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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K컬처’와 ‘문화도시’, 한국 문화정책이 쌓은 두 개의 거탑과 윤석열 정부 문화정책 전망

CP_NET 2022. 6. 14. 17:41

 

 

최근 정부의 문화정책공약과 전망에 관한 두 개의 짧은 원고를 의뢰받고 썼다. 어차피 같은 주제이고 청탁받은 분량도 엇비슷하여서 어쩔 수 없이 겹치는 내용도 있었지만 똑같은 원고는 아니었다. 같은 원고를 두 군데에 줄 수 없다는 윤리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두 원고가 쓰였던 시기가 달랐기 때문이다. 첫 원고가 새 정부 출범 이전에 쓰여졌던 것이라 주로 윤석열 당선인의 대선 당시 공약과 국정과제의 내용을 중심으로 썼다면 두 번째 원고는 새 정부 출범 직후였기 때문에 조금 더 통시적인 관점에서의 분석과 지향점에 대한 요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역시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일이니 간단하게, 그리고 좀 더 솔직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한국 문화정책의 흐름은 21세기 이후, 조금 더 넓게 보자면 1990년대 중반 이후 큰 틀에서 변화한 적이 없다. 정권교체에 따라 수행하는 인사들의 면면이 교체되었고 수사적 상징이 달라지긴 했지만 크게 두 개의 축으로 진행되어왔다. 하나는 최근에 와서 주로 ‘K컬처라는 이름으로 호명되고 있는 수출주도형 문화산업의 경쟁력 강화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지난 정부에서 문화도시로 잠정통합되어 사업화되고 있는 문화의 사회적 역할 강화이다. 전자가 문화를 산업동력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라면 후자는 문화를 사회적 자산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윤석열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문화정책도 이 관점과 방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K컬처''문화도시'라는 두 개의 탑은 개개인의 호불호를 떠나 필연적 역사의 산물이다. 'K컬처'라는, 이제 누군가에는 자랑스러운 이름을 얻게 된 수출주도형 문화산업에 대한 집중 지원이 시작된 시발점은 1990년대 중반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에 걸쳐 있었다. 이른바 세계화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던 시기였다. 그 이전까지의 문화산업이 주로 관리와 규제의 대상에서(박정희 정부) 부분적 허용과 개방(전두환-노태우 정부)에 머물러 있었다. 반면 김영삼 김대중 정부에 이르면 외교안보적인 불확실성이 잔존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정치적, 경제적 성장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세계 시장과 대등한 입장에서 교역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세계화라는 의제가 가능해진 것이다. 아니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요구된 것이기도 했다.

 

이젠 기억도 희미해졌지만 미국 영화계가 UIP를 앞세워 영화시장을 개방하라는 압력을 가하기 시작한 시점이 1988년이고 출판물에 대한 인세 등 지적재산권에 대한 국제적 요구가 시작된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1990년대 전후까지도 한국 문화산업은 개개인이 아닌 산업 단위로서는 국제적 성격을 갖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지금은 상전벽해가 느껴지는 부분이지만 길거리에 문화콘텐츠의 불법 복제품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경제성장이 어느 정도 이뤄진 상황에서 개방 압력을 포함해 세계시장에서의 문화산업 정상국가화의 요구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1990년대 이후 집중적인 문화산업진흥정책이 시작된 것은 한편으로는 이런 요구를 수용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불법복제의 시대에 엄청나게 커져버린 문화산업 시장과 인적자원을 활용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예컨대 최근 세계적인 수준으로 평가되는 한국영상산업의 경우, 영화진흥위원회(1999)로 대표되는 공공 진흥책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문화학교서울’ 테이프로 상징되던 무단복제(?) 영상문화의 소산이기도 하다. 더 파고 들어가면 세운상가 불법복제 테이프가 존재할 터이다. 대중음악도 마찬가지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빽판과 길거리 테이프가 시장과 인적자원을 만들었고 그것이 지원정책 등 제도의 틀로 수용되고 산업적 합리성에 따라 시스템을 형성하고 거대 자본이 수용되는 과정을 거치며 결과적으로 ‘K컬처라는 거탑을 쌓았다.

 

문화도시로 대표되는 또 다른 흐름은 조금 다른 경로를 밟았다. ‘K컬처196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급속한 현대화 과정에서 (주로 음지에서) 축적된 문화산업의 자양분을 제도화를 통해 산업으로 이끌어낸 것이라면 한국에서 지난 20여 년 간의 문화도시 정책 흐름 안에는 몇 가지 섞이기 힘든 이질적 요소들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한 가지는 문화를 통해 일상의 관계를 변혁시켜야 한다는 목표의식으로 이뤄졌던 과거 진보적 문화운동이라 불렸던 것들의 제도적 수용이다. 또 한 가지는 현대 도시재생, 혹은 재도시화 담론의 연장선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문화적 요소를 통해 시민들을 규범화시켜야 한다는 고전적 근대문화정책의 담론이 강력한 저변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렇게 사뭇 다른, 어떤 면에서는 상호 충돌적인 요소가 어떻게 하나의 정책 프레임 안에서 담길 수 있었을까.

 

두 담론은 서로 다른 지향을 갖고 있음에도 한국 사회의 문화적 상황을 바라보는 전제를 공유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산업화, 도시화, 세계화와 같은 급격한 사회변동을 겪었고, 또한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며, 그래서 과거의 문화적 공동체, 규범과 가치관의 상당수가 해체되어 사회적 아노미와 갈등, 몰이해가 심각한 상황이고 이를 다시 문화적 방법을 통해서 재구성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말이다. 그게 가능할지 모를 노릇이지만 공공 문화정책의 목표에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문화를 통한 사회통합의 지향인 것이다. 여기에 도시브랜딩, 창조도시 담론과 같은 사회발전과 자본유입 전략이 착종되기 시작된 것이 현재에 이르고 있는 (한국에서의) 문화도시의 주된 흐름이다. 얼핏 ‘K컬처는 문화적 요소의 경제적 측면을, 문화도시는 문화의 사회적 측면을 조금 더 주목하고 있기는 하지만 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현대사회에서 경제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은 분리되기 어렵다. 이 두 개의 거탑은 지표면에서는 다른 하늘을 떠받치며 솟아 있지만 심층에서는 긴밀하게 연결되어있고 매우 상호보완적이기도 하다. 문화도시에서는 점점 더 경제적 성장동력으로서의 문화적 활용이 강조되고 있고 ‘K컬처역시 사회적 저변으로서의 문화적인 활성화 없이는 지속성의 한계가 노출될 것으로 예측하며 그 영역을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 이것은 비단 한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문화는 현대사회의 근간인 시장의 주된 상품인 동시에 시장을 흐름을 좌우하는 환경적 요소이기도하다..

 

물론 지난 사반세기 가까운 문화정책의 주된 흐름이 크게 문화적 요소의 산업적 성장과 사회의 문화적 성장이라는 긴밀하지만 다소 대별되는 흐름으로 이어져오고 있지만 정책에 있어서의 방법적 지향에는 분명히 차별적인 부분이 존재해왔다. 김영삼-김대중 정부의 문화정책은 문화산업에 있어서는 고전적인 집중지원방식과 인프라구축을, 문화사회적 전략에 있어서는 문화의 민주화에 입각한 문화복지의 확대에 집중하며 특히 시민문화권 실현을 위한 최소 기준의 인프라 구축에 주력했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문화의 사회적 성격에 대해 한 발자국 더 적극적인 해석과 당사자들의 자발적 참여에 기반한 문화민주주의 관점이 강조되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앞선 정부의 과제들에 대하여 민간의 자발성과 주도성을 후퇴시키는 대신 양적 확대와 행정적 제도화에 방점을 찍으며 가시적 성과관리에 집중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박근혜 정부는 문화융성과 블랙리스트라는 두 얼굴이 보여주듯 국가주의 관점에서의 관리와 진흥을 강화하려고 했으나 시대착오적 방향 설정이었음이 결과적으로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노무현 정부 시기에 강조되었던 민간 당사자 주도성이란 지향을 다시 꺼내 들었다.. 물론, 모든 정부에 공통되는 사항인데, 지향이 그랬다는 것이지 그것이 현실로 실현되었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특히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시도되었던 민간 당사자 중심으로의 문화정책 혁신은 선언적 수준 이상으로 넘어갈 수 없는 한계가 분명히 내외부적으로 존재했다. 하나의 단편적인 예를 들자면 문재인 정부에서 <예술인권리보장법>이 만들어진 것은 예술정책에서 예술인들의 당사자성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관철될 수 있는 언명이 실현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실제 예술정책이 예술인들의 자기주도성을 통해 실현되고 있냐고 하면 여전히 그렇지는 않다. 문화도시 사업에서 지역 시민들과 예술인들의 주도적 참여를 엄청나게 내세우고 있지만 현실에서 그것이 잘 실현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이것이 단지 관료들의 독점적 권력행사 관행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민이건 예술인이건 자기주도적 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유무형의 인프라를 갖추고 있지 못한 탓이 더욱 크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론장이 충분히 형성되어있지 못하고 그 안에서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할 수 있게 작동될 수 있는 신뢰할만한 미시적 정치의 문화와 규율이 아직은 부재한 탓이 더욱 크게 작용하고 있다. 정책의 지향이 현실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선언 이상의 디테일한 환경과 시스템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예단하기는 힘들지만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적 지향에서 출발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문화정책은 민간의 자기주도성보다는 관료 중심 행정 주도성이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표면적으로는 주로 계량적 측면의 성과를 목표로 지향하며 등장하게 될 공산이 크다. 실상 따지고 보면 지난 5년 간 문재인 정부의 문화정책에서도 참여, 자발성, 자기주도성이란 표면적 지층 아래에 꾸준히 흘러넘치던 것이 성과 위주의 문화행정이었다. 이것이 훨씬 더 노골적인 형태로 강조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블랙리스트라는 거대한 파국을 겪었고 윤석열 정부의 지향 자체가 박근혜 정부와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국가주의적 관점에서의 문화에 대한 관리(통제)의 시도가 다시 재현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섣부르게 예측을 하자면 윤석열 정부의 문화정책은 지난 20년간 현실적 성과이며 결과로 평가되는, 앞서 언급한 두 개의 거탑을 조금 더 공고하게 만드는 것에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 제도권 문화정책과 얽혀있는 담론장 역시 당분간은 그 틀을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여기 또 한 가지 강조해야 할 가능성이 높은 경향은 기술적 변화를 문화 분야에 적용하려는 시도이다. 이 역시도 이미 지난 정부와 지지난 정부 등에서 꾸준히 문화 관료들이 애착을 보여왔던 분야인데 공개된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에도 그 경향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기술적으로 세련된 관료 주도의 문화행정의 완성도를 높이는 방향에서 문화의 경제적, 사회적 측면의 가시적 효과를 드러나게 하고자 하려는 노력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높다. 물론 아직 이 모든 것은 예측일 뿐이다. 반성이나 성찰, 평가를 위해서는 시간이 훨씬 더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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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신규.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 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 겸임교수.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문화예술분야에서 발을 들여놓았으며 창작자, 기획자, 정책활동가 등 깊이 없이 다방면으로 경험을 쌓았다. 최근에는 문화정책(제도) 연구와 문화 연구의 틈새를 메우기 위한 작업들을 고민하고 있다. 특히 관심 있는 분야는 국민국가 성립 과정에서의 문화적 제도화의 문제, 노동자 문화정체성에 대한 비전형적인 방향에서의 탐색 등을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