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지 정확하게 가늠하기 어렵지만 한국에서 문화정책 관련 일을 하는 이들 중에 뭔가 새로운 의제 설정이 어렵다는 얘기를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뭐 남 얘기가 아니다. 실은 필자 자신이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부분이다. 최소한 2010년대 중반 이후로 새로운 문화정책 과제를 만들려고 할 때마다 겪곤 하는 어려움이다. 평소에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현안 과제 관련 연구나 자문 등의 작업을 할 때는 그런 면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올해처럼 총선과 같은 선거철을 맞거나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 새로운 정책 방향이나 과제를 제안해야 하는 경우에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곤 한다. 분명 현장에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기도 하고 사회적인 변화에 따라 제기되는 것들이 존재하기는 한데 그것들을 몇 가지 축을 중심으로 엮어내는 것은 무척 어렵다. 산발적으로 제기되는 아이디어들의 병렬적 나열을 정책 의제라고 볼 수는 없고 그런 방식으론 제도나 예산의 변화까지 포함한 현실적인 동력을 얻기도 어렵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정책연구자로서 닥치는 현안을 처리하는데 급급한데서 비롯된 좁은 시야나 게으름이 원인일 수도 있고 그런 측면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실제로 1년의 절반 이상은 주로 용역 형태로 진행되는 현안 과제에 주야로 매달려야 하는 현실적 상황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밖의 다른 것들을 생각할 여유가 잘 안 생긴다. 연구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 PM(책임연구자)으로 진행하는 크고 작은 연구 과제가 연 평균 3~4건 정도 되는데 주로 보고서 작업이 집중되는 하반기 몇 개월 간은 거의 ‘갈리선의 노예’와 같이 꼼짝 못하고 책상 앞에서 주어진 일만 하는 생활을 근 7, 8년째 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현 단계에 필요한 새로운 문화정책 의제 10가지 정도 내놓으라”라는 요구를 받으면 매우 막막해진다.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단편적인 수준들이고, 결국 수년간 반복해서 이야기했으나 잘 해결되지 않는 것들을 다시 꺼내어 약간 손봐서 내놓는 수준에 머물게 된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거론되는 의제들이 해결 안 되는 이유에 대하여, 그 앞뒤 사정과 맥락을 펼처놓고 심도 있게 진행하는 총체적인 고민은 할 틈도 없이 말이다. 이런 상황이니 시대 변화나 새로운 사회현상에 조응하는, 혹은 기존의 문화정책이 해결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을 해결하기 위한 그야말로 새로운 문화정책 의제 세팅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이게 개인적인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최근 치루어진 몇 차례의 선거들에서 후보들이 내세웠던 문화정책 공약도 매우 진부한 동어반복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문화예술단체나 개인들이 정치인의 캠프에 결합하여 밀어넣는 정책들도 그다지 신선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사회 전반의 문화나 예술 상황에 대한 영향력보다 해당 분야의 이해관계에 치중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문화정책을 포함하여, 정책에서 이해관계의 관철은 매우 중요하다. 정책의 출발 지점 자체가 이해관계의 조정과 협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해관계를 정확하게 드러내는 정책 참여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다만 그런 개별적 이해관계를 담은 정책들만 있어선 곤란하며 무엇보다 정책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선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더 많은 이들을 위한 가치, 즉 공공선을 구현해내기 위한 방향이 제시되어야 하는데 그런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나올 것은 다 나왔지만
이렇듯 문화정책에 있어서 새로운 의제가 잘 정립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이미 나올만한 것은 다 나온 상황”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현대적 의미의 문화정책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던 20세기 후반은 물론이고, 21세기에 접어들었던 20여 년 전만 해도 정부 등이 제도와 예산으로 시행하는 공식적 문화정책에 빈구석이 매우 많았다. 지금 다들 익숙해져있는 지역문화, 문화예술교육, 생활문화 등이 문화정책의 카테고리에 들어온 것이 지난 20여 년 간의 일이었다. 문화산업에 관련된 정책이 만들어진 것도 길게 잡아봐야 30년 정도이다. 지난 20~30년간 정말 많은 새로운 정책개념들이 받아들여졌다. 약간 거칠게 표현하자면 정상적인 현대국가라고 여겨지는 나라들에서 20세기 이후 시행하고 있는 각종 문화정책을 거의 대부분 가지고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이제 한국에 “없는” 문화정책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것들이 제대로, 취지에 맞게 시행되고 있는지는 고민꺼리지만 형식적으로 모든 게 다 있다. 과거에는 “이러이러한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얘기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그런 식으로 얘기해봐야 소용이 없다. 일단 거의 다 있기 때문에 그런 식의 제안에 대해서는 바로 “무슨 무슨 법과 무슨 무슨 기관에서 관련 업무를 하고 있음”이란 답변이 돌아온다.
세부적인 개별정책 각각의 효용성에 대해서 따져 묻는 것은 명확한 근거와 논리가 필요하니 다음 기회로 미루겠지만 어찌되었거나 문화정책이 거의 다 “있는” 것에 비해 전반적으로 체감이나 효용이 너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그냥 느껴진다. 단언컨대 그렇다. 정책 페이퍼만 보고 있으면 모든 게 다 이뤄지고 있는 듯 하지만 현실계로 돌아와 보면 그 낙차가 너무 크다. 이게 문화정책만의 탓은 아니지만 문화정책 보고서들이 지난 20여 년간 엄청나게 현란하게 진화하고 있는 것에 비해 현실과의 거리는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누구 탓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도 이런 현실에 발담구고 있고, 일정하게 동참해온 입장에서 외부의 무엇인가를 탓하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다. 그보다는 왜 이런 괴리가 생겨났는가를 문화정책 내부로부터 따져 물으며 되짚어가는 것이 새로운 문화정책 의제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작업일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떠오르지만 우선 한가지만 짚어보자면 언제인가부터 문화정책 연구에서 그 정책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집요한 질문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정말 이유를 잘 따져 묻지 않는다, 정부 주무부처(문화체육관광부)가 어떤 정책방향을 내세우면 그것이 현시대에 있어서 적절한 방식인지, 정책이 시행되었을 때 어떤 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지에 대한, 무엇보다 지금 현시점에 가장 시급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대부분 생략되고 절차와 기술적 방법에 대해서만 연구된다. 목적이 불명확한 솔루션만 남발되는 셈이다.
문화정책은, 절대적으로 옳은 경우도 없고 반대로 틀린 경우도 거의 없다, 또한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면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고 자원은 늘 제한적이기 때문에 언제나 필연적으로 선택이 필요한 영역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개별정책 이전에 국가와 사회의 문화적 상황을 어떤 식으로 이끌고 나갈 것이란 전망이 필요하다. 그런 전망이 전제되었을 때 그것을 위한 정책의 존재 이유가 생성된다. 지금 현재 문화정책이 겪고 있는 가장 큰 위기의 이유는 그런 전망이 부재하거나 흔들리고 있다는 것에 있다. 현대 문화정책의 존립근거가 완성형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착각을 이젠 버려야 한다. 사회에서 삶의 자리는 매우 불안정해졌으며 그것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고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위기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지 오래이다. 문화정책을 둘러싼 전망 부재도 결코 이런 것들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꿈꿀 것인가? 이 근본적 질문과 다시 대면해야 할 시간이다. 이를 위한 작고 소소한, 개별적인 질문들을 다시 집요하게 만들어야 한다. 현실의 문화 상황의 토대 위에서 말이다.
염신규.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 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 겸임교수.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문화예술분야에서 발을 들여놓았으며 창작자, 기획자, 정책활동가 등 깊이 없이 다방면으로 경험을 쌓았다. 최근에는 문화정책(제도) 연구와 문화 연구의 틈새를 메우기 위한 작업들을 고민하고 있다. 특히 관심 있는 분야는 국민국가 성립 과정에서의 문화적 제도화의 문제, 노동자 문화정체성에 대한 비전형적인 방향에서의 탐색 등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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