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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외: 판데믹과 문화정책] 코로나19가 남긴 자국

CP_NET 2020. 5. 19. 23:56

 

- [문화정책리뷰]는 문화예술계의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됨에 따라 호외를 발행합니다. 코로나19 전염병 위기 관련 이슈, 현장 소식, 위기 분석 등을 별도 간기 없이 발행합니다. 현장을 기록하고 대응을 모색하는 일에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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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내디디며 맞이한 2020, 많은 창작자들을 만나길 기대했지만, 나를 가장 반갑게 맞아준 것은 코로나19 전염병이었다. 진입단계에서 예술가들의 상황은 저마다 모두 다를 것이고, 나는 진입단계의 예술가들을 대표할 수 없다. 이 글은 특정 이슈에 관한 주장이나 제안보다는 판데믹을 겪으며 마주했던 일화와 감상 위주로 채워질 것이다.

 

 

1

올해 131, 나는 해프닝적 성격이 강한 이머시브 공연, <신년에 어떤 계획이 있는지 궁금해서 열어본 네트워킹 파티>에서 관객과의 관계 맺기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관객을 직접 대면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공연의 특성상, 코로나 초기임에도 많은 걱정을 하게 되었다. 당시 확진자는 7명 정도였고, 확산세에 대해 무감각했지만, 당일까지 공연을 취소해야 하나 고민하였다. 공연 당일 오전부터 확진자는 7명에서 11명으로 늘어났다. 확진자가 10명이 되면 티켓값을 전액 환불하고 공연을 취소할 의사를 가지고 있었으나, 자비로 투자한 제작비에 대한 부담과 공연 당일에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내가 혹시 코로나에 걸려있으면 어떡하지?’, ‘관객들을 안전하게 해야 하는 책임이 나에게 있는데,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과 안전하게 하는 것 사이에서 나는 어떤 가치를 선택해야 할까?’ 공연을 강행하겠다는 선택을 한 이후, 손 소독제를 비치하고, 제공되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더욱 위생에 신경을 썼지만,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2

나는 2, 3월 내내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구체적인 공연 제작 단계라기보다는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기획서를 작성하는 단계였다. 사실, 작년부터 준비한 10개의 지원사업에서 모두 떨어지기도 했고, 그렇다고 제작비를 스스로 마련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획서에 의존하고 있었다. 지속해서 작업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두려움에 불어난 몸을 일으켜 삶의 루틴을 만들기 위해 런닝을 시작하였고, 런닝은 나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작업이 없는 일상에서 여전히 허전함을 자주 마주하게 되었다.

 

 

3

본격적으로 코로나19의 확산세가 거세지고, 수많은 복지정책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예술계에서도 코로나로 인해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은 예술가들에게 지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주변 창작자들이 서로 해당 기사를 공유하고 필요한 서류들을 이야기하며, 각자의 고충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 틈에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실질적으로 피해를 입은 공연이 있었고, 그동안 나는 떨어진 지원서 10개를 작성한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예술활동이 나의 삶을 충분히 바쁘게 만들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었다.

 

 

4

유명 TV 프로그램에서 코로나로 인해 취소된 한 뮤지컬의 배우들이 나와 당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공연의 일부를 상연하였다. 그 뮤지컬팀의 피해액을 놓고 산정하자면, 그들은 큰 피해를 본 실질적 피해자이다. 나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취소되거나 연기되지 않았다. 재단과 지원사업 주최 기관에게 나는 작업을 하지 않는 예술가였고, 심정적인 피해자일 뿐, 실질적 피해자는 아니었다. 어찌 보면 심정적 예술가였을 뿐, 실질적 예술가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며칠 전, 나는 진입기 예술가로서 느끼는 판데믹에 대한 이야기들을 써줄 것을 제안받았다. 글을 쓰기 위해 생각하다 보니, 코로나19가 휩쓸고 있는 지금은 나는 예술가라는 전제 자체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하던 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입단계에 있는 예술가의 입장을 쓰는 글이 아니라 예술가 시보(試補) 정도의 입장에서 쓴 글이라고 보는 것이 적당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코로나19 시기를 지내며, 재정적 기반에 대한 위협과 자기불신, 무기력함 등을 마주한 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3D 모델링과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다양한 표현방법론을 위해 이를 공부했을지 모른다.

 

누군가가 내가 예술작업을 하는 환경을 본다면, 코로나19 이전과 이후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말할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며 나의 내면, 외면의 변화들이 있었지만, 이 전염병의 시대가 진입기 예술가인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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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혁.  

공연예술을 바탕으로 다원매체 공연에 관심이 많다. 보통 이런 소개 글에 대표작을 쓰는데, 그럴만한 대표작을 만드는 게 현재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