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특집: 2024년 문화예산 분석 ⑤] 문화예술정책 정당성의 근거는 무엇인가

CP_NET 2024. 1. 7. 21:14
편집자 주: 2024년 예산안이 국무회의를 거쳐 이제 국회 논의를 앞두고 있다. 발표된 정부안의 문화예산에서 사업의 폐지 축소가 드러나면서 비판도 커지고 있다. 이에 [문화정책리뷰]는 2024년 문화예산안 분석을 특집으로 마련했다. 사업의 축소 폐지 혹은 증액만을 따지기보다는 문화예산의 흐름과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예산을 통해 문화정책의 현재를 분석하고자 한다.
 
[특집: 2024년 문화예산 분석 ①] 2024년 문화재정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나
[특집: 2024년 문화예산 분석 ②] 자유와 연대? 이 텅 빈 말이 의미하는 것
[특집: 2024년 문화예산 분석 ③] 지정교부를 공모사업으로 전환하는 것의 의미
[특집: 2024년 문화예산 분석 ④] 국회 예산 심의의 절차, 쟁점, 결과

 

 

 

영어단어인 civiccivil은 동일한 어원을 가지고 있지만 의미는 다르다(일반적으로 civic은 공민, civil은 시민으로 번역하나, 여기서는 단어의 유사함이 가진 뉘앙스를 위해 영어 표기를 그대로 사용한다). 한국과 같이 서구화를 골자로 하는 근대화 자체를 식민지 시기에 경험한 나라는 부르주아 혁명을 통해서 스스로 왕정과 결별한 정치적 주체로서 시민을 경험한 적이 없다. 물론 군사 독재와의 대결을 통해서 저항적 민중에 가까운 시민들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입장에서의 수동적 형태이지 새로운 국가를 만드는 경험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에게 국가에 대한 상은 시민이라는 집단적 주체의 자기 구성으로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으로서 나 혹은 집단으로서 우리에게 유리한가 그렇지 않은가로 판단되는 타자 구성으로 나타난다. 그러니까 우리가 한다는 것이 아니라 너는 이러해야 한다는, 요구화 된 욕망의 투영이 사실상 우리가 경험하는 시민의 최대치라고 할 수 있다. 예술학과 교수인 파스칼 길렌pascal gielenciviccivil을 구분하며 이 둘의 차이를 법의 경계에서 찾았다. 이를테면 civic의 개념은 이미 제도화된 틀 즉 합법적 규칙과 규정 하에서의 행동을 전제로 한다. 참여와 의무가 강조되고 그에 대한 활동이 급진화되더라도 그것은 현재 법률구조 하에서 합법적이라 해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행동으로 제약된다. 즉 스스로 우리의 행동은 합법이야라고 확신이 전제되는 한 해당 행위는 civic 즉 시민의 의무에 복무하는 활동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civil의 특징은 모호성이다. 국가는 하지 말았으면 하지만 금지하지는 않은 것, 시장은 관심이 없는 것을 대상으로 하는 영역이 바로 civil의 행동이 벌어지는 공간이다. 불법적인 행위가 아니라 불법과 합법의 구분 이전의 것을 의미하는 실천과 행동이 civil을 구성한다. 발터 벤야민의 유명한 논문 폭력 비판에 대하여에서 제시되는 폭력의 중요한 실천적 형식으로서 법 제정적 속성의 폭력이 바로 civil의 실천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예술지원정책의 위치 짓기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사실 문화예술정책 더 정확하게는 예술정책과 재정의 관계를 고려할 때 가장 먼저 자문해야 하는 것과 닿아 있다.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 것은 예술(창작)행위인가 아니면 창작행위를 하는 예술인인가, 그리고 각각은 어떤 이유로 타당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으며 어떤 공공재정을 통해서 지원하는 것이 적절한 호응관계를 가진다고 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프랑스의 문화예술정책은 외피로는 한국과 많이 닮아있다. 정부 부처로 문화부를 가진 국가로 대표적인 곳이 프랑스이며, 상당히 하향적인 문화정책의 특징이 관찰되는 것도 프랑스다. 그러다 보니 형식으로 한국의 문화부나 관련 전문가들 중 일부는 한국의 문화정책을 프랑스의 문화정책과 유사하다는 식의 해석을 내놓기도 하는데 이는 크나큰 오해가 있다. 어떤 국가의 정부 형태는 해당 국가가 역사적으로 형성한 사회적 관계의 고정물로서 의미를 지닌다. 즉 최종적인 결과물이 유사해 보이더라도 만드는 과정이 다르다면 그것을 최종적으로 다루는 방식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역사적 맥락에서 프랑스와 한국의 가장 단적인 차이는 프랑스의 문화부는 문화예술인들의 구체적인 국가 만들기 과정에서의 직접적 참여가 만들어놓은 결과물이라는 것이고, 한국의 문화부는 정부의 홍보처인 공보처의 확장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문화예술 진흥의 골간이 되는 문화예술진흥법 자체가 유신 체계 하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애당초 한국의 저항적 민중예술이 정부 지원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어 냈다는 것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문화예술지원 정책은 과연 어떤 맥락에서 연결된 역사적 실체인지를 진지하게 자문할 필요가 있다. 지난 연재글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강조했던 것은 예술인과 예술단체를 보조사업자로 만들어서 지원하는 현행 예술지원 구조는 장르별 칸막이를 골자로 하고 개별 공모식 보조사업으로 특화된 현행 문화예술진흥법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점이다. 즉 역사적으로 온정적이고 선량한 주사업자로서 정부이든지 아니면 엄격하고 편파적인 주사업자로서 정부라는 차이가 있을 뿐, 소위 합법성의 기준에서 놓고 보면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

 

그나마 예외적인 상황이 21세기 이후에 빠르게 정착된 예술인 복지에 대한 정책이다. 예술인들의 사회적 죽음 하에서 만들어진 예술인복지법은 애당초 정부의 예술지원정책이라는 틀에서는 고려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초에 예술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제안된 예술 창작을 사회적 노동으로 위치 짓고 이에 대한 공공재정의 사용을 지원정책의 맥락보다는 권리보장의 맥락에서 제기한 것은 중요한 전환의 계기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인을 정책의 중심으로 등장시킨 예술인복지 체계는 급격하게 문화예술진흥 체계로 흡수되었다. 수많은 정책들이 장르별 특수성으로 휘발되었고 예술인지원정책은 사실상 예술지원정책의 수정된 형태로 제도화되고 만다. 이는 소위 블랙리스트라는 예술인 배제 정책이, 예술인복지정책의 고도화라는 맥락과 동시에 발생한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정책으로 구체화된다. 그리고 그것의 완성은 바로, 블랙리스트 실행 기구였던 문화부가 다시 예술인의 권리보장에 있어서 당사자가 되는 권리보장법 체계의 등장이다. 이와 같은 변화가 전혀 이질감 없이 자연스러운 정책의 발전과정으로 등장한 것 자체가 한국의 예술지원정책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보여준다.

 

 

예산 복구라는 문제설정, 예술인이라는 보편 시민은 누가 대의하나

 

2024년 정부 예산안이 나왔을 때 다양한 장르 영역에서 기존 예산에 비교해서 줄어든 부분에 집중해서 사회적 논란이 만들어졌다. 한국의 예술지원정책이 기본적으로 보조사업 구조로 되어 있고 이는 보조사업자에 대한 개별지원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 한 보조사업의 축소는 공공재정을 계속 지원받는 측과 그렇지 못한 측을 즉각적으로 구분한다. 그래서 정부 예산안에 대한 논란은 문화예술 생태계의 집합적 목소리라기보다는 피해를 보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사라진 예산을 복원하는 문제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설정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접근법은 구조적으로 유도되었다는 측면에서 개별 당사자들의 문제라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문화예술 재정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삭감 사업의 복원으로만 집중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더구나 국회 논의사항을 검토하건대 이와 같은 개별적인 사업의 복원이라는 과정 역시, 대의기구인 국회 내에서조차 제대로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상임위원회 논의과정에서도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논의과정에서도 삭감 사업에 대한 복원은 단지 매우 미미한 복원에 그쳤을 뿐이고 오히려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한 근본적인 구조에 대해서는 전혀 접근하지 못했다. 이를테면 정부의 중장기적인 지역문화 전략으로 제시된 문화도시 정책은 하루아침에 축소되고 왜곡되기에 이르렀지만 국회에서의 논의에선 라는 질문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그 상황에서도 자기 지역만 챙기자는 식의 소지역주의만 나타났을 뿐이다. 어렵다는 재정상황에서도 반복적으로 난립되는 지역 사찰 예산들은, 문화재관람료의 국고지원이라는 맥락 하에서 사실상 이중 삼중의 중복 지원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큰 폭으로 늘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결론은, 보조사업을 법대로관리한다는 2024년 예산편성 기조의 재확인이다. 제도화된 민주주의의 형식으로서 대의민주주의는 실제 예술인라는 시민을 우회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지역화된 대의민주주의는 지역주민의 정체성을 지닌 시민들을 대의할 뿐 예술인이라는 보편적인 시민을 대의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공정하지 않은 정부의 공정성 관리

 

2024년 정부의 문화예술 예산이 가진 가장 중요한 특징은 블랙리스트 실행의 주체인 국가기구가 보조사업의 공정한 관리자로 등장한 것이다. 정부는 2022년 결산에서부터 보조사업에 대한 엄정 관리를 전제로 그동안의 문화예술지원의 역사적 합의를 파산시켰다. 이것을 합의로 말한 이유는, 그동안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보조사업으로 집행하는 것을 예산집행 상의 편의로, 무엇보다 팔길이 원칙이라는 예술지원의 원칙을 관철시키는 수단으로 간주했던 관습적 특징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지난 연재글에서 사례로 들었던 예술단체를 매개로 하는 보조사업은 사실 보조사업의 목적과 동시에 해당 예술단체에 대한 간접 지원이라는 맥락을 통해 평가되어야 하지만 윤석열 정의 문화부는 이를 보조사업자를 통한 문화사업으로 접근한다. 그래서 서슴없이 동일한 사업자가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것자체를 문제삼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올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국제도서전을 둘러싼 대한출판문화협회와의 갈등은 문화부 장관이 나서서 출판계의 이권 카르텔운운하고 급기야 고소를 진행하는 촌극으로 발전했다. 보조금 정산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인데 정부가 자랑하는 국고보조금관리시스템인 ‘e-나라도움의 정산 내역을 보더라도 이미 정산 내역에 대한 회계검사와 회계 자료에 대한 주무 부처의 확인 절차가 확인되는 상황에서 사실상 출판계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지난 10월 한국출판공로상 특별공로상에 박만권 문화부 전 차관에게 시상한다. 비틀어서 보면, 출판계를 둘러싼 갈등을 문화부 관료체계와의 갈등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특정한 정부 지향에 의한 갈등으로 보려는 관점이 투영된 것이다.

 

실제로 2022년 결산에 대한 심사보고서를 보면,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보조사업의 경우에는 문화부 집행률이 50.3%에 불과해서 전체 부처 중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고 민간보조사업의 경우에는 환경부와 여성가족부에 이어 다음으로 낮은 민간보조사업 집행률을 보였다.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보조사업이 미흡한 것은 지방자치단체가 보조사업의 대응사업비를 마련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기편성된 보조금을 문화부가 집행하지 않아서 발생한다. 어느 쪽이든 문화예술인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사유다. 지방선거 사유로 단체장이 바뀐 단체장이 국고보조사업의 매칭 사업비를 반영하지 않아 사업 집행이 되지 않은 것은 보조사업화된 문화예술 사업의 고질적인 문제다. 이미 편성된 국고를 문화부가 집행하지 않는 것은 국회에서 확정된 예산을 별다른 소명없이 집행하지 않는, 사실상 불법적인 행위에 가깝다. 민간보조사업의 집행률이 낮은 부처가 환경부, 여성가족부, 문화부라는 것은 보조사업 구조가 얼마나 정부 통제에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하나같이 모두 지난 정부에 비해 현 정부에서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약화된 곳이라는 점에서 보조사업 구조가 정부의 가치 편향을 관철시키는 손쉬운 수단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2024년 정부의 문화예술예산은 정부에 의한 예술지원 정책의 통제가 가장 노골적으로 등장한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역설적으로 유신체제에서 등장한 문화예술진흥법의 작동원리가 가장 정확하게 구현된 예산이라고 할 수 있다. 강조하지만 이는 불법적인 과정이 아니라, 보조사업 관리라는 제도화된 합법적 근거를 가지고 작동하는 과정이다. 블랙리스트에 대한 사후 과정이 한국 문화관료들의 제도적 자율성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면서 흐지부지되었다면 2024년 예산은 문화관료들이 스스로 정부재정의 중립적인 관리자를 자임하는 태도로 명확하게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혜적 지원인가 시민적 권리의 양식인가

 

정책은 정부의 수단이 아니다. 정책을 공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들의 공적인 집합적 실천으로서 여긴다면, 정책의 기원은 정부가 아니라 시민에 놓여야 한다. 특히 과거와 다르게 보편적인 시민성이 확대되고 아카데미의 전문성 독점이 부정되는 시기에 더더욱 정책은 시민들의 공적 문제해결 수단으로 간주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새롭게 정립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현재와 같이 정부가 독점적으로 예술정책의 수립과 집행 과정을 합법성과 불법성의 기준으로 통제한다면, 새로운 정책은 문제와 해결의 타당성이라는 기준을 통해서 새롭게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이런 새로운 정책 만들기는 기존의 정책 과정이 전제하는 합법성을 넘어야 한다. 한국의 문화예술 정책의 과정이 보조사업에 불과하다면 어떤 정책도 보조사업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리고 보조사업은 기본적으로 관료들의 통제를 위한 최적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에 새로운 사업의 혁신성이 극단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현재의 문화예술 예산체계 자체를 부정하는, 정당성의 문제로 나가는 것이다. 단순하게 행정이 주장하는 행정 규칙의 수준에서 확립된 합법성이 예술정책의 정당성에 유일한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2024년 정부 예산을 둘러싼 대응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보조사업을 전제로 한 예산의 복원이라는 목적을 전제로 한 이상 은연중에 정부관료에 의해 통제되는 합법성의 구조를 수용하게 되는 결과가 된다. 이 부분은 촘촘히 따져보아야 하는 부분이다. 예산이 확정되었기 때문에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산이 확정됨으로써 분명하게 확인한 결과를 바탕으로 기존과는 다른 접근을 고민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서두에서 제기한 civiccivil의 문제설정으로 돌아가 보자. 예술지원 정책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확인되어야 하는가. 일차적으로 문화예술계라는 당사자성의 영역이다. 주어진 보조사업이 아니라 필요성을 바탕으로 새롭게 고안된 예술지원이라는 맥락이 만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비예술인 시민들이 예술지원 정당성의 근거가 되도록 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국가를 만든다는 경험이 부재한 근대국가 한국의 상황에서 다른 어떤 영역보다 예술의 영역이 새로운 국가의 모습에 대한 상을 미리 구체화하는 것은 어떤가. 가능성의 질문이 현존하는 체계 내의 질문이라면 필요성의 질문은 존재해야 하는 어떤 상태에 대한 질문이다. 그러면서 가장 구체적이고 분명한 제안을 마지막으로 연속한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문화부가 없는 국가의 문화예술정책은 불가능한가. 이는 문화예술정책에서 정부의 역할이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공적 기구로서 정부의 기능을 하나의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독점하는 체제가 불가피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해보자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문화부가 없는 공공 예술정책에 대한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우린 이미 2024년 정부 예산을 경유하면서 그와 같은 질문지를 받은 셈이다.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직면할 것인가.

 

 

 

* 이 글의 서두는 2016년 서울시립미술관이 주최한 미디어시티 서울 2016’의 부분이었던 더 빌리지프로젝트의 자료집인 모두의 학교에 수록된 파스칼 길렌의 사이에 베팅하라: 예술, 교육과 시민 공간에 대한 몇 가지 단상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 본문의 2022년 결산 및 2024년 예산에 대한 국회 심사자료는 국회의안정보시스템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검색어로 예산, 결산을 치면 확인이 가능하다.( https://likms.assembly.go.kr/bill/main.do )

 

 

 


김상철.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문화연대 집행위원. '밥먹고 예술합시다'라는 집담회를 계기로 예술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인들의 공정한 보상과 문화산업 내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모임인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창립에 참여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제1기 현장소통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예술인금고의 전 단계인 예술인생활안정자금 관리위원회 위원이다. 현재는 문화/예술 재정과 예술활동과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2022년에 '예술인의 사회적 지위와 가치에 대한 연구'(한국예술인복지재단)'동네 예술일자리 연결센터 실행방안 연구'(성북문화재단)의 책임연구를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