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현장예술인들이 참여하는 자율적 예술지원기관을 표방하면서 지난 2005년 출범했다. 당시 초대 위원장에 김병익 문학평론가가 선출되었는데, 자율적 협의기구라는 기관의 미션에 비추어 위원들의 호선으로 위원장을 선출한다는 법규에 따른 것이다. 그러던 것이 2007년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준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서 호선제가 폐지되고 위원장을 문체부 장관이 임명하게 된다.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블랙리스트 실행기관으로 전락했던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장관은 같은 해 7월 31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위원회”를 문체부 산하에 설치한다. 이듬 해인 2018년 6월 30일 위원회가 종료되고 책임규명 권고안과 제도개선 권고안이 제출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대해서도 제도개선 권고안이 여럿 제출되었는데, 그 중 하나로 위원장 호선제 복원이 있었다. 예술지원기관의 독립성, 자율성 회복을 위해 장관의 임명권을 배제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호선제 복원을 위한 법개정도 이루어졌다. 2019년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법률 상 준공공기관에서 기타공공기관으로 변경되고, 2020년 6월 문예진흥법 개정을 통해 위원장과 위원의 임기를 3년으로 통일하고, 위원장 호선제가 복원되었다. 전임 박종관 위원장의 임기는 2021년 11월 1일이었으나 7기 위원들은 호선제 취지를 살리기 위해 8기 위원이 선임될 때까지 위원장 임기 연장을 결정한다. 이로서 호선제 복원 첫 위원장은 8기 위원들의 몫으로 미뤄졌다.
2020년 5월 선임된 7기 위원들의 임기는 2022년 5월까지였다. 새정부가 들어선 후 위원 선임이 미뤄지면서 8기 위원 선임 과정은 지난 해 12월에야 진행되었다. 그리고 지난 9일 8기 위원들이 구성되고 10일 8기 위원 첫 회의에서 위원들의 호선으로 정병국 전 국회의원, 전 장관이 위원장으로 선출된다. 블랙리스트 이후, 제도개선을 위한 여러 노력들의 오늘 여기의 결과다.
정치인 위원장, 이 잘못된 결과의 시작은 어디인가
정병국 전 국회위원이 호선제 복원 첫 위원장에 선출되기까지의 과정은 이렇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위원 선임 절차는 법률이 정하고 있다. 문화예술진흥법 제23조(위원회의 구성)에 따르면 ①항 “문화예술에 관하여 전문성과 경험이 풍부하고 덕망이 있는 자 중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위촉하는 15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하며 그 절차는 ②항 “제1항에 따라 위원을 위촉할 때에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위촉하는 자로 구성하는 위원추천위원회가 복수로 추천하는 자 중에서 위촉하여야 한다.” 그리고 “제1항에 따른 위원회 및 제2항에 따른 위원추천위원회의 구성 방법과 구성 절차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지난 7기 위원 선임 과정에서 위원 선임 절차에 대한 보완이 있었다. 위원추천위원회 위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정하지만, 위원추천위원회 위원에 대한 추천이 그동안 협단체 등에 한정되어 있던 것에서 개별예술인들도 추천할 수 있도록 추천주체를 넓혔다. 또한 위원추천위원회에 의한 2배수 후보를 문화체육부 장관의 최종 선임에 앞서 공개하고 이의제기를 받는 기간을 두는 것이다. 위원추천위원회 위원에 대한 추천주체를 확대한 것은 지난 7기 위원 선임 과정에서였다. 2배수 위원 후보에 100% 50대 남성이 추천되면서 젠더, 세대에서 치우친 결과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7기 위원 선임 과정을 위원추천위원회 위원 추천부터 다시 되돌리면서 도입되었다. 그러나 위원추천위원회의 위원 추천의 개방성을 확대하고, 2배수 후보에 대한 공개 검증 기간을 두었다고 하지만, 위원추천위원회 구성과 최종 위원 선임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권한으로 문화예술진흥법이 정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설립 이후 지속되고 있다.
이번 8기 위원 선임 과정은 7기 위원 선임 과정에서 도입된 절차가 그대로 진행되었다. 8기 위원의 선임과정에서도 위원추천위원회 위원 추천(2022.10. 7 ~ 21 ) 2배수 후보 공개(2023.1.3. ~ 9. )가 진행되었다. 이례적인 점은 위원 모집 공고가 2022년 12월 15일이었고, 최종 후보자 발표가 2023년 1월 9일로 선임 과정이 빠르게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박보균 장관이 임명한 위원추천위원회는 정병국 전 국회위원을 2배수 위원으로 추천하였고, 박보균 장관은 정병국 전 국회위원을 위원으로 최종 선임했다. 그리고 9일 선임된 8기 위원들은 10일 첫 회의에서 호선으로 정병국 전 국회위원을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2배수 후보에 정병국 전 국회위원을 선택한 것은 위원추천위원들이다. 2배수 후보에 대한 공개 검증 과정도 있었다. 공개 검증 과정에 정병국 전 국회위원의 위원 후보에 대한 문제제기가 없었던 것인지,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문체부가 무시한 것인지 알려진 것은 없다. 그리고 정병국 전 국회의원을 위원으로 선임한 것은 박보균 장관이지만 그를 호선제 복원 첫 위원장으로 선출한 것은 8기 위원들이다.
정병국 전 국회의원은 2011년 1월 1일~2011년 9월까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냈다.그보다 그는 2000년에서 2020년까지 16대, 17대, 18대, 19대, 2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의 사회적 정체성은 정치인이다. 그가 문화예술분야와 연관된 일을 한 것이라고는 정치인으로서의 일이다. 정치인이라는 정체성을 지우고 그를 설명할 길이 없다.
2005년 1월 문화예술진흥법을 개정하면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했던 취지는 문화예술정책과 집행에서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문화예술정책의 독립성과 자율성에서 그 첫 번째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과 자율성이다. 바로 이를 위해 법을 개정하여 설립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에 결국 정치인이 선출되는 오늘의 결과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이 결과에 이르는 과정에는 이른바 장관의 권한만이 아니라 현장 전문가들도 참여하고 있다.
정병국 전 국회의원의 위원장 취임은 당부나 감시로 갈음할 수 없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존립 근거를 배반하는 파국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8일에는 “정병국 위원장과 8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출범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하 ‘입장’)이 70여 개의 단체의 연명으로 발표되었다. (전문보기 )
김소연 [문화정책리뷰] 편집장.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연극평론가. <컬처뉴스> <weekly@예술경영> 편집장을 지냈다. ‘커뮤니티와 아트’ ‘삼인삼색 연출노트’ ‘극작가리서치워크숍’ 등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연극비평의 대상으로 정책을 비평하는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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