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그렇습니다. 또 한강 이야기입니다. 이제 좀 흥이 사그라든 것 같은데, 또 숟가락 얹기냐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지난 한 달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좀 복기해보고자 합니다.
수상 발표 이후 ‘모두’가 ‘함께’ 즐거웠던 것은 딱 다섯 시간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소식이 전해지고 잠이 들기 전까지 “좋은 일이 있어서 좋다”는 글들이 이어지더니 다음 날 다시 열어본 SNS 타임라인에는 한강의 작품과 한강의 수상을 두고 자신이 반대하는 입장에 대한 비판과 조롱이 가득하더군요. 그러더니 얼마 되지 않아 황석영 작가의 한강 수상에 대한 축하글이 이미지 파일로 떠돌고 있었습니다. 글쎄요. 왜 한강의 노벨상 수상에 황석영의 축하 인사가 그렇게 급하게 꼭 필요한 것일까요. 언론이나 문학계에서 황석영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기대해 왔던 것은 알지만, 그리고 작가 본인도 기대가 있었겠지만, 황석영 작가가 한강 작가 혹은 다른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훼방 놓았던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수상 이후 논박에는 이런 것도 있었습니다.
"한강, 탄압받았잖아" 이 말, 실제론…내가 낸 세금으로 키웠다?
10월 15일 발행된 이 기사는 한강 수상 이후 번역출판지원 등 지원정책에 대한 요구를 소개하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그런데 기사 제목처럼 기사 말미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정리한 ‘한강 작가 지원 실적’이 표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건 수와 총액을 정리한 그 표에는 <문장의 소리> <문장 웹진>에 DJ,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것, 문학주간 개막행사에서 <소년이 온다> 입체낭독극, <흰> 낭독극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에서 일하고 대가를 지급한 것, 문학행사에서 한강의 작품이 소개되는 것까지 마치 작가지원인 양 슬쩍 끼워 넣은 것이지요. 물론 그런 프로그램들이 문학활성화를 위한 지원의 한 방식이긴 하지만 그 프로그램에서 일하고 받은 개런티나 행사의 프로그램에서 작품이 소개되는 것이 창작지원인 것은 아니지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자료에서는 이 모든 것들을 다 합한 액수를 지원 총액이라고 써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사는 익명의 문학인 인터뷰를 인용하고 있는데, 인터뷰이는 한강 작가가 큰 수혜를 받았다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총액이라는 것이 프로그램 참여나 작품의 낭독극 예산까지 포함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자료는 사기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2015년 블랙리스트 문제가 제기될 때 블랙리스트 배제 의혹이 제기된 작가에 대해, 공연제작비 지원을 합산해서 마치 개인이 수억 원의 지원을 받은 것처럼 자료를 냈던 것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입니다. 같은 방식인 것이죠. 이런 자료들은 국가의 예술지원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를 호도하는 것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할 일이 아닙니다.
한편 그 표를 보면 2014년 이후에는 작가에 대한 직접적인 창작지원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한강 작가가 맨부커상 수상 등으로 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이후, 그리고 공교롭게도 박근혜 정권 당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블랙리스트가 극심했던 시기에는 직접적인 창작지원이 없습니다. 블랙리스트 실행을 짐작케 하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표의 왜곡된 시선을 걷어내고 본다면, 국가지원 프로그램이 한 신진 작가의 성장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14년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은 없었지만 한강 작가는 그 시기 국제적인 작가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국가 지원만으로 작가가 성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그러나 한 신진 작가가 문학계에 입문해서 성장해가는 데에 국가 지원이 역할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러니 예술지원에서 중요한 것은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지원 방향과 방식이지, 될 놈 찍어서 밀어주는 K문학 진흥책인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논란이 있었습니다. 한강 작가 책에 대한 주문이 폭주하면서 도서유통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 것이죠. 지난 10월 23일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에서는 호소문을 발표했습니다. 호소문에 따르면 한강 작가 수상 이후 “출판사가 대량으로 인쇄한 많은 양의 책이 북센 등 주요 도매상을 배제하고 대형서점 3사에 독점 공급”되었고, “소매뿐 아니라 도매를 겸하고 있는 대형서점은 전국 책방으로 책을 공급해야 하는 법적 의무가 있음에도 전국 서점에 도서 공급을 막고 오직 자신의 온오프 매장 판매에 집중하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출판사들 역시 책임이 큰데 “왜 동네책방들의 직접 공급처인 북센 등의 도매상에게는 책을 제대로 공급하지 않았는”지, “눈앞의 이익만을 좇아 온라인서점과 대형서점만 거래처로 생각한다면, 종국에는 책 생태계가 무너져 출판산업 전체가 흔들릴 것이다”는 지적입니다.(호소문 읽기)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이 전해진 그날 저녁 우리는 ‘모두’ ‘함께’ 기뻐했지만, 이후의 전개는 우리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2024년 가을의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논란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강 작가의 책에 대한 폭발적 반응은 어쩌면 명성에 대한 반응이겠지만, 그것으로만 남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미 한강의 문학에 대한 여러 비평, 토론회, 학술대회가 시작되었지요. 그중 한강 읽기의 뜻깊은 자리 두 곳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연구 현장의 언어로 한강의 문학을 이야기하기: 네 갈래로 살펴보는 한강 문학/소설>은 네 명의 문학연구자들이 4주에 걸쳐 한강의 문학을 이야기합니다. 지난 주 화요일 시작된 줌 토크에 많은 분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토크를 맡은 권명아 선생은 사건 이후의 인간학과 항쟁의 비인간학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남은 3회 차 동안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다시 읽기가 진행됩니다. 또 한자리는 광주에서 열리는 <소년이 온다> 시민낭독회입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시상식이 있는 12월 10일 수상을 축하하는 의미로 광주에서 시민들이 함께 <소년이 온다>를 발췌 낭독한다고 합니다.(관련 정보 바로 가기)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이 ‘국위선양’의 기쁨에 멈추지 않고 세계를 더 깊게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의 연대와 행동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정책 역시 ‘K문학’ 선양이 아니라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문화정책리뷰] 50호에서는 2025년 문화부예산 분석을 이어갑니다. “[이슈: 2025년 문화부예산 ③] 윤석열 정부의 문화예산은 돌연변이가 아니다”(김상철)에서는 예술인에 대한 직접지원이 줄어든 대신 지방자치단체 인프라 예산이 늘어난 경향성을 분석합니다. 사업 폐지 수준의 예산 감축이 적지 않은 이러한 변화에 대해 필자는 어떠한 대응이 필요한지 고민합니다. 되감을 것인가, 넘어설 것인가 말입니다.
“[연속칼럼: 사달이다 ③] 고양시 공립작은도서관 폐관 위기가 보여주는 것들”(박미숙)에서는 고양시가 일방적으로 공립작은도서관 예산을 삭감하면서 정책에 대한 설명도, 이해도, 소통도 없는 현실을 전합니다. 나라 곳곳에서 정책의 불통이 가득합니다.
“[기획연재: 지역문화 현장과 정책의 재구성 ⑦] 지역 기록문화운동, 관계의 발견을 통한 다정한 공동체 만들기”(배은희)는 최근 기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여러 사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 사업이 결과물의 완성에 머물지 않고 그 과정에서 공동체의 가능성을 짚어내고 있는 필자의 관점이 흥미롭습니다.
“[기획연재: 서울혁신파크의 기억들 ②] 서울혁신파크와 함께 한 비건페스티벌의 시작(강소양)”은 하나의 공간이 어떻게 협업의 다양한 가능성을 품을 수 있는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양산될 수 있는 모델을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한 공간에 대한 다양한 기억들을 기록해 가겠습니다..
5주년을 맞이하여서 50호를 발행합니다. 월간으로 보면 비는 호가 있는 것이죠. 더딘 걸음이지만, 독자님들의 관심과 후원으로 또 이렇게 한발 한발 내딛습니다. 무엇보다 더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도록 후원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소연 편집장
목차
[이슈: 2025년 문화부예산 ③] 윤석열 정부의 문화예산은 돌연변이가 아니다(김상철)
[연속칼럼: 사달이다 ③] 고양시 공립작은도서관 폐관 위기가 보여주는 것들(박미숙)
[기획연재: 지역문화 현장과 정책의 재구성 ⑦] 지역 기록문화운동, 관계의 발견을 통한 다정한 공동체 만들기(배은희)
[기획연재: 서울혁신파크의 기억들 ②] 서울혁신파크와 함께 한 비건페스티벌의 시작(강소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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