가 인구 감소, 사업체 감소, 노후건물 증가 등 도시쇠퇴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20여 년 앞서 급격한 버블붕괴와 도시쇠퇴를 경험한 일본의 사례와 비교하여 차별성을 찾기도 하고 빈집재생과 빈집은행과 같은 정책을 참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의 도시재생 정책에서 참고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바로 ‘도시축소’다. 일본의 도시재생계획은 도시의 핵심 기능을 모으는 ‘기능유도구역’을 설정하고 흩어진 거주자를 그 안에 배치하는 입지적정화계획을 수립한다. 한국 도시구조의..

기획연재 2019.07.01

[기획연재 _ 도시와 문화정책①] 길게 쓰는 기획의 변 : 문화도시로 가는 길에서의 질문들

칼 맑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썼던 유명한 문장을 빌리자면, 전국의 지자체에, 그리고 문화기획이나 문화정책, 도시계획을 업으로 하는 이들 사이에 “문화도시”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당면한 현실로는 문재인 정부에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전국에 30여 개 문화도시를 선정하여 약 5년간 각각 200억 원(국비 100억 원) 정도의 사업비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구체화하며 시작되었다. 문화도시는 일부 광역지자체가 포함되어 있지만, 대부분이 기초지자체들을 지정대상으로 삼고 있다. 서울 등 수도권 일부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기초지자체의 재정 여건이 열악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군침 당기는 지원사업인 게 사실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거의 전국의 모든 시군들이 문화도시 사업에 경쟁적으로 도전장을 내고 있다. 작금..

기획연재 2019.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