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기 위하여 총 160조의 예산을 투입하겠다.” 지난 28일, 정부가 발표한 내용이다. 한국은 최근 OECD 디지털 정부’ 평가에서 종합 1위에 오르면서 디지털 강국으로서의 이미지를 세계적으로 자랑하고 있는데,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이번 뉴딜정책에서도 ‘디지털’에만 7조 9000억 원을 편성했다. 우리나라 디지털 이동통신기술은 무엇보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빛을 발휘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 기술을 활용해서 확진자의 동선을 빠른 속도로 파악했고 또 접촉자도 찾아내서 검사받도록 조치했다. K방역에서 디지털 기술은 진가가 드러났다. 전염병의 확산 속도보다 빠른 정부의 대책이 전염병을 억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의 핵심은 이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경제적으로 침체된 현재 상황을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기술이 집약된 디지털 분야의 고용효과가 얼마나 될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이 정책이 이번에 새롭게 도입된 것은 아니다. 이미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5G 시대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에서 기술을 선도하는 국가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왔다. 디지털 뉴딜사업과 유사한 문화콘텐츠 지원사업은 이미 문화예술계에서 여러 형태로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재난 상황은 온라인 콘텐츠 정책이 무비판적으로 확대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에 대한 종합적인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 8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17 개 시.도 광역문화재단에 <온라인 미디어 예술활동 지원 ‘아트체인지업(Art Change UP)’ 사업>을 발표했다. 이 사업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대면활동이 위축된 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온라인 환경을 활용해서 활성화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사업의 지원자들은 온라인 기술을 활용한 예술적 실험 혹은 온라인 콘텐츠의 소비를 촉진하는 것에 집중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사업의 추진배경에서 한국형 디지털 뉴딜사업의 D.N.A 생태계를 강화하고 1.2.3차 전 산업으로 5G와 AI를 융합 확산한다고 밝혔다. 이 사업은 전국의 예술가 2,700여명을 대상으로 149억9,000만원을 지원한다. 이는 예술뉴딜로 코로나를 극복하자고 전국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공공미술프로젝트 948억(국비759+지자체179억, 예술인 8,500명)에 이어 지금껏 보지 못했던 규모의 온라인 예술지원 프로젝트다.
문체부가 올해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전년 대비 공연예술 분야는 1,967억원 시각예술 분야는 678억원의 매출이 감소했다고 한다. (1월~8월의 수치이므로 올해가 지나면, 이 수치는 더욱 늘어날 수 있다.) 같은 기간 예술활동현황 자료와 문화예술분야 신용카드 지출액 자료로 추정된 공연·전시 취소 건수는 각각 9,683건, 1,553건으로 국공립문화기관을 중심으로 이어진 장기화된 휴관조치의 결과는 참혹한 상황이다. 이 자료가 제시한 문화예술분야의 고용감소로 인한 피해액도 747억원에 달한다. 코로나19의 피해가 전 방위적으로 모든 산업 분야에 고통을 주고 있지만, 문화예술 분야에 끼친 타격도 이처럼 매우 심각하다. 정부가 ‘한국판 뉴딜’정책을 발표하던 날,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제5회 코로나19 예술포럼’을 열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6개의 기관이 함께하는 이 포럼은 전환기에 당면하고 있는 예술지원의 위기를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 포럼에서 권용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정책혁신부 책임연구원이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의뢰해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공연예술은 지난 해 대비 91.1% 미술 분야의 전시는 55%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료에서는, 정부지원 정책의 영향인지 모르지만, 66%의 국민이 온라인 문화예술활동을 경험했다고 응답했으며, 온라인 플랫폼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예측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온라인 문화 활동이 예술의 본질적인 매개수단으로 자리 잡기에는 한계가 있고 이를 대체할 만한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대답한 예술인의 의견도 13.7% 나 됐다. 권 연구원은 재난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긴급하게 마련한 지원정책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고 과연 온라인 지원만이 대안인지, 재난의 미래에 대처할만한 체계적이고 본질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온라인 콘텐츠가 현장의 예술을 대체할 만한 대안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에 양혜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예술정책연구실장은 ‘현장성’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의 속성상 온라인 콘텐츠는 몰입의 경험을 완벽하게 줄 수 없는 한계가 있으며 완성도 있는 콘텐츠 제작과 유통을 위해서는 상당한 제반 노력과 비용이 수반된다고 지적했다. 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온라인 프로젝트에 참여해본 경험이 없다고 답한 예술인들이 59.3%나 됐고, 그들에게 참여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더니, 예술 활동에 적합하지 않아서(44%), 비용이 없어서(30.3%), 시설이나 장비가 없어서(28.7%), 방법을 몰라서(24.8%), 기술을 몰라서(22.7%)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문화예술계의 온라인 콘텐츠 제작-유통-향유에 필요한 기반을 갖추어져 있는가? 기반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기반체계를 마련하는 쪽에 지원을 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인데, 현재 상황은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보인다. 사업에 참여해본 경험이 있는 예술인들은 제작비용 조달(44%), 촬영, 음향, 조명 장비 조달(38.2%), 전문인력(32.8), 스튜디오 등 제작공간(31.5%), 유통플랫폼(24.5%), 저작권 문제(19.4%)등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들은 또한 콘텐츠 제작비용(70.6%), 시설 및 장비(56.5%), 유통플랫폼 활성화(52.2%), 수익창출(46%), 콘텐츠 제작 교육(45.3%), 홍보 및 기부(44%), 제작인력(40.3%)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오히려 온라인 비대면 콘텐츠의 부상으로 자본지배력증가(70.9%), 양극화심화(59.9%), 현장성 및 고유성 침해(53.8%), 신진예술인에게 불리(36.3%), 다양성 침해(48.2%)와 같은 우려를 나타냈다.
이 포럼의 발제자들과 토론자들이 의견을 같이했던 부분은 온라인 콘텐츠 지원사업과 같은 대규모 정부지원이 예술인의 내적 필요에 의해서 마련된 것이라기보다는 정부가 주도해서 진행하는 가난한 예술인을 구제한다는 시혜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지원사업의 방향이 코로나로 외부활동이 제한된 국민들의 온라인 문화예술향유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이 사업에 참여하는 예술가의 창작 동기부여가 불확실하고 콘텐츠 제작을 통해서 실질적인 수입이 발생하지 못하거나 예술가의 저작권을 보호할 마땅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 시행에만 급급했다는 것이다. 결국 코로나 펜데믹의 재난 이전부터 있어왔던 기후 온난화와 같은 환경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재난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문화예술계와 같이 체질적으로 재난 상황에 취약한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에 대한 체계적이고 항구적인 제도개선도 필요할 것이다. 또한, 재난이 일상화된 사회로 전환된 상황을 인식하고 위기 상황에서 문화예술기관 및 시설운영의 원칙과 기준을 마련해서 예술인들이 안정적으로 예술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 마련도 요청된다. 특히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 등 시설의 운영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여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면서 문화예술 생태계가 지금처럼 붕괴되는 일을 막는 재난 위기 대처 매뉴얼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창작동기 부여 불확실한 향유사업
토론회 끝까지 해결되지 못했던 질문 중의 하나는 ‘문화예술 정책은 왜 이렇게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탑다운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토론자들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좀 더 충실한 거버넌스로서 ‘예술인 공론의 장’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고 문체부와 기재부 등의 기관과 협상이 가능한 독립성을 요청했다. 예술인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했던 블랙리스트를 지난 정부에서 경험했지만, 아직도 정부 관료들은 예술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섬세한 행정을 고민하지 않는다. 코로나로 인해 고통받는 현장 예술인들의 실태를 발 빠르게 조사해 준 한국문화관광연구원과 이런 공론장을 마련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현장 예술인들과 좀 더 분발할 수 있도록 격려가 필요해 보인다.
이 글을 쓰면서 마땅한 대책을 찾기 어려웠던 필자는 지난 30일 인천아트플랫폼이 진행한 비대면 오픈스튜디오를 보면서 생각했던 몇 가지를 소개하면서 마치고자 한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조금 줄어들어 국공립미술관은 예약제로 오픈하였고 금천예술공장은 지난 29일 제한된 관람객을 받으면서 지난해와 같은 오픈스튜디오를 열었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오픈스튜디오를 온라인으로 3일에 걸쳐서 진행했다. 작가들에게는 20분의 시간이 주어졌는데, 자기 작업을 소개하는 방식이 다양해서 재미있었다. 드로잉이나 작품을 직접 들고 설명하는가 하면, 카메라 앞에 유리막을 설치해서 직접 그림을 그리면서 공간과 이미지 간의 간극에 대해 소개하고, 팬데믹으로 고립된 시간동안 지는 해를 기록했던 작가에게는 일몰시간이 배정되었다. 필자는 자동차 안에서 지는 해를 보면서 퇴근하는 중이었다. 미국에 있는 친구와 미술관의 퍼포먼스를 기획하고 떨어진 공간에서 기술을 연결하여 매일 매일의 발굴실험을 지속했던 작가는 미국 친구가 인천공항을 통해 들어와 격리되는 시간 동안의 과정을 퍼포먼스로 연결했으며, 여행이 불가능한 지금의 상황을 위로하듯 실크로드를 지나 인도를 거쳐 이란과 시리아 터키를 여행했던 작가의 이야기까지 각 작가들은 이 상황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자발적으로 극복가능한 대안적 작업방식을 제안하고 있었다. 지원기관이 고민하는 거버넌스의 토대는 창작가들의 내적 동기에서 유발된 상상력에서부터 출발해야 될 이유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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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영. 1996년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미디어 아트를 전공하였다. 2003년부터 문화예술정책 개선을 위한 미술인회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소위원(시각예술, 다원예술)활동을 했고, 2009년부터 경기문화재단에서 문화예술교육, 경기도미술관과 경기창작센터에서 전시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기획하였다. 2006년 기관을 벗어나 광주의 의재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2007년 안산의 원곡동에서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를 설립하고 아시아교류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2015)으로 일하다가 올해부터 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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