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예술강사 지원사업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로 줄임) 사업으로는 폐지되는 수순을 밟고 있다. 당장 2024년 학교예술강사 사업에 배정된 예산이 287억 원이었는데 2025년 예산안에는 80억 원이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해당 예산은 42억 원의 사업운영비와 처우개선비로 4,805명에 대한 사회보험료 지원사업으로 38억 원이 반영되었을 뿐이다. 연 80만 원 수준의 사회보험료 지원사업 규모와 사업운영비 규모가 별 차이가 없으니 사실상 사업 폐지라 봐도 무방하다. 아니, 그것보단 사실상 재정적 협박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본다. 42억 원의 예산은 2024년 예산 기준으로 보면 2달 정도 운영할 수 있는 비용으로 3월 개학 전까지 교육당국이 알아서 문제를 풀라는 요구다. 문제는 이런 과정이 정작 해당 정책과정에 포함된 국민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문화부와 교육부의 힘겨루기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학교예술교육이 사라진다고 문화부의 조직이 줄어들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예술강사를 생업 삼아 활동을 하는 이들은 당장 생계가 막막해진다. 당장 내년도 학교 교육일정을 잡아야 하는 학교 입장에선 방과 후 활동과 관련해 머리가 아파오고 더더군다나 학생들은 이제까지 보던 학교예술강사를 갑자기 보지 못하는 일을 겪어야 한다. 이런 비대칭성은 정부의 재정운용이 얼마나 관료 중심적인지를 보여준다.
설계하는 기재부, 충성하는 문화부
적어도 학교예술강사 문제만 놓고 보면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꼴이다. 기획재정부는 2021년부터 KDI를 동원해서 현행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를 흔들고 있었다. 2021년 기준 교육부문 국가재정운영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현행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국세에 정률로 지급하는 방식에서 학령인구 변화에 연동하는 방식으로 바꾸자는 안을 제시한 것이다. 현재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내국세의 20.79%로 조성되며 이는 초중고 교육비 재원으로 사용하도록 정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해당 재원은 지방교육청에서 편성하고 집행한다. 기획재정부의 논리는 간단하다, 학생이 줄어드는데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늘어나는 것이 맞냐는 것이다. 오히려 그 돈을 다른 데 쓰면 좋겠다는 것이고 실질적으로는 기획재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내국세의 20.79%에 대해 통제하고 싶다는 것이다. 현재 윤석열 정부의 국세감면으로 인해 세입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기획재정부는 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싶다는 바람보다는 ‘자신들의 통제권 밖에 있는 재정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욕망에 가깝다. 그런데 이것을 하려면 우선 교육청이 동의해야 한다. 그래야 법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직선으로 선출되는 교육감의 힘은 충분히 강하고 법률을 바꿔야 하는 국회의원들은 이들과 긴밀하게 연계될 수밖에 없다. 즉 충분히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기획재정부 관료들의 손을 들어줄 곳이 없다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학령인구 감소 운운하면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줄여야 한다는 것 자체가, 정부 스스로 학령인구 감소 = 저출산이며 결국 정부의 정책 실패로 인해 저출산이 악화되고 있다는 자기 인식의 부재를 보여줄 뿐이다. 학령인구 저하는 현상이 아니라 문제로 파악해야 하는데 기획재정부나 KDI 같은 기관에선 이를 조건으로만 접근을 하니,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문제에 대한 사회적 지지가 생길 수가 없다.
그래서 다음으로 든 꼼수가 ‘사업 던지기’다. 원래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게 국가사무를 이관하려면 반드시 사전협의를 거쳐야 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재정대책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물론 한국의 기획재정부는 재정분권을 위해 지방소득세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빌미로 국가사무를 떠넘기는 조직이긴 하다. 재정분권은 재정자율성을 위한 조건인데 사업을 던지면 자율성이 높아지나.
이번 논란이 되는 학교예술강사 사업이 바로 이 경우다. 문제는 기획재정부야 재정 통제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그런 방침을 요구했다 하더라도 주무부처인 문화부는 뭐냐는 것이다. 해당 사업은 한 편으로는 학생들에게 예술교육을 제공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인에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업의 성격을 가진다. 즉 문화부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정책 고객인 예술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업이다. 상식적인 문화부라면 재원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사업만 축소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예술인들이 보게 될 것임으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의 이전이 확정되면 줄이겠다고 해야 한다. 솔직히 무슨 정부 조직위 구성하는데 인건비도 편성하지 않고 문화부 공무원 파견하라 그러면 보낼 것이냐는 말이다. 하지만 문화부는 2025년 예산안에 첨부된 설명자료에 “학교 관련 예산의 지방교육재정으로의 단계적 이관에 따라 20,649백만 원 감액”이라고 명시했다. 최근인 9월 26일 대구에서 개최된 전국 교육감협의회는 명시적으로 학교예술강사 지원사업에 대해 국고지원을 요구했다. 학교예술강사 예산에 대해서 전혀 조정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문화부는 그저 기획재정부의 말만 듣고 스스로 지켜야 할 정책대상이자 자기 부처의 존재의의 중 하나인 예술인들을 내버리는 결정을 한 것이다.
늘봄학교 사업의 모순
그래도 적극적으로 생각해 보자.. 우선 현행 학교예술강사 제도 자체의 유효성에 대한 문제다. 어떤 정책이든 시간의 풍화를 겪게 되고 이는 당연하게도 정책변화로 이어져 정책목표의 재설정과 정책집행경로의 조직화로 이어진다. 최근 <문화정책 논총>에 실린 김혜인의 ‘문화예술교육정책의 성과의 한계에 대한 고찰’은 관련된 이해관계자와 전문가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 현재 정책의 진단과 변화 방향을 진단한다. 시기적으로 현 시기 문화예술교육 정책에 대해 가장 포괄적으로 다루는 논문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현행 문화예술교육이 1) 가장 대표적인 수요자 중심의 정책이라는 위상이 있고 2) 규모가 있는 예술인의 일자리 사업이라는 특징과 3) 지역협력체계를 전제로 설계된 대표적인 정책 중 하나라는 평가가 제시된다. 그리고 각각의 내용들이 도전받고 있는 환경과 인식의 변화가 확인되며 이에 맞춰 현재의 지역협력체계 내에서 기존의 중앙집중형 모델에서 이후 지역중심형 모델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사회적 논의와 합의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즉 중간 과정을 생략한 급격한 정책변화는 오히려 기존 문화예술교육정책이 만들어놓은 성과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의 외에도 학교예술강사 제도로만 국한을 하더라도 현행 ‘문화예술교육사’라는 국가 인증제도를 졸속적으로 만든 문화부의 정책 실패에 대한 것이나 공공기관 간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지역 지원기관을 대학 산학협력단이 ‘사업으로서 챙겨가는 구조’에 대한 것 역시 진지하게 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문화부가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제안하거나 시행한 바가 없다. 따라서 정책 평가에 의한 사업조정이라는 맥락은 문화부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다음 논리로 가능한 것이 정부 간 역할 분담 논리다. 이것은 기획재정부도 강조하는 것인데, 학교에서 하는 일은 학교가 책임지도록 해라, 즉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지출하라는 것이다. 정책의 책임과 평가 그리고 환류 체계를 고려하면 현행 학교예술교육 체계는 복잡하긴 하다. 예산이 나오는 곳과 개별 예술강사가 고용계약을 맺는 곳 그리고 강사를 지원하는 곳과 실제로 일하는 곳이 엄밀하게 말하면 별도의 행정 당사자가 된다. 즉 한 명의 예술강사는 다수의 행정기관과 연관되는 복합적인 구조이기 때문에 이를 좀 더 단순하고 분명하게 바꿀 필요는 있다. 그런데 이를 고려하면 올해부터 시행하는 ‘늘봄학교’라는 사업이 걸린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총선을 앞두고 지역마다 돌아다니며 실시한 정책토론회(라 하고 공약발표회였던)에서 늘봄학교 정책을 발표한다. 지난 2024년 2월 5일 경기도 하남의 신우초등학교에서 발표한 늘봄학교 계획은 당장 3월부터 전국 2,000여 개 초등학교에서 오후 8시까지 다양한 프로그램과 돌봄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2월 28일 문화부는 초등학교 1학년생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 체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다. 여기엔 미술, 무용, 연극, 음악 등 다양한 예술 분야를 넘나드는 융복합형 문화예술교육이 포함된다. 당장 100여 개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일선 학교에 제공한다는 것이다. 2025년 예산안에도 기존에 없던 늘봄학교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및 연수지원 항목으로 32억 원이 신규 편성되었다. 당장은 작지만 이후 얼마나 늘어날지 모르는 예산이다. 그런데, 늘봄학교의 프로그램과 기존의 학교예술강사 프로그램은 뭐가 얼마나 다른가? 기획재정부가 말한 학교에서 하는 일은 학교가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에 따르면 늘봄학교는 왜 문화부가 직접 사업을 하고 재정을 부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기획재정부야 그렇다 하더라도 기획재정부의 논리를 받아서 학교예술강사 예산을 줄였던 문화부가 외려 그와 유사한 신규 사업을 수용하는 것은 좋게 볼래야 좋게 볼 수가 없다. 문화부는 이런저런 정부 정책에 예술인을 대주는 ‘인력사무소’를 자처하게 된 걸까? 이게 맞나?
문화’사업’부의 노골화
문화부가 학교예술강사 사업을 대하는 태도는 문화부의 정책논리가 실질적으로 바뀌고 있으며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블랙리스트 이후 문화부는 형식적이나마 최소한의 거버넌스 구조를 유지하면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애를 써왔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블랙리스트에 대한 법적 유효기간이 끝나고 소위 ‘블랙리스트 실행자’들이 관료 권력으로 복귀하면서 이런 형식적인 태도는 아예 사라졌다. 자유의 다른 말인 문화를 다루는 정책 논의 과정에서 공론장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각종 간담회 명목으로 진행되는 자리에선 자료가 배포되었다가 회수되기를 반복한다. 국가안보와 관련된 일도 그렇게는 안 할 텐데, 최소한의 사회적 논의도 배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웃기는 일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이런 일을 용납하는 문화예술계 내의 수용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블랙리스트라는 문제를 다루면서 청와대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권력에만 집중했지 오히려 실행기구로서 관료기구에 자리하고 있는 행정 권력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중립적으로 접근했고 그 태도의 후과를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2025년 문화부 예산은 그나마 형식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던 ‘예술인을 위한 정부조직’이라는 외피를 완전히 벗어던진 예산이라고 볼 수 있다. 비단 학교예술강사 사업만 놓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각종 창작지원사업에 대한 지원 방식 역시 이런 특징을 보인다. 이는 다음에 살펴본다.
김상철.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문화연대 집행위원. '밥먹고 예술합시다'라는 집담회를 계기로 예술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인들의 공정한 보상과 문화산업 내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모임인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창립에 참여했다. 현재 예술인생활안정자금 관리위원회 위원, 한국예술교육진흥원의 윤리경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나라살림연구소에 적을 두고 재정과 참여예산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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