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검열 기구 문화부를 폐지하라- <윤석열차> 검열에 부쳐

CP_NET 2022. 10. 25. 08:21

예술을 검열하고 파괴하는 사람들이 결국 예술의 힘을 증언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예술사를 가르치는 데이비드 프리드버그(David Freedberg)의 말은 <윤석열차>를 둘러싼 논란을 바라보는 기준을 제시한다. 비극인 것은 한국의 정부가 예술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당사자가 아니라 이를 침해함으로써 예술의 힘을 증언하는 측에 섰다는 점이다. 현대의 검열은 임의적인 작품의 변경이나 폐기, 파괴나 예술인 당사자의 신체적 구속과 같은 전통적인 방식과 더불어 예술인이 가지고 있는 의견을 침묵하도록 하는 영향력의 행사까지 포괄한다. 유네스코의 자문기구 지위에 있는 표현의 자유 감시 단체 프리뮤즈(freemuse)가 매년 발표하는 예술적 자유의 상태에 대한 연차보고서를 보면 예술에 대한 검열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만 하더라도 전 세계적으로1,200건이 넘는 예술적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가 확인되었고 이 중에는 39명의 예술인이 살해당했고 또 500명이 넘는 예술인이 창작활동을 이유로 사법처리를 받았다. (단체가 밝히고 있듯이 이 건수는 확인될 수 있는 사건의 숫자일 뿐 발생하는 예술적 표현에 대한 침해 전체는 아니다). 유형으로 놓고 보면 가장 높은 빈도로 나타나는 침해는 바로 검열이다.

 

 

논란인지 아닌지 판단하겠다고? 그걸 왜 문화부가?

 

프리뮤즈의 보고서에 따르면 시각예술 분야에서는 32개 국가에서 303건의 검열이 모니터링되었는데 이 중 1/4에 해당하는 비중인 26%가 정치적 견해 때문에 발생하는 검열이었다. 그리고 이런 형태는 대개 정부기관이 직접 불이익을 주거나 경찰력을 동원하는 위협 방식으로 나타났다. 흥미롭게도 이런 현상이 단지 남미나 아시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북미나 유럽에서도 크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극단적인 의견 대립 속에서 예술적 표현은 가장 첨예한 갈등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갈등은 대개 미술관이나 박물관과 같은 특정한 기관에 의해 나타나지 한국과 같이 정부기관에 의해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의 문화부가 지방자치단체 소관의 문화기관이 시행한 공모전의 작품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입장을 표명하는 행위가 검열이냐 아니냐는 논란은 무의미하다.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검열의 의미는 권력이라는 요소와 지속적인 영향력의 행사 그리고 예술인 당사자의 신체적, 심리적 위축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이번 사건은 명확하게 이런 기준에 부합한다. 일부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정부의 재원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할 근거가 있다는 주장은, 정부 재정에 대한 지독한 편견에 사로잡힌 논평일 뿐이다. 정부의 재정은 시민의 기여로 조성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재정 분배는 기능상의 분배일 뿐 상하 관계를 포함하는 위계적 구조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문화부의 재정은 문화부 관료들의 돈이 아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대한 정부와 경기도의 재정지원은 만화 육성이라는 정책목표 달성을 위한 것이고 그에 대한 평가는 문화부나 경기도가 수립한 사업의 목표와 이를 측정하기 위한 지표체계 그리고 사업목적에 대한 검토를 통해서 진행되는 것이지 이번 사건처럼 기관의 행사 하나하나에 자신들의 입맛을 반영하기 위한 수단은 아니다.

 

이번에 문화부가 한 행태는 후원 명칭사용에 대한 것인데 이 말은 문화부가 예술인들의 창작 작품에 대해 직접적으로 판단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통상적으로 후원 명칭은 사업의 취지를 보고 사전에 승인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를 사후에 취소하는 전례를 만들게 되면 명칭 후원을 받는 기관의 입장에선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작품이나 사업의 적정성에 대해 문화부의 사전 인정을 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어떤 것이 우발적으로 논란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기관의 실무자는 최소한의 알리바이를 위해 사전에 다 확인했다는 명분을 추구하는 건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더욱이 이번 사건은 사회적 논란을 야기했다라는 근거를 들지만, 사회적 논란이야 예술의 덕목일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집권 세력에 반하는 사회적 논란에 문화부가 직접 개입하고 나섰다는데 문제가 있다.

 

 

문재인 정부의 문화부는 무슨 일을 하였나

 

알다시피 한국 정부는 청와대에서부터 문화부와 산하기관까지 특정한 예술인을 배제하는 블랙리스트를 작동시켰다. 사법처리의 대상이 된 것도 있지만 대다수의 블랙리스트 실행은 사법처리 대상에서 벗어났다. 그 이유는 그것이 문화행정의 관료체계에서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문화부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특정한 공모사업 응모자에 대한 지원 배제나 특정 공모사업의 심의위원 명단을 달라는 등의 요구를 함으로써 위력을 행사한 것이 분명하지만, 그런 것은 통상적인 관료체계 내에서의 업무 프로세스로도 이해된다. 업무 시간 외에 전화를 걸어 사업의 진행을 묻고 왜 그렇게 하냐?’고 묻는 행위가 일반적인 업무 협조로 이해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인 곳에서 블랙리스트는 사람의 문제라기보다는 시스템의 문제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위원회는 제도개선 권고안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국가위원회로 격상하는 제안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중 하나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국가위원회가 되면 현행 문화체육관광부에서의 문화부는 폐지되거나 축소되어야 한다. 블랙리스트가 특정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한국의 관료주의 문화행정 내에서 배태되어 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많은 현장 예술가들, 정책전문가들은 블랙리스트를 현재의 시스템이라면 블랙리스트를 ‘‘안 하는 것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 우려를 <윤석열차> 사태에서 확인한다.

 

그런데 왜 블랙리스트 문제가 구조의 문제를 건들지 못하고 대통령실의 책임자 몇 명을 사법 처리하는 수준으로 전락했나. (이외 문화체육관광부의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처벌 권고안은 실행되지 않았고, 징계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점에선 문재인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해 지나치게 온정적이었던 태도가 지적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의 문화정책은 대부분 문화부 관료들의 양해 속에서 얻어진 것들이 많다. 권력을 가진 측에서 보자면 관료 조직은 쓸만한 손발이 된다. 이런 점에서 문화부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았고 블랙리스트의 문화부는 대문자 K의 문화부로 치장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문화부는 오히려 산하기관들을 신설하면서 차근차근 문화정책에서 관료주의의 촉수를 확장했다.

 

 

<윤석열차>를 둘러싼 정치 기득권의 논란이 문화부에 이득인 이유

 

앞서 재정의 원칙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역시 돈을 주는 측에선 간섭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설사 그것이 자신이 번 돈이 아니라 그저 기능에 따라 주어진 돈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배분한다는 것 자체에 권력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이런 과정에 객관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확립함으로써 정당성을 강화하겠지만 여전히 장르로 분절되어 있는 지원 중심의 문화정책에서는 각 부서의 주무관이나 과장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사실 주요한 선진국에서 문화부라는 중앙 행정기관이 없는 것은 문화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라기보다는, 정책의 전달체계에서 나타나는 권력 문제 때문으로 보는 것이 맞다. 전달체계가 복잡하고 절차가 많을수록 임의적인 간섭이나 개입이 용이하다. 이를테면 지방자치단체로 교부해서 집행해도 될 사업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협단체를 통해서 배분하는 것은 사업의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형 ‘팔길이 원칙, 책임은 외부화하고 권한은 비공식화하는 문화정책에 불과하다. 이를테면 문화부가 산하기관이나 단체에 말하는 업무 협조가 그런 것이다.

 

<윤석열차> 논란이 정치 기득권 간의 논란으로 휘발되는 것은, 아무래도 문화부 입장에서 가장 좋은 그림이겠다. 이를테면 <주간조선>은 발 빠르게 지난 6월에 논란이 되었던 <문켓몬스터> 네이버도전웹툰 사건을 들고 나왔다. 해당 작품은 그동안 극우 사이트에서 사용된 문재인 전 대통령 비하 코드를 그대로 가져왔다. 하지만 해당 작품은 논란이 되었으나 독자 신고로 삭제된 사건으로 정부 기구가 직접 나선 이번 경우와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예술 표현의 자유가 정치적 표현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진다는 건, 그만큼 당대의 예술이 착목하고 있는 현실에서 정치의 비중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문화부는 정파적 갈등 틈바구니에서 살짝 고개만 숙이고 있으면 실리를 챙길 수 있는 상황이다. 어차피 분명한 사인을 주었으니 앞으로 문화부의 명칭 후원이 필요한 곳은 알아서 관리하지 않겠나.

 

예술에 대한 검열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검열 기구를 폐지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음반에 대한 사전검열기구였던 공연윤리위원회는 모두가 만장일치로 동의한 것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폐지했다. 그것의 순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곳은 찾을 수 있지만, 그것이 있음으로 해서 작동하는 검열은 없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이와 똑같은 이야기를 문화부에 대해서 해보자. 아마도 많은 이들이 문화부가 필요한 이유를 수십, 수백 가지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부가 예술 표현에 대한 검열 기구라는 사실, 그리고 앞으로도 블랙리스트를 할 수 있는 기관이라는 조건을 생각해보자. 과연 기관 폐지의 약점은 보완이 불가능한 것인가.

 

예술인복지법에서 예술인권리보장법까지 다양한 법제가 예술 현장의 요구를 받아 제정되었고 시행 중이지만, 좋게 봐도 문화부는 정책의 파트너도 아니고 문화정책의 책임자도 아니고 그야말로 전근대적인 예술 후원자 수준을 벗어나 있지 못하다. 알다시피 예술인 복지도 예술인 권리 보장도 조각조각 나뉘어 흩어졌고 문화부가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일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예술인 복지정책에 대해 문제가 생기면 문화부 관료가 하는 일은 예술인복지재단에 전화를 하고, 자료를 받아서 전달하는 것에 머물 뿐이지만, <윤석열차>에서 보듯이 예술 검열에 있어서는 사회적인 논란에도 불구하고 직접 관철하는 뚝심을 보인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통해서 문화부가 직접 처리하는 일도 있다는 사실과 함께 여전히 예술정책의 어느 부분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확인한다. 그것은 예술의 통제이고 관리다.

 

 

예술인의 자유, 시민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예술인의 직업적 권한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것이고 예술인은 이런 인간의 본성 중 하나를 예술적 표현을 통해서 드러내는 일에 익숙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한다. 검열 기구의 폐지는, 판단의 근거를 정부 기구에서 우리 안으로 가져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인의 자유가 시민의 자유와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예술 표현은 시민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라는 질문들을 할 필요가 있다. 최근 취소 문화’(cancel culture)라는 것이 온라인 기반의 검열에서 주요하게 논의 중이다. 취소 문화란 유명인을 대상으로 과거의 행적이나 발언을 고발하고 이를 근거로 현재의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를 잃게 만드는 온라인상의 현상이나 운동을 의미한다. 이런 현상은 묵혀있던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는 개선이자 진보일 수도 있고(개인적으로는 이 평가에 무게를 둔다), 반동적이고 위협적인 백래시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조건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잠정적인 참고점들이다.

 

자유는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비판과 분리되지 않는 속성을 지닌다. 자유는 간섭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산 것 내 마음대로라는 천박한 소유적 개인주의는 어쩌면 자유와 가장 멀리 있는 개념이다. 자유가 의미가 있는 것은 혼자 있어서가 아니라 같이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자유라는 말은 나의 자유를 통해서 정의되지 않고 너의 자유를 통해서 정의될 수 있다. 검열 기구로서 문화부를 존속시킨 하나의 힘으로서, 우리 스스로 판단하지 않음이라는 상태가 있다는 것 역시 떠올려야 할 부분이다. 검열 기구를 해체하는 것이 첫 번째고 당대의 자유를 다시 정의하는 것이 두 번째다.. 예술이 앞장서는 부분이 있다면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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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문화연대집행위원. '밥먹고 예술합시다'라는 집담회를 계기로 예술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인들의 공정한 보상과 문화산업 내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모임인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창립에 참여했다.블랙리스트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혁신을 위한 TF 위원, 1기 현장소통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문화/예술 재정과 예술활동과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