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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주 정도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12월 3일 늦은 저녁에 느닷없이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한국 사회는 공포와 대혼란에 빠졌다. 현재의 집권 여당이 지난 총선에서 패배하면서 여소야대의 국회가 만들어졌고 거대 야당과 대통령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긴 했지만 국난의 상황이라고 여겨지지는 않고 있었다. 20세기 후반의 정치적 격변기를 지나쳤던 이들에게는 그냥 그렇고 그런, 평범한 나날이었다. 오히려 극심한 민생 경제의 침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참고 견디는 보통 시민들의 인내심이 대단하다고 여겨지고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은 정말 뜬금없이 자신의 국정 운영에 반대하는 이들을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며 선전포고를 하듯 계엄령을 선포했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행위였고 다행히도 바로 국회를 통해 계엄령은 해제되었고 오히려 그 역풍으로 대통령은 지난 주말인 12월 14일 역시 국회에서 탄핵이 결의되었다. 계엄령과 대통령 탄핵 결의까지 열흘 정도의 시간은 많은 시민들에게 불면과 악몽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대통령 탄핵이 진행되던 와중인 12월 10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의 수장인 유인촌 씨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그는 스스로 정부의 대변인임을 밝히며 “지금 대한민국은 과거에 없던 중대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비상계엄 선포 전부터 감사원장을 포함하여 20명 가까운 고위 공직자가 연속적으로 탄핵 소추되면서 정부가 정상적인 국정 운영을 하는 것이 어려웠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치안을 책임지는 장관들이 모두 공석이 되면 국민들의 일상에 큰 위험이 닥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호소문으로 읽힐 수도 있고 대국민 협박으로도 읽힐 수 있는 메시지였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법대로 하려고 하고 있는데 야당과 너희 국민들이 자꾸 방해를 하고있는 것이며 지금 조용히 있지 않으면 다같이 위험해질 수 있다”로 해석되기 충분했다.
그런데 이번 문화부 장관 호소문을 읽으며, 거기 담긴 메시지의 불쾌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민주공화국에서 예술을 포함한 문화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문화부의 정체성을 의도치 않게 까발리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솔직한 소회다. 국가라는 공공 영역에서 문화부를 포함한 문화정책의 수행기구들은 늘 가치중립적인 듯한 제스츄어를 취하고 있지만 매우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다. 과거 루이 알튀세르가 제안했던 이데올로기 국가기구(ideological state apparatus) 그 자체다. 문화가 갖는 연성권력(부드러운 권력, Soft Power)이라는 점은 이미 문화정책가들 사이에서는 상식에 가까운 것이고 문화정책이 문화를 통해 국민들을 공화국의 질서에 맞게 규범화시키는 측면은 피치 못하는 측면이 있기도 하다. 근대 이후 국가 문화정책의 출발은 애당초 국가 및 정부의 정당성을 국민들에게 납득시키는 것에서 기원했다.
그런데 이번 장관 호소문이 이데올로기 국가기구로서의 문화부의 위상과 역할에 비춰서 과연 적절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법치주의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은 어디까지나 헌법에 기초하고 있고 문화부가 대변해야 하는 국가의 입장 역시도 거기서 기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문화부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정부기구를 대변할 수 있지만 특정 정권을 대변하는 위치는 아니다. 대통령이 명백하게 반헌법적인 행위를 했고 그것으로 국가적으로 매우 혼란한 상황이 만들어졌는데 그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조용히 가만있으라”는 말을 하는 위치가 아니란 얘기다. 그 역시도 불쾌했겠지만 대통령실 대변인이었다면 이해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알다시피 문화부에는 제2차관 밑으로 국민소통실을 갖고 있다. 이곳은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국정홍보처를 문화부가 흡수하여 만들어진 조직이다. 당시에도 국정홍보처를 다시 문화부로 집어넣는 것에 대하여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국정홍보처는 국민의 정부 시절인 1999년 6월에 만들었는데 본래 문화부 안에 있다가 노태우 정부 시절이던 1989년에 공보처로 분리되었던 조직에 기원하고 있다. 그러니까 문화부 안에 있던 공보 업무를 1989년에 떼어냈다가 2008년에 다시 문화부로 돌려보낸 것이다. 사실 따지고보면 문화부의 뿌리가 되는 조직이 1948년 만들어진 공보처였다. 공보처가 공보부를 거쳐 문교부 문화국을 통합해 1968년 만들어진 것이 문화공보부였다. 군사독재 시절 문공부는 대놓고 프로파간다 기구로 언론통제와 문화적 검열을 주도했다. 1989년에 문화부에서 공보처를 분리시킨 것은, 비록 군사정부의 연장선 측면이 남아있었음에도 일단 1987년 6월 이후 이어진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문화부가 갖고 있던 노골적인 프로파간다 기구 성격을 바꿔놓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1999년의 국정홍보처로의 명칭 변경은 “공보=국가 기관에서 국민에게 각종 활동 사항에 대하여 알림”라는 단어가 주는 관료주의와 권위주의의 이미지를 지우겠다는 선언적 측면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2008년 이명박 정부는 효율성의 문제를 내세우며 다시 공보업무를 문화부 안으로 끌고들어갔다.
이번 장관 호소문을 보며 들었던 상념은 일단 두 가지였다. 하나는 더이상 공보나 국정홍보 업무가 별도 기구로 필요한가라는 문제 제기다. 이미 정부 각 부처들은 제각각의 홍보기능을 내부적으로 갖고 있고 자신들이 알리고 싶은 내용은 충분히 국민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국정홍보처건 문화부 국민소통실이건 간에 별도의 조직이 필요한지 사실 따져 물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행정조직이 다분히 관성적으로 업무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해당 업무를 하는 조직에서는 이제 그런 업무를 그만하라는 얘기가 천부당만부당하게 들리겠지만 만일 조직경영의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따지는 기업 안의 조직이라면 과연 저 조직이 계속 살아남아 있었을까?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문화부란 조직의 존속을 근본적으로 다시 한번 따져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탄핵으로 무너졌을 때, 그리고 그 원인의 하나로 예술인들에 대한 블랙리스트 사건이 드러났을 때부터 했던 고민이다. 더이상 문화부의 업무 영역이나 구조가 현실에서 국민의 문화생활이나 예술활동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는데 그 반대로 국가의 불필요한 개입에 있어서는 적극적 역할 수행자가 되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게 단지 정권이 바뀌고 사람이 바뀐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최소한 21세기 이후 지난 20여 년간의 문화부가 한국 사회의 현실계에 적합한 조직 형태인지를 꼼꼼하게 따져 물어볼 필요가 있다. 당장 “문화부 해체!”같은 구호는 지나치게 과격하게 나간 감이 있겠지만 최소한 지금의 조직형태가 맞는지, 21세기 한국에서 필요한 공공 문화정책의 규범적 기능과 장치가 무엇일지에 대한 격렬한 토론을 시작해야하는 게 아닐까.
염신규. 본지 편집위원.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 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 겸임교수.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문화예술분야에서 발을 들여놓았으며 창작자, 기획자, 정책활동가 등 깊이 없이 다방면으로 경험을 쌓았다. 최근에는 문화정책(제도) 연구와 문화 연구의 틈새를 메우기 위한 작업들을 고민하고 있다. 특히 관심 있는 분야는 국민국가 성립 과정에서의 문화적 제도화의 문제, 노동자 문화정체성에 대한 비전형적인 방향에서의 탐색 등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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