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정책리뷰]는 문화예술계의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됨에 따라 호외를 발행합니다. 코로나19 전염병 위기 관련 이슈, 현장 소식, 위기 분석 등을 별도 간기 없이 발행합니다. 현장을 기록하고 대응을 모색하는 일에 함께 하겠습니다. - 투고를 받습니다. 투고하신 원고는 [문화정책리뷰] 편집회의를 거쳐 채택될 경우, 호외 혹은 정기호로 발행합니다. (채택 여부는 편집회의 후 개별 연락드립니다.) 발행된 원고에 대해서는 소정의 고료를 드립니다) |
“나는 마스크를 쓰는 것보다 교과서에 수가 많아져서 수업을 더 많이 해야 되는 거보다 책상이 더 좋아진 거보다 문제들이 더 어려워진 거보다 친구들과 손도 못 잡는 것이 더 싫다. 왜냐하면 오랜만에 본 친구와 더이상 친해질 겉(것)같은(친해질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3학년 어린이가 쓴 일기의 일부입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급변한 일상 속에서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체감하는 변화의 진폭은 더 크지요. 당연히, 의례적으로 가야 했던 학교가 닫혔고 친구들과의 접촉이 금지되었습니다. 온라인을 통해 개학을 하고 영상으로 수업을 시청하고 있어요. 비대면, 비접촉이라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일상생활의 제약은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습니다.
비대면, 비접촉 방역지침은 문화예술교육도 바꾸고 있습니다. 예술교육은 온라인 콘텐츠로, 접촉 없는 접속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온라인을 통한 예술경험의 가능성을 긴급히 모색해야 하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모색과 동시에 대체되고 제한된 감각경험을 몸의 경험과 예술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어린이의 일기장에서 우울과 함께 제한된 감각의 열망은 어디로 향하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놀이하는 인간과 현대예술교육
인간이 태어나서 자라나는 과정은 대면과 접촉에 의한 경험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온몸으로 만지고 듣고, 맛보고 대지를 두발로 딛고 제 몸을 지탱하는 일련의 과정을 발달이라고 부릅니다. 온몸의 경험이 지식이 됩니다. 나의 감각을 통한 경험은 사전적으로 전달되는 방식과 전혀 다릅니다. 어린이들이 파악한 세상과 사물의 감각적 경험은 부분적이고 매우 좁으며 과장되거나 개별적이며 심지어 왜곡된 것처럼 보이지요. 흥미로운 것은 이 시대가 어린이들이 마음껏 착각하고 비틀어 세계를 인식하고 재구성하는 것을 ‘발달의 미숙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꼭 필요한 시각 즉, ‘예술성’과 ‘놀이성’으로 정의하고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이 몸을 통해 세계를 경험하고 해석하며 이를 그림과 노래, 언어와 비언어로 드러내는 과정은 곧 스스로 관찰한 것, 강렬한 경험을 스스로 편집하는 능력입니다. 타인 그것도 어른들에 의해 편집되어 소개되는 세상을 보는 것보다 앞선 중요한 발달과업입니다.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이 인간 성장의 한 시점, 어린이 시기를 닮고 싶어 했는지 떠올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술이 어린이들의 놀이와 세계에 주목하는 것은 현대의 예술교육의 관점만은 아닙니다. 호이징가가 『호모루덴스』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어린이의 놀이하는 본성은 성장의 한 시기에 국한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스튜어트 브라운은 『플레이, 즐거움의 발견』에서 유생연장(幼生延長, neotany)의 개념을 소개하며 유년기의 놀이적 본성을 성인이 되어서까지 유지하는 능력을 문명을 창조하는 원천이자 인간의 사회적인 결속과 적응에 중요한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놀이라는 것이 어린이만의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동인이며 그 반대의 상태는 ‘일’이 아니라 ‘우울’이라고 말합니다. 마치 어린이와 같은 호기심을 유지하고 새로운 정보를 마음껏 조합하며 즐거움을 표현함으로 우리 자신과 타인의 가장 좋은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놀이’이며, 이러한 기회를 잃어버린 상태가 ‘우울’이라는 것이지요. 이는 현대의 예술교육이 예술의 특별한 표현방법을 익히게 하거나 기술적인 측면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적 본성을 깨우고 여럿이 함께 창조하는 즐거움에 가치를 두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정의내릴 수 있습니다. 이 세계와 동떨어진 듯 보였던 영감 어린 뮤즈의 세계가 문화예술을 경험함으로써 누구나 누리고 있는 일상으로 초대되었습니다. 일상 속에 초대된 예술은 ‘예술 하는 마음’, ‘창조적인 놀이본성’에 주목하여 감각을 깨워 삶을 더욱 풍요롭고 다채롭게 하는데 기여하고 있지요. 이제 그 대상이 어린이와 청소년을 넘어서 사회 다양한 계층의 성인과 가족들, 독특한 관심사로 모인 사람들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술경험에서 미적 체험의 의미가 강조되면서 예술가에 의해 창작된 작품의 결과물을 ‘감상’하는 것만이 아니라 창작하는 과정에 주목하고, 일상에 창작의 영역을 들임으로써 삶을 풍요롭게 하고자 하는 의식적인 태도와 연결됩니다. 예술을 과목으로 구분해서 학습하게 하는 시대에서 나아가 우리는 놀이하는 삶, 예술을 통한 자기성찰을 일상에서 이루고 사회구성원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는 유연한 태도가 중요해진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나다움의 창의성과 미래사회
코로나19는 우리 삶을 한 차례 더 바꾸고 있습니다. 그 변화를 무엇이라 부를지 논자마다 다르겠지요.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변화를 제4차산업혁명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이 무엇이건 우리는 문명적 변화 앞에 있고, 변화는 더 가속화될 것입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사회 앞에서 인간이 가진 ‘유연성’과 ‘창의성’은 더욱 소중한 능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창의성을 정의하는 다양한 개념이 있습니다. 예술에서 창의성이란 대치될 수 없는 고유한 개별적 경험을 의미합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시대에 전무후무한 놀라운 아이디어만이 창의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나다움’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놀이를 통해 세계를 자신의 관점에서 재구성해내듯이 내가 바라본 세상에 대한 감각, 그 독특한 관점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반면 예술교육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학부모님들이 예술활동의 결과물에만 주목합니다. 면밀히 살펴보면 표현이라는 것은 느낀 것을 드러내는 개별적 방식입니다. 느끼는 경험이 바탕이 될 때 그것이 몸짓이나 소리, 시각적 이미지나 문학적인 텍스트로 ‘드러나는 것’이지요. 예술매체를 통해 표현된 경험은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상징적으로 확장합니다. 예술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되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사태를 통해 발생한 문제의 한 측면은 지나치게 시각경험이 강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상을 통해 제공되는 학습과 만남은 몸을 통한 입체적인 감각경험을 제한합니다. 경험해보지 않고도 마치 경험한 것처럼 단발적인 만족감을 선사하지요. 우리가 감각적으로 만지고 탐색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자라나는 탐구해보고 싶은 열망과 소통의 욕구는 어디로 향하게 될까요. 요컨대, 가속화되는 삶의 시간 속에서 시간의 겹을 상실한 우리 젊은이들의 문화는 어떤가요. 빈티지 디자인에 열광하고 골목카페를 찾아 나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빈티지한 디자인 속에는 ‘낡게 만드는 시간’과 그 시간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있지요.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이 탄생하고, 모던하고 미니멀 하게 재단된 도시에서는 진짜로 낡은 건물, 사물의 빈티지를 만나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빈티지에 대한 열광은 ‘낡음이 품고 있는 시간’과 그 속에 담겨있는 이야기와 같은 ‘상상’이 디자인된 상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현상들이 감각적 결핍이 가닿는 열망의 자리인 것은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 미디어를 통한 간접 경험, 시각적 경험이 몸의 경험을 제한했을 때 해소되지 못한, 또는 충족되지 못한 감각적 열망을 예술을 경험하는 방식과 연결지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유발 하라리는 첨단과학기술의 혁신과 진보의 시대에 나보다 나를 잘 아는 알고리즘의 탄생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이상 태풍과 같은 바람의 길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연의 신에 제사를 지내고 신화에 기대어 세계를 바라보는 일은 예술에서나 가능해졌지요. 의학의 진보는 간단한 검사를 통해 내 몸이 자각하기도 전에 질병을 찾아 치료해줍니다. 세로토닌의 수치가 내 감정을 대변해 줄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시대에 우리가 주목하는 창의성은 무엇일까요.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발현할 수 있고 이를 표출하며 새로운 역량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바탕이 되는 능력이 아닐까요. 만지고 탐색하고 발견하고 창조해내는 놀이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는 우리가 맞닥뜨린 과업입니다. 어쩌면 문화예술이 그 감각적 경험의 최전선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술을 통한 창작행위는 입시 중심의 학습이나 시각으로 제한되어 있는 데이터 과잉의 시대에서 대단히 큰 위로와 자기발견의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내 몸이 스스로 감각한 세계를 믿을 수 있는 능력, 주체적으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힘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 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기술이 우리의 경험을 더 확장하는 것이 되려면
예술이 창조적인 작업을 통해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해준다는 데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예술이 인간의 자유로움을 이끌어내고 고정된 관념과 편견을 부수어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며, 살아있는 감정과 감각 속에서 독특한 무용(無用)의 생산물 속에서 의미와 가치를 창조해내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대상연령층과 공간에 상관없이 예술교육의 본질적인 목표이며 예술교육에서 경험하는 과정이 중심인 이유입니다. 현재 온라인으로 대체된 예술교육 컨텐츠들은 미래사회의 기술과 예술의 결합 가능성을 모색해볼 기회 없이 ‘접촉’을 ‘접속’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문화와 예술은 시대에 따라 그 정의도 변화합니다. 어쩌면 인간의 ‘몸’도 다르게 진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기, 어린이라고 부르는 인간의 출발에서 쌓아온, 몸을 통한 직접 감각경험을 통해 세계와 타인과 만나고자 하는 열망, 놀이를 통해 맘껏 해석하는 세계 그리고 즐거움의 본성이 미래사회를 이끄는 ‘인간다움’의 핵심역량이 될 것이라 감히 예측해봅니다. 코로나의 장기화로 예술 프로그램과 공연이 온라인으로 대체 되는 일이 장기화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은 오프라인의 감각적 경험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더욱 자극하고 만남과 접촉에 대한 열망을 이끌어내는 콘텐츠로 보완되기를 바랍니다. 첨단의 기술이 몸의 경험을 확장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하는 인간을 향한 매체로,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하는 경이로운 연대와 소통의 길이 열리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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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정. 연극놀이전문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아동청소년극전공 강사. 1999년부터 어린이와 청소년들과 연극놀이로 만나 연극예술작업을 하고 있으며, 미술관과 박물관, 도서관, 학교 등에서 감각적인 문화예술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실행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36개월 미만의 영유아연극 분야에서 교육감독과 연출을 겸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에서 창의적인 예술중심 프로그램의 방향을 모색하고 공론화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으며 어린이청소년들의 삶의 저변을 형성하는 부모, 교사와 사회의 문화예술의 가치에 대한 인식변화를 촉구하는데 생각을 모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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