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탄핵정국, 불완전한 과거의 흔적을 본다
8년 전 광장에서 촛불을 밝히면서 탄핵을 외칠 때 다시 탄핵정국을 맞이하리라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12월 3일 비상계엄으로 무장한 군인이 국회의 문을 부수고 시민과 무장한 군인들이 대치했다. 국회에서 통과된 윤석열에 대한 탄핵은 6인 체제의 헌법재판소로 넘겨졌다. 하지만 내란의 주동자는 뻔뻔하게 자신의 행위를 통치행위라 말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정부 대변인’으로 등장해 계엄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외치면서 광장을 지켰던 문화예술인들은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블랙리스트의 근본적인 해결을 요구했다. 블랙리스트가 작동되었던 원인으로 문화행정의 도구화, 수직적 위계적인 문화정책 전달체계를 지목하면서 이에 대한 제도개선으로 문화체육관광부 내에 국정홍보 기능을 맡고 있는 국민소통실의 이관을 요구했다. 하지만 끝끝내 통제가 가능하다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이, 조직을 지켜야 한다는 관료들의 이해타산이 현상유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오늘 블랙리스트 실행자가 문화부 장관으로 돌아와 내란에 맞선 문화예술인이 아니라 내란을 일으킨 정부의 변명을 발표하는 장면을 온국민과 함께 지켜보게 되었다.
민주주의 바깥의 문화정책은 없다
현대 문화정책을 낳은 것은 다름 아닌 민주주의 사회였다. 시민의 기본적 인권과 정치적 주권이 인정되는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에 세련되고 복잡한 문화정책이 필요해진 것이다. 권력자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지배되는 사회에서의 문화정책이란 문화라는 상징 권력을 통해 시민들을 통제하여 자유로운 정신을 옥죄는 문화통치만이 존재할 뿐이다. 나치 독일에서 괴벨스 등에 의해 자행되었고 이 땅에서도 일제 식민지 시기에 조선총독부 관료들에 의해서, 군사 독재 시절에 문화공보부 관료들에 의해서 자행되었던 문화통치의 끔찍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즉, 군사 내란 세력이 획책했던 민주주의의 파괴는 시민을 위한 문화정책의 근간을 공격하는 행위였다. 따라서 훼손된 민주주의 질서의 빠른 회복은 문화정책의 당면 목표이자 기본적 관점이 되어야 한다. 문화정책은 단지 시민들에게 선심성 이벤트를 베푸는 방법론이 아니며 근본적으로 시민들의 존재 그 자체를 자유롭게 하는 데 최선으로 복무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태령에서 터져나온 요구들
우리는 과거의 후회를 녹여버릴 정도의 광장에 녹아든다. 기계음 가득한 K-POP이 확성기에서 울리고 들썩들썩 응원에 가까운 춤사위와 떼창, 재치 넘치는 밈을 옮겨놓은 깃발이 온통 거리를 수놓았다. 시궁창 같은 현실을 피해 온라인에서 용맹을 떨쳐온 방구석 히어로와 덕후들이 일순간에 이세계(異世界)에 강림한 듯한 풍경이다. 자기만의 우익세상을 과감하게 꺼내놓은 일베대통령과 쿠데타의 향수에 절어있는 이들의 전선을 마주하는데 이보다 더 절묘한 상대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광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몫 없는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현현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지난 주 남태령은 그 자체가 연극적 상황이었다.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는 시간에서도 늘어나는 대열들, 이들을 데우기 위해 등장하는 전세버스와 다양한 먹거리들 그리고 그 선두에 ‘농업’을 말하는 농민들과 이들을 에워싼 응원봉과 시민들. 단언컨대 민주공화국의 시민들으로서 감격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다시 세우기 위해 제대로 무너뜨려야 한다
공공자원을 사적 이익을 위해 가장 극악한 방법으로 선취하려는 모의와 행위가 바로 내란이다. 공공조직(정당, 공무원, 군, 경찰, 검찰 등 사법조직 등)이 단지 위계와 명령에 의해 움직였다는 것은 개인의 사적 이익을 위해 공공의 의무와 역할을 내팽개쳤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는 공공조직(원)으로서의 자기존재의 근거를 버렸기 때문에 더이상 공공조직(원)일 수 없다. 이번 내란이 공공자원의 사유화의 극단적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공공자원의 사유화는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범죄이다.
이번 여의도, 광화문, 남태령에서 보여준 국민들의 외침은 반민주주의에 대한 통렬한 경고이고, 민주주의를 좀먹고 훼손하는 공공자원의 사유화를 거부하는 민주주의의 몸짓이다. 군은 대통령의 사병이 아니고, 행정부는 장관의 집사가 아니고, 문화재단은 지자체장의 비선조직이 아니다. 광장과 거리는 경찰의 차박이 아니다. 사유화된 공공자원을 국민에게, 주권자에게 다시 돌리는 것이 공공성의 시작이다. 즉 우리는 모든 것을 다시 세워야만 지금의 장기 비상사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제안한다. 당장의 어둠이 무서워 촛불을 피워올릴 것이 아니라 새벽이 와서 제대로 아침을 맞이할 때까지 오랜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무너질 것들이 제대로 무너지지 않으면 결국 그 불안전한 토대 때문에 다시 흔들릴 것이다. 지지대로 버틸 수는 없다. 지금 흔들리는 것들을 버텨내기 위해 지지대를 하나 세우면, 시간이 갈수록 세워야 하는 지지대는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위협할 정도로 많아 질 것이다. 두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시 열린 광장에서 볼 수 있듯이 ‘예기치 못한 연대’이며 대가를 바라지 않는 ‘기여’이며 물러서지 않고 ‘차 빼라’를 요구할 수 있는 마음이다. 우리는 이미 이를 경험했으므로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더 근본적인 질문과 함게 더 지속할 것이다.
함께 행진하자
[문화정책리뷰] 편집위원들은 언제나 근본적이길 바랐다. 또한 과거의 실수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고 자신에 대한 비판이 타자에 대한 비판에 최소한의 윤리적 근거라는 점을 인식해왔다. 우리는 더 철저하고 치열하게 입장을 만들어 낼 것이다.
기후위기와 불평등이라는 당대의 가장 중요한 도전들은,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민주주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진행 중인 내란에 맞서는 일에 함께 할 것이다. 지금 지나는 길고 긴 터널을 어떻게 걷는가가 새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함께 행진하자.
편집위원 일동
(김소연, 김민규, 김상철, 김정원, 안태호, 한상훈)
목차
[이슈: 탄핵정국 ①]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체성에 대하여 (염신규)
[이슈: 탄핵정국 ②] 문화부는 ㈜윤석열정부의 사보제작 부서인가 (김상철)
[연속칼럼: 사달이다 ④] 존재 이유를 잊어가는 지역문화재단, 살아 있기 위해 독립하라- 성북구청장 이승로-성북문화재단 서노원 대표 블랙리스트 사태에 비추어(이채원)
[기획연재: 지역문화 현장과 정책의 재구성 ⑧] 공공도서관은 어떻게 마을을 만드는가(이정은)
[기획연재: 서울혁신파크의 기억들 ③] 필요에서 출발했던 연대와 협업(권소진)
[문화예술교육지역화인터뷰⑥] 자극을 제공하고 변화를 촉진하는 파트너 - 전남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강수정 센터장 (안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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