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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2025년 문화부예산 ④] 탄핵 정국, 비정상적 ‘예산거래’는 사라질까 (김상철)

CP_NET 2025. 1. 1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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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사태 직후인 1210일 국회는 2025년 예산안을 확정했다. 헌법에서 정부는 회계연도마다 예산안을 편성하여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이를 의결하여야 한다.”(제54조2항)라고 정하고 있어 원칙적으로는 122일에는 통과되었어야 하는 예산이다. 어차피 예산안이 국회로 넘어올 때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터이고 최근까지 법적 기한 내에 예산안 확정이 이뤄진 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다소 늦었다는 점은 별다른 특징이라 보기 힘들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는 국회 확정 직후인 1211일에 보도자료를 내서 2025년 예산이 7672억 원으로 확정되었다고 알렸다. 2024년 본예산(추경이 포함되지 않은. 202312월에 확정된 당초예산을 의미한다) 대비 1,127억 원이 늘었다. 문화부는 문화예술 부문의 주요 사업 중 신규사업으로 대한민국 문화도시 조성’(400), ‘청년예술단 운영’(49), ‘어린이청소년극단 운영’(29), 기존사업으로 통합문화이용권’(239억 증), ‘국립예술단체 청년교육단원 지원’(55억 증), ‘세계 공연예술축제 육성’(40억 증)을 제시했다. 문화도시 사업은 전형적인 지역 나눠주기 사업이지만 그 외 대부분의 사업이 공연 분야에 해당된다는 것이 특기할 만한다.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보도자료, 문체부 2025년 예산 7조 672억 원으로 확정, 2024. 12. 11.

 

1회성 축제 예산, 타당성 검토도 되지 않은 문화시설 건설비용 등 변칙적인 예산증액이 단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이 2025년 문화부 예산의 중요한 특징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태는 갑자기 국회가 낭비성, 선심성 문화예술을 편성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거래할 당사자의 부재 때문이라 보는 것이 맞다.

 

헌법에서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57)라고 정한다. 그리고 국가재정법은 제35조를 통해서 헌법의 정부의 동의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의 승인을 얻은 수정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할 수 있다라고 구체화한다. 하지만 예산안이 확정된 1210일에는 공식적으로 대통령이 부재한 상황이었다. 물론 대행이 있었지만 현 정부가 뭐가 좋다고 대통령을 탄핵한 국회의 예산증액 요구를 수용하겠는가. (아직까지 정부의 국무위원들은 단 한 차례도 계엄 상황에 대한 사과를 한 바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 보자.).) 일반적으로 국회는 예산삭감 권한을 지렛대로 정부의 예산 증액 동의를 확보하는 예산거래를 한다. 이게 거래일 수밖에 없는 건 각자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동의하지 않는 상대의 요구를 수용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123일 이전에 국회가 정부의 동의를 구해 증액하려고 했던 사업들은 국회 상임위원회인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예비심사보고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눈에 띄는 사업은, - 문화예술교육 활성화 128, - 영화발전기금 전출금 294, - 영화제 지원예산 23억과 같은 당초 예산안에서 사회적 논란이 벌어진 부분에 대한 증액 사업과 더불어 - APEC 정상회의 호텔개보수를 위한 특별융자 500, - 우수선수 양성지원 42, 국가기간통신사 지원 204억과 같은 정부예산 편성을 우회한 부처의 청부 증액 사업 등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예산 거래의 목록에는 - 종교문화활동지원 총 1894억 증, - 전통사찰 보존 등 전통종교 문화유산보존 총 28130억 증, - 종교문화시설건립 총 14100억 증과 같은 전통적인 지역 민원예산과 예술의 전당이나 국립 예술단의 개별 증액 사항들이 다수 반영되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문화부는 기획재정부의 예산 조정과정에서 주요한 부처 이해당사자의 필요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한국예술종합학교나 한국번역문화원, 미술관과 박물관과 같은 산하기관 등의 예산 증액도 관례적으로 국회 증액이라는 편법을 사용해 왔다.. 문화부 입장에서야 기획재정부에 구차한 소리를 하지 않아도 상임위 의원의 사찰예산 하나를 수용하면 부처 사업예산 하나를 구제할 수 있으니 사실상 예산거래는 당연시되어왔다..

 

하지만 대통령이 부재한 상황에서는 당연히 증액을 반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1210일에 확정된 예산은 증액 없이 감액만 반영되었다. 13개 사업에 527억 원이 삭감되었는데 모태펀드 문화계정 출자 부분 250, 어린이 복합문화공간 조성 101, KTV 운영 74, 청와대 개방운영 30, 매체활용 정책홍보 25억이다. 즉 윤석열 정부에서 논란이 되었던 과도한 정부홍보예산과 관련한 것이나 청와대 개방사업과 관련된 것에 해당된다. 사실 모태펀드 출자나 어린이 복합문화공간 조성 사업의 경우에는 계속 사업에다가 이미 총사업비가 정해져서 계속되는 사업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예산이 줄었다기보다는 지출 시기에 맞춰서 편성 규모를 조정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니 실질적인 예산 감액과는 거리가 있다. 이런 특징은 정권의 속성과 상관없이 현재 제도 정치를 양분하고 있는 역사적인 자유당 세력과 역사적인 민주당 세력의 문화정책이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건은 이와 같은 문화예산의 거래 관행과 여야 간의 일반적인 합의 구조가 탄핵 이후에 구조적으로 바뀔 것인가라는 점이다. 직접적으로는 현재 나오고 있는 조기 추경과 관련한 국면에서 기존 상임위 예비 심사에서 제안된 지역 민원성 사업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인데, 만약 2025년 본예산이 현재와 같이 감액 예산으로 되고 추경에서 상임위 예비심사 과정에서 제안된 지역 민원성 사업들이 배제된다면 이는 2024년 탄핵 국면이 만들어낸 국소적이지만 급진적인 변화로 꼽을 사건이 될 것이다.

 

 

이 와중에 장관님과 단체장님들이 모여 앉아

 

문화부는 시민들이 광장에서 탄핵을 외치는 와중인 지난 1227예술계와의 간담회라는 행사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대표적인 관변 예술단체인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이하 예총)와 한국메세나협회 그리고 한국연극협회와 한국소극장협회 관계자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에 따르면 간담회에서 문화부는 2025년 예산 확정과 관련한 주요 사업 설명을 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는 구 학전극장을 아동극 극장으로 활용한다는 계획, 지역예술 도약이라는 문화부 사업에 대한 후속지원 그리고 예술나무운동이라는 메세나 사업에 대해 설명했다. 배석한 이종규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은 정치적 문제로 인한 환율 변동으로 로열티 부담이 크다는 업계의 고충을 전하면서 정치권이 정파적 다툼을 빨리 없애고 하루빨리 이 혼란을 극복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 참석한 소위 예술계 인사들의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발언이고, 문화부가 어떤 방식으로 한국 예술계를 바라보는지도 보여준다. (2025 예술정책 관련 예술계 간담회 관련 기사 보기 )

 

이 자리에서 유인촌 장관은 2가지의 특징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하나는 예술 현장에서 논란 중인 책임심의관제에 대한 우려에 대해 정부 지원으로 예술계를 살릴 수 없다뭔가 사람들한테 선택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지원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예술계 잘못을 언급하는 부분이다. “골치 아프고 힘들고 유연성이 없으니까 한 번 단체 만들면 감당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그들하고 잘 만나서 시너지가 있었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 같은데 오히려 긍정적인 반응보다는 부정적인 반응이 훨씬 많았다는 것인데, 누가 그렇게 느끼는지 분명하게 언급되지 않지만 맥락상 책임심의관제와 관련하여 목소리를 내는 예술인들을 만나라는 주문에 대한 답변으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즉 예술계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만나라는 주문에 만나도 시너지가 나지 않는다고 답한 것이다. 여기서 시너지 운운은 문화부 당국 즉 관료들을 의미한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유인촌 장관은 시너지가 나고 긍정적인 반응이 나올 수 있는 예술인들을 만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다음으로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지원하는 창작준비금을 언급하면서 이런 거보다는 예술가들이 일할 수 있게 해 줘야 된다는 생각이라고 말하면서 예총의 조광훈 회장을 언급하면서 예술인복지재단이 결정하지 말고 여기 협회장들이 다 계시니까 협회에서 인정하는 예술가들을 지원해달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유인촌 장관이 창작준비금 사업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다는 것은 그렇게 비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더 큰 문제는 현행 예술활동증명과 관련하여 ’협단체가 인정하는 예술가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이에 대해 배석자들의 반응은 전하고 있지 않다.

 

 

2025년 예산, 연장전이 남았다

 

유인촌의 문화부는 예술계에, 특히 기존의 협단체에 명확하게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다. 협력해라, 그러면 예술인을 판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겠다고 말이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민간예술단체의 자율성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기본적으로 예술단체는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예술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기능을 해야 하지 정책의 전달체계가 되는 것은 부적절하다. 무엇보다 한국의 예술단체처럼 정당성이 취약한 단체의 경우에는 오히려 장르 내의 경합적인 예술단체를 전제로 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최근 예술인융자사업을 예술인공제회 방식으로 전환하는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이미 다수의 연구를 통해서 공제회 방식은 현실성이 없다고 결론이 난 모델이다. 오히려 금고 형태가 더욱 안정적이며 현재 예술인융자사업은 이를 전제로 도입되어 운영되고 있다. 과연 협단체 중심의 문화부 정책거버넌스의 재편과 예술공제회 검토가 전혀 다른 맥락일 것인가.

 

올해의 추가경정예산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2025년 예산국면은 종료되었다기보다는 연장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문화예산은 추경 과정에서 두 가지 문턱에 놓일 것이다. 하나는 국회와 문화부 간의 기존 예산거래가 어떻게 되는 가는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부와 협단체를 중심으로 하는 카르텔 구조가 어떻게 사업으로 나타나는가 하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예산과 사업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골몰하다간 예산과 사업 전체가 퇴행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김상철. 본지 편집위원.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문화연대 집행위원. '밥먹고 예술합시다'라는 집담회를 계기로 예술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인들의 공정한 보상과 문화산업 내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모임인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창립에 참여했다. 현재 예술인생활안정자금 관리위원회 위원, 한국예술교육진흥원의 윤리경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나라살림연구소에 적을 두고 재정과 참여예산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도 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