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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제21대 총선 문화예술정책] 문화예술공약 분석

CP_NET 2020. 4. 6. 13:55

21대 총선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이토록 무참한 감정이 드는 선거는 처음이다. 적어도 민주주의의 교과서적인 의미에서 보면 어디 하나 빠질 데 없는 한국의 선거는 거대 기득권 정당의 권력 다툼에 새삼스러운 허약함을 드러냈다. 원체 선거를 식당에 비유해왔다. 원하는 메뉴가 있던 없던 일단 들어온 식당에서 주어진 메뉴판에서 골라야 한다. 아니 식당이라면 그냥 나가버리면 좋으련만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는 달짝한 프로파간다가 뒷목을 잡아당긴다.. 그래도 냉소 대신 분노를 택하는 것은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선택이다. 적어도 국회의원들이 국회라는 민의의 장에서 내뱉는 말에 책임이라는 추를 올려야 하는 건 우리이기 때문이다.

 

 

망한 장날에 가다: 10대 정책공약 검토

 

그래도 뭔가 이야기 대상이 된다는 것은 괜찮다. 이래저래 파장인 장이 섰는데 그나마 원하는 물건이 없으면 낭패다. 이번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들이 내놓은 문화예술 공약을 살펴본 결과다. 살펴본 자료는 우선적으로 정당이 선거를 앞두고 반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해야 하는 10대 정책 공약 자료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법을 통해서 제출토록 하는 공약이기 때문에 사실상 대표 공약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해당 자료는 중앙선거관리위원에 공개되어 있다.(바로가기: http://policy.nec.go.kr/)

 

이에 따르면, 적어도 정당의 10대 공약 중 단일 공약으로 혹은 복합 공약으로 문화예술에 대해 다루고 있는 정당은 3개 정당에 불과하다. 더불어민주당과 우리공화당이 공통적으로 문화강국을 내걸고 있다는 점 역시 기억할만하다. 우리공화당은 ‘세종학당 및 한국문화원을 활용한 한류문화 전파 지원컬쳐테크의 기업화 지원, 기업을 중심으로 메세나 운동 강화를 제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3가지 항목의 공약 중 콘텐츠산업 경쟁력 강화의 내용은 우리공화당의 내용과 호응한다. 다만 문화예술인 창조역량 강화와 국민 문화향유권 확대가 들어간 것은 다르다. 안타까운 것은 문화예술기관의 실업보험제도 구축문화예술복합지원센터 건립’, ‘신진예술인 창작장려금 지원과 같은 공약들은 이미 추진되고 있거나(실업보험, 지원센터 조성, 창작준비금 지원) 아니면 정책 조준이 제대로 맞지 않는 것들(실업보험은 기관의 준비사항이 아니다) 투성이라는 점이다.

 

노동당의 경우,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제시한 문화사회법이 눈에 띈다. 기존의 문화기본법을 개정하거나 혹은 신법을 제정하는 방식으로 문화민주주의의 가치와 실현 방법, 문화예술인의 노동권 보장, 문화재정의 할당 등을 포함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동당의 공약은 국회의원 선거 공약이라고 하기엔 추상적이고 입법과제의 형식도, 정책과제의 형식도 아닌 주장의 나열이다.

 

어차피 이번 장은 망한 터라 그런가, 하다못해 문화를 10개의 과제 중 하나로 다루는 정당이 3개 외엔 없다. 51개의 정당이 있는 중에 앞서 3개 정당을 제외하고 그나마 좀 의미 있는 공약은 번역청 설립(통일민주당), 국민 기초문화생활보장(미래민주당) 정도만 눈에 띈다. 영화 <기생충>의 환호를 떠올리면, 저들이 얼마나 공짜표에 익숙하고 과정보다는 결과의 찬미에 동승하길 좋아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창고에는 쓸 만한 것이 있기나 하나: 정당별 정책공약집 검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10대 공약을 제출하고, 원내 의석이 있던 없던 홈페이지 상에 정책자료집을 내놓고 있는 정당을 대상으로 다시 살펴봤다. 그래도 명색이 국회의원 씩이나 있는 정당들은 의무적으로 봤다. 앞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10대 공약은 정당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10개의 과제를 내는 것이니, 다소 문화예술 공약이 밀릴 수도 있을 것이다. 맛집이 끝내주는 장을 안마당에서 숨겨 놓듯, 그들의 정책자료집에는 좀 더 세부적인 내용이 있을 수 있겠다 싶다.

 

현재 각 정당의 홈페이지 상 ‘21대 총선 정책자료집이라는 형태의 책자형 자료가 공개된 곳은 4곳이고 21대 총선 공약으로 발표가 된 곳은 4곳 정도로, 21대 총선공약이 선거관리위원회 제출용 외에 제공되는 곳은 총 8개 정당 정도다(위성정당 2곳 중 한곳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공약을 제출했지만 기존 정당 것 짜집기고, 다른 1곳은 제출하지 않지 않았다) . 이 정당 중에서 가장 다양한 공약을 담고 있는 곳은 미래통합당이다. 미래통합당은 문화예술 공약을 4차산업 항목에 콘텐츠 공제제도로, 불공정 개혁 항목에 문화예술계 불공정 전담기구 설치로, 청년 희망 약속 항목에 유통플랫폼 문화마켓예술작품은행 설립을 담았다. 하지만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사회적으로 논의된 결과를 추렴하거나(불공정 관련 사항) 문화예술이 도구적 수단으로만 다뤄지고 있고(문화마켓) 문화콘텐츠의 외국납부세액에 대한 공제제도는 그야말로 지엽적인 정책에 불과하다. 늘어놓긴 했는데 손이 가는 대상이 없다.

 

다음으로 더불어민주당인데 55대 핵심가치 중 하나인 혁신성장 항목에 콘텐츠산업 경쟁력 강화로 제작비 세액공제영화발전기금 입장권 부과금 연장과 같은 업계의 민원이 담겼다. 미래통합당의 외국납부세액 공제가 그나마 제조업과의 형평성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세액공제나 입장권 부과금 연장은 그야말로 민원 응답형에 가깝다. 그나마 10대 핵심정책 중 하나인 포용사회 항목에 문화예술의 자유로운 창조 역량 환경을 조성하겠습니다는 기본 방향에 충실해 보인다. 하지만 고용안전망 지원, 복합지원 공간조성 같은 것은 현황을 모르고 내놓은 철 지난 물건 느낌이고 그나마 ‘예술인프리랜서 협동조합 모델 발굴은 눈에 띈다. 단지 구체적인 방법론이 없어 해당 공약을 제안한 민간 주체의 논의를 피상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개인적으로 해당 논의과정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문화예술공약의 특징에 충실하다. 우선 고용보험-공공임대주택-지위권리보장법-독과점해소-지역문화격차 해소 등의 구성이 종합적이고 독립영화, 인디음악, 이주민, 예술강사, 사서 등과 같이 특별히 고려하고 있는 문화예술인에 대한 관심이 보인다. 그런데 하나 하나 나열일 뿐이다. 해당 공약들은 예술노동이 당당한 문화강국이라는 항목에 묶여 있는데, 항목만 묶여 있을 뿐 각각의 세부적인 공약들이 꿰어 있다는 느낌이 없다. 그러다 보니 , 있네?’ 정도 이상의 느낌을 주지 못한다. 이는 녹색당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삶을 지키는 공공성이라는 항목에 예술을 독립적으로 넣은 것은 아름답다. 아니, 그렇게 예술을 두 글자 그대로 넣은 경우를 처음 봐서, 아름답다고 할 수밖에 없다. 다만 내용은 그동안 사회적으로 많이 다루었던 권리보장법-고용 및 사회안전망 확보 등의 비중이 높다. 그럼에도 여타 정당에는 없는 문화영향평가제도 실효성 강화가 포함된 것은 눈에 띈다. 노동당은 중앙선관위에 제출한 그대로가 옮겨져 있을 뿐이고, 민중당은 중앙선관위 공약에서도 홈페이지에서 개별 공개하고 있는 내용에서도 문화예술과 관련한 공약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

 

정당의 정책자료집 차원에서 보면,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여전히 콘텐츠산업의 맥락에서 문화예술정책의 큰 방향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그나마 문화예술계의 중요한 쟁점들에 반응한 티가 나는데 그보다 정의당과 녹색당의 문화예술 공약은 구성상 한계에도 불구하고 관점과 내용에 있어서 더 포괄적이고 종합적이다. 그럼에도 모든 정당들의 문화예술공약은 맹숭맹숭한 느낌이다. 왜 그럴까?

 

 

블랙리스트를 기억하라

 

개인적으로 모든 정당들의 문화예술 공약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블랙리스트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지원을 주고 안 주고의 문제로서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국가와 예술인의 관계 형식으로서 블랙리스트를 말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1972년 제정되고 1973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만들어지면서 구축된 문화예술진흥법 체계에 대한 전향적인 태도를 발견할 수 없어서다. 모든 정당들이 여전히 국가가 어떤 형태로든 예술을 진흥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하지, 예술의 주체인 예술인이 예술시민으로서 스스로 결정하고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관점이 잘 보이질 않는다. 이런 관점이 현행 문화기구에 대한 공약 부재로 나타났다. 또한 지역문화재단 등에 대한 관점과 공모지원사업에 대한 재평가가 부재하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보호하고 지원해주어야 할 대상으로서 예술이라는 고유한 관점이 반복된다.

 

그런 점에서 블랙리스트 이후, 블랙리스트에서 시작하지 않는 문화예술정책은 퇴행적이다. 그것을 하나의 불장난으로, 나쁜 에피소드로 넘기고 그래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관성적 낙관이 바로 새로운 블랙리스트의 전조일 수 있다. 대개의 블랙리스트는 화이트리스트를 내장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는데, 그게 왜 문화예술진흥법 체계에서 블랙리스트가 작동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이제 어쩌나. 이미 장은 섰고 좌판을 깔렸다. 꺼내놓은 물건들을 보니 영 마음에 차는 것이 없다. 제안하고 싶은 것은 이런 것이다. 기득권들은 모든 공약을 종합적으로 보고 정치적 지지를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나마 예술인 정책이 있는 곳 중 괜찮은 곳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외의 사항은 일단 뒤로 미룬다.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예술인 유권자가 그래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그러니 이번 선거에서 보이콧을 하던 아니면 특정 정당을 찍던, 그 사유를 문화예술정책으로 삼아 공개를 해주면 좋겠다. 그래야 그나마 다음 장이 설 땐 살 만한 물건이 들어올 수 있다. 그게 4년짜리 정기 장터인 선거의 속성 아닌가.

 

 

[참고: 주요 정당 21대 총선 문화예술공약 현황]

정당명

중앙선관위

(10대공약)

정당홈페이지

(정책자료집)

더불어민주당

10. 문화 예술 1등 국가, 문화강국을 실현하겠습니다

5-1. 혁신성장 - 콘텐츠산업 경쟁력 강화로 수출과 일자리창출에 기여하겠습니다

-영상콘텐츠 제작비 세액공제 확대

-영화발전기금 재원인 입장권 부과금 연장추진

 

10대-7.포용사회-문화예술의 자유로운 창조 역량 환경을 조성하겠습니다

-고용안전망 지원, 복합지원 공간 조성

-예술인프리랜서 협동조합 모델 발굴

 

(https://theminjoo.kr/board/view/policyreference/261373)

미래통합당

 

경제 재설계 미래 재도약-4차 산업혁명-문화콘텐츠 맞춤형 지원

-문화콘텐츠의 외국납부세액 공제제도 도입

 

공정 재설계 희망 재도약-불공정 개혁-문화예술계 공정질서 확립

-스포츠 단일팀 구성 방지 체계 마련

-문화예술계 전담 대응 기구 신설, 예술인 권리 보장 강화

 

공동체 재설계 행복 재도약-청년 희망 약속-청년신인 예술인 문화마켓 조성, 청년 문화패스 신설

-유통플랫폼 ‘문화마켓개발, 예술작품은행 설립

-거점별 예술인 문화거리 조성

- 문화체육관광패스(18~24) 신설

 

(http://www.saenuriparty.kr/renewal/policy/data_pledge.do)

민생당

 

(http://minsaengdang.kr/kr/news/press.php)

정의당

 

3.경쟁에서협동으로-따뜻한 공동체-예술노동이 당당한 문화강국

-예술인고용보험, 공공임대주택 공급

-예술인 지위권리 보장법 제정

-문화산업 독과점 해소, 음악인의 저작권료 분배비율 결정 참여

-독립영화,인디뮤직, 이주민 문화교류 지원

-지역문화격차 해소, 예술강사, 사서 처우 개선

 

(http://www.justice21.org/newhome/board/board_view.html?num=127286&page=1)

우리공화당

10. 한민족의 높은 역사 정신문화 계승발전, 문화예술체육관광 강국 육성

X

 

(http://orp.or.kr/bbs/zboard.php?id=select2020_3)

민중당

X

X

 

(http://minjungparty.com/pages/index.php?nPage=1&p=17&b=b_1_3&cate=&f=&s=)

국민의당

X

X

 

(https://peopleparty.kr/58)

노동당

4. 주30시간 노동시간 단축과 문화사회법 제정

좌동

 

(http://www.laborparty.kr/bd_member/1788085)

녹색당

X

삶을 지키는 공공성_예술

-예술인권리보장법 입법

-예술인 상담 지원 및 위계폭력 구제제도 안정화

-예술인고용 및 사회 안전망 확보

-신진 예술가 지원 쿼터제도

-문화영향평가제도 실효성 강화

 

(http://www.kgreens.org/pledge/공약집-녹색당-21-총선-정책공약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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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사)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문화연대 집행위원. '밥먹고 예술합시다'라는 집담회를 계기로 예술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인들의 공정한 보상과 문화산업 내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모임인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창립에 참여했다. 블랙리스트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혁신을 위한 TF위원, 제1기 현장소통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문화/예술 재정과 예술활동과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