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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외: 판데믹과 문화정책] 일본 예술인들이 코로나 시대를 살아남는 법, 연대

CP_NET 2020. 7. 6. 00:02

 

 

 

- [문화정책리뷰]는 문화예술계의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됨에 따라 호외를 발행합니다. 코로나19 전염병 위기 관련 이슈, 현장 소식, 위기 분석 등을 별도 간기 없이 발행합니다. 현장을 기록하고 대응을 모색하는 일에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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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코로나 경보가 경계에서 심각으로 격상된 223, 남산예술센터에서 3일간 개최된 9회 현대일본희곡낭독공연’이 막을 내렸다. 다음 날부터 남산예술센터뿐만 아니라 서울 시내 모든 공공극장들이 문을 닫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뒤풀이 자리에서는 자연스럽게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막막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화제가 되었다. 특히 행사에 참여한 일본 연극인들 대부분이 3, 4월 공연 일정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 행사의 파트너인 일한연극교류센터의 사카테 요지 부회장(극작가, 연출가)은 자신의 극단 린코 군과 태국 배우들과의 합동 공연이 3월20일~29일, 오타 사무국장(프로듀서)은 자신이 기획제작자로 있는 극단 도쿄 연극 앙상블의 공연이 3월15일~29일, 행사 참가자인 시라이 케이타 작가는 자신의 극단 온천드래건 창단 10주년 기념공연이 도쿄예술극장 시어터 웨스트에서 4월1일~5일, 야마모토 스구루 작가의 극단 한추유에이는 공교롭게도 극단 온천드래곤 공연이 끝나자마자 같은 극장에서 410~19일에 신작을 올릴 예정이었다. 또한 노기 모에기 작가는 극단 청년좌 의뢰로 집필한 신작이 6월 후반에 공연될 예정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그들은 남산예술센터에서 철저히 시행하고 있었던 K방역을 경험한 게 일본에 가서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며 다음날 귀국했다.

 

그런데 일본도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226, 아베 총리는 국민에게 국내 스포츠문화 행사 개최를 2주 동안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 최종적인 판단은 주최자에게 맡기겠다고 했지만 말이 협조 요청이지 실질적으로 보상 없는 휴업 명령과 다름없었다. 특히 공공기관들은 정부의 강력한 요청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26일 저녁에는 국립극장, 신국립극장, 가나가와예술극장(KAAT) 등 공공극장들과 극단 사계가 공연을 중단할 것을 발표했고 27일에는 도쿄예술극장, 사이타마예술극장, 제국극장, 세타가야퍼블릭씨어터, 닛세이극장, 씨어터코쿤 등이 당분간 휴관할 것을 발표했다.

 

 

우리, 연극을 지키기 위해 연대해요

 

사회적 거리두기 요청 기간에도 공연을 계속해 온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2월 말부터 3월 중순까지 공연 취소율은 90%, 3월 말부터 5월 말까지는 거의 100%에 이르렀다. 일본 정부의 코로나 대책에 대한 불신 탓도 있겠지만 좀 더 큰 이유는 동조 압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 사람들은 이걸 공기(空氣)’라고도 하는데 공기를 읽지 못하는 사람은 비방 대상이 된다. 대부분의 극단들은 공연을 계속할지 중단해야할지 선택의 기로에서 결국은 공기때문에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 공연을 취소하게 되는 케이스가 많았던 것 같다. 일본 연극계는 지원금 의존도가 한국보다 현저히 낮기 때문에 경제적 손실은 대부분 극단들이 떠안게 된다.

 

한편 이런 상황을 우려하는 연극인들도 많았다. 가장 먼저 우려의 목소리를 낸 사람은 노다 히데키다. 도쿄예술극장이라는 공공극장 예술감독인 그는 31, 자신의 극단 NODA MAP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의견서>를 올렸다. “공연을 무조건 중단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까? 충분한 방역체제를 갖추고 관객과의 협의가 이루어진다면 공연을 올릴 수 있는 게 아닐까? 연극은 스포츠와 달리 관객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완성되는 예술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공연을 계속하려고 하는 연극인들이 이기적인 예술가로 낙인찍힐까봐 두렵다. 극장 폐쇄는 연극의 죽음을 의미한다. 공연 취소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을 때 마지막 선택이 되어야 한다.” 많은 연극인들이 그의 발언을 지지한 반면 국민들의 생사가 걸려있는 문제인데 너무 이기적이다” “연극이 스포츠보다 고상하다고 생각하는 우월주의에 빠져있다등의 비판이 쇄도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최종적인 결정을 내려야 했던 극단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공연을 취소하면 정신적경제적 손실이 너무나 크고, 공연을 강행했을 때 만약 확진자가 나오면 감당하기 힘든 데다가 그걸로 인해 연극계 전체가 사회적 책임을 추궁당할 수도 있다. 게다가 공연을 강행해도 관객 대부분이 예약을 취소할 수도 있다. 고민하는 동안에도 일본 국내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점점 늘어나고 유럽에서는 사망률이 5%대에 이른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있었다. 당초 39일까지였던 행사 자제 요청은 19일까지 연장됐고 다시 4월12일까지 재연장됐다..

 

앞서 언급한 연극인들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극단의 연습실을 가지고 있는 도쿄연극앙상블과 극단 린코 군은 객석 수를 줄이고 3월 공연을 강행했다. 그리고 극단 한추유에이는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4월 공연을 취소했다. 6월에 예정되어 있던 노기 모에기 작가의 신작도 공연 중지가 결정됐다. 한편 41~5일 창단 10주년 공연 때문에 3월 3일부터 연습을 시작한 극단 온천드래곤의 시라이 케이타 연출은 극단이 처하고 있는 현실과 절실한 고민을 글로 담아 3월 11일차 아사히신문 온라인판(RONZA)에 기고했다.

 

앞으로 한 달 사이에 바이러스가 어떻게 되어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가 가장 피하고 싶은 건 직전까지 연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공연을 못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우리 극단은 적어도 2~3년 동안 공연을 못할 정도의 경제적 타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온천드래곤은 연습실, 극장 대관료의 일부, 홍보비 등 1000만 원 이상의 제작비를 이미 지불한 상태여서 쉽게 결단을 내릴 수 없었다. 게다가 이번 공연은 극단 소속 배우 3명 외에 객원 배우가 9명이다. 극장 측에서는 공연 연기를 제안해 줬지만 같은 멤버로 다른 일정을 잡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결국 온천드래곤 공연은 세트와 의상 등을 모두 갖춘 상태로 무관객 녹화만 하고 전 공연 일정을 취소했다. 시라이 케이타가 예측한 최악의 상황이었다.)

 

연극계가 처하고 있는 현실과 고민을 적나라하게 담은 시라이 케이타의 칼럼을 읽은 한 변호가가 연락을 해 왔다. “우리, 연극을 지키기 위해 연대해요.” 그것이 시작이었다. 먼저 발기인이 되어 줄 연극 관련 단체와 연극인 10명을 모으고 <무대예술관계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는 요청서>를 작성해 서명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320일부터 시작한 온라인 서명에 열흘 만에 1842명이 동참했다.

 

. 중지된 공연에 대해, 주최자에게 이미 지출한 제작비와 인건비 등 경비를 보상 해 주십시오.
. 1에 해당되지 아니하여 주최자에게서 페이를 받지 못한 공연 관계자에게 출연료 등을 적절하게 보상해 주십시오.
. 공연은 실시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평상시보다 객석 수를 줄이는 등의 대책을 취했을 경우 주최자에게 적절한 보상해 주십시오.  
                                                             - 
무대예술 관계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는 요청 (요약)

 

330일에는 열 명의 발기인들이 내각부에 손실보상을 요구하는 요청서를 제출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며칠 후, 아베 총리는 행사 중지에 대한 보상에 대해 세금으로 보상할 생각은 없다고 답변했다. 시라이 케이타는 완전히 부정당한 것에 놀랐다. ‘생각해 보겠다정도의 말은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다고 서운한 심정을 토로했다. 영국이나 독일에서는 문화예술 종사자에 대한 휴업보상이나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일본 정부는 문화예술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책을 하나도 내놓지 않은 것이다.

 

 

#We Need Culture

 

47, 정부가 긴급사태선언을 발령하고 일상적인 대인접촉을 평상시보다 80% 정도 줄이라는 지침이 나왔다. 도쿄의 소극장 거리로 유명한 시모키타자와에 8개 소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혼다극장 그룹이 두 달 동안 모든 극장을 휴관할 것을 발표했다. 이로써 도쿄의 모든 극장의 불이 꺼졌다.

 

그리고 정부 지원만을 기다릴 수 없었던 예술인들은 살아남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하나는 크라우드 펀딩이다. 소규모 독립영화관들을 살리기 위한 ‘Save the Cinema’413~ 515일 사이에 약 3만 명으로부터 약 30억 원을 모았다. 연극과 관련해서는 전국의 소극장 운영자 등이 발기인이 되어 52개 소극장을 지원하기 위한 소극장 에이드 기금51~ 일까지 2909명으로부터 약 2억 원, 코로나 때문에 일이 없어진 배우, 스태프 등을 지원하기 위한 무대예술의 미래를 이어가는 기금59일부터 지금까지 3493명으로부터 약 4억 5천만원을 모았다. 그 외에도 다양한 크라우드 펀딩이 진행되었다.

 

문화청과 내각부에 요청서를 제출한 연극인들은 ‘#We Need Culture’라는 표어를 만들고 연대를 이어나갔다. 여기에는 일본극작가협회, 일본연출자협회, 일본무대미술가협회, 일본아동청소년연극극단협동조합, 일본신극배우협회, 일본조명가협회, 일본무대감독협회, 일본무대음향가협회와 개별 극단 , 360 단체와 개인 예술가들이 연대했다. 실무진들은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은 국회의원과 공무원들을 찾아다니며 연극계의 실정을 알리고 협조를 구했다. 그리고 5월 중순에는 독립영화관을 지키기 위한 ‘Save the Cinema’, 라이브카페 라이브클럽을 지키기 위한 ‘Save Our Space’와 손을 잡고, 연극, 영화, 음악 세 분야가 연대하고 문화예술을 살리자는 목소리를 좀 더 효과적으로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이들은 매일 새벽까지 ZOOM 회의를 열고 ‘문화예술부흥기금’ 창설을 요구하는 요구서를 만들어서 522일에 관계 행정부서에 제출하고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기자회견 전날과 당일 저녁에는 예술인들의 릴레이 토크와 심포지엄을 온라인으로 방송했다. 522일의 기자회견 후에 라이브 방송된 예술가 심포지엄은 약 10만 명이 시청했다고 한다. 예술가들이 연대하여 행정부서에 공개적으로 뭔가를 요구하는 일은 일본의 연극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것은 6월 초에 예정되어 있던 2차 추경에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예산을 편성하도록 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6월12일 국회에서 가결된 2차 추경에는 문화예술활동에 대한 긴급종합지원 패키지 예산으로 약 5650억 원이 편성됐다. 이것은 분명히 국회의원들과 행정 공무원들을 상대로 현장 예술가들이 소리를 낸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원 대상은 연극, 영화, 음악, 무용뿐만 아니라 미술, 애니메이션, 전자기기를 사용한 예술, 전통음악, 전통연희, 곡예, 마술, 만담, 사진, 다도(茶道), 화도(華道), 바둑, 장기(将棋) 등 폭이 넓다. 그리고 소규모 단체에 대한 지원에는 원래 지원 대상이 아니었던 독립영화관과 라이브카페 라이브클럽도 포함되었다.

 

문화예술활동에 대한 긴급종합지원 패키지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집기간(예정) : 7월 중순부터 9월말까지
 대상 사업기간(예정) : 2020년2월26일~10월31일

1) 개인 : 프리랜서 예술가, 기술 스태프 등. 간단한 수속으로 활동비 약 200만원 지원.(연습실 임대료, 기능 향상을 위한 자료 구입, 워크숍 참가, 리서치, 아카이빙 등)

2) 개인 :프리랜서 예술가의 좀 더 적극적인 활동. 1)의 활동+동영상 기록,스트리밍 등,작업을 널리 알리는 활동.보다 적극적인 창작활동을 추가함으로써 최대 약 1500만원까지 지원 가능.

3) 소규모 단체에 대한 지원. 여러 명의 프리랜서 예술가 협동사업도 가능 (한 사람 1500만원 X 10명까지). 코로나19 시대를 극복하는 새로운 공연, 제작 기획 (동영상, 라이브 스트리밍, 홍보 콘텐츠, 감염증을 방지하는 새로운 연습방법 실천 ), 계약서회계 등의 현대화 등
4) , 대규모 단체에 대한 지원(수입력 강화사업) 소규모 단체도 응모 가능. 1500만원~ 2억 5천만원의 사업비를 지원.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내다본 새로운 시장개척, 업구조개혁 등

 

이번 지원금의 특징은 시간을 거슬러올라 공연이 취소되기 시작한 2월 말부터 활동에 대한 지원이라는 점이다. 손해보상은 하지 않지만 예를 들어서 2~6월까지 창작을 위해 실시한 답사나 조사에 대해서는 영수증이 있으면 지원신청이 가능하다. 그런데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10월 말까지라는 사업 기간이 너무 짧다. 신청자에 대한 인건비는 지원받을 수 없다.(신청자가 연출인 경우, 연출료를 받을 수 없다) 사업비 전체의 25~30%는 자부담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현장 예술인도 지적하고 있기 때문에 개선될 가능성도 남아있다. 요즘에는 온라인 라이브 방송을 통해 지원금을 신청해 본 적이 없는 젊은 연극인들에게 지원 신청서류를 작성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활동들도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극단을 넘어선 네트워크가 잘 형성되지 않았던 연극계에 새로운 기운이 돌고 있다. 이런 변화를 전하기 위해 시라이 케이타 연출이 6월13일차 아사히신문 온라인판에 기고한 칼럼을 인용한다.

 

연극계는 역사 속에서 때때로 행정과 의견교환을 하면서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지위와 지원금 제도 같은 시스템을 만들어 왔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 과정에 참여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이번에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치와 문화의 관계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저도 한 가지 분명히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치가든 공무원이든 인간으로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하면 조금씩 사회의 시스템을 바꿔 나갈 수 있다고 하는, 어쩌면 민주주의사회에서 아주 당연한 논리였습니다.(중략)
코로나 피해 상황의 어려움 속에서 세 예술분야(*연극, 영화, 음악)가 만나게 되어, 522일 정부에 대한 요청과 각 이벤트 개최를 준비한 한 주는 말 그대로 열기와 고양감이 넘치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건 조금 억울한데 코로나가 가져다 준 만남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네거티브 한 상황,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만남이야말로 앞으로 일본 문화예술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먼 미래에 과거를 뒤돌아볼 때, 2020년이야말로 일본 문화예술의 전환기였다,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는 만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이번 만남을 일시적인 만남으로 끝내지 말고 이 위기를 극복한 다음에는 함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나가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아직 불투명하지만 새로운 시도들은 시작되고

 

마지막으로 일본의 요즘 상황에 대해서 적어 둔다. 도쿄도는 5월31일에 코로나19로 인한 휴업요청은 완화했다. 이에 따라 극장들은 6월부터 서서히 재개하기 시작했다. 시모키타자와 혼다극장은 61일부터 우선 무관객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공연을 재개했다. 3명의 배우가 출연하는 낭독공연이었는데 배우와 배우 사이에는 투명 칸막이, 무대와 객석 사이에는 투명 아크릴보드가 설치되어 있었다. 지난 3월에 태국 배우들과의 합동공연을 아슬아슬하게 무대에 올린 사카테 요지의 극단 린코군은 이번에도 휴업요청이 풀리자마자 73~ 19일까지 <텐진님의 좁은 골목길>(베쓰야쿠 미노루 작)을 시모키타자와 스즈나리 극장에서 공연한다. 극단 사계는 7월14일부터 <라이온킹>, <맘마미아> , 5개 공연팀 모두 공연을 재개할 계획이다. (참고로 극단 사계는 2월말부터 6월말까지 1000회 이상의 공연을 취소한 데다가 7월 이후 공연도 당분간 객석수를 50% 이상 줄여야 하기 때문에 극심한 경영위기에 처해 있다는 이유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는데, 6월17일부터 불과 나흘 만에 목표액 10억 원을 돌파했다고 한다.) 공공극장은 신국립극장이 7월9일~ 26일까지 미하엘 엔데의 <마법의 칵테일>로 공연을 재개하고, 세타가야 퍼블릭씨어터는 7월11일~ 26일까지 구리야마 타미야 연출의 <살의-스트립쇼>(미요시 주로 작) 그리고 도쿄예술극장은 724~ 816일까지 노다 히데키의 대표작 <빨간 도깨비>를 오디션으로 뽑은 신인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그런데 최근 (7월 첫째주) 들어 도쿄의 하루 신규 확진자가 연일 100명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에 75일에 도쿄 도지사 선거가 끝나면 다시 “긴급사태선언”이 발령될 가능성도 있다. 정상적으로 공연이 재개될지 아직은 미지수다.

 

한편 민간 소극장들은 오히려 공연 재개가 늦어지고 있다. 이미 8~ 9월까지 대관을 취소해 버린 단체들이 많은 상황이다. 일본 연극계는 지원금 의존도가 낮아서 젊은 극단들은 대부분 단원들이 아르바이트로 벌어들인 돈을 각자 출자하거나 티켓 판매를 할당하여 제작비를 충당하고 있다. 그래서 손실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올해 공연을 빠른 시기에 취소하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극단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연습실이 없는 작은 극단들은 주민센터 같은 공공시설에서 연습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코로나 때문에 공공시설이 문을 닫아서 그동안 연습을 할 수 없었던 단체들도 많다.

 

한 가지 덧붙이면 3월부터 5월까지 극장 공연이 사라져 버린 일본에서 온라인 스트리밍을 통해 유료 공연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극장에서의 무관객 공연을 녹화해 온라인으로 내보내는 단순한 온라인 스트리밍이 아니라, ZOOM 등의 매체를 활용한 새로운 형식의 공연들이 눈에 띄었다. 필자의 인상에 남은 것은 남산예술센터에서 한국, 홍콩, 일본 3개국 합동공연 <세일러문의 지하철 여행>에 참여했던 극단 Q의 이치하라 사토코가 제작한 <요정(妖精)의 문제>라는 ZOOM 공연이다. 연출자와 배우들이 한달 동안 오로지 ZOOM만으로 연습을 진행했고, 6명의 배우들이 각자 집에서 연기하는 100분짜리 공연이었는데, 우생사상이나 생명에 대한 주제의식이 시기적절했으며 ZOOM이라는 매체에 잘 맞게 계산된 연출이 새로운 가능성을 느끼게 해줬다. 이 공연은 관람료 1000엔을 받고 관객을 회의실에 초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다른 극단들도 일반적으로 1000~ 2500엔 정도의 관람료를 받고 온라인 공연을 진행했던 것 같다. 또한 과거 공연 작품의 동영상을 기간 한정으로 유튜브에 올리고 자발적 관람료를 요청하는 단체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시라이 케이타의 말대로 예술 정책을 변화시키는 예술계의 연대가 앞으로 계속되고 동시에 자생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새로운 형식 추구가 병행되어 재미있는 작업들이 나오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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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카와 쥬리. 희곡번역. 한일연극교류협의회 전문위원. 한국에서 자녀를 키우며 연극계 주변을 기웃거리는 50대 여성. 30년 동안 한국과 일본의 연극교류에 몸을 담고 있다. 주로 희곡번역, 자막제작, 코디네이터로 작품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는 극단 신세계 <공주들> 일본공연에 참여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로 무기한 연기되었다. 가을에는 김민정 작가의 신작희곡 <짐승의 시간>(번역 담당)이 도쿄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세월호, 블랙리스트, 미투운동을 겪고 변화하고 성장해 가고 있는 한국연극계에 애정과 존경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