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외

[호외: 탄핵정국 ④] 예술정책의 막다른 지점: 한 번에 휙 찢어내는 거친 단절을

CP_NET 2025. 3. 19. 15:15
편집자 주: 20241214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안이 가결되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었고 이제 최종 판결만을 앞두고 있습니다. 미확정의 정국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 문화체육관광부는 연이어 문화 및 예술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칠 정책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미 지적되고 있는 것처럼 발표되고 있는 정책이라는 것이 여론 수렴 및 공론화 과정 없이 진행된 탁상공론인데다가 정권에 대한 탄핵심판이 진행되고 있는 졸속으로 정책을 발표하고 실행하고 있는 데에 대해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이에 [문화정책리뷰]는 혼란의 시기에 혼란을 더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의 행태를 기록하고 비판하고자 합니다.
 
우선 현재 추진 중인 예술인공제회 관련 논의를 소개하고 분석합니다. 한국의 예술정책 특히 예술인복지정책은 압축 발전을 해온 정책영역입니다. 실제로 예술인복지에 대한 제도화 논의가 상당히 오래된 일본보다 법제화가 빨랐고 코로나19에 의해 촉발된 전 세계 예술위기 하에서도 한국은 이미 상당한 정책 패키지가 존재한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하지만 빠른 제도화가 실제 정책의 효능감이라는 측면뿐만 아니라 정책의 실질적인 배경인 예술인의 권한 강화와 정부의 정책과정에 변화를 가져왔는가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이후 혼란스러운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예술정책의 경향은 이와 같은 역설화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국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현재 논의 중인 예술인공제회논의를 사례로 이러한 경향성에 대해 분석하고자 합니다. 이는 예술인복지법 제정과 권리보장법으로의 확산 그리고 예술인복지재단의 성립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혁신 이후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예술인복지 정책 자체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로 이어질 계획입니다.
 
이외에도 문화체육관광부의 무리한 정책 추진의 문제를 연속으로 게재합니다. 더 나은 내일을 열망하고 준비하는 이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예술정책의 막다른 지점: ‘예술인공제회라는 실마리(김상철)
문화체육관광부의 경거망동(염신규)
예술정책의 막다른 지점: ‘예술인공제회라는 실마리2-예술인을 담보로 한 관료들의 자산형성 수작? (김상철)
예술정책의 막다른 지점: 예술지원과 예술인복지의 통합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국가 문화예술기구들에 대한 내부 혁신의 요구가 컸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법률과 규율에 의해 작동하는 국가 기구가 특정한 정파를 위해 사적으로 전용된 사건으로 제도로서 사업의 신뢰성과 객관성을 보장하는 관료체계의 합리성을 무너뜨렸다. 사실 관료조직이 단순히 공화국의 수단이나 도구가 아니라 별도의 필요와 욕망을 지닌, 근대국가의 또 다른 행위자라는 것은 발전주의 국가모델 하에 성장해 온 한국에선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문상석은 관료의 국가제도 전용과 발전국가의 종언(사회이론, 49, 2016)에서 발전국가로서 한국은 사회와 절연된 유능한 관료집단에 의해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즉 사회를 압도하는 관료집단의 일사불란함은 사회적 논쟁과 갈등이라는 시간 낭비를 우회하고 집중적인 의사결정과 집행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관료집단은 과거의 발전국가로서 자기 명제를 부정하고 있다. 3가지의 전용이 발생하기 때문인데 (1) 제도가 없어 발생하는 전용 (2) 제도와 규제가 있으나 이를 회피하여 발생하는 전용 (3)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시장에게 넘겨주는 전용이 그것이다. 스스로 집행하고 평가하여 결과의 책임을 자임하는 근대국가의 관료집단이 변질되었다는 진단인데, 블랙리스트 사건은 문화행정에 있어서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다시 탄핵의 시간이다.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블랙리스트를 배태하고 있던 문화관료체계가 과연 나아졌는가 하는 질문이다. 더 직접적으로는 지난 문재인 정부 초기 각 기관 별로 진행된 혁신과정들이 실제로 관료집단의 전용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근본적이었는가 하는 질문이다. 나아가 왜 우리는 이런 상태의 예술지원 체계를 존속시켰나 라는 질문이다. 질문은 존속되었나가 아니라 존속시켰나. 적어도 현 체제를 존속시키는 힘은 관료체제 만의 역할이 아니라 그것을 유지시키는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는 것을 전제한다. 따라서 예술인공제회를 둘러싼 논의는 불가피하게 왜 이런 사태까지 다다르게 되었는가라는 평가에서 시작해 결국 블랙리스트 이후 다다르지 못한 어떤 결론을 다시금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좋은 압력이 좋은 행정을 만드나

 

상당 기간 블랙리스트의 문제가 일방적인 관계의 결과가 아니라 어쩌면 (그런 것이 있다면) 한국 예술생태계의 암묵적인 필요와 호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어 왔다. [문화정책리뷰]의 다양한 글은 이런 의심들을 조심스럽게 진단하는 것이었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처벌의 실효성을 확보한다는 목적으로 다시 정부의 관료들을 중립적 조정자 위치로 불러오는 것이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에 정치인이 선임되고 그가 호선제 복원 이후 첫 위원장에 위원들에 의해 선임되는 것에 대한 침묵에 대해 이야기한 건 그런 맥락이다. 2024년과 2025년 예산을 다루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증액을 중심으로 목록화된 요구사항을 관철하는 방식의 운동이 윤석열 정부의 재정파탄과 정책의 한계를 우회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 역시 마찬가지다. 즉 작동 장치가 고장 나 버렸는데 거기에 에너지를 더 넣는다고 잘 작동될 수 있는가 싶은 것이다. 특히 국회에서의 예산 협상이라는 것은 언제나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나쁜 것을 수용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절충이나 타협이 아니라 오히려 야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에 가깝다.

 

윤석열 정부에서 문화정책은 전문가를 자임하는 관료들이 자신의 경험과 판단을 일방적으로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매우 제한적인 경험이지만 그 과정에서 만났던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지원 파트 관료들은 대개 자신이 과거에 해왔던 것들을 강조했고 예술인들이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흥미로운 것은 과거보다 더욱 좁게 관료 자체의 성장 과정과 자기 인식에 기반한 정책 구상을 보여주었다는 것인데 상당수가 낡은 것들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이에 대하여 염신규는 관료 집단의 ‘캐비넷에서 잠자고 있는 아이템들이라는 이미지로 포착했는데([호외: 탄핵정국 ] 문화체육관광부의 경거망동 ) 예술인공제회와 같은 쟁점 의제는 바로 이와 같은 관료 편향적 정책인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윤설열 정부의 문화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체제에 대한 논의보다는 사업에 대한 논의로 귀결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5년이나 10년의 비전을 말하기 위해서는 1주일이나 1달을 살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하지만 현재 예술지원 사업은 당장의 먹고사니즘의 한계를 가지고 예술인들의 목줄을 손쉽게 쥘 수 있다. 그리고 한국문화예술진흥법 상의 지원체계는 관료집단에 경험적인 예술인 통제기술을 학습시켰다. 그것이 나타나는 경로는 늘 반대가 아닌 이것은 해달라라는 청원으로 나타났다. 사실 반대를 위해서는 테이블 위에 놓은 종이들을 치워버릴 수 있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2024년 예산안을 앞두고 또 2025년 예산안을 앞두고 결국 난잡한 테이블 위에 우리의 요구안을 올려두게 되었다. 그리고 원치 않았겠지만 한 편으로는 국회의 파워 플레이어인 민주당 국회의원의 손을 잡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협상 파트너인 정부 관료들을 승인하게 된 것이다.

 

안타깝지만 한국의 예술지원 체계는 예술인들과 예술인단체들의 압력을 왜곡시킨다. 즉 제도를 향하는 압력은 그것을 깨뜨릴 정도로 위협적이지 않다면 오히려 관료들의 힘을 강화시키는 역설을 만들어낸다.

 

 

외과수술이 아니라 찢어내기

 

예술인공제회 설립에 반대하는 것은 단순히 사업구조가 비현실적이거나 절차가 비민주적이었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오히려 최근까지 시혜적인 외피를 포기하지 않았던 예술인에 대한 지원정책이 노골적으로 예술인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변했다는 상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예술인을 위한다는 생각은 앞선 글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예술인의 필요로서 공제사업이라는 질문 앞에서 모호해진다. 기존 정책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방편이라는 합리성조차도 예술인생활안정자금의 운영 과정에서 도출된 한계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취약하다. 결국 예술인공제회라는 것이 기존 예술정책을 관장하던 관료들이 정권의 공백기를 틈타서 무엇인가를 했다는 성과를 챙기면서 기존의 문화관료 조직을 두텁게 만드는 실질을 추구한 셈이다. 예술인들이 일반적인 연금 구조에서 배제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태로운 노후라는 건 심각한 문제가 맞다. 하지만 그건 예술인이어서가 아니라 한국의 연금 구조가 가진 구조적 문제에 가깝다. 또한 예술인들이 연금에 가입할 수 없는 건 그에 적절한 상품이 없어서가 아니라 당장 미래를 위해 유보할 수 있는 자산을 가진 이들이 적어서다. 이런 문제는 공제회의 유무가 아니라 예술인의 노동조건에 대한 개선과 축적할 수 있는 나머지를 인정하지 않는 현행 공적 지원체계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문제를 내버려 둔 채 일단 안정적인 직장인인 문화기구의 관료들을 동원하여 특권적인 공제회를 만든다는 건 편의적이라기보다는 악의적이다. 다수의 예술인들은 들어갈 수 없는 신기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시혜정책이라는 포장지를 걷어낸 예술지원정책을 근본적으로 해체해야 한다. 문화관료의 가면에 균열을 만든 것이 블랙리스트라면 문화관료의 가면을 떨어지도록 만든 것은 그 이후의 관성이다. 현재 예술지원체계가 과연 변화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국가기구와 일대일로 대응하는 예술가 개인이 보조사업자로 전락하는, 즉 권리를 갖는 예술인이 의무를 지닌 이익추구자가 되어 버리는 기막힌 구조를 벗어날 수 있을까? 나아가 예술인을 위한 기구들이 스스로 확대 복제해가는 자가발전적 조직이 되었고 정책 대상자인 예술인을 일방적인 서비스 소비자로 전락하는 경향성을 극복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미세조정의 시기는 지난 것 같다. 현재 예술지원정책이 가진 구조적 한계는 단순히 섬세한 정책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기존의 문제가 예술지원 정책의 투박함에서 찾아져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섬세함과 투박함의 차이던가. 오히려 한국의 예술지원 정책이 의도적으로 예술인을 경계로 놓고 있으며 이런 경계는 역설적으로 더 많은 관료 조직을 위한 알리바이가 되고 있고 결국은 예술인의 정책 도구화가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미세조정의 국면이 아니라면 이제 필요한 것은 거친 단절이다. 외과 수술하듯이 오려내는 것이 미세조정의 영역이라면 한 번에 휙 찢어내는 것은 거친 단절이다. 알버트 허쉬먼이라는 학자는 반동의 언어를 분석하면서 반동의 언어는 늘 변화가 더 큰 문제를 낳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런 태도는 카네만 등의 행동경제학자들에 의해 현상유지 편향이라는 심리적 기제로 설명되기도 했다. 즉 바꾸고 싶지만 자칫 바꾼 다음이 지금보다 더 나빠지면 어떻게 하느냐의 질문이다. 그런데 이걸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더 상세한 지도와 설계도면이 아니다. 그건 최초의 선택, 즉 현재 있는 것을 넘어뜨리기로 하는 결단과 그럼에도 더 나을 것이라는 낙관적 비전이다. 손쉽게 말하면 지금보다 더 나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지원 조직의 폐지,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등 지원기관의 통합 그리고 문화예술진흥기금의 적립 의무 등 현재의 체제를 휙 찢어내는 결단이 필요하다.

 

 

도돌이표를 지우고 공상적 논쟁으로

 

한국의 문화기구는 상당히 이상하다. 말로만 보면 중앙정부의 문화기구가 있는 것이 전혀 낯선 건 아니지만 예술가에 대한 예술지원정책을 중앙정부가 직접 시행하는 건 매우 이상한 일이다. 물론 윤석열 정부는 2024년과 2025년 기존 사업에 대한 정리를 통해서 직접 지원 사업을 지방자치단체를 경유하는 사업으로 다수 전환했다. 그러나 이건 직접지원정책을 간접지원정책으로 전환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해당 사업을 지방이양 시키기 위한, 즉 없애기 위한 수준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점에서 단순 전달체계의 변화로 보긴 힘들다. 그렇게 해서 중앙정부의 예술인에 대한 통제가 작아지는가. 문제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방자치단체 등을 통한 간접적인 통제가 더욱 기승을 부린다. 지방자치단체의 보조사업은 중앙정부의 매뉴얼이 없으면 작동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 통제가 자율적 통제가 아니라 매뉴얼에 적힌 내용 그대로의 문언적 통제라는 점에서 극히 퇴행적이다.

 

그래서 현행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예술지원 기능을 떼어내자는 것이 중요한 제안이다. 25년 부처사업보고에 따르면 10개의 정책과제가 제시되고 각각 3개의 정책사업이 있다. 이 중 예술지원사업은 예술인이 마음껏 창작할 수 있는 환경조성이라는 단 한 개의 정책과제에 해당된다. 국민의 문화향유를 책임진다는 측면에서 정부의 문화시설 공급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예술지원 정책영역은 폐지하는 것이 맞다. 현재 조직도로 보면 예술정책과는 폐지하고 장르별로 예술인에 대한 직접 지원사업을 담당하는 직무는 모두 없애야 한다. 대신 이런 기능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통합하는데, 기존 진흥원 체계의 단순 승계 방식으로 만들어진 위원회 사무처 기능의 전면적 재편이 동반되어야 한다. 현재와 같이 연봉과 서열이 올라가는 방식이 아니라 연봉은 보장하더라도 직급은 제한하고 대신 정책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는 위원회 임기와 함께 하는 임기제 직원을 선임한다. 개별 임용 계약에 의해 채용이 되고 최소한의 임기는 보장되지만 자동적으로 고용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이런 구조라면 우리는 행정 구조 내에서 책임을 지는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 반드시 오래 일한 사람이 더 높은 권한을 가질 필요는 없다. 권한은 경험이나 나이가 아니라 책임에 비례해야 한다. 책임을 질 수 있는 수단이 없는 직급은 당연히 상대적으로 적은 권한을 갖고 대신 안정적인 고용조건을 누려야 한다.

 

이렇게 보면 현행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별도의 기관으로 있을 필요가 없다. 예술강사제라는 학교문화예술교육의 한 축을 교육부로 이관하게 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역시 별도의 기관으로 있을 필요가 없다. 각각 현행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본부체계로 통합한다. 지금과 같이 기관 별로 작은 정원의 칸막이가 쳐져 있는 업무를 수행하게 되면 기관의 한계를 정책의 한계로 인식하게 된다. 오히려 공동의 미션을 바탕으로 넓게 교차시키는 것이 낫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지금과 같이 장르별 원로회처럼 운영하지 말고 지역별, 세대별, 성별 배분을 고려한 중규모의 예술인회의기구를 구성한다. 요즘과 같은 환경에선 100명 정도의 운영구조를 만든다고 해서 효과적인 논의를 하지 못할 것이 없다. 이 정도는 되어야 외부의 정치적 압력에서 버틸 수 있는 대표성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런 내용이 이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혁신 과제로 제안된 바 있다.

 

현재 식물화되어 있는 문화예술진흥기금은 별도의 부담금을 만들어서 정상화한다는 방향 대신 정부가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의 예산을 기금으로 출연하도록 하는 정률 전출 의무를 명시하는 방식으로 정상화한다. 그 재원을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 하는 것은 정부가 고민할 문제지 예술인의 고민 영역은 아니다. 필요하면 다른 기금의 여유자금으로 전출을 하던 아니면 정부의 일반회계에서 전출을 하던 정부는 전출 의무를 이행하면 된다. 대신 전출액의 기준은 산업분류 상 문화산업의 매출액과 그에 따라 납세한 일반재원 규모 사이에서 적절한 비중을 정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예술지원이 문화산업과 간접적으로라도 연결되어야 정책의 순환구조를 만들 수 있다. 지금의 예술지원정책의 공공재원 규모는 지나치게 자의적이다. 정부 재정의 3%, 5%니 하는 주장 역시 뭔가 근거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왜 말하는지는 알겠는데, 이게 되겠냐고 묻는다면 그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준비된 답을 하고 싶다. 해보지 않았는데 되는지 안 되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말이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이쪽저쪽에서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것을 본다. 무슨 마음인지는 십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블랙리스트 이후 지난 10년보다 나아질 것은 없다. 작년 총선 결과를 두고 우리는 이미 이번 국회가 문화나 예술을 다룰 만한 대표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았나? 끊임없이 도돌이표를 오간 이유가 현실적인가때문이라면 차라리 제대로 공상적 논쟁을 해보자.

 

 

아르코혁신TF 보고서 읽기

 


김상철.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문화연대 집행위원. '밥먹고 예술합시다'라는 집담회를 계기로 예술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인들의 공정한 보상과 문화산업 내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모임인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창립에 참여했다. 현재 예술인생활안정자금 관리위원회 위원, 한국예술교육진흥원의 윤리경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나라살림연구소에 적을 두고 재정과 참여예산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도 겸하고 있다. 창간호(20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