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외

[호외: 탄핵정국 ②] 문화체육관광부의 경거망동(염신규)

CP_NET 2025. 3. 4. 08:08
편집자 주: 2024년 12월 14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안이 가결되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었고 이제 최종 판결만을 앞두고 있습니다. 미확정의 정국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 문화체육관광부는 연이어 문화 및 예술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칠 정책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미 지적되고 있는 것처럼 발표되고 있는 정책이라는 것이 여론 수렴 및 공론화 과정 없이 진행된 탁상공론인데다가 정권에 대한 탄핵심판이 진행되고 있는 졸속으로 정책을 발표하고 실행하고 있는 데에 대해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이에 [문화정책리뷰]는 혼란의 시기에 혼란을 더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의 행태를 기록하고 비판하고자 합니다.
 
우선 현재 추진 중인 예술인공제회 관련 논의를 소개하고 분석합니다. 한국의 예술정책 특히 예술인복지정책은 압축 발전을 해온 정책영역입니다. 실제로 예술인복지에 대한 제도화 논의가 상당히 오래된 일본보다 법제화가 빨랐고 코로나19에 의해 촉발된 전 세계 예술위기 하에서도 한국은 이미 상당한 정책 패키지가 존재한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하지만 빠른 제도화가 실제 정책의 효능감이라는 측면뿐만 아니라 정책의 실질적인 배경인 예술인의 권한 강화와 정부의 정책과정에 변화를 가져왔는가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이후 혼란스러운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예술정책의 경향은 이와 같은 역설화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국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현재 논의 중인 ‘예술인공제회’ 논의를 사례로 이러한 경향성에 대해 분석하고자 합니다. 이는 예술인복지법 제정과 권리보장법으로의 확산 그리고 예술인복지재단의 성립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혁신 이후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예술인복지 정책 자체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로 이어질 계획입니다.
 
이외에도 문화체육관광부의 무리한 정책 추진의 문제를 연속으로 게재합니다. 더 나은 내일을 열망하고 준비하는 이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예술정책의 막다른 지점: ‘예술인공제회라는 실마리(김상철)
문화체육관광부의 경거망동(염신규)

 

 

지난 220일 문화체육관광부는 2025년 상반기 내에 국립공연예술단체 5곳의 운영조직을 통합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국립발레단, 국립현대무용단 등 5개 국립예술단체의 이사회 통합과 통합사무처 신설이 그 내용이다. 이사회가 통합되더라도 각 단체는 기존 명칭과 정체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한다. 단장 겸 예술감독들도 기존대로 시즌 프로그램 선정과 개별 공연 프로그램 결정, 지휘·연출·안무에서 자율성을 보장받는다는 것이 문체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각 단체들과 해당 분야 예술계는 이런 문체부의 입장에 대해 상당히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문체부 발표 이후 국립오페라단과 국립합창단, 국립발레단, 국립현대무용단 등 국립예술단체 4곳이 정부가 추진하는 국립예술단체 통합에 반대하는 의견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전달했다. 현재 단장 자리가 비어 있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를 제외한 모든 단체들이 반대 입장을 취한 것이다. 이들은 정책의 취지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제대로 된 의견 조율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며 문체부 주도의 일방적 추진 방식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공연예술계에서는 절차상 문제뿐만 아니라 각 단체의 고유 기능과 독립성이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미리 밝히면 개인적으로 국립공연예술단체 통합 그 자체에 대해서 딱히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그렇다고 찬성의 입장도 아니다. 단체 통합의 득과 실에 대해서 꼼꼼히 따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솔직히 아무런 입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은 국립단체 통합 자체에 대해서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글은 아니다. 그보다는 대통령 탄핵 절차 등이 이뤄지며 정권의 지속에 대해 그 어떤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립단체 통폐합 같이 매우 중차대한 과업을 서슴없이 진행하고 있는 문체부라는 곳의 놀라운 배짱에 대한 글이다.

 

 

새로울 것 없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무리수

 

실은 국립공연예술단체 통합 관련 논의나 시도가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특히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국립합창단의 통합논의는 2000년대 이후 꾸준히 있어왔다. 2011년 문체부는 이에 대한 연구를 위탁 용역형태로 발주하여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수행하기도 했었다. 2011년 하반기에 진행된 <국립예술단체의 효율적 통합 운영방안 마련 연구>(허은영 외)가 그것이다. 당시 이 연구는 크게 두 개의 파트로 나뉘는데 1부에 해당하는 내용이 국립오페라단·국립발레단·국립합창단·국립현대무용단 통합 운영 방안이고 2부에 해당하는 내용은 국립극단 및 명동예술극장 통합 운영 방안이다. 2부에 해당하는 국립극단과 명동예술극장 통합은 이미 2015년에 추진되었고 이번에는 그 1부에 해당하는 내용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연구가 진행되었던 시기가 2011년 하반기인데 그해 1월에 유인촌 장관이 물러났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책 연구가 급작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마도 이명박 정부 시절 유인촌 장관이 추진해 가던 정책이었던 것 같다. 다만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몰라도 장관이 바뀌면서 연구보고서만 남기고 실제로 추진되지는 않았지만 문체부의 캐비닛 안에는 언제고 필요에 따라 진행할 수도 있고 유예할 수도 있는 정책 아이템으로 잠자고 있었을 것이다.

 

대부분 정부 부처에는 늘 이런 식으로 캐비닛에 쌓여있는 정책 아이템들이 있다. 그 중에는 실제로 매우 필요한 정책도 있지만 그다지 실효성이 없는 정책도 있고 때로는 현실의 질서를 왜곡시킬 수 있는 폭탄 같은 정책들도 있다. 이런 것들이 옥석구분 없이 섞여있고 관료들은 현장의 필요가 아니라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그런 카드들을 하나씩 꺼내서 새로운 정책인 양 포장하여 내놓는다. 여기서 자신들의 필요란 무슨 대단한 사적 이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도 어느 정도 그랬지만 신공공관리행정 방식이 도입된 1990년대 후반 이후 특히 정부 부처와 같은 관료조직은 늘 어느 정도 이상 자신들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실적으로 증명해야 하고 새로운 정책 추진은 그 방향의 적정성과 무관하게 업무 실적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정부 부처의 정책 추진은 표면적으로는 늘 옳다. 아니 옳은 것이어야 하며, 올바른 것으로 기록된다. 정부에서 발간되는 정책백서류의 보고서에서 기추진된 정부정책에 대하여 비판적 리뷰를 하는 경우를 거의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요즘 추진되는 국립공연예술단체 통합 시도가 아주 새로운 상황은 아니다. 사반세기 정도 문체부란 조직을 관찰해온 바로, 늘 하던 비슷한 방식이다. 다만 신선한 것이 한 가지 있긴 하다. 2025년 초입을 둘러싼 정치적 상황은 보통 문체부를 포함한 정부 부처가 이런 시도를 무리해 가며 하는 타이밍은 결코 아니란 점이다. 정책 추진에 있어서 기관이나 단체 통폐합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 왜냐하면 각 기관, 단체들의 이해관계 조정이 쉽지 않으며 실제 거기서 일하는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되기 때문이다. 뚜렷한 명분이나 실익을 입증하지 못하면 상당한 진통을 겪게 된다. 실제 통합을 통한 불이익이 없는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기관, 단체 인력들은 조직 변화에 대하여 일단은 부정적 입장을 보인다. 변화는 예측불가능성에 따른 심리적 저항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관 통합 등과 같은 큰 폭의 조직 변화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시도되며 대부분 정권 초기와 같이 권력 안정기에 시도되는 경우가 많다. 그 방향의 옳고 그름이나 손익을 떠나서 뒤엉켜드는 갈등을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때인가. 현재 정부를 둘러싼 상황은 누가 봐도 변화를 추진할 동력이 있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 해 말, 갑작스런 대통령의 결심에 의해 시도된 계엄령과 그로 인한 탄핵 정국으로 정권의 안정성은 제로에 가깝게 떨어졌고, 향후 벌어질 상황을 섣불리 예측할 수는 없지만 조기 대선과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무척 높아진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관이나 단체 통폐합 같이 적잖은 논란이 수반되는 정책 결정을 내리는 것은 부처에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정작 문체부의 수장들은 상황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지 않은 듯하다.

 

 

엘리트주의와 실적에 매몰된 투명한 욕망

 

현재 문체부를 이끌고 있는 유인촌 장관과 용호성 차관은 이런 정치적 격변의 시기에도 불구하고 단체의 통폐합은 물론이고 문화예술정책의 중장기 계획인 <문화비전 2035>의 조속한 발표를 서두르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따져보면 지금 추진하려는 것은 전혀 새로운 내용도 아니고 십수 년 이상 문체부의 정책 캐비닛에 쌓여 있었지만 정작 그 내용에 대한 명분을 얻은 적도 없고 무엇보다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의 소위 콘센서스(consensus), 합의나 이해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안 이것만이라도 현실 제도로 못 박아 놓고 떠나겠다는 식으로 무리수를 두며 강행하고 있다. 이 무리수는 너무도 투명하게 다음 두 가지 욕망을 보여준다.

 

우선 하나, 하향식 국가주도 방식으로 엘리트 예술진흥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는 착각이 장관과 차관 모두에게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의 불가능함과 무소용함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무척 길고 복잡하지만 짧게만 언급하자면 이렇다. 그 방향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한국 예술계가 그렇게 관리되기에는 그 크기, 소위 얘기하는 양적, 질적 규모가 너무 커져 있다. 국가가, 국립단체를 통해서 뭔가를 할 수 있던 것은 1980년대 초반까지의 얘기였다. 대략 잡아도 40여 년 전과 현재의 예술계의 규모는 적게는 다섯 배에서 크게는 스무 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21세기 이후로는 정부가 예술계를 끌고 가고 진흥한다는 것 자체가 실은 매우 무의미하고 불가능한 상황이다. 정부는 선도적인 역할이 아니라 보충성의 원칙 속에서 예술계에 부족한 지점을 채우는 보조자의 역할로 돌아서야 한다. 그런데 국립공연예술단체 통합의 무리한 시도 등에서 드러나는 문체부 수장들의 시각은 여전히 자신들이 이 판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삼류기획자들이나 상상할 법한 시각이 깔려있다.

 

또 한 가지는 문체부 관료조직의 무비판적이고 반이성적인 관성이다. 상식적으로 지금 같은 정권의 현실 상황에서 기관 통합은 물론이요, “문화비전같이 다분히 정권의 프로파간다를 담을 수밖에 없는 비전 수립이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하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렇다면 누구라도 그런 하등 쓸데없는 짓을 멈추고 정작 필요하지만 못하고 있던 다른 업무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아무도 그런 판단을 내리지 않고 마치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하나마나 한 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런 하나마나 한 일이 나중에 하나마나한 일이 되건 안 되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은 관료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뭐라도 일을 해놓으면 어떻게든 포장되어 실적이나 성과로 평가되는 현재의 행정 시스템에 너무나 적응을 잘해버린 결과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정부 부처 중 예산도 적고 실권도 적은 힘없는 부처로 취급되어 왔다.. 실상 그것이 사실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국가의 프로파간다와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있는 매우 예민한 부처이기도 하다. 박근혜 탄핵의 사유가 되었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와 같이 정작 별거 없는 권한을 가지고도 전 국가적으로 사람들의 생각과 상상에 대한 개입을 시도할 수 있는 부처가 문체부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이어져 온 문체부의 구조가 과연 민주공화국이란 국가 체제 어울리는 방식인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문을 품게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 촛불 이후, 심지어 블랙리스트 상황을 딛고 정권을 잡았음에도 문재인 정부에서 문체부에 대하여 그 어떤 제대로 된 변화도 시도하지 않은 점은 매우 놀랍고 실망스러웠다. 최근 다시 벌어지고 있는 문체부의 작은 폭주를 바라보며 과연 다음 정권은 이를 어떻게 받을지가 궁금해진다. 역시나 앞선 정부들처럼 길들이면 타고 달릴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할 것인가?

 

 


염신규.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 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 겸임교수.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문화예술분야에서 발을 들여놓았으며 창작자, 기획자, 정책활동가 등 깊이 없이 다방면으로 경험을 쌓았다. 최근에는 문화정책(제도) 연구와 문화 연구의 틈새를 메우기 위한 작업들을 고민하고 있다. 특히 관심 있는 분야는 국민국가 성립 과정에서의 문화적 제도화의 문제, 노동자 문화정체성에 대한 비전형적인 방향에서의 탐색 등을 고민하고 있다. 창간호(20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