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2024년 12월 14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안이 가결되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었고 이제 최종 판결만을 앞두고 있습니다. 미확정의 정국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 문화체육관광부는 연이어 문화 및 예술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칠 정책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미 지적되고 있는 것처럼 발표되고 있는 정책이라는 것이 여론 수렴 및 공론화 과정 없이 진행된 탁상공론인데다가 정권에 대한 탄핵심판이 진행되고 있는 졸속으로 정책을 발표하고 실행하고 있는 데에 대해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이에 [문화정책리뷰]는 혼란의 시기에 혼란을 더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의 행태를 기록하고 비판하고자 합니다.
우선 현재 추진 중인 예술인공제회 관련 논의를 소개하고 분석합니다. 한국의 예술정책 특히 예술인복지정책은 압축 발전을 해온 정책영역입니다. 실제로 예술인복지에 대한 제도화 논의가 상당히 오래된 일본보다 법제화가 빨랐고 코로나19에 의해 촉발된 전 세계 예술위기 하에서도 한국은 이미 상당한 정책 패키지가 존재한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하지만 빠른 제도화가 실제 정책의 효능감이라는 측면뿐만 아니라 정책의 실질적인 배경인 예술인의 권한 강화와 정부의 정책과정에 변화를 가져왔는가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이후 혼란스러운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예술정책의 경향은 이와 같은 역설화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국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현재 논의 중인 ‘예술인공제회’ 논의를 사례로 이러한 경향성에 대해 분석하고자 합니다. 이는 예술인복지법 제정과 권리보장법으로의 확산 그리고 예술인복지재단의 성립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혁신 이후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예술인복지 정책 자체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로 이어질 계획입니다.
이외에도 문화체육관광부의 무리한 정책 추진의 문제를 연속으로 게재합니다. 더 나은 내일을 열망하고 준비하는 이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① 예술정책의 막다른 지점: ‘예술인공제회’라는 실마리(김상철)
② 문화체육관광부의 경거망동(염신규)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에서 예술인공제회 논의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작년 중순 경이다. 현재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예술인생활안정자금 개편관 관련하여 ‘공제회’를 검토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안정자금 운영 방식은 초기의 자원 확보를 위한 경과적인 형태이고 장기적으로는 예술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형태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합의가 있었고 이에 대한 준비를 요구해 왔던 터였다. 하지만 ‘공제회’라는 방향성에 대해서는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예술인공제회 모델은 ‘사실상’ 폐기된 모델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년 말에 원래는 생활안전자금 회계를 닫고 다음 년도 회계로 시작해야 하는데, 공제회 용역이 완료되지 않아 2024년 회계 종료 시점을 미룬다는 안건이 나왔다. 통상적으로 이월할 사안이지만 구태여 이렇게 해야 하나 싶었던 순간이다. 해가 바뀌고 1월에 연구 자문을 요청하는 연락이 왔고 2월 3일에 회의에 참석했다. 그러면서 이 과정이 뭔가 석연치 않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때마침 곳곳에서 문화예술정책에서의 파열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계엄 시기에 온통 사람들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해 있을 때 이를 기회로 뭔가 작동하는 경향성이 존재하고 있을 수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번 글은 ‘예술인공제회’ 추진 과정을 매개로 현재 예술인복지정책이 놓인 특정 국면을 해명하는 데 초점을 둔다. 과거보다 감춰진 정보가 많고 정부 내의 정책입안 과정 역시 투명하지 않아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 부족하다. 어쩌면 아직 윤곽이 다 드러나지 않은 몇몇 단서에 기초한 가설일지도 모르지만 이미 진행된 이후에 되돌리는 것보다는 뭔가 시작되기 전에 경고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이 글을 시작으로 예술인공제회를 사례로 한 문화정책의 이슈를 점검하는 글을 이어갈 예정이다.
낡고 오래된 그리고 사싱살 폐기되었던
예술인공제회는 1990년대부터 예술인복지정책의 중요한 사업으로 제안되기도 했고 2000년 이후 주요한 선거 시기마다 공약으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현재는 사실상 폐기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구체적인 정책 논의의 과정은 다른 기회로 넘기기로 하고 간단하게 짚어 보면 예술인공제회의 적용 범위와 재원 구조를 맞출 수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공제회는 상호 부조 성격의 복지제도인데 ‘능력에 따른 기여와 필요에 따른 분배’가 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기여는 멤버십과 같아서 기여의 수준은 논의할 수 있어도 기여가 없는 공제회 가입은 가능하지 않다. 상호성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때 예술인공제회의 주요한 모델로 참조된 프랑스 ‘예술가의집’은 6만 명의 소득신고 대상 시각 예술인 중 18,000명만 가입한 협회다. 장르로 특화되고 가입대상도 특화된다. 이런 형태는 민간주도의 기관에 정부가 지원할 순 있어도 정부 주도로 제도화할 수 있는 방식은 아니다.
필자가 참여했던 2017년 <예술인복지금고 재원조성 방안 연구>에서는 기존 공제회 모델 대신 복지금고 모델을 제안했었고 초기의 금고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복권기금을 통한 자금 융자사업이 실행되었다. 복지금고는 기존의 공제회와 다르게 보충적인 목표를 분명히 했다. 예술인복지제도가 기존 사회보장 제도에서 누락된 예술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예술인금고는 기존 금융제도 내로 진입할 수 없는 예술인들의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예술인복지정책이 한편으로는 예술노동과 기존 근로계약 노동 간의 차별을 해소하면서 보편적인 사회보장의 대상으로 만들고자 하는 방향성을, 다른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남게 되는 예술노동의 원형적 특징에서 비롯된 대상을 별도로 보호하려는 방향성을 갖는다. 후자가 전자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가면 예술노동과 유사한 사회적 노동형태의 제도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고 전자가 후자로 포섭되면 개별 노동형태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결과적으로 노동 일반을 해체하는 결과로 귀결될 것이다. 예술인 고용보험 가입 형태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적 이슈도 이와 같다. 비슷하게 예술인금고 제도는 일차적으로 예술인에게 직접적으로 자금 융자 지원을 하려는 목적과 함께 예술인이라는 직업 형태 때문에 기존 금융제도에 접근할 수 없는 문턱을 낮추는 연계 기능 역시 주요하게 고려했다. 예술인금고가 예술인들을 위한 융자제도라고 할 때 그것이 기존 금융제도를 예술인이라는 직종에 근거해 완전히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예술인금고가 갖는 보충적 성격이다. 예술인공제회가 가능하려면 최소 한국연극인복지재단처럼 단일한 장르로 한정되거나 아니면 몇몇 독지가들의 특별한 재원이 마중물로 제공되어야 가능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예술인을 대상으로 삼는 공제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공제회가 가능하냐 가능하지 않냐는 논의가 아니다. 이미 높은 수준으로 제도화된 현행 예술인복지정책 내에서 제도를 설계할 때 누구를 대상으로 하고 어떻게 집행하며 그 결과로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와 같은 정책 전반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전제로 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는 예술인공제회 논의는 그와 같은 논의가 가능한 환경인가?
무맥락적 공제회 논의
2025년 현재 논의되는 예술인공제회는 <문화예술인공제회 설립을 위한 기초연구>(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2008)와 <예술인금고 설립방안 연구>(한국예술인복지재단, 2017) 그리고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예술인생활안정자금의 운영 과정 간의 구체적인 반성과 평가 그리고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맥락을 찾을 수 없다. 현재 운영 중인 생활안정자금 운영과정에 문제점이 있다면 해당 문제점을 근거로 해서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공제회 논의가 나올 수 있지만 그런 맥락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문화예술 당사자 조직 차원에서 이와 같은 요구가 있었을까? 그런 내용도 확인되지 않는다. 구태여 추측하지만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내부의 욕구라는 측면과 문화부 예술정책과의 욕구라는 측면 정도가 남는다. 재단의 욕구는 한편으로는 복지전문기관으로서 재단의 역할과 융자자금을 관리해야 하는 준 금융기관으로서 재단의 역할 간 정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개별 복지서비스 제공 업무를 지방 재단 등으로 이관하고 중앙센터로서 별도의 독자적인 사업구조를 가지고 싶다는 욕구일 수도 있다. 전자라면 다행이지만 후자라면 퇴행적이다.
문화부 예술정책과에서는 전통적인 한국 예술정책의 가장 근본이 된 온정주의적 제도 강화라는 맥락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뭔가 예술인들을 위해 정부가 해주어야 하는데 그 내용을 찾다보니 예술인공제회라도 ‘선물처럼’ 만들어서 제공해야겠다는 것인가.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인가. 실제로 윤석열 정부 들어서서 예술정책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K’ 어쩌구 빼놓고는 무엇을 하고자 하고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정권 하반기의 자기 성과가 필요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이 역시 계엄사태로 인해 몰맥락화되어 버렸지만. 지금 상황에서 보면 처음에는 현재 생활안정자금 재원이 사실상 동결되고 있는 국면에서 재단 내부의 필요성이 문화부를 촉발하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자금을 운영하는 측에선 재원 운영의 장기적 방향성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 논의가 문화부 내부 논의로 가면서 무언가 급격하게 ‘전환되는 맥락’이 존재했으리라 생각된다. 특히 앞서 말한 2008년에서 2017년 그리고 2017년에서 현재까지 이르는 공제회-금고-생활안정자금이라는 사업의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어떤 인식이, 2008년 전후의 강한 정책 노스탤지어와 결합하여 왜곡되었다는 추정에 이르게 된다. “그거 그냥 예술인공제회로 가면 안되나? 보험이나 적금 같은 것 유치해서 하면 좋을 것 같은데? 힘들면 정부에서 만들어주고 문화부가 관리하면 되지 않나?” 같은 발상 말이다.
그런데 이상의 어떤 상황도 실제 예술인이나 그동안 예술인복지정책 과정을 관찰하고 있는 관점에선 몰맥락적인 상황일 뿐이다. 특히 문화부 주도의 예술인공제회 논의라는 가정은 더더욱 그렇다. 현재의 문화부가 무슨 정당성으로, 어떤 논리로, 누구를 위해서 정책을 펼친단 말인가.
예술인공제회라는 실마리
현행 예술인공제회 논의에서 우려가 되는 것은 비단 새로운 정책 추진의 정당성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논의의 배경에 놓인 발상이 가진 퇴행성이 더욱 문제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엔 맥락적 가설이 하더 더 붙는다. 바로 박근혜 탄핵에서 윤석열 탄핵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소위 블랙리스트가 촉발한 예술정책 개혁의 맥락과 그에 대한 반동으로서 현재의 문화부라는 실체다. 그런데 이런 관점은 밋밋하다. 너무 뻔한 그곳과 이곳의 차이에 근거한 논의에 불과하다. 오히려 블랙리스트 이후부터 현재까지 그곳과 이곳이라고 여겨져 왔던 양편에서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온 관계 즉 긍정적인 의미에선 협력적 관계라 부르던 부정적인 의미에서 유착관계라 부르던 현재의 예술정책을 끊임없이 기존의 일방적인 정책 공급 과정으로 회귀시키는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는 일차적으로 청부-수용이라는 정책 반영과정의 특수성이 존재하고 더 복합적으로는 의식적으로 독립성을 말해왔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치권력의 당파성을 그대로 모방해 온 예술정책 현장의 문제가 존재한다. 이 문제에 대해 논의를 더 이어가 보자.
김상철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문화연대 집행위원. '밥먹고 예술합시다'라는 집담회를 계기로 예술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인들의 공정한 보상과 문화산업 내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모임인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창립에 참여했다. 현재 예술인생활안정자금 관리위원회 위원, 한국예술교육진흥원의 윤리경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나라살림연구소에 적을 두고 재정과 참여예산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도 겸하고 있다. 창간호(20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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