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 현장소통소위원회는 5월 3일부터 9개 권역 지역간담회를 개최하고 있다. ‘대전·충남’ 권역을 시작으로 ‘광주·전남’ ‘강원’ ‘전북’ ‘대구·경북’, ‘세종·충북’ ‘부산·울산·경남’ ‘제주’ ‘서울·경기·인천’으로 이어진다. 이번 지역간담회는 예술위의 주요 사업이 지방으로 이양되는 등 문화분권의 흐름이 가속화되는 현실에서 지역 예술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주요 현안을 파악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더불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지역 예술현장과의 접점 확대’를 꾀하고자 한다. 지역간담회 공동주최 측인 한국지역문화지원협의회에서 장소 선정과 현장 진행 등을 지원했다.
불안정한 예술생태계
지역간담회 형식은 단순하다. 각 권역별로 지정된 장소에 모여 약 2시간 동안 지역 현장의 의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인데, 사전에 미리 안건을 받기 때문에 진행이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었다. 특히 간담회의 목적이 ‘현장 예술인’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었기에, 지방자치단체, 지역문화재단 등 기관 참여자들은 간담회장 뒷좌석에 앉아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는 것 외에는 대부분 예술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한 점도 간담회 취지를 잘 살리는 기획이었다. 또한 각 지역에서 사회를 맡은 위원의 재량에 따라 현장 상황에 맞게 진행 순서와 프로그램을 변경할 수 있게 함으로써 가능한 참여 예술인이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지역 간담회를 준비하며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했던 점은 지역 현장의 다양성이다. 9개 권역에서 나온 예술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역별 차이를 분석하고, 각 지역에 맞는 대안을 발굴해내는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충분히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현장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니, 예상과 달리 목소리는 같은 곳을 향해 있었다. 가장 많이 언급된 주제는 지역에서의 창작활동의 어려움과 중앙-지역 간의 예술 격차, 그리고 지원사업 및 심의제도 개선 요구, 마지막으로 공정생태계 조성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와 관련된 현장 예술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 네 가지 문제는 결국, 오랜 시간 서울을 중심으로 견고하게 형성된 예술생태계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에서의 지속적인 창작활동이 어려운 이유도, 지역 예술인들이 서울 즉, 중앙의 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심의제도 안에서 기준을 맞춰가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도, 또 지역 내 예술생태계의 불공정 관행에 고통받는 일 등등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예술활동을 이어가기에는 지역사회의 예술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히 낮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도 대전·충남 권역에서는 지역 청년 예술가에 대한 지원 확대 요구와 동시에 지역의 장년 예술인 지원사업 개발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강원 지역에서는 중앙-광역-기초문화재단 간의 지역문화예술지원 거버넌스 체계 구축의 시급성을 강조했으며,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는 순수예술인에 대한 구분과 더불어 실용예술인에게도 지원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도록 기초예술의 범위를 확장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뿐만아니라, 중앙의 지원사업에 대한 정보 접근의 용이성에 대해서도 기회가 균등하도록 힘써달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 글은 부산에서의 일곱 번째 지역간담회를 마치고 제주로 건너와 틈틈이 정리한 짧은 소감문이다. 지난 시간을 정리하는 내내, 참여자가 두 명에 그쳤던 안동에서의 ‘대구·경북’ 권역 지역간담회가 못내 마음에 걸렸다. 간담회 개최 지역의 접근성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모처럼 마련한 자리에 현장 예술인보다 기관 관계가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풍경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마치 관 주도적인 지역 예술 현실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듯했기 때문이다.
이제 여덟 번째로 제주 예술인과 함께 간담회를 갖는다. 오늘이 지나면 다음 주 ‘서울·경기·인천’ 권역을 끝으로 전국에서 만난 예술인의 이야기가 정리될 것이다. 이후 현장소통소위원회를 통해 정책과 제도 마련에 대한 안건으로 전달되어, 할 수만 있다면 현장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해갈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해본다. 무엇보다 전국 단위의 지역간담회인만큼, 두 번째, 세 번째의 지역간담회로 잘 이어지길 바란다. 또한 올해 현장소통소위원회에서 준비 중인 ‘온라인 공론장’을 통해 예술 현장의 담론을 잘 모아갈 것이다. 일어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직도 산적한 담론들을 발굴하고 공유하며 현장 예술인의 상황에 맞도록 발전시켜나가는 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다.
포스트 코로나, 지역예술 그리고 현장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한 예술생태계 조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도시를 재생하고, 개발하는 움직임 가운데 지역을 기반으로 한 예술인의 목소리가 담겨야만, 자신의 지역에서 소외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창작자이자 생산자인 예술인이 지역 안에서 지속적인 예술활동을 할 수 있어야 그 지역의 문화예술이 살아날 수 있다. 무엇보다 타 지역 성공 사례를 무조건 가져오는 행정문화로부터 벗어나려면,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예술인들의 활발히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
‘현장’이라는 말이 주는 설렘과 긴장이 있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현장은 그간의 크고 작은 노력의 결과가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이다. 때로는 과정의 성장을 가늠하기도 하고, 결과의 성공과 실패의 기로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할 때도 있다. 의외의 성과에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아쉬움 중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대안을 고민할 계기를 주기도 한다. 이렇듯 현장은 미래를 예상하고 계획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이번 지역간담회를 계기로 전통예술분야에 대한 새로운 다짐도 하게 되었다. 전통이야말로, 우리나라, 우리 민족의 역사적 정체성을 담고 있다. 하지만 과연 지금, 여기에서 현장의 변화와 시대적 요구에 얼마만큼 부응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특히 제도와 정책의 측면에서 전통예술인은 얼마큼 관심을 갖고 변화를 주도해갈 수 있을까.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간담회에서 만난 예술인들의 열정을 떠올려보면, 결코 이루지 못할 일도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현장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씩 변화를 이뤄간다면, 보다 나은 예술 환경을 일궈낼 수 있을 것이다.
----
이건명. 해금연주자 이건명은 예술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비전을 갖고 있다. 또한 개인화, 기계화, 물질주의화된 현대 사회에서 상호간의 연대, 참된 가치의 깨달음, 그리고 평화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도구로서의 음악을 추구하며, 이 시대의 작은 1%의 가치를 꿈꾼다.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럼]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안내자 - 표신중을 추모하며 (0) | 2021.12.16 |
---|---|
[칼럼] “자치분권” 시대 민간협치에 대한 단상 - 대전시 ‘테미오래’ 관리·운영 수탁기관 선정 논란을 보며 (0) | 2021.12.16 |
[칼럼] 변화는 어떻게 오는가: 광주시립극단 사태에서 본 예술노동, 예술인권리보장 (0) | 2021.05.20 |
[칼럼] 판데믹 이후, 음악의 갈 길 (0) | 2021.04.05 |
[칼럼] 팬데믹 2년 차 문화예술정책 대응은? (0) | 2021.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