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원주아카데미극장과 시민력

CP_NET 2023. 11. 21. 14:38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한국의 합계출산율을 듣고 미국 조앤 윌리엄스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가 보인 이 반응이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이런 시대에 인구 36만 명에서 ‘100만 명 경제중심도시로의 비장한 비전을 수립하고, 관계인구는커녕 이 지역에서 나고 자라야만 시민으로 인정하는 도시가 있다. 최근 그 도시의 60년 된 극장이 무너졌다. 인구 100만은 요원해 보이지만 전국적 이슈의 중심이 된 건 확실하다.

 

 

원주아카데미극장을 지켜온 시민들

 

1963,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도시에 세워진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영화 상영뿐 아니라 학교 졸업식, 공연, 지역 행사 등 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2005년 멀티플렉스 극장이 생기면서 원주의 모든 단관극장은 운영을 멈추었고, 차례차례 사라지기 시작했다. 201511월 문화극장 건물이 철거되면서 아카데미극장은 단 한 번의 화재도 없이 단관극장 원형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문화유산이 되었다.

 

문화극장이 철거되면서 아카데미극장만은 지키자라는 시민들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0162월 원주도시재생연구회와 원주영상미디어센터가 먼저 아카데미살리기에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 <씨도로 씨네마로드>를 제작하고, 시민설문조사, <아카데미로의 초대 포럼> 등을 통해 이야기 확산에 나섰다. 특히 아카데미극장은 극장주 개인 소유였기 때문에 2017시민자산화를 위한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2018년에는 시민자산화 사회적협동조합 구상과 더불어 소유주에게 아카데미극장 문화재생 프로그램과 운영구조를 제안했다. 안타깝게도 2019년 문화재청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활성화 사업선정 실패로 아카데미극장 철거가 예정되었으나 원주시는 소유주와 협의하여 1년간 철거유예 결정을 내렸다.

 

그 사이 원주는 법정 문화도시에 선정되었고, 2020년 원주영상미디어센터, 원주시 역사박물관, 원주도시재생지원센터, 문화도시센터 등 지역문화재생과 관련된 기관 및 시민이 함께 아카데미극장 재생시범사업 안녕 아카데미를 추진했다.

 

20212, 극장은 다시 철거 위기에 처했다. 아카데미극장보존추진위원회는 극장 매입비의 일부를 모아보고자 아카데미극장 구하기시민모금을 진행했다. 시민모금 1<아카데미구하기 100100>100만원을 기부해 아카데미 극장 좌석에 이름을 새기는 모금활동으로 100명 참여, 1억을 달성했다. 2차 시민모금 <아카데미 3650>은 보다 많은 시민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진행되었다. 그리고 시민의 마음에 원주시가 화답했다. 그해 5월 원주시는 아카데미극장을 매입해 시민 커뮤니티 공간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2022132억에 매입을 완료했다.

 

2022년은 시민기획 공모프로그램, 아카이브 프로그램, 원주옥상영화제 등 많은 원주시민들이 아카데미극장을 경험하고 새로운 상상을 펼칠 수 있도록 활발히 운영되었고, 아카데미원탁회의 100인 토크, 시민상상워크숍 등을 통해 아카데미극장의 새로운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렸다. 원주 문화도시는 아카데미극장테이블 사례 등으로 그해 문체부장관상을 받았다. 20227, 민선 8기가 들어서면서 극장의 운명이 바뀌었다. 원주시는 안전, 관리비 등을 이유로 극장 철거를 고집하며 이미 선정된 문체부 유휴공간 재생활성화사업 39억을 거부하고,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 지정 권고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주시민들은 올초부터 일관된 목소리로 시정정책토론을 통해 철거VS보존 결정을 하자고 요구했으나 원주시로부터 거부당했다. 시민들의 목소리는 10월 말, 아카데미극장이 무너지면서 함께 그 터에 묻혔다.

 

 

문화적 방식으로 극장을 지켜온 아카데미의 친구들

 

이제 아카데미극장은 40년 간 시민문화활동의 거점으로 쓰였던 시대를 넘어, 추억 어린 극장 하나쯤 지켜주는 도시에 살고 싶은 시민들의 마음과 문화적 실천이 켜켜이 축적된 소중한 장소가 되었다. 시민력으로 장소성을 만들어 온 우리는 우리를 아카데미의 친구들’, 줄여서 아친이라고 부른다.

 

아친 수호대장 이주성 씨는 20237ACT 인터뷰에서 ””함께 해 주시는 분들이 정말 다 같은 마음으로 즐겁게 참여해 주고 계시고, 저희도 어떻게 해서든지 무겁기보다는 조금 더 재미있게, 그리고 우리가 잘하는 게 문화예술이니까 문화예술을 최대한 활용해서 그런 것들로 우리의 강점을 살려서 집회에 이용해보자라고 생각을 해서 진행했던 것들을 많은 분들이 또 좋게 봐주셨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아친들이 극장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문화·예술적 방식이면서 자발적이고, 일상과 맞닿아있다.

 

그 연유는 보존활동의 중심에 청년 문화예술가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시 원주의 시민성에서도 기인한다.

 

원주는 협동조합의 도시로 한살림공동체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큰 계기는 재난이었다. 1972년 남한강 대홍수로 인하여 14만 명의 수재민과 187억 원 규모의 피해가 발생했고, 그 다음해 장일순 선생은 지학순 주교와 함께 재해대책사업위원회를 발족했다. 위원회는 긴급구호 사업 활동을 생활만들기 운동으로 전환했다. 홍수로 무너진 집과 도로를 세우는데 그치지 않고, 지금까지 해오던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을 공생의 논리에 입각한 생명운동으로 전환한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생명·협동의 정신은 원주 곳곳에 뿌리를 내렸다. 2020년 원주 문화도시 사업의 비전과 실천방식 설계의 기반이 되어 원주에서 문화도시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업이 되기도 했다. 20여 년에 걸쳐 그림책으로 일상예술을 즐기는 문화를 만들고, 한 도시 한 책읽기 운동을 자발적으로 꾸준히 해 오고 있다. 청년들은 스스로 SDGs(지속가능발전목표) 학습공동체를 만들어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도시를 만들어가기 위한 방식을 탐색하고 실천했다. 원주에서 문화는 일상이고, 삶의 방식이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이고, 사부작 사부작 재미난 일들을 벌이는 것이 되었다. 지역사회를 문화적으로 바꾸는 힘을 시민이 가지고 있었고, 원주시는 시민의 힘을 존중해 주었다. 시민이 원하면 대화하고, 함께 도시의 좋은 변화를 이끄는 공무원들이 있었다.

 

아카데미극장을 지키자는 원주시의 마음은 변했지만, 원주시민들은 변함없었다. 원주시민들은 풍선을 들고, 붓을 들고, 심포지엄을 열고, 드로잉쇼와 미술경매로 기금을 모으고, 어둠을 밝힐 빛을 쏘아 올리며 아카데미극장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목숨을 걸고 극장 트러스 위에서 5일간 고공농성을 하고, 18일간 단식투쟁도 했지만 즐겁게 하려는 마음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시민력 개념에 관한 연구에 언급되고 있다.

“시민력은 지역이나 마을에서 일상적인 활동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는 것을 강조하고, 그 참여는 민주적 가치와 공동체 이익의 실현이라는 목적을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개인적 역량을 확보하여 개인 혹은 조직화된 시민적 참여에 초점을 둔다. 시민력이 등장한 배경은 기존 시민사회 운동이 정치세력화되어 정부 권력을 견제하기보다는 일상적인 밀착과 활동에 가치를 두는 시민의 활동에 방점을 두는 신사회운동과 성격을 같이한다.” 신상준, and 김용희. "시민력 개념에 관한 연구." NGO연구 18.1 (2023): 39-77.

 

극장이 무너져도 시민은 무너지지 않는다. 요즘 주변에서 원주를 떠나고 싶다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아카데미극장이 무너졌듯이 도시정체성을 기반한 시민문화공간과 활동사업이 사라졌고, 사라지고 있다. 100만 명 경제중심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원주시 복지정책과(인구정책팀)에서 문화예술과로 항의라도 해야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의 친구들오픈채팅방에는 여전히 400여 명이 모여있다. ‘집단 트라우마가 이런 것이구나실감하면서 상실감에 마음 아프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서로의 안부를 묻고, 우리의 삶이 존중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기억하고, 다음 행보를 모색 중이다.

 

 

 

 

지난 11월 12일 시민대행진에서 초대장을 받았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아카데미극장 미래 티켓’을 드립니다.

INVITATION
언젠가 아카데미극장이 다시 열리는 그날,
이 티켓을 가져오시면 무료로 영화를 관람하실 수 있도록
여러분 모두를 초대합니다.
티켓을 잘 간직해 주세요.

2023.11.12

 

*원주의 단관극장과 아카데미극장 시민활동 아카이브

 

 

 


김선애. 인사이드 대표. , 어학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교육 분야에서 전략기획과 마케팅을 주로 하며 직장인 생활을 했다. 그림책을 매개로 문화판과 인연을 맺고, 그림책여행센터 이담을 만들어 운영했다. 원주시 창의문화도시지원센터에서 원주 문화도시 사업을 총괄했다. 요즘의 관심 키워드는 기억의 공간, 예술사회학, 드라마이며, 문화판 어디에 내가 위치하면 좋을까 더딘 속도로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