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자치분권” 시대 민간협치에 대한 단상 - 대전시 ‘테미오래’ 관리·운영 수탁기관 선정 논란을 보며

CP_NET 2021. 12. 16. 04:41

대전에는 잘 보존되고 있는 일제강점기 공관이 있다. 바로 “충청남도지사공관이다. 대전시는 충청남도지사공관을 포함하고 있는 옛 충청남도관사촌을 매입해 시민문화복합공간으로 조성하여 테미오래라는 이름으로 201946일 개관하여 운영되고 있다.

 

* 충남도관사촌은 1932년 충청남도도청사가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충남도청 주변인 대흥동 326-67번지 일대에 형성됐다. 현재 지사관사를 포함해 10채의 관사가 남아 있다. 도지사 공관은 시 지정문화재, 1930년대에 지어진 1·2·5·6호 관사는 국가등록 문화재 101호로 지정됐다.

 

<테미오래 관리 및 운영 민간위탁 동의안>(2018. 7. 17. 대전시의회 통과)테미오래에 대하여 문화예술진흥법 제5조의 규정에 따라 민간의 전문성과 창의성을 도입하여 관사촌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시민주도적 열린공간 조성을 위해 민간위탁을 통하여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 운영코자 함을 주 내용으로 하는데 이에 따라 민간단체를 공모하여 3년간(2019~2021) 운영했다. 그리고 3년간의 운영 계약기간 만료를 앞두고 2(2022~2024) 운영단체를 공모하였는데, 대전시 출연기관인 대전문화재단을 선정하였다고 2021930일에 발표하였다.

 

결과 발표 이후, 이에 반발한 공모 참여 민간단체들이 2차에 걸친 입장문을 발표하였고, 지역 언론들에 많은 보도가 있었다. 문제제기의 주요 내용은 “‘대전문화재단은 민간단체로 볼 수 없는 공공기관이며, 해당 사업의 담당 부서의 책임자이고 대전문화재단의 당연직 이사인 대전시의 국장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것으로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심의 절차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심의 결과 취소와 재공모를 요구하였다.

 

대전시의회(282회 정례회의, 1112) 문화체육관광국 행정사무감사에서도 재단법인 대전문화재단이 관리·수탁기관으로 선정된 것은 정당성에 문제가 있다는 민간단체의 주장이 보편적으로 일리가 있다”, “수탁기관 선정 업무처리가 매끄럽지 못했다면서 선정결과를 철회하고 다시 공모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했다.

 

이에 대해 대전시는 대전문화재단의 공모 자격과 심의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다. 공모 참여단체들은 국민권익위원회에의 민원을 접수하였다. 또한 대전미래문화예술포럼도 입장문을 발표하였는데 대전시는 문화예술분야 민관협치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이번 테미오래 수탁 문제에서 제기된 여러 문제해결을 위해 공론 테이블을 마련하라” “대전문화재단의 미션과 방향성에 대한 공개 토론회와 정책연구를 실시하고, 대전문화재단의 위수탁시설을 점검하여 민간이양 등 적극적인 민간협치 방안을 제시하라 요구했다. 그러나 대전시는 ”대전문화재단의 공모 참가 자격과 절차상 문제가 없다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현재는 대전시와 대전문화재단은 계약을 완료(11)하였고, 공모 참여단체들은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상태이다.

 

 

드러내기 부끄러운 논쟁거리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몇몇 쟁점은 사실 따져 묻기에 참으로 어색하고, 부끄러운 것들이다.

 

첫 번째, 대전문화재단을 공공기관으로 볼 것이냐, 민간단체로 볼 것인가. 대전시의 주장대로 민간으로 볼 수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대전시(행정)부시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고, 대전시의 예산으로 직원 인건비를 포함한 운영비와 사업비를 전액 충당하고, 정기 감사와 대전시의회의 행정감사를 받고, 공공기관과 관련한 규정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대전문화재단이 공공기관이 아니고 민간 단체라는 논리는 그냥 억지에 불과하다. 대전문화재단에서 수탁 대행하고 있는 수 많은 공기관 등에 대한 경상적 위탁 사업비는 민간에게 맡기는 사업인가? 행안부에서는 지방출자·출연기관인 대전문화재단을 공공기관으로 인정하고 있다. 행안부의 지방출자·출연기관 설립현황을 보면 대전문화재단은 대전시의 14개 출연기관에 속해있다.

 

두 번째,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 이번 심의에 문체국장이 심의위원으로 참여하였는데, 대전시는 심의위원 자격에 해당하고 재단 심사에 제척하였으므로 공정성이 훼손됐다고 볼 수 없다라고 답변하였다. 해당 사업의 담당부서 최고 책임자이고, 대전문화재단의 당연직 이사인 문체국장이 심의에 참여하여 재단을 선정한 것이 정말 옳다고 생각지는 않을 것이다. 대전문화재단의 조직(인사), 사업(계획과 집행), 예산 등 모든 문제를 관리 감독하는 담당 부서에서 사전에 대전문화재단과 협의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인가. 역시 억지이다.

 

 

더 따져봐야 할 문제들

 

1기 운영 단체가 3년간 사업을 잘못해서, 역량이 뛰어난(?) 대전문화재단에 맡기려 하는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난 3년간의 테미오래 운영은 어떤 기준과 방법으로 평가해야 할까.

 

처음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대전시, 운영단체도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고, 더 크게는 사업 방향을 변경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정상적인 홍보와 사업이 불가능한 2년이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런데 처음으로 시작하는 ‘테미오래’ 운영과 사업의 발전을 위해서 대전시는 관리와 감독을 넘어서는 어떠한 정책적 지원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공간과 건물의 보존과 활용이라는 1차적인 문제부터 시작해서, 대전방문의와 연계하여 외지 관광객 유치를 위한 홍보, 마케팅 지원은 기본이다. 나아가 운영 인력의 적정성과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연수나 지역의 관련 사업과의 연계와 전문가 자문과 활용 등에 대한 것들을 얼마나 서로 논의하고 시행했는지 궁금하다. (이러한 점은 향후 ‘테미오래’ 활성화를 위해서도 중요한 문제이다.)

 

테미오래 운영 평가와 관련하여 가장 기본적인 수혜자 만족도 조사는 있었는가. (운영단체를 제외하더라도) 입주작가를 포함하여 테미오래의 각종 사업에 참여한 많은 예술가들과 3년간 테미오래를 찾은 방문객, 지역 주민들의 만족도 조사가 있었는지, 그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문화예술계와 시민들은 알지 못한다. 또한, 만족도 조사만으로 알 수 없는 사업 기본 방향과 과정, 성과에 대한 전문적인 평가가 있었는지도 묻고 싶다. 만약 합당한 기준과 합리적 방법에 의한 평가가 있었고 그에 따라 ‘테미오래 관리 및 운영 민간위탁 동의안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대전문화재단에 운영을 위탁하고자 했다면, 지금이라도 평가결과를 공개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런데 민간, 공공을 떠나 대전문화재단은 테미오래 운영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대전문화재단에 대해서는 정책 기능이 부족하고, 대전시의 대행 사업체냐 하는 이야기가 늘 있어 왔다. 많은 수탁사업으로 인해 많은 예산과 인력에도 불구하고 재단의 기본 임무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지금의 수탁 시설(사업)들이 대전문화재단의 미션에 적합한지, 운영방식은 개선점이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정리한 재단의 운영방향 속에서 ‘테미오래’ 수탁하는 것이 재단의 발전과 그에 따른 지역의 문화예술활성화에 적절한 방식인지를 검토해야 한다. 테미오래 운영을 위해서는 여러 명의 인력이 상주해야 하는데, 이 인력들은 어떻게 고용할 지도 걱정이다. 3년 위탁사업에 정규직을 채용할 수도 없고, 기간제 직원을 채용할 것인데, 2년 후 계약 만료로 처리하고 또 새로운 기간제 직원을 뽑을 것인지의 문제는 지금 말할 단계도 아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

 

심의에서 탈락한 단체들이 억울하니 결과를 취소하고 재공모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대전문화재단이 테미오래를 맡는 것은 적절치 않으니 지금 당장 수탁사업을 정리하자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미 다 끝난 문제를, 고칠 수 없는 문제를 왜 자꾸 거론하느냐고 할 수도 있다. 주인이 맡기고 싶은 단체에 준 것이니 그냥 넘어가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 노여움과 슬픔 그리고 노파심을 잠재울 길이 없다.

 

첫 번째 노여움은 과정의 어설픔과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변 태도이다. 논란이 발생했을 때 성실하게 질문에 응하고 성실하게 이견에 대해 설득하는 것 또한 행정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렇게 뭉게버리는 것은 예술계를 포함한 대전 시민에 대한 폭력이다.

 

두 번째 슬픔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이다. 문제제기는 계속되고 있지만 아무것도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전시는 대전문화재단과 계약을 완료하여 바꿀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공모 참여 단체들은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 결과와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또 다른 행정절차나 법률적 처리를 준비할 수도 있겠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든 문제는 발생하고 갈등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문제와 갈등을 풀어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가 중요할 것인데, 우리는 이번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것인가.

 

세 번째 노파심은 앞으로 우리 대전에서 벌어질 상황이다. 우려인 만큼 그럴 리 없기를 바란다. 민간(문화예술)단체는 대전시의 행정을 불신하게 되고, 대전시는 민간단체를 불편하게 인식하는 것이 하나이다. 더 무서운 또 하나는 이번 일이 관례가 되어 대전시의 행정이 억지를 불사하고 독주하는 것이다.

 

 

진짜 중요한 문제

 

대전시 소유의 1개 시설을 위탁하는 문제에 대해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치분권라는 시대 정신에 역행하는 것이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확산할 분권에 대해 이러한 행정 풍토가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역분권은 중앙정부로부터의 지방정부로의 권한 이양에서 출발한다. 분권을 통하여 지방의 자치를 실현하자는 것이 자치분권이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지방정부-(광역)자치단체장의 권한만이 확대되는 것이 아니다. 분권과 자치의 원리는 각 지역 안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광역과 기초 자치단체 간의 권한 이양과 역할 분담이 이루어져야 하고, 주민 공동체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 분권과 자치를 실현하기 위한 법률과 조례를 많이 만들고 시행하고 있지만, 법률에 앞서 근본적인 철학이 필요하다. 이를 보충성의 원리라고 한다.

 

법률용어로서의 “보충성의 원리는 헌법이나 상위법상의 기본원리로서 보충의 원리또는 보충의 원칙이라고도 한다. ‘보충성의 원리에 따르면 행동의 우선권은 언제나 소단위에게 있는 것이고, ‘소단위의 힘만으로 처리될 수 없는 사항에 한해서 차상급단위가 보충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 ‘보충성의 원리는 권한을 분산하고 많은 사람이 찬동할 수 있는 것으로 할 것, 최소 단위의 정치 공동체가 하는 의사결정권을 존중하고, 상위 단위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하려고 하는 것이다. 주민자치를 통한 중앙정부의 지방정부에 이양된 권한(분권)은 주민들이 이를 잘 행사하도록 하여 소단위의 권리, 의무에 대한 적극적 행사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앙정부, 지방정부는 차상위단위로서 소단위가 스스로 균형있고 유연한 문제 해결 능력을 갖고 이의 해결 방법을 결정하는 과정의 기회를 1차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자치분권 특별법에도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기본이념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 2장 제1
7(자치분권의 기본이념) 자치분권은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하여 지방자치단체가 그 지역에 관한 정책을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자기의 책임하에 집행하도록 하며, (중략) 지방의 창의성 및 다양성이 존중되는 내실 있는 지방자치를 실현함을 그 기본이념으로 한다.

 

자치분권과 관련하여 보충성을 원리를 깊이 들여다 보아야 한다. 이번 테미오래 운영단체 선정의 문제는 민간이냐 재단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보충성의 원리가 우리 지역에서 얼마나 잘 작동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며, 자치 실현을 위한 민간 공동체의 역할을 확대하고 역량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과제를 보여준다. 특히나 다양성과 창의성, 자발성을 본질로 하는 문화예술정책은 더더욱 가장 낮은 소단위로의 권한 이양이 필요하다.

 

그래서 테미오래 재공모 요구는 대전문화재단에 대한 공격이나 탈락한 공모 참여 단체를 구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에 역행하는 대전시의 철저한 자기반성과 민관 거버넌스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고, 자치분권의 시대 정신을 실현하고자 하는 운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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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진.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사)한국문화기획학교 이사. 지역문화정책연구소 대표. 배우가 꿈이었으나, 함께 창단한 극단의 대표 꼬임에 넘어가 기획자로 돌아섰다. 국립중앙극장의 1기 책임운영기관 당시 기획팀장으로 공공에 발을 들였다. 이후 짧게나마 서울문화재단 축제기획실장, 대전문화재단 본부장 등을 거쳤고, 오랫동안 총감독, 평가위원으로 축제 현장에서 일하였으며, 지역 문화예술정책과 문화재 활용사업의 연구원, 컨설턴트로도 일하고 있다.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 힘은 지역의 문화 역량에 있다고 믿는다. 그 힘을 기르기 위해서 청년기획자, 지역문화기획자 양성에 노력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하고, 공부를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