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정부에 비판적인 인물이나 단체를 집요하게 찍어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당시 블랙리스트라는 이름의 국가폭력을 실행한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은 여러 곳이었는데, 그중에서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는 가장 많은 지원 배제를 실행했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블랙리스트 부역기관이다. 그랬던 예술위가 여러 차례 예술인과 국민 앞에서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를 약속한 지도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예술위가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를 거듭 약속했다는 것은 곧 법제도 차원의 대대적인 혁신을 이뤄내겠다는 의미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로 지금까지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를 위한 구조적인 변화를 얼마나 이뤄냈을까.
예술위는 2018년 1월에 예술인과 국민으로부터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 아르코혁신 TF를 발족했다. 이 TF는 예술위의 조직과 사업 혁신을 위한 23가지 의제를 제안했는데 여기서 조직분야 혁신의제 1호가 바로 예술위의 국가예술위원회 전환이다. 이 안은 문체부의 예술정책 기능을 현장예술인의 참여와 결정이 확대되고 보장되는 국가예술위원회로 이관하여 블랙리스트 재발을 구조적으로 방지하고 국가 단위 예술행정과 지원체계의 자율성 및 독립성을 확보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국가예술위원회 전환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성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에서 발행한 연구물 「블랙리스트 관련 문화예술 기관 제도개선 연구」(2018.1)에 담긴 바 있다. 이 연구는 예술정책과 관련한 실질적 권한이 문체부와 기재부에 있으며 예술위가 위원들의 합의제를 표방하면서도 실상 상임 위원장과 사무처 중심의 행정시스템은 실질적으로 독임제에 가까운 국가권력의 수직적 위계적 구조에 머무르고 있다고 지적하고, ‘국가예술위원회법(가칭)’을 만들어 방통위나 인권위 같은 독립성을 가진 국가예술위원회가 필요함을 제안하고 있다. 한편 2018년 12월에는 예술위 주최로 ‘아르코 혁신 TF 혁신의제 추진경과 보고회’가 열렸는데, 여기에서는 국가예술위원회 전환을 위한 기초적인 로드맵과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독립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같은 대통령 소속 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국무총리 소속 위원회 형식 중에 어떤 것이 국가예술위원회에 적합한지에 대한 비교분석도 제시되었다.
현재 예술위는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에서 기타공공기관으로 기관유형을 변경했으며, 위원장 호선제와 위원장과 위원의 임기를 3년으로 맞추는 문화예술진흥법 개정까지 이뤄낸 상황이다. 이처럼 예술위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반을 닦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예술위의 법제도 차원의 혁신을 위하여 약속되었던 일부 단계들이 파행되거나 방치되기도 했다.
파행된 단계는 문체부와 예술위의 자율운영협약서 체결이다. 자율운영협약서 체결은 도종환 전 문체부 장관과 이미 논의가 된 사항이었으나 박양우 문체부 장관이 들어온 이후 문체부 측이 협약서 안에서 예술위의 자율과 관련된 내용을 뺄 것을 요구해서 2019년 5월부터 파행된 상태로 남아있다. 방치된 단계는 예술위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법제도 차원으로 정립하기 위한 국가예술위원회 전환에 대한 논의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국가예술위원회 전환에 대한 논의는 2018년 12월에 ‘아르코 혁신 TF 혁신의제 추진경과 보고회’가 열린 이후로 더 진행된 바가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파행과 방치로 인하여 문체부는 벌써 예술위를 민간자율 기구가 아니라 자신들이 지휘, 감독하는 산하기관으로만 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최근의 예가 기재부와 협의를 마친 문체부가 예술위 측에 ‘전시관람료 지원사업’과 ‘공연관람료 지원사업’을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수행토록 하기 위하여 문예진흥기금 약 200억 원을 출연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물론 체계성과 실효성에는 문제가 있기도 한 사업이지만, 코로나19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예술현장을 지원하기 위하여 기획한 사업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예술위도 이에 대한 다른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문체부의 지시를 무조건 거부할 수는 없었다. 이번 관람료 지원 사업은 체계성과 실효성 문제나 예술위의 대응력이 부족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지만, 한편으로 문체부에 종속된 예술위의 구조적 한계를 다시 드러낸다는 점이 더 의미심장하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종속적 의사결정 구조에서 언제든지 청와대, 국정원, 문체부, 예술위로 이어지는 국가폭력 라인이 재작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도사리기 때문이다.
최근 7기 예술위 신임 위원들이 [문화정책리뷰]와의 인터뷰에서 국가예술위 전환에 대하여 긍정하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표명과 함께 7기 위원회가 시작된 지도 이제 5개월에 접어드는 시점이다. 따라서 이제는 2년 가까이 정체된 국가예술위원회 전환에 대한 논의를 계속 방치할 것이 아니라 다시 외부로 끌어내고 더불어 기초자치단체 및 광역자치단체 그리고 중앙정부로 이어지는 거버넌스를 활성화하여 예술위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현실화할 수 있는 역량을 장기적으로 키워야 하는 시점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2020년 10월 예술위 전체회의에서는 아르코혁신 TF의제 추진 현황 검토가 안건으로 상정되어 위원회 차원에서 국가예술위원회 전환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문체부의 블랙리스트 실행자들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문체부의 지휘, 감독 대상이라는 예술위의 구조적 한계도 그대로 남아 있음에도 예술위가 국가예술위원회에 대한 논의를 다시 방치한다면 그것은 예술현장과 국민을 또다시 배신하는 것이자 국가폭력이 횡횡하는 예술위의 재림을 염원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그러니 예술위는 올해 안에 국가예술위원회 전환에 대한 타당성을 예술현장과 논의하는 장을 전국 단위로 조직하고 필요한 연구들을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국가예술위원회 전환에 대한 논의는 결국 예술위의 국가예술위원회 전환을 상수로 삼고 있다고 보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국가예술위원회 논의는 제목 그대로 국가예술위원회로의 전환을 결론으로 도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뭐든지 100% 완벽한 것은 없다는 점에서 이 논의는 충분히 다른 결론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예술위원회로의 전환에 대한 타당성을 예술위와 예술현장이 치열히 논의하지 않고는 구조적으로 예술위의 구조적인 자율성과 독립성 성취할 다른 대안도 나올 수 없다. 그러니 국가예술위원회 전환에 대하여 다시 논의를 시작해보자.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를 위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아직도 까마득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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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태림. 미술비평가. 우리의 삶 속에서 정치와 예술이 어떻게 마주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두고 비평가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문화비평 웹진 크리틱-칼(www.critic-al.org)을 2013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2020년 5월부터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7기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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