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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검정 고무신> 비극, 정책으로 고민하기

CP_NET 2023. 4. 17. 22:12

 
 
 
지난 3월 11일, <검정 고무신>의 작화를 맡았던 이우영 작가가 자택에서 세상을 떠난 채로 발견되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경찰은 자살의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였다. 만화로는 물론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며 많은 시간 사랑을 받은 작품을 만든 창작자는 어떤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는가. 유족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은 이 안타까운 죽음에 ‘저작권’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지난 2020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그는 꾸준히 <검정 고무신>의 부당한 계약으로 무수한 피해를 받고 있다고 증언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우영 작가가 생전 여러 차례 남긴 증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창 <검정 고무신> 애니메이션 두 번째 시즌이 방영되던 2004년, 본래 애니메이션의 스틸컷을 활용한 만화책을 내기로 계약을 맺은 형설출판사(이하 형설)가 원작자들의 허락도 없이 임의로 <검정 고무신>의 캐릭터를 활용해 다시 그린 만화를 발행했다. 뒤늦게 해당 작품의 존재를 알게 된 <검정 고무신>의 원작자들은 형설의 행보에 분노했지만 어찌어찌 선처를 하는 식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후 형설은 오히려 이를 계기로 원작자들에게 <검정 고무신>에 대한 사업 추진을 내걸며 지속적인 관계 맺기를 시도했고, 결국 2007년부터 총 5차례의 사업권 설정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은 물론 2008년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캐릭터 저작권의 지분을 등록할 때에도 형설의 대표이사가 저작권자로 참여하는 형태가 되었다. 그러나 사업권 설정 계약에는 계약 종료 기간이 설정되지 않았고, 캐릭터에 대한 저작권 지분 역시 스토리 작가 이영일(필명 도래미) 작가가 보유한 지분을 몇 차례에 걸쳐 인수하면서 과반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후로는 형설이 본래 <검정 고무신>을 그린 창작자와 제대로 된 협의나 수익도 정당히 보상하지 않은 채로 각종 사업에 나서면서도, 정작 이우영 작가 자신이 <검정 고무신>을 활용하는 것에 있어서는 이영일 작가와 공동으로 소송을 제기하며 압박해왔다는 것이다.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지만
 
오랜 시간 사랑을 받은 만화를 그린 그림 작가가 자살로, 그것도 저작권 문제로 고통을 받다 세상을 떠났다는 것에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MBC <실화탐사대>를 비롯해 크고 작은 언론들에서 연달아 기사를 내었다. 무수한 단체들이 추모 성명을 내는 가운데, 한국만화가협회를 중심으로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결성되기도 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역시 몇 차례에 걸쳐 보도자료를 발표하며 ‘문화산업 공정유통 및 상생협력에 관한 법률’ 의안에 대한 조속한 통과를 추진하는 한편, 다방면에 걸쳐 작가의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당연히도 그 중에는 ‘저작권 법률지원센터 TF’와 같이 직접적으로 저작권을 언급하는 정책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무수한 말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과 달리, 실질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기대하기에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당장 이우영 작가가 제기했던 <검정 고무신> 저작권 문제에서 형설, 그리고 해당 작품의 스토리를 담당했던 이영일 작가는 물론 이 작가의 사후에도 이우영 작가가 계약을 오해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이영일 작가는 3월 20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우영 작가가 형설과 계약을 맺는 당시에는 “모든 조건에 동의해 놓고는 시간이 지나자 마음이 바뀐 것 같다”고 주장하는 한편, 오히려 이우영 작가가 “원작 스토리를 쓴 나와는 상의도 없이 <검정 고무신> 관련 독단적인 활동을 했다”고 이우영 작가에게 문제의 소지가 있음을 넌지시 드러냈다. 더나아가 형설은 <주간경향>과의 장문 인터뷰에서 강력하게 자신들의 책임 소지가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형설과 계약을 맺기 전에도 이미 이우영 작가는 이영일 작가와 큰 갈등이 있었으며 형설이 사업권과 캐릭터 저작권 계약을 통해 갈등을 중재했다는 것, 형설은 <검정 고무신> 관련 사업으로 큰 이득을 얻지 못했고 이우영 작가에 대한 소송 역시 이우영 작가의 과실이 더 크다는 입장이다.
 
이미 이우영 작가 본인이 사망한 상황에서 과연 어떤 주장이 옳은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확인되는 몇 가지 사실은 있다. 이우영 작가 생전 주장이나 이우영 작가 사후 이영일 작가의 인터뷰에서도 드러나듯, <검정 고무신>을 공동으로 창작했던 두 작가에는 첨예한 갈등이 있었고 그것이 형설과 얽힌 저작권 문제에도 상호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점이다. 동시에 이우영 작가의 명확한 동의 여부를 떠나, 형설이 <검정 고무신> 사업권 설정 계약에서 기한을 설정하지 않은 것은 물론, 캐릭터 저작권 지분 또한 형설 ‘법인’이 아니라 형설의 대표이사가 참여하며 결과적으로는 저작권의 과반을 차지했다는 점은 이우영 작가 및 유족, 그리고 그 반대편에 서 있는 형설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작품에 대한 사업권 설정을 일정 주기로 계약을 갱신하는 것이 아니라 무기한으로 설정하는 일은 참으로 드문 일이다. 게다가 작품과 캐릭터의 저작권을 각각 분리하여 등록하는 등 창작자들이 자신들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일반적인 경우와 비교해도 상당히 강하게 포기하는 계약의 형태이다. 상당히 드문 형태의 계약을 두고 대책위와 형설의 입장은 ‘작가의 인지 여부’를 두고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두 입장은 차이가 나면서도 동시에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 주장이기도 하다. 작가 본인이 해당 계약을 체결할 당시 인지 여부가 쟁점이 되면서 해당 문제를 지극히 개인의 차원으로 수렴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체부의 움직임도 호기로운 보도자료와 달리 점차 발걸음이 꼬여가고 있다. 애당초 문체부가 보도자료로 발표한 내용들 가운데 실질적으로 새로운 대안을 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3월 15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2차적 저작물 적성권 이용허락 표준계약서’를 제시하고 있지만, 현행 체계에서는 계약서의 의무 이행이나 표준계약서 필수 사항의 의무적 준수를 요구하기 어렵다는 점이 간과되고 있다. ‘창작자 맞춤형 저작권 교육 대상자를 연 80명에서 500명으로 확대’한다거나 ‘만화분야 불공정 상담창구 마련’, ‘한국콘텐츠진흥원 공정상생센터 활성화’, ‘한국저작권위원회의 분쟁조정제도 적극 활용 안내’ 등은 이미 시행 중인 것을 다시 설명하는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후 해당 보도자료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판단이 하였는지, 3월 30일에 발표된 보도자료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강경한 자세를 드러내기는 하였다. 대책위 차원에서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 신문고’에 신고를 한 것을 토대로, 문체부 차원에서 특별조사팀을 꾸려 사건 조사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보도자료에서는 예술인권리보장법에 의거해 출판사 현장 조사에 나설 것이며, 계약문건 일체의 열람은 물론 관계자에 대한 출석 조사를 진행하고 조사 결과는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의 심의와 의결을 거쳐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설명이 달려 있다. 그러나 이미 당사자 중 한 명이, 그것도 유일하다시피 자신의 권리 침해를 요구했던 당사자가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얼마나 조사가 이뤄질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법제 마련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결국 문체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한 활동 계획에서 그나마 실질적인 변화를 추동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3월 15일 보도자료에서 언급되는 ‘문화산업 공정유통 및 상생협력에 관한 법률(2020년 12월 더불어민주당 유정주 의원 발의안, 2022년 11월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 발의안)의 조속한 추진 정도이다. 해당 법에서는 문화산업 분야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을 명목으로 문화산업 관계자, 특히 사업자에 대한 금지행위를 직접적으로 규정하고 해당 항목에 대한 금지 및 처벌을 명시하고 있다. 유정주 의원 안과 김승수 의원 안에 차이는 있지만, 두 의안 모두 저작권을 비롯한 지식재산권의 강제 양도나 무상 양수 행위를 비롯해 문화예술 사업자가 창작자에게 불합리한 행위를 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골자로 삼고 있다.
 
그러나 해당 의안 조차도 다른 정부 부처의 반대 의견에 부딪쳐 법안의 통과나 실제 시행 여부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그리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에서 기존 법제나 부처 소관 업무와 중복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중복 규제 우려를 제기한 것이다. 여기에 과기정통부는 ‘산업적 특수성을 고려해서’, 방통위는 ‘방송국 외주 제작사 등에 대해 많은 금지 유형이 포함되어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산업에 끼치는 영향이 많음을 이유로 해당 법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전한 것이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점은 과기정통부와 방통위 모두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이유로 해당 법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을 내걸었다는 것이다. 두 기관 모두 부처가 관할하는 영역의 특성상 이미 형성된 산업 구조의 영향력이 큰 것은 물론 산업적 이해관계가 반영되기 쉽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문화예술 영역의 산업 자본과 창작자 사이 법을 통하여 최소한으로 동등한 관계나 신의를 준수해야 할 사항을 명기하는 것에 대해 산업적으로 피해를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점에서는 산업으로서의 문화예술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일정한 위계 구조가 형성될 수밖에 없음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해당 법이 정말 유효한지, 그리고 실제 제정될 경우에 유의미한 효과를 낼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앞서 언급한 기사에서 지적되었던 대로, 이미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예술인권리보장법)이 2022년부터 시행되는 상황이다. 해당 법안은 예술인에 대한 불공정행위를 금지하며, 시행령으로 ‘불공정행위’의 세부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시행령에서는 주로 사재기, 부당한 거래조건 설정, 부당한 지시 간섭, 수익배분 거부 및 지연 행위를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화산업 공정유통 및 상생협력에 관한 법률’ 의안은 두 안 모두 시행령이 아닌 본문에서 금지 행위의 유형을 구분하고, 지식재산권이나 대가 및 보상의 측면에서 세부적인 금지행위를 두었다는 차이가 존재한다.
 
아직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시행된 지 일 년도 지나지 않은 상항에서 해당 법이 문체부 차원에서 적용을 검토하기로 한 <검정 고무신> 저작권 문제나 다른 사안에서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를 미리 예단하기는 어렵다. 동시에 이 법이 최대한 창작자의 의견에 합당하게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계약서에 참여한 상호의 동의 여부’를 어떻게 확인하며 동시에 무엇을 기준으로 ‘공정한 상태’와 그렇지 아니한 상태를 분리할 것인지도 미지수이다. 물론 예술인권리보장법에서는 ‘정상적인 거래 관행’에 비추어 불공정행위를 판단하게 되어 있고, ‘예술인보호관’을 선임하여 문제 사항을 조사한 뒤, 예술인신문고나 ‘예술인 권리보장 및 성희롱ㆍ성폭력 피해구제 위원회’를 통하여 문제 제기 사항에 대한 판단을 내리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예술인보호관’은 현재 예술인권리보장법에서는 공무원만 될 수 있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예술인신문고나 법에 의거하여 설치되는 예술인 권리보장 위원회 역시 주체적인 운영이나 의결이 지닌 효력을 보여줄 때 정상적인 작동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도 기관의 설립 근거를 규정한 문화에술진흥법이나, 명목적으로는 예술인이 주체가 되어 문화예술정책의 논의나 시행을 표방하게 되어 있지만, 오랜 시간 예술위에서 벌어진 혼란이나 여전히 예술위가 처한 상황은 법과 매우 큰 거리가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는 현행 예술인권리보장법보다 강하게 설계되어 있는 문화산업 공정유통에 대한 두 법안도 마찬가지이다. 해당 법이 현재 국회에 제출된 법안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해당 법이 실제 문화예술 창작자의 현실에 부응하며 주체적으로 작동할 것인가. 설사 시행이 되더라도 어떻게 관행적으로 통용되는 각 영역별 문화예술 창작현실과 창작자 권리 침해를 분리할 것인지도 모호한 점이 있다. 무엇보다 ‘계약에 대한 창작자의 동의 여부’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는 예술인권리보장법에서는 물론, 두 의안 모두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는 맹점을 안고 있다.
 
 
문화예술 정책 전반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고민할 수 있는 질문은 ‘법’으로서만 해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가 될 것이다. 예술인권리보장법 시행 이전에도 현행 저작권법 등을 통해서 창작자가 계약의 불합리함을 증명한 사례는 종종 있었다. 1994년 인기 노래였던 마로니에 <칵테일 사랑>의 경우, 객원 멤버로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음반에 객원 멤버가 제대로 명시되지 않은 것은 물론 도리어 노래 녹음에 참여하지 않았던 가수들을 급히 섭외하며 립싱크로 활동을 강행했던 데에 대해 시정을 요구해 승소했던 소송, 최근 2심에서 창작자가 승소한 유료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 창업자이자 전 대표 한희성이 데뷔 당시 청소년이었던 만화가와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스토리 창작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스토리 담당으로 자신의 이름을 올려 부당하게 작품에서 발생한 매출 이익을 가져갔던 사건 등이 있다.
 
그러나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처럼, 이러한 소송이 창작자의 승소로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칵테일 사랑> 저작권 문제는, 소송이 제기되고 1심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약 1년이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이 걸리긴 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소송을 제기한 마로니에의 객원 멤버들은 실제 <칵테일 사랑>에 참여했던 부분을 법정에서 불러 해당 목소리가 온전히 자신들의 목소리임을 증명해야 했다. 한희성 레진코믹스 전 대표의 사건은 소송 제기 후 1심이 나오기까지 무려 5년이라는 기간이 흘렀다. 그 과정에서 한희성 전 대표는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를 다수 고용하여 더욱 구설수를 낳기도 하였다. 만약 마로니에의 객원 멤버들이 자신들이 분명하게 <칵테일 사랑>에 참여했다는 것을 판사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증명하지 못했다면 1심 승소는 가능했을까. 한희성 전 대표의 저작권자 부당 등록 및 이익 부당 편취의 문제 역시도 소송을 제기한 작가 당사자가 최대한 자신이 스토리를 온전히 창작했다는 각종 증거 자료를 적절하게 제시하지 못했다면 결코 승소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도 후자의 사건은 1심이 내려지기까지 5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는 기간이 소요되었다.
 
아무리 창작자들을 위한, 창작자들에게 친화적인 법이 있다고 한들 결코 쉽게 승소를 장담할 수 없는 법적 소송에 온갖 비용을 들여가며,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집중하며 대응할 수 있는 창작자는 얼마나 될까. 아무리 공적 기관이나 창작자 모임 혹은 단체 등에서 소송을 지원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압박은 누군가 줄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법의 제정 및 개정은 필요한 일이지만, 법으로만 해결하고자 하는 접근도 온전하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일상적으로 창작자와 자본 사이의 관계가 결코 동등하기 쉽지 않고, 소위 ‘기울어진 운동장’의 관계가 형성되기 쉽다는 점이다. 이는 작품의 창작이나 창작된 작품의 2차적 활용을 위하여 이뤄지는 다양한 종류의 저작권 계약에 있어서는 물론, 저작권 문제로 규정되지 않는 다양한 종류의 갈등이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규정으로, 법으로, 위원회로 창작자 권리 보호의 중요성을 말해도 실제 현장에서 창작자 본인이 권리를 말하기 어렵다면 그 권리는 결국 문장과 기관 속에 박제된 권리가 되기 쉽다.
 
창작자 본인이 실제 저작권 계약 등 다양한 관계의 현장에서, 그리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최대한 동등한 위치로 나설 수 있는 ‘주체성’을 마련되어야 저작권을 비롯한 무수한 권리들이 실제로 적절하게 행사될 수 있다. 정책은 이러한 ‘주체’의 문제를 더욱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정책적인 차원에서 창작자의 권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면 필요한 것은 실제 정책을 결정하고, 사안을 논의하며 실행하는 과정에서 문화예술 창작자의 참여와 실행을 보장하는 움직임이다. 더 나아가서는 꾸준하게 해당 문제에 대해서 함께 연대하면서 고민을 이어나간 활동 단체와의 연계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 문화 정책의 주체적인 움직임을 추동하는 거버넌스의 구조가 오랜 시간 깨져가고 아직도 재구축이 요원한 상황에서 얼마나 유의미한 저작권 정책이, 창작자 권리 정책이 구축되고 실행될 것인가. 기본적인 정책 구도가 창작자의 현 실태를 유의미하게 바라보지 않는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실질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것 또한 함께 요원해질 수밖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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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민. 문화평론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합정만화연구학회 회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디지털문화정책전공 석사과정 수료. 만화, 영화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 영역의 맥락과 흐름을 보는 작업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단독 저서로는 『지금, 독립만화』(2019, 한국만화영상진흥원), 공동 저서로는 『R.I.P. Flash』(2021, 코옵), 『웹툰 내비게이션』(2022, 냉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