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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민간위원회, 위원 대표성과 역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및 위원 사용설명서

CP_NET 2020. 3. 6. 13:31

지난 1,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선임 절차 공론화를 위한 1차 토론회에서는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되었다. 으레 제도 관련 토론은 중요하지만 재미가 없는 자리이게 마련인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강윤주 교수가 예술위 위원의 역할, 그 이상과 현실라는 주제로 발표한 내용에는 꽤나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우선 발제의 내용을 보면, 현행 문화예술진흥법 상의 위원회의 직무를 나열한다. 같은 법 제30조에 열거된 위원회의 기능은 기본적으로 심의, 의결기구로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기본계획 등의 수립과 변경, 집행에 관한 사항, 위원회 운영계획의 수립과 시행에 관한 사항, 위원회의 정관 및 규정의 제정 그리고 개정 및 폐지에 관한 사항, 위원회가 소유하는 시설의 관리와 운영에 관한 사항, 문화예술진흥기금의 관리와 운영에 관한 사항, 문화예술지원사업의 효과적 수행을 위한 조사, 연구, 교육, 연수에 관한 사항, 3명 이상의 위원이 심의와 의결을 요구하는 사항과 마지막으로 위원회가 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을 다루도록 되어있다. 이상의 내용을 심의한다는 것은 다툼의 여지가 있는 정책에 대해 타당성을 두고 다툰다는 의미이고, 의결한다는 것은 다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의견으로 결정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상의 내용을 보면 위원회의 기능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전반을 넘어서서 적어도 국가의 예술지원정책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기구로 보인다. 하나의 위원회가 기본계획에서 기구의 운영계획 및 기금에 대한 사항까지 포괄하면서 연구나 조사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인력의 양성까지 포괄하는 교육과 연수기능을 담당하는 것은 극히 드문 포괄적인 기능이다. 거기에 같은 법 제32조에 의거해서 소위원회를 둘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기존의 여타 위원회의 소위원회가 위원들로만 구성되는 데 반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소위원회는 추가적으로 구성된 민간 위원들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가장 포괄적이고도 종합적인 예술기구로서의 위상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강윤주 교수의 발제는 이런 법상 규정되어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기능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저런 역할이 부여되고 있는 위원회가 실제로는 어떻게 운영되는가 라는 데에 방점이 찍혔다. 발제에 따르면 한달에 한번 정도 정기회의를 하는데 평균 10개의 안건과 10개의 보고 안건을 다룬다. 그 사이 사이에 세번 정도의 소위원회 회의에 참여하게 된다. 이렇게 활동하는 위원들은 비상임위원으로서 월 87만원 정도의 수행경비를 지급받고 수당과 교통비 보전 등의 사유로 24만원 정도의 추가 지급을 받는다. 즉 월 100만원 정도의 일자리인 셈이다.

 

 

하려면 무한하고, 안 해도 티나지 않는

 

이런 상황이다 보니 많은 경우 사전에 회의 내용을 숙지하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법에서 정한 위원회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기초교육 등이 진행되지 않아 내용 자체를 따라가기도 힘들다는 것이 주된 평가다. 그러다 보니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음성적인 분업에 의해 움직이는 구조다. 이를테면 장르별로 안배된 위원 구성의 특징상 자신이 속한 장르 외의 주제에 대해 말하거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매우 드물다. 또한 담당하고 있는 소위원회를 운영하는 부담이 직접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이 역시 실무적인 역량이 소진된다. 그래서 제한 되어 있는 위원회의 회의는 길고 긴 보고사항과 논의안건에 대한 설명에 뒤이어 별 다른 이의 없음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되기 일쑤다.

 

특히 지난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그 전까지 공개되던 속기록 수준의 회의록은 감춰졌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지금이라도 속기록 수준의 회의록을 공개하지 못할 일은 아니지만 그 내용이 공개할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즉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애초 기존의 진흥원 체계를 넘어서는 예술인들의 합의기구로서 가장 높은 수준의 권한을 가지는 위원회 구조를 가지게 되었지만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인 셈이다. 기능과 권한이라는 과제가 실제 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이라는 측면과 지속적으로 미끄러진다.

 

그러다 보니 위원회에 참여하는 위원들도, 이를 바라보는 현장 예술인들도, 무엇보다 위원회의 논의구조에 의지하는 사무처 직원들도 모두 만족하지 못하는 기묘한 무능의 절충 구조에 놓이게 되었다. 지난 1월의 1차 토론회에 이어 2월까지 3차 토론회가 진행되는 동안 위원회의 위원 구성에 대한 쟁점이 주되게 논의 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오는 질문은 이렇게까지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서 위원이 되었을 때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주어지는가?”라는 것이 되는 건 당연했다. 현재 문화예술위원회의 위원 지위는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개인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편하게 명예직으로 여기자면 아무 것도 하지 않더라도 크게 책잡힐 것이 없는 기묘한 역설의 상태에 놓여 있는 셈이다.

 

만약 이런 상황을 고려하고서 위원이 되었다면 일차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전반적인 사업현황과 조직구조를 살펴보는 것이다. 사무처의 도움이 있겠지만 일차적으로는 이미 기획재정부가 구축하여 운영하고 있는 공공기관 정보공개사이트인 <알리오>(http://www.alio.go.kr/home.do) 상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련 사항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가장 최근 례의 내부 규정은 물론이고 전년도 사업에 대한 내용이나 예산 상황도 담겨 있다. 그리고 가급적 최근의 문화예술계 현안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럴 때 추천하는 것은 재작년에 만들어져 운영 중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소위원회의 안건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페이스북 페이지와 기관 홈페이지 내 별도의 메뉴로 운영되고 있는데, 적어도 제도적 문제로 인한 현안들이 효과적으로 올라오고 있어 현안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꼭 고려를 했으면 하는 부분은 팀을 짜는 것이다. 앞서 소개했지만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은 1달에 1번 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10개의 논의안건과 10개의 보고안건을 검토해야 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심의와 의결을 거쳐야 하는 책임이 있다. 이런 내용들을 현업에 종사하는 위원이 혼자서 감당하긴 어렵다. 따라서 신뢰를 가지고 함께 자료들을 검토하고 의견을 모을 수 있는 이들의 도움을 구체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개인이 속한 장르 외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좀 더 종합적이고 일반적인 관점에서 주요한 사안들을 볼 수 있게 한다.

 

위원이 아닌 현장의 예술인들이나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라면 위원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다양한 제도들을 활용할 수 있다. 우선 가장 논란이 되는 공모지원사업에 대해 제보를 하거나 혹은 심사과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을 때엔 지원심의 옴부즈만제도’(https://www.arko.or.kr/m1_04/m2_06/m3_01.do)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그리고 제도운영이나 혹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더라도 문화예술 현장에서 벌어진 주요한 쟁점에 대한 제도개선 사항이나 공론화 과제가 있다면 앞서 언급한 현장소통 페이지’(https://sotong.arko.or.kr/communication/main.do)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현재 현장소통소위원회는 제도개선, 공론화 추진, 권고 등의 사항으로 구분하여 각각의 제안사항을 검토하고 진행하고 있는데 직접적인 제도개선의 과정이 다소 미비하지만 적어도 공론화 수단으로서는 충분히 활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예술계 당사자로서 활용할 수 있는, 어쩌면 현재 진행하고 있는 7기 위원선임 과정에서 고려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적극적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위원들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위원들의 역할을 매우 광범위하고 권한 역시 높다. 그렇다면 위원들에게 현재 사업에 대한 설명, 그리고 타당성에 대한 평가 등을 요구하고 무엇보다 주요한 쟁점들에 대해 위원들의 판단이 무엇이고 그 근거가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따져 물어야 한다. 즉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들을 예술인들이 있는 광장으로 끊임없이 불러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위원들에 대한 요구가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위원회 내에서 위원들의 역할 역시 구체적인 변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그런 점에서 일차적으로는 주요한 기금사업에 대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현재 문화예술진흥기금은 사실상 고갈 상태에서 각종 기금의 이전을 통해 운영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다보니 매년 관행적으로 해왔던 사업들 외에 별도의 기획사업이나 계기성 사업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구조를 조금이나마 바꾸기 위해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구체적으로 요구될 필요가 있는데, 그 과정에서 위원들에게 적절한 역할을 요구할 수 있다. 당연히 이런 과정은 민원을 제기하는 방식이 아니라 좀 더 공개적이고 개방적인 형태의 요구로 나타나야 한다.

 

 

위원회구조를 실질화 하기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기존의 책임운영기관에서 기타공공기관으로 기관 성격이 바뀜에 따라 제한적이나마 자율성을 가진 기구로 운영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와의 수평적인 관계를 마련하기 위한 조치들도 더디지만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변화는 지금도 진행 중인데 그럴수록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위원 역할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위원회의 구조가 실질적인 효과를 가지기 위해서는 위원회의 위원들이 현장 예술인들과 맺는 접촉면이 더욱 확대되어야 하고 그를 통해서 적어도 현장의 힘이 위원 활동의 근거가 될 수 있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이런 관계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구축되느냐에 따라서, 현재 위원 구성 문제로 촉발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기능과 관련한 논란이 좀 더 생산적인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가전제품의 본 기능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그것을 한번 분해해보는 것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공공기구의 기능과 역할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어떤 형태로든 실제로 구체적인 관계를 맺어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좀 더 다양한 형태의 개입이 시도되면 될 수록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사용설명서의 목록이 길어질 수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가장 잘 이용하는 방법은 무엇보다 그 기구를 우리의 것으로 감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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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문화연대 집행위원. '밥먹고 예술합시다'라는 집담회를 계기로 예술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인들의 공정한 보상과 문화산업 내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모임인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창립에 참여했다. 블랙리스트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혁신을 위한 TF위원, 1기 현장소통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문화/예술 재정과 예술활동과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