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다양성 정책을 논하기는 쉽지 않다. 문화다양성이 본래 가지는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범주가 나뉘는데다 ‘문화다양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정책이 문화다양성 정책인지에 대한 논쟁을 다시 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문화다양성은 취미와 취향에서부터, 혐오와 차별의 문제까지 그리고 예술인복지에서 차별금지법까지 실로 매우 포괄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폭넓은 범주를 모두 다룰 수 없다. 그 폭을 2020년 한국사회와 연동한다면, 문화다양성 정책 범주는 한국사회 다양한 구성원의 공존을 해치며, 타인의 다양한 정체성을 존중하지 않는 혐오차별의 배격, 그리고 평화로운 사회통합을 강조해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1년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 선언이 있었고, 2005년에는 문화다양성 협약이 채택되었다. 한국도 2010년에 문화다양성 협약을 비준하기에 이른다. 2012년에는 대표적인 문화다양성 가치확산 사업인 ‘무지개다리 사업’이 시작되었고, 2014년에는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문화다양성 가치확산 활동의 법률적 토대를 마련했다. 한국은 2017년에 문화다양성 아시아태평양 위원국에 선출되었으며, 내년인 2021년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협약 의장국으로 선출되기까지 했다. 짧은 시간에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문화다양성 협약 비준 후 10년 동안, 현재의 국제적인 주목도만큼, 한국사회에서 문화다양성이 정책적으로도 반영되는 성과를 이루었는가. 2018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정부의 몇몇 중장기 계획 속에서 문화다양성이 주요하게 언급되기 시작했고, 문화다양성을 지표화하는 과정 또한 진행되고 있다. 지역별로는 문화다양성 조례 제정 그리고 문화다양성 실태조사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문화다양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정책들은 일부 보이지만, 문화다양성 정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많지 않다. 문화다양성이 가진 본질적인 가치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 정책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사회의 소수문화와 소수성을 편견 없이 표현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정책이 마련되었는가?’ 또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막아내는 정책이 만들어지고 실천되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렇다’라고 대답하기 어렵다.
2017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는 새로운 정부의 문화정책을 준비하기 위해 2017년 10월 새문화정책 준비단을 구성했다. 새문화정책 준비단은 창의성, 자율성, 다양성 분과로 구성하여 다양성을 핵심 의제로 선정하였다. 또한 문화비전 2030에서는 ‘사람이 있는 문화’라는 기조를 달성하기 위해 3대 방향인 자율성, 다양성, 창의성을 설정하였고, 8대 기조 중 하나로 ‘문화다양성 보호와 확산’을 명시했다.
그러나 이런 선언에도 불구하고 지난 9년간 문화다양성 예산은 증액되지 않았으며, 문화부에서 문화다양성을 담당하는 인력도 늘어나지 않았다. 조직 안에서 특정한 정책이나 가치의 중요도가 예산과 인력으로 드러난다고 보면, 밖으로 지르는 목소리에 비해 주먹에 쥔 것은 별로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10여 년간의 지속적인 활동은 적어도 한국 사회에 ‘문화다양성’이라는 단어만큼은 확산시키는 성과가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문화다양성’이라는 단어는 문화부를 넘어서 교육부, 여성부, 법무부 등 다른 부처의 주요 사업과 정책에서 등장하기 시작한다. 중앙부처뿐만 아니라 산하기관, 지역교육청 새해 계획과 여러 단위 사업에서도 ‘문화다양성’이라는 용어를 자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가시적으로는 정부의 여러 중기계획에서 ‘문화다양성’이 주요항목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2018~2022)에서는 문화다양성 존중정책이 ‘문화예술 및 과학의 진보를 향유할 권리’ 13개 중 하나로 명시되었다. 또한, 2018~2022년까지 시행되는 제3차 ‘외국인정책기본계획’에는 5가지 주요추진 과제 중 하나를 ‘인권과 다양성이 존중되는 정의로운 사회’로 정했으며, ‘문화다양성 증진 및 수용성 제고’를 명시하고 관련 사업 시행을 기본계획으로 포함했다. 마찬가지로, 2018~2022년까지 실행되는 제3차 ‘다문화가족기본계획’에서도 다양성이 언급되고 있다.
이와같이 정부의 중기계획 속에서 자리 잡기 시작한 문화다양성이지만, 국무총리실 산하에 문화다양성 위원회 설치는 끝내 무산되었다. 더욱이, 문화부 이외의 중앙부처에서 문화다양성이 올바르게 이해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문화다양성이 정책과제로 확장되고 있지만, 문화부의 문화다양성이 초기에 겪었던 것처럼, 일부에서는 여전히 문화다양성이 ‘다문화’나 ‘세계시민’의 대체용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국가인권기본계회과 문화다양성 정책
문화다양성은 사업이 아니라, 일상 속 모든 활동에 인권과 같은 가치와 철학으로 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정책목표나 지향점으로 삼아야 한다. 중앙정부의 문화다양성 정책은 실망스럽지만, 문화분야의 여러 공공기관에서는 문화다양성 존중을 담은 인권경영선언과 시행규칙 그리고 문화다양성 가이드라인 개발과 같은 긍정적인 변화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로 모든 공공기관이 인권경영과 인권영향평가를 이미 실행했거나 준비하고 있다. 문화 분야의 여러 공공기관은 인권경영을 선언하며 선언문에 문화다양성 존중을 담았다. 이어서 이를 기관경영과 사업에서 실천하기 위해, 지표화시키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경기문화재단의 경우, 2019년 인권경영선언 이후 인권경영위원회를 발족하고 2020년 인권영향평가를 실시하였다. 경기문화재단의 인권영향평가는 기존의 국가인권위원회의 표준(안)을 2020년의 실정에 맞게 수정하면서 문화 분야의 공공기관에 적합하도록 지표를 수정 및 보완하였다. ‘문화다양성 증진과 혐오표현의 근절’ 지표를 신설하여 문화다양성 증진을 지속적으로 점검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문화 분야 공공기관의 경영과 사업에서 문화다양성을 지속적으로 염두에 둘 수 있는 틀을 마련했다.
또한, 문화 분야 공공기관의 운영에 적용할 문화다양성 가이드라인이 개발 연구 중이고 내년에 일부 기관에 시범 적용된다는 소식도 있다. 이와 별도로 문화예술교육과 같은 사업에 적용할 문화다양성 가이드라인도 올해 첫발을 내디뎠다. 이외에도 각 지역 문화재단들의 중장기 계획 속에 이제 문화다양성은 단골처럼 등장하게 되었으며, 몇몇 지자체의 연구원들은 문화다양성에 기초실태조사나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문화 분야의 문화다양성 정책은 ‘앞으로가 기대됨’, 중앙정부를 필두로 한 한국사회 전체의 문화다양성 정책은 ‘이제 시작이다’가 되겠다. 국내외의 기대에 걸맞는 문화다양성 정책이 활발하게 계획되고 실천되었으면 한다.
-------
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국가인권위원회 혐오차별대응특위 위원. 문화다양성 연구 및 컨설턴트, 다양한 정체성이 차별받지 않고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작은 일들을 수행중이다. 관심사는, 인권, 문화다양성, 인종차별, 이주민, 혐오표현, 다문화사회, 시민교육네트워크 등이다.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럼] 판데믹 이후, 음악의 갈 길 (0) | 2021.04.05 |
---|---|
[칼럼] 팬데믹 2년 차 문화예술정책 대응은? (0) | 2021.03.03 |
[칼럼] ‘우리의 대표’는 없다: 2020년 국정감사 사후 탐방기 (0) | 2020.12.03 |
[칼럼] 국가예술위원회 전환, 다시 논의를 시작합시다 (0) | 2020.11.05 |
[칼럼] 반반의 마음, 할 수 있음과 할 수 없음 사이에서 (0) | 2020.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