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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외: 판데믹과 문화정책] 코로나 시대 예술가의 생존법

CP_NET 2020. 4. 14. 10:55

 

-[문화정책리뷰]는 문화예술계의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됨에 따라 호외를 발행합니다.

코로나19 전염병 위기 관련 이슈, 현장 소식, 위기 분석 등을 별도 간기 없이 발행합니다.

현장을 기록하고 대응을 모색하는 일에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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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대유행으로 준비하고 있던 제법 큰 전시가 취소됐다. 기관에서 전시준비기금을 수혜자금으로 돌리고 싶다는 공문이 내려왔다. 전시를 취소하고 책정되었던 예산을 코로나 피해가 큰 이들의 생활비로 돌리고 싶다는 것이다. 몇 달 동안 준비했던 일들이 순식간에 리셋됐다. 공문을 받는 순간에도 기획팀은 전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공문은 통보였고 반박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물론 경제적인 손해도 막심했다. 준비 기간 동안의 기획비가 몽땅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기관에서는 아직 열리지 않은 전시에 지급될 보상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다시 새로운 전시를 기획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씁쓸함은 잠시고 아마존에서 관련한 엄청난 양의 책을 주문했다. (이렇기 때문에 기획자와 예술가가 가난을 면치 못하는 것 같다.) 책을 고르고 구매하는 순간은 언제나 설렌다.

 

며칠 전 비평 워크숍이 열렸다. 연기를 반복하다 실외로 장소를 열려 개최됐다. 초저녁에는 일교차로 스산해지는 날씨였지만 마스크를 낀 관람객이 삼삼오오 모였다. 전 국민이 자가 격리로 답답한 시국에 현대미술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워크숍은 현대미술에서 비평가의 역할의 변천사(주로 권력의 퇴행에 관련한)에 관한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워크숍의 끝자락에서 이런 질문을 했다. “우리는 지금 재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느낍니다. 이럴 때 예술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일까요?” 패널들은 온라인 플랫폼과 VR 기술을 통한 전시 구현과 그것이 오리지널리티를 대변할 수 있는 가능성의 현실화 등을 이야기 했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전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은 온라인을 통해 소장품과 전시를 전달하는 채널을 열고 선의의 노력을 행하고 있다. 국공립 미술관 큐레이터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온라인 도슨트 활동을 하기도 한다. 시각예술만이 아니다. 때마침 맞이한 ‘피아노의 날’에 전세계 일류 피아니스트들은 집안에서 피아노 연주 릴레이를 펼쳤다. 코로나19 사태로 문화예술 향유의 새로운 장이 열리고 근미래를 앞당겼다는 데에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내 질문의 요지는 그게 아니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내가 관찰한 것은 예술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력한 잉여인가였다. 온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는 유물과 작업들은 예술이 아직도 사치품과 부속물의 개념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었다. 재난의 시대에서 예술은 현실적인 기능에 대한 답변을 회피하며 연약하게 파닥거린다. 현대미술은 미술사에서 저항과 변증의 정신을 수호하며 발전하는 듯했다. 소수의 엘리트들이 점령하는 감상의 역할과 투기의 대상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리트머스 종이는 현대미술이 표방해온 가치가 과연 현실에서도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 냉혹한 답변을 내놓았다. 현대미술이 코로나19 사태에 어떤 기능과 역할을 하고 있을까? 예술이 재난 시대를 적시할 수 있는 거울이나 대체를 제시하기는커녕, 당장 예술가들은 정부 기금에 생계를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2017년 강남역 여혐 살인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 빌보드를 기억한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강렬한 ‘현대미술’ 이었다. 억울하게 죽어간 한 영혼을 달래는 형식은 그러나 너덜너덜한 발갈퀴를 힘없이 파닥이고 있었다.

 

현대미술은 한국사회의 현재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온라인 관람도 정신적 여유와 지식자본이 있는 사람들의 전유인 듯하다. 하루 벌어 사는 사람들에게 예술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온라인에서 오픈되는 유수 미술관/박물관의 소장품과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는 최소한의 ‘지식 자본’이나마 있어야 접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정작 가장 큰 모순은 현대미술이 전혀 아방가르드하지 않다는 것이다. 새로움은 힘이 없고 장식은 아름답지 않다. 그 무력함이 나를 힘들게 한다.

 

하지만 길을 잃었을 때는 다시 돌아가서 생각해보려 한다. 장식과 패턴, 새로움, 개념을 넘어서는 이미지, 시각적인 ‘아름다움’, 원본의 오리지널리티 싸움이 아닌 전시 공간과 관람자 체험의 오리지널리티에 대해서. 전시는 실재다. 그것은 체험이다. 콘텐츠(이 단어를 그렇게 선호하지는 않지만)를 전시라는 매우 특수한 형태의 소통으로 제공하는 경험이 ‘실제로 방문 체험할 수 있는 가능성’에서 나온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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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숙현

미술비평가이자 독립 큐레이터이다. 연세대학교 영상 커뮤니케이션 석사를 졸업했다. 한국 커뮤니티 아트의 예술성과 공공성에 대한 논문을 썼고, 『내 인생에 한 번, 예술가로 살아보기』(2015, 스타일북스), 『서울 인디 예술 공간』(2016, 스타일북스) 등의 저서를 썼다. 2018 강원국제비엔날레 <악의 사전>, 2019 김기라 X 김형규 <X-사랑>(통의동 보안여관), <바로 오늘>(2019, 인천아트플랫폼) 등을 기획했다. 2020 현대미술전문지 「아트인컬처」에서 선정한 ‘Young Power 111’에 선정되었으며, 2018년 12월 현대미술 전문 출판사 아트북프레스를 설립하고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