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반반의 마음, 할 수 있음과 할 수 없음 사이에서

CP_NET 2020. 9. 10. 14:05

 

1

 

준비 중인 축제의 기획단 사람들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지난 초여름 작업을 약속했던 공연이었다. 당시만 해도 상황이 좀 더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 정확히는 더 나빠질 수는 없다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객석 거리두기를 하고, 체온을 측정하고, 문진표를 작성하는 것들이, ‘무엇인가 더 하고 있는것으로 느껴지는 때였다. 내가 극장장으로 있는 극장에서 전체 기획의 일부가 이뤄지고, 우리 극단도 참여하는 행사였다. 시인과 음악인의 협업이 중심에 되는 행사에서, 우리 극단이 유일한 연극 참가팀이었다. 나는 공연을 만드는 참여예술가이면서 축제의 방향과 운영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기획단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 당시의 지금, 그래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 때였다.

 

어느새 9월이 되었고, 수도권에는 2.5단계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있다. 8월 중순을 넘어가며 대학로 공연팀에도 확진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준비하던 공연 하나가 취소되었다. 연극팀들이 모여 단막극을 올리는 축제였다. 정확히 말하면 축제 전체가 아닌 참여팀인 우리의 공연에 대한 취소를 결정했고 행사 기획단에 전달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아직 올해 약속된 공연이 두 개가 더 남아 있었다.

 

모두들 그렇듯이 내가 문자를 보낸 기획단에서도 준비 중인 축제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열렸다. 그런데 나는 의견을 내지 못했다. 비대면, 연기, 취소라는 선택지에서 어떤 것이 가장 현실적이며 효과적인 안인지를 논의하는 회의였는데, 올해 내내 진행했던 회의들과 선택지는 같았는데 전과 달리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시름을 담고 앉은 표정으로 기획자로서도, 참여 예술가로서도 내 의견을 답하지 못한 채 무겁게 앉아만 있었다.

 

객석의 수를 줄이든지, 영상 송출을 진행하든지 결국엔 연기가 더 큰 부담이 될 거라고 일차적으로 결론이 났다. 작업을 해야했다, 약속한 대로. 그 당시의 지금’, 할 수 있을 거라고 내 스스로 판단하고 약속했던 작업이었다. 배우와 연습을 시작했다. 할 수 있다고 스스로와 배우에게 계속 이야기했다. 아니, 해야한다고 이야기했다.

 

티켓을 오픈하기로 약속했던 시점이 다가왔다. 관객을 얼마나 줄일지, 아니면 영상 송출을 해야 할지 등등을 놓고 카톡으로 회의가 진행되었다. 각 선택지마다의 변경되는 준비과정과 예산안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티켓을 오픈하는 것에 대한 여론도 이야기되었다. 프로다운 포지티브한 의견을 바란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전 회의 때부터, 언제부턴가 쉽사리 의견을 내지 않고 침묵하는 나의 네거티브를 더 이상 살펴보지 않고 담아두면 안 될 것 같았다. 상황 탓을 하며 좋은 작업물을 내놓지 못할 것이라는 부담 때문에 작업을 회피하고 있다고 누군가에게 평면적으로 판단되는 것도 싫었고, 단순한 싫증으로 연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싫었다. 나 스스로에게 정말 그런 것 아니야?’라고, 그렇게 자문하는 것도 지치고 있을 때였다. 글을 써서 저녁에 공유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나의 네거티브에 대해서.

 

 

2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처음부터 한 해 동안 내가 겪었던 일들이 나열되었다. 4월 한 달을 예상하고 겨울부터 준비한 기획이 7월까지, 세 달이 넘어가며 여름을 맞았고, 그 사이 작년부터 준비했던 극단의 공연은 결국 객석이 축소되어 치러졌다는 것. 이어 준비한 8월 공연은 리허설 중 짐을 싸서 대피해야 했으며 취소한 공연은 추가로 일정을 잡아 기록을 위한 공연영상을 다시 촬영해야 했다는 것. 긴 장마에 극장에는 누수가 생겨 답도 없이 며칠 밤을 집과 극장을 오가야했다는 것. 그 와중에 모든 기획, 연습, 공연이 불명확한 관의 지침을 해석해가며, 수칙을 만들어가며 진행되었어야 했다는 것. 그 모든 과정에서 수십 번의 회의를 해야했고 늘 많은 것이 유보되었다는 것. 재난 이후 세상이 멈추었다지만 오히려 일은 계속 증식되어왔다는 것. 솔직히 지금의 나는 여력이 없다는 것.

 

쓰다 보니 이 모든 것이 나의 변명이고, 어떤 선택과 결정이 필요할 때마다 내가 에너지를 낼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한 잘못이라는 것. 좀 더 힘이 들뿐, 사실 할 수 있고 할 거라는 것. 미룬다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고, 사실 그때의 내가 여력이 있을지에 대한 믿음도 없다는 의견. 그리고 지원사업이니 포기하면 더 복잡한 일들이 생길 것이며, 관객은 많은 관객을 만나자는 목적이 아니었다면, 10명 내외라면 수는 상관이 없을 것 같다는 의견. 3단계 거리두기를 염두에 두면 비대면으로 가는 것이 기획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거라는 의견. 나의 힘든 상황을 적어나가며, 그래도 그런 마음과는 거리를 두고 이성적으로 낼 수 있는 의견을 추가로 적고 다음 문장을 쓰는데, 내가 결국 이 말을 절실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는 지금 저와 제 주변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하고 싶지 않아요, 마음만 놓고 보면 지금은. 여력이 없어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할 수 있어요. 하는 방법은 아니까요. 여름을 지내면서 계속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왜 해야 하는지는 지나면 알 거라고 계속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어제도 오늘도 배우와 텍스트를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뭐가 프로다운 건지는 당분간 저는 계속 모르겠지만 저희에게는 눈 앞에서 관객과 만나는 일이 유일한 창작이자 루틴이었고, 그것이 지금 정말로 무너지고 있고,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었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힘들어요, 정말로.“

 

 

3

 

코로나19의 확산이 시작된 지난 겨울부터, 과장 없이 거의 매일이 처음인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국내엔 물량이 떨어진 체온계를 비싸더라도 해외 배송해서 미리 마련해 두어야 할지 조금 더 기다려야 할지 같은, 예상치 못한 지출들과 관련된 선택부터 기획된 연극제를 중단해야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여러 사람들의 이해와 의견이 충돌하는 선택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과 지침에 따라 당장 내일의 연습을 취소해야 할지, 팀원들의 개런티를 보전하기 위해 준비한 적 없는 영상 촬영을 진행해야 할지와 같은 공연 팀 차원의 선택지들도 계속 되었다. 시의 지침대로 정말 한 쪽 벽이 10m 남짓 되는 작은 극장에서 2m 단위로 객석을 깔아야 할지, 취소된 극장 대관을 채우기 위해 추가 공모를 공지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지와 같은 극장 차원의 선택지도 있었다. 대관을 유지하는 팀에게는 공간 책임자의 입장에서 어떤 현실적인 지침을 줄 수 있을지. 그리고 공연팀이 안전을 확보하면서 연습을 하기 위해선 어떤 기준과 준비가 필요한지. 마스크를 쓰고 무대 작업을 하는 것이 스태프들에게 너무나 힘들진 않을지, 식사는 어디서 어떻게 해야 안전할지와 같은 크고 작은 고민들은 안전을 위해 모든 선택에 한 번 더 따라 붙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들은 온통 처음인 선택들이었고, 이러한 자구책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 같은 끝없는 회의감도 모든 선택에서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모든 판단과 선택은 결국 공연을 하는 것과 안 하는 것 중 과연 어떤 선택이 지금의 우리를 정말로보호하는 일인가라는 최종의 질문에 맞닥뜨렸다. 이렇게 끝없는 선택에 마모되며 어느새 가을이 되었고 거리두기는 2.5단계로 상승한 지금, 내 안에선 해나가며 버텨야 한다는 마음과 못하겠다고 소리치는 마음만이 앙상하게 남아 계속 부딪치며 몸과 마음을 소진시키고 있다. 사실 올해는 이미 다 끝난 것인데도 말이다.

 

 

4

 

나뿐만 아니라 함께 이 시국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겐 이 두 마음이 모두 공존하고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 부딪치는 두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계획했던 일을 하고, 미묘하게 다른 태도로 서로 까끌거리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상처를 주고받는 지금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는데, 쉽지가 않다. 끝은 어디일까. 취소, 중단, 연기 같은 말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돈다. 정작 끝나는 건 없다.

 

상황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계속 느낀다. 비대면, 연기, 취소라는 말은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이것이 결론인 것이 아니다. 다시 수 많은 선택들이 계속된다. 그래서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은 지금의 나에겐 더 많은 일을 만들어내는 것만 같다. 코로나19로 인한 예술 지원금을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창작지원금으로 뿌리는 아이러니는 이미 내가 짐을 싸서 공연장을 빠져나오는’, ‘재난에 대한 체감으로 내 앞에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사람이 되어 본 적이 없어서 아직 나는 상상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 와중에도 버틴다, 라는 말은 왜 이렇게 익숙한 것일까. 수동의 의미인 그 말은, 언제 이렇게 나에게 능동적인 말처럼 읽히게 된 것일까.

 

공연 취소는 코로나라는 재난 상황에서,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 것일까? 하나의 공연이 취소된다는 것은 정말로우리에게 무엇을 초래하는가? 관객을 만나지 못한 아쉬움? 생계에 대한 타격? 구현하지 못한 무대에 대한 슬픔?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죄책감? 지원사업의 불이행, 혹은 그에 따른 불이익? 자존심이나 사명감의 손상? 어쩌면 생존에서의 도태? 이대로 지워질 수 있다는 공포? 지금 나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많은 질문들은 답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나마 이어지던 일상이 이미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 같은 것은 아닐까.

 

 

5

 

청탁을 받고 글을 쓰며 지금도 이 글이 많은 사람의 힘을 빼 놓는 글이 아닐까 걱정이 된다.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는 오늘도 연습을 했고, 약속했듯 작업은 진행될 것이다. 취소가 된다면 영상으로라도. 공연은 늘 해왔고, 할 수 있었던 일이므로.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함과 할 수 없음 사이에서 손실되고 있는 우리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비대면, 연기, 취소는 대응도 대책도 결론도 아니다. 재난 그 자체이다. 지금의 노력은 새로운 개척이 아니라 무너지는 일상을 유지하려는 안간힘이지만 힘은 당연히 무한하지 않다. 우리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공연을 하며. 혹은 공연을 하지 않으며.

 

 

--------

김기일. 연출. 혜화동1번지 7기 동인.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극장장. 2015년 연출 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주로 젊은 창작자를 중심으로 한 플랫폼을 오가거나, 기획해가며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공연, 극장, 플랫폼 등 사람이 만나고 모이는 순간과 공간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라는 비대면의 시대에 깨닫고 있다. 현재는 엘리펀트룸이라는 팀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