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번 기획은 2015년부터 2023년까지 서울 은평구 녹번동 일대에서 시도되었던 서울혁신파크에 대한 다양한 기억을 기록하고자 하는 취지로 준비되었습니다. 서울혁신파크는 한국의 대도시에서 좀처럼 시도되기 힘들었던 도심 공간 안에서의 공유 개념에 대한 실험, 혁신에 대한 시도들, 문화적 행위들이 이루어지던 장소이자 프로젝트입니다. 이 실험은 때로는 도시문화정책의 선구적 지점을 보여주기도 했고 때로는 시행정 관행의 한계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것에 대해 이 공간에 관계 맺었던 이들의 다양한 관점, 가감 없고 자유로운 기억과 목소리를 수집하여 남기고 전하고자 합니다.
서울혁신파크는 이름 자체로 3개의 광의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인구밀도로 이미 핫Hot하지만 전세계적으로도 핫 해진 메트로시티, 서울.
묵은 관습, 풍속,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 새롭게 한다는, 혁신.
3만 5천 평, 250개 입주기관·단체, 4천여 명의 인원이 상주하는 물리적으로 거대한 사이즈의 도심 속 공원, 파크.
돌이켜보면, 이 3개의 단어가 합쳐진 물리적 공간이 땅값 비싸다는 서울에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꿈이었던 것 같다. 과거 일반 시민들은 접근조차 불가했던 국가기관인 ‘질병관리본부’가 있었던 곳이 수십 년의 담을 허물고 그 실체를 드러냈을 때, 시민들의 문의 전화 첫마디는‘거기 들어가 보려면 신분증 가지고 가야 되죠?’였다.?’ 였다. 그마만큼 비밀에 싸여있던 곳.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는 사회적 인식이 담보다 높았던 곳.
그러나 실상 ‘파크’는 사람들에게 다정하고 너른 품을 내어주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특히나 어린이들에게는 이곳이 마치 놀이동산이나 다름없었고, 외양은 울퉁불퉁하고 기괴했어도 그곳에 잇대어 사는 사람들과 찾아와 깃든 사람들에게 언제나 저를 내어주고 동심의 순수한 시간으로 돌아가게 하는 재주가 있는 생명체였다. 내겐 그런 ‘파크’가 마치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그런 ‘파크’의 순간들을 목도하며 점점 더 ‘파크’를 사랑하게 됐다.
파크에 대해 기대치나 기준치가 달랐던 사람들은 어딘지 모를 허술하고 어글리(Ugly)한 모습에 실망감을 숨기기를 주저하지 않기도 했지만, 시간을 두고 관찰할수록 나는 그 어수룩하고 정돈되지 않은 모습 그대로가 참 그답고 좋았다. 친구나 반려동물들과 함께 찾아와 파크에 기대어 쉼을 얻고 가는 이들의 얼굴이 점점 익숙해졌던 걸 보면 파크를 주로 애용했던 분들은, 누군가의 말처럼 일명 ‘어글리(Ugly)한 파크’가 외려 더 편하고 친숙했던 듯싶었다.. 나를 포함해 파크에서 일하고 있던 대다수의 사람들도 쉬는 시간이면 피아노숲에 앉아 바람을 느끼거나 우체국 건물 중정 안 목련나무 곁에 앉아 속내를 꺼내두고 바람과 햇볕에 말리기를 서슴지 않기도 했다. 그 시간을 온전히 소요하며 가졌던 다양한 감정들은 이제 시간의 틈바구니 속으로 영영 숨어버렸지만, 여전히 파크 안에는 우리들이 꺼내두었던 희로애락의 마음들이 어딘가에 정령처럼 깃들어 있을 것만 같다.
‘기억이란 사랑보다 더 슬프다’는 어느 노래가사처럼, 파크에 대한 다양한 감정과 기억들이 있지만, 내게 파크의 첫 이미지는 이 아이들로 각인되어 있다. 기쁨. 당시 전봇대집 내부 인테리어를 위해 한켠에 쌓아두었던 벽돌과 자재로 아이들이 미장을 하며 저희끼리 놀고 있었는데 벽돌과 벽돌 사이에 차곡히 황토를 바르고 쌓아 올린 모습을 보며 웃음도 나고 기특해서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는지 양해를 구했더니 아이들이 이렇게 멋진 모델 포즈를 취해주었었다.
이 아이들이 여기서 이렇게 창의적이고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파크는 언제라도 품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나가던 어른들도 “오, 어디서 제대로 배웠네!” 하며 아이들에게 격려의 인사를 건네셨다. 그런 아이들과 노상 들리는 웃음소리가 일상이 되어갔고, 그 이후로도 다양한 행사가 열릴 때마다 아이들은 자기 맘대로 파크에서 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단 하나의 골에 공을 넣어야 한다는 획일화된 세상의 기준과는 많이 다른, 각자의 키와 재량에 맞게 여러 개의 다양한 골대가 설치된 ‘LIVE 농구대’에서는 아빠와 아들의 생애 첫 합작 덩크슛이 이뤄지는 장면을 목격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인생 22개월 차에 처음 흙을 만져봤다고, 이렇게 흙바닥에서 놀아보는 것도 맨 처음이라던 어느 아가의 엄마, 아빠 눈에 그렁그렁하던 사랑과 감동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쌓아놓은 파렛트 위에 눕기도 앉기도 하며 서로의 시간을 한없이 탐닉하던 아이들, 한켠에 쌓아둔 비싼 황토를 파헤치고,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이랑과 고랑을 열심히도 만들어 들꽃을 옮겨다 심고서는 어둑해지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아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어른들마저도 서울혁신파크 야외공간에서는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옷에 흙이 묻건 말건 신나고 즐겁게 그 순간을 오롯이 살았다. 카르페 디엠,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이 말이 현실에서 실현된다면 바로 이 공간에서 즐겁게 한 때를 보낸 그들의 모습일 것이다.
그 모습을 바로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이었는지, 시간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감사를 하게 된다. 빈백이 터지든 말든 구르고 뒹굴고 시간을 만끽하던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서 있을까??
피아노숲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웃고 울던 아이들은 다시금 벽을 쌓아 올린 파크를 보며 어떤 추억을 되새기고 있을까? 내게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신기하고 요상하지만 너무 재밌었던 서울혁신파크. 한없이 보드랍고 다정한 품을 내주기를 서슴지 않았던 서울혁신파크. 너무. 사랑했고 많이 사랑했다. 다시금 어른, 아이, 동물들이 식물들과 어우러져 웃고 뛰고 즐겁던 모습을 너무 보고 싶다.
정혜선. 국립춘천숲체원에서 숲해설가 뿌리로 활동하고 있다. 2016년부터 서울혁신센터에서 5년간 빵으로 서울혁신파크 야외공간활성화 프로젝트와 기관방문업무를 전담하며, 연간 2만여 명의 외부 방문객에게 파크와 공공영역의 사회혁신이 갖는 의미에 대해 소개하고 250여 개 입주단체와 외부 유관 기관의 유의미한 만남을 주선하는 일을 보람으로 여긴 적이 있었다.
대학시절 춘천의 3대 공연예술축제(마임, 연극, 인형극)에서 일하며 다양한 공연문화예술기획에 발을 들여놓았었고, 전공이 아님에도 7년 여 간 디자인회사에서 일하며 디자인 감각을 단련하다, 분야를 넘나들며 일해보는 고난에 재미를 들이기도 했다. ‘2020 서울국제도서전’에 선정된 독립출판시집을 계기로 21년 김민섭, 김동식 작가와 2권의 문학 관련 공저집을 연달아 출간했다. 여전히 고양이처럼 유심히 관찰하며 일상을 채집하고, 마음속에 떠다니는 이야기들을 연줄에 꿰어 종이 위로 덜어내는 일을 좋아한다. 사는 동안 시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여즉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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