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은 구체적인 의지를 가진다. 원래 정책이란 말엔 계획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고 계획은 의지의 방향성이다. 그리고 예산은 이런 정책의 의지를 드러내는 노골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왜 예산에 대한 분석이 결국 정책 평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한국의 문화예술정책이 여전히 전통적인 진흥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는 낯선 것이 아니다. 이런 체제가 빚어낸 문제점, 대표적으로 예술인 없는 예술정책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지난 10년 간 지속되어 왔다. 예술인복지라 부르는 영역이 그러한데, 애당초 예술인복지가 예술노동이라는 말로 등장한 데에는 예술창작이 추상적인 미지의 영역으로 간주되면서 ‘가난한 물적조건’이 곧 ‘예술창작의 영감’으로 받아들지던 통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었다. 예술인복지법 그리고 예술인권리보장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예술창작의 가장 근본적인 물적 토대로서 육체를 갖고 생활해야 하는 시민으로서 예술인을 예술정책의 전면에 등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단순히 먹고사니즘으로 말해지지 않는 예술하는 시민의 권리로서 존엄하게 생활하고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는 권리를 사회 안에 각인시키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시도가 어느 시점에선 완전히 틀어졌다. 정확한 원인과 시기를 특정할 수 없으나 적어도 그런 현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 2025년 정부의 문화예술예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다. 특히 예술지원 사업에서 더 적나나하다. 당장 “왜”를 특정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증상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장래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분석에 도움이 될 것이다.
예술인에게 직접 주는 예산은 줄었다
2025년 예산총액은 2023년 이후부터 꾸준히 늘어왔다. 따라서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 증액이나 문화관광 부문의 증액이나 나아가 문화예술 분야의 예산 증액을 중심으로 하는 평가는 무의미하다. 문화예산 3%를 지향하는 총량적 접근에도 불구하고 예산의 순증과 예술 현장의 고사가 동시에 진행되는 역설은 2023년과 2024년의 현실을 통해서 단적으로 등장했다. 이런 사태는 총량적 접근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에 앞서 개별 사업의 미시적인 구조변화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대표적인 예술지원 사업으로서 ‘공연예술 진흥기반 조성’ 사업을 보자. 2023년 결산 기준으로 348억 원이었던 사업은 2024년 본예산 기준으로 221억 원으로 감액되었고 2025년에는 245억 원으로 편성안이 제출되었다. 지난 2년 동안 10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이 줄어든 것이다. 해당 정책사업의 예산 감소는 2024년에 ‘전국 공연예술 창제작 유통협력 생태계 구축’이라는 세부 사업에서 156억 원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해당 사업은 공연단체나 기획사가 제안하는 유형으로 공연을 제작하고 이를 지역 공연장과 연계하여 유통을 시키는 것이 골자인 사업이다.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가 주관한 ‘방방곡곡사업’과 한국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한 ‘창제작유통협력사업’이 이에 해당된다. 그리고 공연단체 공간지원사업이었던 ‘공연연습공간 조성 및 안전’ 사업이 기존 31억원 에서 2025년 6억 원으로 축소되었다. 공통적으로 예술단체를 예산지원의 최종적인 도달지점으로 삼았던 사업들이 전면적으로 폐지되었다. 실제 해당 항목의 성질별 현황을 보면 자치단체를 통해서 집행하는 사업예산은 16억 원 규모에서 58억 원까지 늘었지만 공연단체에 직접 지급하는 항목인 민간경상보조의 경우에는 334억 원에서 185억 원으로 줄었다. 사실상 공연단체 없는 공연예술 지원정책이 등장하게 되었다.
예술인복지법 제정 이후 단 한차례도 줄지 않았던 예술인복지사업 ‘예술인 창작안전망 구축’은 최초로 예산이 준다. 전년 대비 5.3%가 줄어드는데, 구체적으로 예술인파견지원 사업, 예술활동준비금이 각각 22억 원, 60억 원 줄어든다. 애당초 요구안이 삭감안이었다는 점에서 사실상 문화체육관광부가 해당 사업을 줄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이 두 사업의 특징상 사업비가 줄어들면 수혜 대상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즉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 참여하는 예술인과 창작준비금이라 불렸던 예술활동준비금을 받았던 예술인 수가 줄게 된다. 수요가 없어서는 아니다. 그나마 신설된 사업이 청년예술인 예술활동 적립계좌라고, 한달에 10만 원 저축하면 10만 원을 추가로 적립하는 사업을 2년 동안 지원해 주는 것이다. 정책대상자는 3,000명으로 한정되어 36억 원을 편성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에서 하는 청년내일저축계좌는 월 30만 원을 3년 동안 적립하는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상대적으로 2년에 480만 원의 자산형성이 전부인 청년예술인 사업과 비교할 때 최대 1천만 원 적립이 가능한 청년내일저축계좌가 더욱 실효성이 있다. 즉 청년예술인 적립계좌 사업은 예술인복지 사업의 축소에 대한 반대급부로 보여주기 위한 생색내기용 사업에 불과하다.
장르별 예술지원 정책 중에서 유독 ‘대통령 지시사항’을 달고 있는 시각예술 분야 ‘미술진흥기반 구축’ 사업은 2023년 270억 원, 2024년에 447억 원 그리고 2025년에 468억 원으로 순증했다. 그리고 앞서 예술인 혹은 예술단체에게 재원이 직접 흘러가는 민간경상보조를 중심으로 삭감되었던 것과 다르게 민간경상보조 지출이 2023년 156억 원, 2024년 219억 원에 이어 2025년에 245억 원까지 증가된다. 이는 매우 특이한 현상인데, 구체적으로 보면 ‘대한민국 미술축제’가 2억 원 가까이 증액되었고 ‘서예진흥사업’이 새롭게 신설되었다. 반면 미술 정책지원, 미술작가 지원 등이 소소하게 줄고 2024년 4억 6천만‘원 규모로 근근이 유지되었던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폐지되었다. 즉 시각예술 분야가 지속적으로 순증 된 것은 맞지만 개별 작가들에 대한 지원사업은 축소되거나 사라졌다.
지방자치단체로 주는 예산은 늘었다.
반면 대표적인 시설사업인 ‘문화예술 인프라 구축’ 항목은 전년 대비 증가폭이 62.4%에 달한다. 2024년 431억 원이었던 규모가 701억 원이 되었다. 세부사업으로 가장 증액이 큰 것은 평택 평화예술의 전당 건립 사업으로 2023년 10억 원이었던 것이 2024년에 263억 원으로 늘었다가 2025년에는 410억 원이 되었다. 이 돈은 고스란히 평택시 단일 지방자치단체에 집중되었다. 이 사업은 노무현 정부 시기였던 2005년에 행정자치부 주관으로 평택시를 지원하기 위한 개발사업으로 구상되었다가 미군기지의 이전이 확정된 후인 2013년에 기본 구상이 완료되고 3차례의 유찰 끝에 2022년 최초 착공에 들어간 사업이다. 총 사업비가 1,220억 원에 달하는 대규모 문화시설 건립사업이다. 매 정권마다 선물이나 보상처럼 주어졌던 문화시설인 셈이다. 이런 것이 2014년부터 시작된 총사업비 1,107억 원의 부산 국제아트센터가 있고, 2017년부터 시작된 871억 원의 양주 아트센터 건립이 있다. 양주시의 사례는 주민미군공여구역 발전계획에 의해 추진되었다는 점에서 앞서 평택 평화예술의 전당과 유사하다. 이건희기증관은 59억 원의 2024년 예산이 그대로 2025년으로 이월된다. 국제 현상공모 때문이다. 문화예술 인프라와 관련한 예산은 대부분 지방자치단체로 흘러간다는 특징이 있다.
앞서 살펴보았던 미술진흥 사업 중 세부사업으로 편성된 ‘대한민국 미술축제’ 사업 역시 지방자치단체를 경유해서 집행된다. 비슷하게 균형발전특별회계 상 지역콘텐츠산업 균형발전 지원이라는 사업도 원래는 지역의 콘텐츠 사업체에 대하여 직접 지원하던 것을 지방자치단체를 경유하여 집행하도록 했다. 실제로 2023년에 지방자치단체 자본 보조가 28억 원에 불과했는데 2025년엔 163억 원으로 증가한다. 즉 명목상 문화예술 사업이지만 사실상은 지역 개발사업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윤석열 정부의 문화예산 변화가 그 이전인 문재인 정부의 문화예산과 질적인 차이가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흥미롭게도 윤석열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은 거의 존재감이 없을 정도로 신규사업 비중이 적다. 즉 새롭게 만들어진 정책은 정권 초기 장애인 예술정책 일부를 제외하곤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업은 기존에 해왔던 것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며 단지 민간경상이전 방식에서 지방자치단체경상이전으로 집행방식을 바꿨을 뿐이다. 또한 기존에도 존재했던 지역 간 나눠주기식 대규모 문화시설 설치사업이 동시에 늘어난 예술인지원사업으로 감춰졌을 뿐 기본적인 사업구조는 과거 정부와 거의 변함이 없다.
이를테면 문재인 정부의 생활SOC사업의 규모화가 현 정부의 문화시설 사업으로 돌출되고 있을 뿐이다. 특히 놀라운 것은 예술지원 정책의 상당수를 소위 ‘문화분권 논리’에 의해 지방이양을 전제로 조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윤석열 정부는 특정한 사업을 티 나게 폐지하는 등의 무리수를 두지 않고 지역문화분권이라는 논리를 악용해서 지방자치단체의 일로 전환한다. 인프라 건설은 중앙정부가, 인프라 운영은 지방자치단체가라는 역할 분담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논리는 과거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구체적으로 깨진 적이 없다. 단지 노골화 수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확대된 예술인과 관련한 직접지원사업이 정부 주체에 의해 의도화된 의지라면 그 저변에 깔려있던 인프라 중심의 정책은 구조화된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단지 의도화된 의지가 부재할 뿐이다. 즉 정책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던 것을 안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윤석열 정부의 문화예술예산 문제를 좀 더 근본적으로 파고들어 규명해야 하는 부분이다.
왜 한국의 문화예술계가 특정한 당파성에 편향을 가지는가. 더 직접적으로 이상적인 정치적 지향보다 구체적인 현실 권력의 변화에 민감하게 되었는가. 과거의 수동적 동원이 현재의 능동적 동원으로 바뀌었는가. 한국의 예술인 지원정책 나아가 창작지원 정책은 단 한번도 시민으로서 예술인의 권리로서 제도화된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교체에 따라 해당 사업이 손쉽게 줄고 는다. 윤석열 정부의 문화예술예산을 평가하는데 가장 곤란한 부분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이라도 줄어든 예술지원 사업을 늘리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할수록 이런 예산구조는 바뀌기 힘들다.
한국문화예술‘진흥’정책이 내장한 구조화된 의지,
되감을 것인가 넘어설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사라진 예산을 복원하는 것이 현시기 당면한 예산 문제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점은 인정하나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에는 반대한다. 정말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정권만 민주당으로 바뀌면 그대로 복원될 사업들을 미리 주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오히려 민주당식의 문화예술 사업이 마치 문화예술 사업의 최선인 것처럼 여기는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하지 않나 싶다. 생각해보자, 문재인 정부의 문화도시 사업은 시범사업이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사업이 선정되는 이상한 모양새를 보였다. 이 모습은 과거 이명박 서울시장에 의해 진행된 뉴타운 재개발사업과 닮았다. 당시에도 너무 규모가 커서 부작용이 날 수 있으니 시범사업으로 해보고 제도적으로 보완하겠다고 했다가 너무 인기가 있어서 일 년에 차수만 바꿔서 재개발 지역을 우후죽순 뽑았더랬다.
사업의 내용은 다르지만 정책이 집행되고 예산이 사용되는 방식은 과거 문화도시 사업과 뉴타운 재개발 사업이 크게 다르지 않다. 소위 골목상권 운운하면서 예술을 동원한 젠트리피케이션이 구도심 활성화인 것처럼 꾸미던 것 역시 지역문화활성화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일 년에도 몇 개의 지역 영화제가 공공지원을 바탕으로 등장하던 때도 있었고, 평창동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이라는 식으로 정당화하면서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문화 분칠을 하던 것도 문재인 정부의 일이다. 당시 수많은 문인들을 포함한 예술인들이 얼마나 많은 행사에 동원되었나. 사실 이렇게 중앙정부가 자신의 시책을 위해서 예술지원 사업을 활용하는 것 자체가 지나치게 전근대적인 일이다.
예술인복지정책도 마찬가지다.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이 새로운 예술인들의 사회적 일을 만들어 내고 있는가, 창작준비금은 당초의 목적대로 긴급지원의 의미를 살리고 있는가. 시간이 지나면서 어물쩡 경계를 흘려버리고 규모만 늘려서 착시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정책과 사업을 모호하게 만들어 왔던 것 아닌가. 그래서 어느 순간 예술인복지재단의 사업도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사업도 모두 ‘예술창작지원’이라는 이름으로 납작하게 눌러서 편의적으로 이용해 왔던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것을 과거와 같이 복원한다면 이는 다시 현재와 같이 사라지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예술에 대한 정부지원이라는 것이 구체적인 예술인의 몫으로서 어떻게 정당화되고 보장되어야 하는가와 같은 논의를 하는 것이다. 즉 예술의 특수성으로 계속 미끄러지면서 고립된 영역에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예술을 하는 시민으로서 공동의 공론장 내에서 공공재정이라는 공유자원을 어떻게 분배받을 것인지에 대해 다른 시민들과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문화예술정책은 모두 동료와 이야기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부와 얼마나 잘 연결되는가 혹은 유착하는가의 문제에 가까웠다. 그러다보니 서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에서는 지금처럼 다른 장르의 예술인들이 한데 모여 ‘문화예술정책’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가 얼마나 있었나. 적어도 윤석열 정부의 문화예술 예산은 돌연변이가 아니며 오히려 아주 오랫동안 한국의 문화예술‘진흥’ 정책이 내장한 구조화된 의지의 발현이라는 면에서 이야기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다시 앞 장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음 챕터로 건너갈 수 있겠다.
김상철.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문화연대 집행위원. '밥먹고 예술합시다'라는 집담회를 계기로 예술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인들의 공정한 보상과 문화산업 내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모임인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창립에 참여했다. 현재 예술인생활안정자금 관리위원회 위원, 한국예술교육진흥원의 윤리경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나라살림연구소에 적을 두고 재정과 참여예산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도 겸하고 있다.
'이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슈: 2025년 문화부예산 ②] 기획재정부의 재정놀음에 휘둘리는 문화예술교육 (김상철) (0) | 2024.10.11 |
---|---|
[이슈: 문화예술교육 지역화 현장 인터뷰 ⑤] 연대와 협력 말고는 방법이 없다 – 서환희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장 (안태호) (0) | 2024.10.11 |
[이슈: 2025년 문화부예산 ①] 짝퉁이 판을 치는 (김상철) (0) | 2024.09.06 |
[이슈] 다시 수출의 시대? 생태계에 대한 이해도, 전문성도 보이지 않는 밀어붙이기-“2024년 문체부 국제문화정책 추진전략” 리뷰 (1) | 2024.06.23 |
[이슈: 문화예술교육 지역화 현장 인터뷰 ④] 파트너를 찾고, 협업을 통해 함께 성장한다 - 서하나 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장 (0) | 2024.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