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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탄핵정국 ②] 문화부는 ㈜윤석열정부의 사보제작 부서인가 (김상철)

CP_NET 2024. 12. 22.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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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사태 이후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통과되는 시점까지 확인된 정부의 행태는 놀라움을 자아낸다. 대통령이 일일이 전화를 해서 체포를 해야 할 대상을 특정해주었다는가 하면 124일 계엄해제 결의안 통과 이후 국무회의가 카톡으로 통보되었다는 것 같은 건 실소를 자아내며, 예산 삭감 등에 불만을 품고 경각심을 주기 위해 계엄을 했었다면서 누가 금방 끝날 계엄을 하겠나는 대통령의 해명에 이르러선 비현실적인 느낌이 든다.

 

이와 같은 사태 속에서 지난 1210정부대변인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등장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의 모습도 상당히 기이한 모습 중 하나였다. ‘정부대변인이라는 직함을 처음 듣고 그것이 늘상 정부의 입장을 전하던 대통령실의 대변인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의문 때문이었다. 더구나 문화부 장관이 정부대변인으로 등장해서 국회의 법무부 장관과 경찰청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에 대해 반박하면서 최재해 감사원장을 포함하여 스무 명 가까운 고위 공직자가 연속적으로 탄핵 소추되면서 정부가 정상적인 국정 운영을 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탄핵소추는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국회의 권한이고, 기본적으로 인사의 문제는 탄핵하는 측이 아니라 인사를 한 정부의 책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돌이 섞인 밥에서 돌을 계속 골라낸다고 밥 투정을 해서 마음이 상해 계속 식사를 대접할 마음이 사라졌다고 말하면, 그 식당을 사람들이 어떻게 보겠나. 그리고 그 메시지는 다수 의석을 보유한 정당의 지혜와 자제를 보여주시기를 간곡히 호소하는 것으로 마친다. 이 순간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이 정부의 고위공직자들이 가진 상식의 평균치를 확인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법치는 자신들이 하는 것으로 한정된다, 법률의 사유화가 심각한 수준임을 확인한다. 그런데 이런 말을 내뱉는 이가 문화부 장관이라니!

 

 

정부 프로파간다의 노골화

 

알다시피 중앙정부에 문화부와 유사한 부처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그렇게 많지 않다. 대표적으로 프랑스나 영국이 유럽권 국가의 대표적인 사례고 중국이나 러시아, 일본 등 국가에서나 존재하는 정부기구다. 당장 미국만 하더라도 연방정부가 총괄하는 문화부처는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문화유산과 관련한 것들이 중앙정부의 문화부처에 가장 중요한 일이고 국민들의 문화향유와 관련한 것들이 부분적으로 있을 뿐이며 예술인에 대한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중앙부처는 앞서 언급한 나라에서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문화와 예술 영역은 정부라는 근대국가의 통치기구 바깥, 어쩌면 시민사회라는 것의 고유한 영역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인식이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문화부는 각 장르별 진흥정책을 골자로하는 예술정책 기능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한 구조에 속한다. 그리고 그렇게 문화와 예술을 담당하는 부서가 정부의 대변인으로서 정부홍보 기능도 담당한다.

 

이런 특징은 그동안 한국의 정치권력이 문화와 예술을 프로파간다의 기술 정도로 취급하고 있었다는 무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유인촌 장관은 스스로 국회 일반이 아니라, 국회의 다수당을 구체적으로 지칭함으로써 특정한 정파의 일원임을 시인, 이런 무의식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앞서 [문화정책리뷰]에서는 블랙리스트 문제나 정부 예산에 대한 문제를 다루면서 본격적으로 문화부라는 정부부처가 과연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제기한 바 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최근 내란 시도에 이은 탄핵국면에서 문화부가 보여주는 행태는 평범한 시민들의 상식에 반하는 입장을 천명함으로써 스스로 가장 대표적인 반문화적인 기관임을 선언했다.

 

지난 노무현 정부 시기 국정홍보처라는 정부기구가 글로벌 스탠다드인가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당시 정부는 독일에서 일시적으로 있었던 연방공보처의 예를 들면서 반박했지만 그외의 나라에선 대부분 (의원내각제의 경우) 내각 사무처나 총리실 혹은 (대통령제의 경우) 대통령실 내부 부서에 여론조사나 정부 홍보를 담당하는 기능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해당 업무는 정보의 전달에 해당되는 것이지 한국과 같이 정부의 입장에서 주장을 하거나 반론을 하는 성격은 아니다. 그건 통치 행위의 책임을 지는 기관 즉, 정무기구에서 하는 것이 맞다. 사실 국정홍보나 정부홍보가 명확하게 구분된다는 건 궤변에 가깝다. 정부의 예산으로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를 홍보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문제인 것은 동일하다. 그런데 정부의 선전을 왜 문화부가 해야 하는가, 라는 점에선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

 

최초의 정부조직법이 제정된 1948년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의해 정부 조직을 빠르게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사실 정부조직을 한국과 같이 하나의 일반법으로 일괄적으로 규정하는 입법례는 일반적이지 않다. 그래서 오죽하면 당시 제정안에 대해서도 정부조직법과 같은 입법형태는 당대의 필요성에 의해 일시적으로 적용하는 것일 뿐 장래에 해소되어야 하는 법적 형식이라는 점을 언급할 정도다. 어쨌든 1948년 제정법엔 공보 기능을 담당하는 부서에 대한 규정이 없다가 19491차 개정 때 국무총리 소속 하에 공보처를 둔다는 규정이 들어간다. 주요한 업무는 법령의 공포, 정보, 선전, 통계, 인쇄, 출판과 저작권에 대한 사무이다. 즉 명확하게 정부의 입장에서 사회의 공론장에 개입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이것이 625 전쟁 직후 국무원 제도가 신설되면서 국무원의 사무처 내 기구로 공보실이 만들어지고 여기에 공보국과 선전국이 설치되었다. 이중 선전국은 516군사 쿠데타 이후 공보부로 재편된다. 26조가 체신부에 대한 규정인데, 26조의2로 중간에 삽입해서 공보부를 만들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박정희 정부의 2기에 해당되는 1968년에 공보부는 문화공보부라는 이름으로 바뀌는데, 기존의 문교부는 사실상 현재의 교육부 같이 변하고 문화공보부가 공식적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담당하는 부서가 된다(“문화공보부장관은 문화예술, 국내외의 여론조사, 언론 선전 및 보도와 방송에 관한 사무를 장리한다”).

 

1987년 민중항쟁 이후 등장한 노태우 정부는 1989년 법 개정을 통해서 문화공보부를 폐지한다. 군사독재 시기에 만들어진, 문화예술지원+정부홍보라는 조직체계가 민주화 이후에 분리된 것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주 짧은 시기지만 문화부가 독립적으로 설치되었고 공보 업무는 국무총리 소속인 공보처로 이관된다. 당연히 내용 중 선전에 대한 사항이나 보도 통제를 연상할 수 있는 표현들은 다 사라진다.

 

그런데 IMF 구제금융을 거치면서 정부 효율화라는 이름 하에 199811월부터 KDI와 세동회계법인 등 19개 민간전문기관이 참여하여 정부조직경영진단을 하게 되고 이를 토대로 정부조직법이 개편된다. 이 과정에서 기존 국무총리 소속의 공보실이 국정홍보처라는 형태로 개편되는데 그에 대한 이유로 공보실과 문화관광부에 분산되어 있던 정부의 홍보기능을 통합한다는 것을 든다. 이때 문화관광부의 홍보기능은 해외문화홍보업무였다는 점에서 사실 조직개편의 효과가 거의 전무하고 외려 조직의 지위를 격상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IMF 이후 정부 주도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수많은 실업과 사회적 불안을 양산하며 사회 전반의 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적 반발과 갈등을 정부는 선진국으로 가는 성장통정도로 치부하는 프로파간다를 만들어냈다.

 

특히 정부기관이나 공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 정부는 국정홍보처의 국정홍보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노무현 정부의 국정홍보처가 황우석 사태나 한미FTA 체결과정에서 보인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1999년에 개정된 정부조직법 상 국정홍보처의 역할은 국정에 대한 국내외의 홍보 및 정부내 홍보업무조정, 국정에 대한 여론 수렴 및 정부발표에 관한 사무로 명시되어 있고 이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국정홍보처가 폐지될 때까지 유지된다.

 

 

정부대변인이라는 직위는 없다

 

이명박 정부는 기존 소규모의 전문부처를 유사한 업무의 대규모 부처로 개편하는 대부처주의에 입각해 기존 국정홍보처를 해외홍보기능은 문화부로 보내고 정부 홍보와 관련한 사항은 각 부처로 이관한다. 이 시기의 중요한 특징이라면 국무총리실의 기능이 축소되고 부총리제가 폐지되면서 사실상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 집중형 구조를 들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실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어서(정원이 기존 노무현 정부에서 533명이었던 것이 427명으로 상당수 줄었다) 소수의 정무직 공무원에게 권한이 집중되고 책임과 성과가 명확한 조직을 지향했다. 기존 국정홍보처는 국무총리실 사무차장 산하의 공보실로 축소되었다. 이때 통합 신설된 문화체육관광부가 문화, 예술, 영상, 광고, 출판, 간행물, 체육, 관광에 관한 사무와 국정에 대한 홍보 및 정부발표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게 되었다. 즉 국무총리실의 공보실이 각 정부부처의 정부 홍보와 관련한 사항을 조정하고 집행하는 기능이라면 문화체육관광부는 방송과 언론 등 출판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고 해외 홍보를 주관한다는 의미에서의 국정홍보를 집중하게 된다.

 

사실 이명박 정부 시기에 정부발표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문화부가 만들어졌지만 최근 유인촌과 같이 적극적으로 그 역할을 자임해서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2008년 정부조직법 개정의 앞뒤 맥락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정부의 발표를 주관한다는 법률 상의 조문이 방송과 언론에 대한 사무를 관장한다는 의미에서의 실무적 기능이지 유인촌과 같이 실제 정부 각 부처를 대표해서 대변인의 역할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문화부는 이걸 해낸다. 정부 발표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는 것과 문화부 장관이 정부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왜냐하면 애당초 대변인이라는 지위 자체는 분리되고 독립된 집단적 의사가 있는 곳에서 성립하는 역할에 대한 것인데, 대통령실과 같이 구체적인 선출직 공무원을 제외하고 대통령에 의해 임명될 뿐인 각 부처각료들에게 개별적인 의사표현이 아닌 집단적 의사를 표하기 위한 기능이 있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문화부를 묻는다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이후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를 경유하면서 한국의 문화부서는 특정한 정권이라는 회사의 사보제작 부서같은 느낌을 준다. 몇 해 전 윤석열차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 공무원이 당당하게 정부가 정부를 비판하는 데에 돈을 주는 것이 타당한가같은 질문을 하는 사태는 문화예술 정책이 사실상 국정홍보 아니, 좁게 정부홍보의 하위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태도가 단지 윤석열 정부이기 때문인가? 그렇진 않다. 윤석열 정부의 특징이 사적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순진함에 있다면 그 이전 정부는 사적 욕망을 공적 필요로 둔감시키는 영악함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가가 아니라 정권에 유리한가에 따라서 유지하거나 축소하거나 했다.

 

다만 이렇게 노골적인 상황에 직면한 마당에 이제는 문화부 존폐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의 문화예술 정책이 선전과 홍보와 같은 정부 프로파간다와 분리된 적이 거의 없다. 어차피 같은 부처 공무원들은 그 안에서 뺑뺑이 순환보직을 한다. 국정홍보를 경험한 공무원이 갑자기 문화예술정책을 담당한다고 표현의 자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될 것이라 보긴 힘들다. 그런 조직 하에서 유인촌과 같은 장관이 성립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유인촌 문화부 장관 겸 정부대변인이라는 사건은 문화부의 존치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을 던진다. 고쳐 쓸 생각 말고 새로 만들 생각을 하자. 윤석열 탄핵 이후의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나.

 

 

 


김상철. 본지 편집위원.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문화연대 집행위원. '밥먹고 예술합시다'라는 집담회를 계기로 예술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인들의 공정한 보상과 문화산업 내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모임인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창립에 참여했다. 현재 예술인생활안정자금 관리위원회 위원, 한국예술교육진흥원의 윤리경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나라살림연구소에 적을 두고 재정과 참여예산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도 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