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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지역문화재단의 자율성은 불가능한 꿈인가- 협업을 무너뜨리는 불편한 사례들

CP_NET 2023. 3. 13. 22:40

 

 

2022년 하반기부터 들려오는 지역문화재단의 동향이 심상찮다. 대부분 6월 지방선거의 후폭풍이다. 지역문화재단은 오랫동안 문화기획과 실행의 전문성, 행정으로부터의 자율성/독립성, 공공기관으로서의 책임성 등의 이슈를 마주해 왔다. 시간이 지나고 기관운영의 노하우가 쌓여가면 제기되어 온 많은 문제들이 점차 방향을 찾아나갈 거라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여러 현장을 보면 이러한 기대가 부질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여기에 거론한 몇 가지 사례를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여기 언급된 사례들 외에도 기관통합 문제나 문화재단의 문화관광재단으로의 전환 등 다양한 이슈들이 잠복해 있거나 진행 중이다.

 

사례1. 시장님이 대표가 됐어요 -  A재단의 경우

20229A재단의 새 대표이사가 선임됐다. 흥미로운 것은 새로 업무를 시작한 대표이사가 A재단이 위치한 지자체의 전 단체장이었다는 것이다. 마치 정병국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으로 결정된 것을 떠올리게 하는 어질어질한 인사다. 해당 지역에서는 새 대표이사가 2022년 지자체 선거에서 현 시장의 선거운동을 도운 것에 대한 보은인사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참고로 대표이사 선임은 공모를 통해 선정되었다. 게다가 해당 인사는 성범죄 확정판결을 받은 전력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사례 2. 월급 받지 않는 비상임 대표 -  B재단의 경우

202212월 결정된 B재단 신임 대표이사 선임은 세 가지 측면에서 이례적이다. 첫 번째는 대표이사를 공모하지 않고 이사회 구성원 중에 선임한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표이사의 공석이 장기화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B재단은 1년 가까이 대표이사의 부재 속에 지자체 담당 국장이 대행업무를 수행하던 중이었다. 두 번째는 대표이사가 무보수, 비상임이라는 점이다. 조직을 총괄하고 일상적으로 의사결정과 판단을 해야 하는 대표이사를 비상임으로 두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지만, 보수를 받지 않으면서 책임 있는 자리를 운영한다는 것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세 번째는 신임 대표이사가 문화예술 경력이 없다는 점이다. 신임 대표는 지역의 의료원장과 축구 및 육상연합회장 등의 직함을 가지고 있다.

 

사례3. 거버넌스는 예산낭비인가 - C재단의 경우

2022년 지자체 선거를 마친 직후 C재단은 특정 감사를 받았다. 재단이 설립된 이후 첫 번째 감사였다.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출연기관이 감사를 받는 일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감사의 내용과 후속조치들이 법과 규정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정책방향을 좌우하는 것이라면 문제의 소지가 있다. C도시는 법정문화도시를 준비 중이었다. 감사 결과는 법정문화도시 선정에 한 차례 실패 후 재도전한 것이 매몰비용과 예산낭비를 불러왔다며 사업의 체질 변화를 요구했다. 이후 문화도시 사업에서 추진되었던 각종 거버넌스 사업은 축소되었고, 시민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연과 전시, 축제 등 향유사업에 대한 강조가 이어졌다.

 

 

변화는 느리고 더디지만

 

세 사례가 공통으로 보여주는 것은 지역 문화행정의 자율성 축소다. A재단의 사례는 문화재단이 선거 후 논공행상을 위한 자리로 전락한 전형성이 두드러지고, B재단은 지자체 공무원의 문화재단 파견이 이어지면서 문화재단의 자율성이 현재진행형으로 무너지는 양상을 보여준다. C재단은 지역문화재단 정책이 정치에 종속되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씁쓸한 질문을 남긴다.

 

한국에서 지역문화재단은 1997년 경기문화재단 설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천 년대로 접어들며 광역, 기초를 가리지 않고 설립된 재단들이 2022년 기준으로 130개를 넘어섰다. 20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많은 기초지자체 문화재단이 문예회관 등 시설관리와 지자체의 축제 등 위탁사업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이 현실이다. 애초에 지역문화재단을 설립하고 문화사업을 재단에 맡기기로 한 취지를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민간의 전문성을 적극 활용해 문화사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으로, 지자체의 경직성을 넘어 자율적 운영으로 유연한 활동을 지향하는 것을 통해 시민의 문화예술 활동 기회를 확대하고 지역 문화예술을 진흥한다는 목표를 기억해야 한다.

 

문화재단은 사업실행의 단위를 넘어 지역 문화정책을 구성하는 주요 단위로 성장할 것을 요구받아 왔다. 2010년대 이후 각 지역의 재단들은 각종 정책사업에 관여하며 사업의 외부를 늘려왔고, 초기 세팅이었던 공연-전시-예술지원 활동은 이제 문화예술교육과 생활문화, 공간문화, 예술기반 창업, 인문활동, 도시문화에 이를 정도로 폭이 넓어졌다. 사업 파트너 역시 예술인이나 단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을 기반으로 도시를 사고하는데 필요한 많은 단위들과의 협업을 실험하는 재단들이 등장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단의 변화는 느리고 더디다. 특히 지자체와의 관계, 정치권력과의 관계는 단기간에 전향적인 결론이 나기는 어렵다. 현실적으로 예산의 70% 이상을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으로 사용하는 기초문화재단의 경우에는 지자체 장의 성향이나 친소관계의 영향을 벗어나기 만만찮다. 이런 상황에서 재단의 정책방향이나 미션들을 나열하는 것이 자칫 공허해질 수도 있지만, 구체적인 사례들과 지향이 현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역시 눈여겨보아야 한다. 지역에서 문화예술에 기반한 새로운 도시 거버넌스를 실험하고 있는 지역들에 주목하며 종속관계를 넘어선 행정과의 새로운 협업관계를 만들기 위한 실천들이 병행되어야 할 시점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문화재단을 전리품 정도로 여기는 정치적 관행 타파를 위한 자각과 노력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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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호.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활동가, <컬처뉴스> 편집장을 지냈고 부천문화재단, 제주문화예술재단에서 일했다. 함께 쓴 책으로 나의 아름다운 철공소, 노년예술수업, 생애 전환 학교등이 있다. 스무 살 무렵 빼어난 재능들에 주눅 들어 창작에서 도망친 후, 예술 동네 근처에서 얼쩡거리며 문화 정책과 기획 관련 일을 해 왔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왕성한 문화 소비자가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