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을 돌아보면, 당시 문화예술계는 패닉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지난 해 1월 코로나19 위기대응이 시작되면서 관객이 급감하기 시작한 데다가 2월 대구의 폭발적 감염으로 문화예술활동은 정지되다시피 했다.. 이미 막을 올린 공연들도 관객이 없어 공연을 포기하거나 준비 중이던 공연들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게다가 국공립문화예술시설들이 일제히 문을 닫으면서 극장 등 문화예술활동은 전염병에 취약하다는 사회적 메시지까지 각인되던 상황이었다. 모든 예술활동이 중단된 것은 아니지만 제한적이나마 일상적 활동을 유지하던 사회 다른 분야에 비하면 거의 락다운과 다름없었다. 예를 들면 한국소극장협회가 운영하는 대학로티켓닷컴 등록 공연을 기준으로 지난해1월부터 4월까지 대학로 52개 공연장의 공연취소율은 1월 34%, 2월 77.7%, 3월 84.9%, 4월 85.4%였다. 제한적인 자료이지만 당시의 위기감을 짐작케 한다. 그런데 이 수치가 보여주는 것은 85%대에 이르는 취소율만은 아니다. 15%의 공연장은 공연을 지속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는 전염병에 대응하는 정책이나 가이드라인도 없었다. 민간제작 지원기관이라 할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지역문화재단들은 공연을 올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 뚜렷한 정책이나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못했다. 오롯이 민간단체들의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공연 취소든 공연 강행이든 자체 판단에 따른 것이고 그에 따른 모든 책임은 오롯이 민간단체들의 몫이었다.
혼란의 한 복판에 있던 3월 27일 서울시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한 공연장 잠시 멈춤 및 감염예방수칙 엄수 협조 요청’을 발표하자 현장은 폭발한다. 이 공문은 6대 감염예방 수칙을 지키지 않을 시 벌금을 부과하고 전염이 발생하면 구상권을 청구하겠다는 것인데 무엇보다 문제가 된 것은 공연 시 관객 간, 객석 및 무대 간 거리 2m 유지 조항이었다. 어렵게 방역수칙을 마련하여 공연을 유지하고 있던 민간극장마저 폐쇄하라는 명령과 다름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외 관람객 문진표 작성, 극장 소독, 소독제 비치 등은 이미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실행하고 있던 것이었다. 당시는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행되고 있던 상황이었고 방역조치도 안정화되어 있지 않던 때인 만큼 이러한 조치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당시 현장의 날선 반응은 문밖에 방치되어 있는 민간제작의 현실에서 비롯된다. 행정은 방역원칙만을 강조할 뿐 그에 따른 책임과 비용은 민간에 떠넘기고 있는 적나나한 현실 말이다. 전염병의 위험과 속수무책으로 제작이 무너져가는 위기감의 폭발이었다.
정책수단의 협소함과 공공문화예술시설의 한계
혼란은 방역정책만이 아니다. 지난 해 3월 문화관광체육부는 코로나19 피해대책으로 소극장제작지원과 관객지원을 발표하지만 메르스 당시의 지원정책을 그대로 베꼈다는 비판을 받는다. 메르스 당시도 공연활동 위축이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코로나19와는 그 양상이 달랐다. 게다가 공공문화예술시설 폐쇄하면서 민간에는 피해대책으로 제작과 유통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니 방역정책의 일관성에도 맞지 않는다. 판데믹이 끝난 이후에 대한 대책일 수는 있으나 지금 판데믹으로 무너져가는 민간현장에 대한 대책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표된 문화예술계 피해지원사업들은 대부분 기존 창작지원제도에 기반한 제작지원방식이다.
지난 해 4월 규모에서나 시기에서 주목을 끌었던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의 코로나19 피해 문화예술계 긴급지원 사업을 살펴보자. 예술인(단체), 예술교육가, 문화예술기획자, 문화예술 관계자 등 대상을 범주화하고 그에 따라 지원사업의 내용을 달리하는 등 현장의 구체성을 반영하고자 했다. 또 온라인제작지원 등 극장 공연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소액 정액 지원인 ‘문화예술기획자 [190시간]’과 “예술인이 재난을 대하는 가지가지 비법” 외에는 모두 제작지원사업으로 기존 창작지원사업의 방식을 그대로 따른다. 게다가 피해대책이라고 하지만 피해 증빙을 따로 두지 않음으로써 창작지원과 다른 심사기준을 마련할 수도 없었다. 이는 선정단체들의 면면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기존 창작지원사업의 선정 단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데다가 중복지원 제한을 두지 않아 이미 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된 단체들이 재차 선정되기도 했다. 코로나19 피해 대책이 기존 창작지원사업 선정 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피해지원사업이 창작지원사업 방식을 그대로 따르게 된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술인생활자금지원 등 자격증빙만으로 정액지원하는 사업의 경우는 지원사업이 좀 더 폭넓은 예술인들에게 가 닿는 장점이 있지만 실질적인 피해구제를 하기에는 소액에 머문다. 그렇다고 피해증빙을 하자니 예술계 활동 관행 상 정확한 산출의 어려움이 있다.1) 결국 창작지원 외에 예술활동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정책수단이 없는 것이다. 서울문화재단 긴급지원사업 외에도 서울시는 ‘공연업 회생 프로젝트’를 시행했는데 이 역시 제작지원사업이었다.2)
이렇게 창작지원사업 방식을 동원하다 보니 코로나19 피해 긴급지원사업이 방역정책과 충돌이 생긴다. 온라인 제작지원이건, 온라인 발표에 대해서도 열어두는 조건이건 관객을 만나는 발표과정에서 비대면을 유도하고 있지만, 결국 제작과정에서 대면활동을 방치하는 셈이 된다. 이렇게 코로나19 피해지원으로 제작지원사업들이 계속되면서 도리어 예술인들은 피해에 대한 구제를 위해 제작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내내 코로나19 방역조치의 일환으로 모든 공공문화예술시설이 문을 닫으면서 제작지원을 위해 운영되던 공간들마저 폐쇄되어 제작에도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관객과 만나는 극장만이 아니라 공공기관이 운영하던 연습실, 세미나룸 등도 닫혔다. 그러다 보니 제작과정에서 가용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지고 그 부담은 다시 민간단체들의 몫이 된다.3)
판데믹 이후 긴급지원사업들은 심각한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이라는 점에서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민간예술활동이 붕괴되는 위기 상황에서 우선 자금을 흐르게 하는 것을 1차 목적이라 할 때 그렇다. 우리 사회의 다른 분야가 그런 것처럼 문화예술계 역시 피해가 모두 같지 않고 문화예술계 활동이라는 것이 구체적인 피해를 확인할 수 있는 근거도 부족하다.4) 게다가 공적 자원을 배분할 정책수단도 제한적이다. 그 한계를 감안할 때 위기 완화의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민간제작 보조라는 정책수단의 한계도 명확하다. 한편으로는 공공문화예술시설을 폐쇄하고 공공문화예술단체들의 활동은 중단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민간예술활동에 대해서는 피해구제를 위해 제작지원 사업을 만든다. 온라인 발표나 온라인 제작지원으로 발표 방식을 바꾼다한들, 전염병의 시대에 예술가들은 피해회복을 위해 계속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판데믹은 민간제작보조라는 정책수단의 한계를 보여준다.
정책수단의 협소함은 민간예술활동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판데믹은 우리사회에서 공공문화예술시설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민간극장들이 정책부재의 공백을 스스로 안전수칙을 만들어가며 사회의 부정적 여론을 설득할 때 공공문화예술시설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나마 제작이 취소되거나 연기될 때 가능한 예정된 제작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의 개런티를 지급하는 것이 전부였다. 뮤지컬 업계가 극장에서의 방역수칙을 안내하면서 안전한 관람에 관한 캠페인을 벌였던 것을 보면, 판데믹 상황에서 누가 더 공적 역할을 수행했는가를 알 수 있다. 즉 제작이 막혔을 때 우리의 공공극장들은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 공공극장들의 역할이란 공적 자금으로 작품을 공급하는 데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 공공제작에 참여하는 소수의 예술가 외에 공공극장은 우리 사회와도 예술생태계와도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단지 판데믹이라는 위기 상황의 문제가 아니다. 공적 자원으로 운영되는 공공극장의 역할이 이렇게 한정적이라는 것은 그 역할에 대한 근본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을 환기한다.5)
뉴노멀, 예술활동의 안정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코로나19 긴급지원 사업에는 제작지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공연장 대관료 지원, 전시공간 지원 등 예술활동 위축에 따른 민간문화예술시설 이용료 보조사업을 추가 편성했다. 이 역시 문화예술활동 인프라 붕괴를 막는다는 의미가 있겠으나 활동 중단에 따른 예술인들의 위기 구제와는 거리가 있다. 예술인에 대한 피해지원으로는 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긴급 생활안정자금 융자’ ‘창작준비금지원-창작디딤돌’을 들 수 있다. 코로나19 피해 지원을 위해 기존 지원사업을 확대했다.
코로나19 초기 광역문화재단을 중심으로 ‘긴급생계비지원’ ‘긴급생활자금지원’ 등이 있었다.6) 공모, 심사 절차 없이 자격증빙만으로 정액지원 하는 사업이다. 지원액이 소액이어서 실질적 피해구제 효과를 얻기 힘들고, 예술인복재단의 예술가활동증명이 자격기준으로 타당한가 등의 문제제기가 있지만 ‘긴급성’에 대한 대응이라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주목되는 점은 기존의 예술지원이 예술활동에 대한 지원이거나 예술인지원 역시 공모, 심사 등의 절차를 따랐다면 이번 긴급지원은 그러한 절차 없이 자격증빙만으로 지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데에는 코로나19 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이 전제된 것으로 당시 전국민재난지원금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이러한 사회적 논의가 사업의 정당성을 뒷받침한 셈이다. 또한 코로나19 긴급지원의 일환으로 공공일자리지원사업에 문화예술계가 포함된다거나 문체부에서 진행한 방역지킴이지원사업도 주목된다. 이 역시 예술활동에 대한 지원이 아닌 예술인에 대한 지원으로 자격에 따른 소액 정액 지원에 비해 비록 단기적으로나마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이 사업 역시 공공성을 갖춘 문화예술계 일자리란 무엇인지, 공공성의 내용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등 쟁점이 남아 있다. 이러한 쟁점들이 위기라는 예외적 상황으로 유예된 점이 있다.
그런데 과연 예술활동의 안정성을 위한 예술인 지원은 단지 ‘위기’라는 예외적 상황에서만 필요한 것일까. 예술인정책은 예술정책의 중요한 이슈다. 그러나 예술인고용보험 등은 이제 막 제도화가 시작되어 여전히 여러 쟁점을 남겨두고 있다. 예술인기본소득은 이제 막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코로나19긴급지원사업들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예술인정책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 그런 점에서 이번 경험이 단지 코로나19라는 예외적 상황에 대한 대응을 넘어 앞으로 예술활동의 안정성을 위한 예술인정책의 중요한 시도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한 해 판데믹과 관련하여 ‘전환’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다. 이 위기가 단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퇴치로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우리의 현재의 삶에 대한 성찰과 방향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전환’에 대한 목소리는 우리 주변에서 잦아든 것 같다. 전환의 목소리가 잦아든 자리에 4차 혁명 등 기술에 대한 장미빛 청사진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기술을 거부할 수도 없고 거부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기술이 우리를 위기에서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우리의 위기에 대해 성찰하지 않는다면 기술은 결코 미래를 열어주지 않는다. 그리고 미래는 지금 우리가 우리의 현재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달려 있다. 코로나19 위기를 우리가 지금 어떻게 통과하고 있는지 더 치열한 분석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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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외: 판데믹과 문화정책] 코로나19 대응 문화정책에 대한 비판적 검토” 참고. 이외 아트누리 코로나19 키워드 검색 참고.
2) 아트누리 코로나19 키워드 검색으로 확인되는 피해보상 지원사업으로는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예술단체, 예술공간에 대한 ‘코로나19 피해 예술단체 손실 보상금 지원사업’이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 증빙이 가능한 경우를 지원대상으로 하고 있다.
3) 문화예술공간만이 아니라 공공기관 운영공간이 닫히면서 극장 외 다양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던 문화예술활동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공공기관 및 공공문화예술시설 폐쇄가 공연 취소만이 아니라 여러 민간단체의 예술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점은 <서울지역 공연예술단체 활동 분포 연구>(서울시자치구문화재단연합회 발행) 중 ‘포커스그룹 인터뷰’ 참고. ([문화정책리뷰] 자료실)
4) 코로나19 피해실태조사는 정확한 데이터를 구축하지 못한 채 여전히 답보 상태이다. 문화예술계 코로나19 피해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매달 발행하는 이슈리포트의 카드사용액에 근거한 추정치 자료가 거의 유일하다. 이외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코로나19로 인한 대중음악(공연 관련) 업계 피해 영향 사례조사 연구>가 있으나 응답율이 저조하다.
5) 한편 판데믹은 공공과 민간의 격차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공공예술기관이나 단체에 소속된 예술가들이 판데믹의 위기에도 보호받는 반면 민간예술활동은 심각한 위기에 노출되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판데믹의 혼란 한 복판에서 갈등이 유발되기도 했다. 비단 판데믹 위기만이 아니라 공공예술기관과 민간예술활동의 심각한 격차는 예술에 대한 공적 자원의 합리적 배분이라는 측면에서 정책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공공과 민간의 격차에 대해서는 <2020 코로나19 문화예술현장기록>(청주문화산업재단 발행) 인터뷰와 연구보고서 참고.
6) 아트누리에서 코로나19 키워드 검색으로 확인된 예술인재난지원금은 다음과 같다.
- 지역예술인 재난지원금 지원사업(부천문화재단, 화성시, 용인문화재단, 전주시)
- 서울 예술인 긴급재난지원(성동문화재단, 강북문화재단, 노원문화재단, 영등포문화재단)
- 문화예술인 활동지원비 지원사업(사천문화재단)
- 설연휴 긴급지원대책 문화예술인 활동지원비(경남문화예술진흥원)
- 지역일자리사업 참여자 모집(김포)
- 예술인 생활안정자금 대출(한국예술인복지재단), 2021.4.코로나19 특별융자
- 지역예술인 긴급생계지원(울산문화재단, 인천문화재단,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부산문화재단, 전라남도문화재단, 세종시문화재단)
- 코로나19 극복 예술인 생활안정자금 지원(안양시, 안양문화재단)
- 대전예술가치20- 예술기부 활성화사업(대전문화재단)
- 공연분야 버팀목자금 플러스 지원(중소기업벤처부)
- 2021대구형 버팀목플러스 특별지원(대구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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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편집장). [문화정책리뷰] 편집장.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연극평론가. <컬처뉴스> <weekly@예술경영> 편집장을 지냈다. ‘커뮤니티와 아트’ ‘삼인삼색 연출노트’ ‘극작가리서치워크숍’ 등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연극비평의 대상으로 정책을 비평하는 연극평론가.
김정원.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대학시절 합창단 단장을 거쳐 전국대학합창협의회 총무를 하며, 행정학과에 입학하였으나 공연과 동아리 활동에 전력하는 학창시절을 보내고 뒤늦게 문화예술행정학 석사과정에 진학하게 되면서 문화예술정책 연구의 길을 걷게 되었다.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연구팀장으로 일했다. 문화예술, 정책, 조직, 지방행정, 지방정부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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