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리뷰] ‘이 벽화를 지워도 되겠습니까?’가 남긴 것 - 영도 공공미술 공론장 후기

칼럼

by CP_NET 2022. 3. 14. 14:27

본문



올해 2월 ‘프로젝트 영도’의 공공미술 공론장 사전 퍼포먼스로 게시된 현수막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이 벽화를 지워도 되겠습니까?”라는 문장은 한 동안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SNS를 뒤흔들었다. 영도 공공미술 프로젝트와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던 기획자나 예술가들, 공공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몇몇 매체에서도 관심을 보이며 분위기를 달구었다. 공공미술과 관련한 논의는 이화동에서 벽화가 지워지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정도가 아니라면 대중적으로 언급되는 일이 많지 않았던 터라 이번 일은 무척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여러 반응들이 있었지만, 대략 세 가지 범주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냉정한 진단이다. 공공미술에 대한 문제제기 방식으로 진행된 도발 자체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영도 프로젝트’의 구성원들이 기존 작업을 진행한 팀과의 소통을 게을리한 것은 아쉽다는 평가다. 두 번째는 불편한 시선이다. 현수막으로 덮인 작품과 작가는 그렇게 무시당하면 안 된다는 의견, 기존 팀들의 작업 프로세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비판이 불편하다는 입장, 주민들이 현수막에 대해 항의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는 비판 등이 여기에 속한다. 세 번째는 응원이다. 지금까지 공공미술에 대해 숱한 논의와 토론이 있어왔지만, 이만큼 관심이 집중된 적이 있었느냐에 주목하며 이번 공론장과 작가들의 활동을 지지한다는 입장이 있었다. 앞의 두 입장이 주로 영도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사람들의 것이라면, 지지하고 응원하는 입장은 부산 바깥의 시선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기존 작업과의 관계, 기획자와 작가, 주민과의 소통 등의 외부 맥락 등이 엮여 논란은 증폭되었다.

영도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은 두 가지 원칙을 세우고 일을 진행했다고 했다. 첫 번째는 물리적인 작품, 특히 조형물을 만들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공공미술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함의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질곡을 우회하겠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다음은 공공미술을 정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념 정의에서 오는 여러 가지 함정들을 피하면서, 공공미술에 대한 탐색을 멈추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메인 슬로건이 많은 관심을 끈 탓에 자칫 이번 프로젝트가 벽화에만 한정된 것으로 오해하는 시선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공공미술 공론장 제목의 풀 텍스트는 ‘벽화, 아파트, 바다, 투쟁, 크레인, 사진, 소리, 지도, 공장, 게시물, 도시, 민원, 기억, 욕망’을 아우른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은 소란을 일으킨 것이 공론을 자극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어려운 문제이고, 한편으로는 겁이 나면서 매 순간마다 복잡한 문제가 얽혔지만 문제 제기에 의미를 뒀다는 것이다. 이들이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현실의 맥락과 연결되는 지점이었다. 기존 작업자들과의 소통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는 뚜렷한 과제로 남았다. 영도 프로젝트는 1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3년을 계획하고 진행되는 사업이다. 참여작가들은 공공미술과 관련한 논의가 향후 이어달리기 방식의 확장으로 연결되었으면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민, 작가, 기획자 그리고 그리고

공론장에서 나왔던 이야기들을 정리해보려고 하니, 진지하고 열띤 자리였지만 개별 논의들이 다소 산발적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럼에도 영도 주민부터 작가와 기획자를 포함해 여러 주체들이 다양한 입장들을 제한 없이 개진할 수 있었다는 점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흥미로운 관점 중 하나는 미술인들이 일종의 특혜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었다. 다른 영역에 비해 공공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예산이 투입되고 프로젝트가 만들어지는 것은 시각예술 영역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2020년 하반기에 갑자기 진행되었던 ‘우리동네 공공미술’ 프로젝트도 함께 거론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피해는 모든 예술가들이 동일하게 겪고 있는데, 이 정도의 대규모 프로젝트는 시각예술 분야에만 지원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벽화로 대표되는 공공미술이 예술을 정책에 복무시키는데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에 시각예술이 선택된 것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특히 벽화는 가장 싸고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는 형식인 동시에, 일방통행적이고 위계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진단이다. 시각예술이 성과를 드러내는데 최적화되어 있어서 정책에서 활용하는 것인데, 예술가들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보태 ‘공공무용이나 공공음악, 공공연극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공공미술과 공공건축은 유형화된 물리적 실체를 가지고 있어서 가능한 지점이 있다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이 참여자는 공공건축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공미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쓰임새가 더 있는 편이며, 따라서 비판도 덜 받는 게 아닌가라는 의견을 남겼다.

벽화에 대해서는 프로젝트 영도의 별도 답변이 있었다. 프로젝트에서 특히 오해를 많이 샀던 부분이 특정 벽화를 지우려고 한다는 것이었는데, 질문에 대해 격렬한 반응이 나온 것이 오히려 반가웠다고 한다. 개발사업에서 순식간에 마을 하나가 없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질문이 나오지 않는 현실을 언급하며, 잠시 가릴 뿐인 현수막에 대한 반응이 이후의 ‘지움’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이 느껴진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작품 위에 현수막을 거는 것이 무례하다고 하는데, 그 자리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주민들의 공간을 벽화로 덮는 일은 왜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묻고 싶었다고 했다. 어찌 보면 프로젝트 진행과 현수막 퍼포먼스에서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던 것을 피장파장으로 무화시키는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원론적인 의미에서 공공미술이 가져야 할 원칙과 방법론에 대한 강력한 환기라는 점은 뚜렷하다.

영도주민이라고 밝힌 참여자는 주민들의 입장과 요구가 더 많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벽화가 문제가 되는 것은 모든 주민들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동피랑은 지역의 정서와 주민들의 애정이 깃들었기 때문에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본인이 영도의 공공미술을 지켜본 결과로는 주민의 입장은 없고 영도의 브랜드를 위해 세련된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한 번 왔다 가는 관광객이 아니라 계속 작업을 봐야 하는 동네 주민들의 요구를 들어달라고 했다. 주민들이 하트를 요구하면 거기에 예술가들의 창의성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다른 결과물을 낼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이야기였다.

이 역시 모든 주민들의 공통된 의견이라 할 수는 없지만, 실제 거주민의 이야기를 육성으로 듣는 것은 새로운 기분이었다. 이에 대해 다음 발언자는 ‘공공미술은 미술을 도구로 공공을 만나는 자리’라며, 주민이 생각하는 예술과 예술가가 생각하는 예술 사이의 간격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공공미술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것은 공공미술 뿐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에서 마찬가지다. 그러나 공공미술은 그것을 요구받고 있으며, 결국 이는 곧 수많은 공공미술 작품이 공허한 이유가 된다.

앞의 주민과 비슷한 의견으로 사람이 사는 곳인데 도시의 공공미술이 놀이동산이나 테마파크를 닮아가는 과잉의 요소로 가득 차는 현상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도시가 삶의 흔적과 꼴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인공적인 아름다움으로 고정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작가들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공론장에는 벽화 지우기 프로젝트를 한다는 작가 팀도 참여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벽화 지우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고 했지만, 실제 성사된 것은 손에 꼽는다고 했다. 수많은 이해관계와 제약으로 이미 그려진 벽화를 지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이들의 경험담이다. 심지어 건물주와 거주 주민이 모두 지우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어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는 거다. 이들은 그만큼 새로 벽화나 공공미술을 제작하는 것에는 윤리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장에서는 프로젝트 영도 팀의 향후 대안을 묻는 질문들이 있었다. 일부 참여자들은 꼭 대안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작가가 아니라 프로젝트 참여자로서의 입장과 대답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프로젝트 영도 팀 역시 대안을 모색 중이라고 답변했다. 2021년에는 영도의 공공미술을 리서치하고 이에 대한 담론 작업을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면, 2022년도에는 주민들과 만나며 논의를 확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인상적이었던 의견 중 하나는 한국의 대중이 벽화와 조각 이외의 공공미술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진단이었다. 동시대 시각예술의 실험은 어째서 공공미술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라는 문제제기였다. 이러한 실험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는 이런 실험을 반영하고 싶어도 제도적으로 반영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반발과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대중의 미적 체험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는 주장인데, 적극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영도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물리적 작품을 제작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현장에서는 참여작가들이 만든 영상 작품이 몇 개 공개되었다. 작품들은 공공미술과 지역의 이해관계에 대한 성찰을 기본으로 작가들이 본 영도의 현실과 다양한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담아낸 것이었다. 특히, 페이크다큐 형식으로 찍어낸 좌담회 영상은 공공미술과 관련한 현실을 다각도로 섬세하게 비추는 수작이었다. 작가와 평론가, 공무원과 주민대표, 부동산업자와 문화해설사, 인플루언서까지 각자의 입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좌담회 장면은 외부 공개 없이 현장 상영만을 진행했는데, 관람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향후 어떤 방식으로든 공개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공론장 자리는 약간의 흥분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활발한 참여 열기를 보여주었다. 발언을 독점하는 이들도 없었고, 다양한 참여자들이 저마다의 입장을 개진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덕분에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공공미술과 관련한 다양한 의제들을 다시금 검토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다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집중된 논의를 위해서는 별도의 자리 나 활동의 연결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영도 문화도시센터와 영도 프로젝트 참여작가들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제기한 문제들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번 프로젝트와 공론장이 성공한 도발로 남는 것이 아니라 공공미술의 맥락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활동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



--------
안태호.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활동가, <컬처뉴스> 편집장을 지냈고 부천문화재단, 제주문화예술재단에서 일했다. 함께 쓴 책으로 『나의 아름다운 철공소』, 『노년예술수업』 등이 있다. 스무 살 무렵 빼어난 재능들에 주눅 들어 창작에서 도망친 후, 예술 동네 근처에서 얼쩡거리며 문화 정책과 기획 관련 일을 해 왔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왕성한 문화 소비자가 꿈이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