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개의 예비문화도시로 선정된 도시들 중 7개 도시가 1차 문화도시로 선정되었다. 인구 7만이 채 안 되는 지역의 소도시에 활동하는 문화기획자로서 문화도시사업에 대한 기대는 각별하다. 그래서 작년 한 해 문화도시컨설턴트로 더욱 애정을 갖고 활동을 했고 예비사업 기간 동안 무대 뒤에서 혼신을 다해 움직였던 지역현장 실무자들의 노고와 선정 평가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문화도시 선정 결과만 남고 과정에 대한 평가는 사라지는 아쉬움이 있어 지난 1년 문화도시 컨설턴트로서 무대 뒤에서 바라본 문화도시 선정과정에 대해 평가하고 되짚어보고자 한다.
문화도시는 관광산업, 문화창업 도시인가
문체부는 문화도시를 선정하면서 “문화도시는 문화자원을 활용해 고령화와 산업구조 변화로 쇠퇴하는 지역을 되살리기 위한 사업으로 (중략) 문화도시는 침체한 도심과 공동체 기능을 회복하고 지역 주민의 문화적 삶을 증진하는 한편 예술, 역사 전통, 문화산업 등 특색 있는 지역의 문화자산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워 관광산업, 문화창업을 이끄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이야기했다. 정말 문화도시사업을 통해 이룰 수 있는 현실 가능한 이야기일까? 정부는 고령화, 인구감소, 저성장이라는 시대적 문제에 직면하여 소위 지역 활성화를 위해 도시재생을 포함한 많은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지만 수도권 인구가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50%를 넘으며 ‘서울 공화국’의 영토는 수도권으로 넓혀지고 있다. 일본이 걸어왔던 과정처럼 지방의 소도시들은 사라지고 대도시를 중심으로 살아남는 극점(極點)사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으며 제조업과 중공업의 쇠퇴는 국가주도의 중공업과 제조업 지원을 통하여 성장하고 유지되던 지방의 대도시들마저도 위기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2014년 브루킹스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수도권은 세계에서 4번째로 규모가 큰 경제권이다. 대한민국 국토의 크기와 인구 규모로 볼 때 대한민국의 수도권 쏠림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체부가 문화도시사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관광산업과 문화창업이 지역을 기반으로 이루어는 목표는 얼마나 현실적인 목표일까? 국가주도의 제조업과 중공업을 기반으로 압축적으로 성장해왔던 지역의 도시들이 문화와 관광이라는 소프트웨어적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체질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지역민들이 삶의 방식과 내용이 전통적 산업이 아닌 창조적 산업을 위한 삶의 방식으로 전환을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도시의 목표가 문화창업과 관광산업으로 설정되는 것은 타당한 목표인지, 이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지역은 현실적으로 얼마나 되는 것인지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경제 성과는 국가주도 시장경제라는 독특한 구조에서 기인했다. 그러나 압축적 성장을 거치며 나타난 특징적인 현상들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데에 심각한 장애 요소가 되고 있다. 정부 주도 ‘계획하의 자유시장 경제’의 한계(관료주의, 대증적/단기적 정책), 재벌 중심 성장 모델의 한계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소득불평등과 수도권 집중화와 지역격차 심화, 아울러 민간의 자기 주도적 자생력(자발성⋅창의성⋅자율성) 약화가 후유증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장경제의 승자독식구조와 불평등 문제, 자기 파괴적 속성으로 인해 세계는 점점 좁아지고 복잡해지고 있으며 불확실성은 커지고 있다. 이제 국가권력을 통해 몇몇 엘리트들이 문제를 풀어가는 시대는 끝나고 이해당사자와 국민들의 참여 없이 문제해결이 불가능한 시대에 이르렀다. 민관 거버넌스는 단순히 민주주의 확대뿐만 아니라 우리가 처한 문제를 이제는 더이상 국가가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에 요구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국가주도 압축성장의 후유증으로 민간의 자기주도성과 자생력 부족의 문제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선결되어야 할 숙제이다. 이러한 체질의 개선 없이 단기적 성과를 목표로 하는 대증적 정책집행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제 국가가 한 가지 정책 사업을 통해서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는 집착을 버려야 한다. 씨를 뿌리는 농부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 훌륭한 농부는 씨앗보다 먼저 땅의 상태를 살핀다. 겨울부터 땅의 상태를 살펴 지력을 기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투른 농부는 일단 씨부터 뿌리고 수확을 목표로 화학비료를 뿌려대기 십상이다. 문화정책은 척박해진 지역의 문화적 토양을 되살리는 좋은 거름이 되어주어야 한다. 급한 마음에 화학비료와 농약만 뿌려대면 결국 어떤 생명도 살 수 없는 땅이 되어버린다. 수십 년 압축성장의 과정은 경제영역뿐만 아니라 문화의 영역에서도 국가주도의 단기적 성과에 급급한 정책들을 만들어 왔지만 그 결과로 지역의 문화생태계는 고사 직전에 이르렀다. 오늘날 대한민국에 과연 지역문화는 존재하는가? 그런 위기의식 속에서 지역문화진흥법이 제정되었고 지역문화진흥법에 근거하여 문화도시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문화관련 단일사업 예산으로 적지 않은 200억이라는 예산을 보고 많은 지역들이 스스로 문화도시가 되겠다고 앞다투어 사업 신청을 하지만 정작 지역민들은 문화도시사업에 대해 알고 있지도 못하고 있다. 사업 선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민-관거버넌스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 지자체를 찾기는 힘들었다. 민간영역도 스스로 주인이 되어 지역문화 생태계를 가꾸어 가기 위한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노력을 기울여가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농업정책이 그래왔다. 1992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정 이후 농업을 살리고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정작 오늘날 농촌은 더 어려워졌다. 동읍면에 100억 이상의 예산이 투입되고, 많은 예산이 투입된 곳 중에는 사업성공은커녕 마을 주민 간 갈등으로 사이좋았던 마을공동체마저 와해 되는 사례도 있었다.
지역문화 전문가를 남기자
200억이라는 적지 않은 예산이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앞으로 선정된다는 30여 개의 문화도시들 중 몇몇 도시들은 가시적 성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컨설팅을 하면서 사업선정 목표 이외에 사업선정 이후와 이전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곳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심지어 사업 선정이후 선정을 위해 노력해왔던 사무국 실무자들의 일자리가 없어지는 사례도 나타났다. 개인적으로 예비문화도시 컨설팅을 진행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문화재단, 사무국 등 중간 지원기관에서 일하는 활동가의 전문성 확보였다. 예비사업은 본 사업에 선정되기 위한 평가 과정만이 아닌 현장에 기반하여 지역을 이해하는 지역문화 전문가를 길러내는 학습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컨설턴트로서 지난해 가장 아쉬운 점은 사업에 선정된 지역조차 사람을 남기려는 시각과 준비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를 찾기가 쉽지 않은 지방소멸 위기 지역에서 살다보니 중간지원 조직의 전문성과 중요성을 알기에 예비사업을 통해 이들의 전문성을 확보가 문화도시 본사업의 성패를 가른다고 보고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예비사업을 통해 확보된 전문 인력이 지역에 남지 못한 것이다. 지역이 문화도시사업을 받아들일 충분한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우려 때문이었는지 중앙정부가 최종 선정한 도시들은 다소간 어려움은 있지만 심각한 경제적 침체나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당장 지방소멸의 위기를 겪고 있는 지역보다는 소위 될 만한 도시들, 사업의 가시적 성과 창출이 가능한 안전한 도시들 중심으로 선정된 것은 아닌지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적어도 한 두 곳 정도는 여건이 불리하더라도 지역 소도시들이 갖고 있는 문화적 가능성에 투자하고 다양한 비교군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측면에서 선발되었으면 어땠을까. 소도시들이 배제되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문체부가 장기적 정책으로서 접근하기보다는 임기 내 성과를 도출하려는 조바심을 내고 있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정책은 좀 더 약하고 소외된 것들을 배려하며 집행되어야 한다. 특히나 문화정책은 더욱 그러하다. 문화도시사업은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기준을 갖고 지역이 보유하고 있는 문화적 원형의 보존과 활용을 통해 지역이 당면한 문제 해결 가능성을 발굴해야 하며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문화적 다양성을 유지, 발전시켜가야 한다. 문화도시는 또 다른 서울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지역이 서울 공화국으로 상징되는 과거의 시스템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에 대한 실험이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 최적화된 시장경제 우등생 도시인 ‘서울’이 강제하는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을 넘어서 지역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이 자기 파괴적 시장경제를 넘어서는 시민을 위한 삶의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지역 모두가 각자의 색깔을 갖고 있는 문화도시가 되어야 한다. 시장경제가 초래한 복잡성과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협력이 필요하다.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불확실한 미래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정책 사업이 혹은 하나의 부처가 지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모두가 주인이 되고 참여하는 학습구조로서 정책의 설계가 필요하다. 정답이 아닌 실패를 통하여 학습하고 재빠르게 답을 만들어가야 한다. 습득된 지식을 공유하고 협력을 통해서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 민관 협력도 중요하지만 민민의 협력도 필요하다. 앞으로 이런 개방적이고 협력적 거버넌스의 구축이 가능한 문화지능을 보유한 도시만이 생존하게 될 것이다. 향후 문화도시사업은 개별 도시의 선별 생존이 아닌 크고 작은 도시 간 지역과 지역 간 협력을 통하여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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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정
문화예술교육연구소 에이스벤추라를 시작으로 문화기획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에이스벤추라 대표를 거쳐 사)문화기획학교 이사, 문화도시컨설턴트, 부여마을문화학교협동조합 상임이사로 활동 중이다. 2010년 충남부여로 문화귀촌을 하고 지역문화기획자로 활동하면서 서울공화국대한민국의 대안으로 지역문화에 대해 고민과 실천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부여군사회적경제창업지원센터장을 맡으며 사회적경제와 문화적 실천의 결합을 통해 지속가능한 지역만들기가 주요한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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