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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도서정가제] 도서정가제 개악, 네 가지 이슈

CP_NET 2020. 10. 6. 08:31

지난 9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도서정가제 개정안에 대해 출판서점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도서정가제는 1977년 출판업계와 서점업계의 자율협약으로 도입된 것으로, 도서류는 전국 어느 서점에서나 정가대로 판매해야 하는 제도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대형마트, 할인전문서점, 인터넷서점이 등장하여 무차별적인 도서 할인 판매에 나서면서 자율협약은 무너졌고 정가판매제는 무력화되었다. 그 결과 할인 경쟁에 뛰어들 수 없었던 지역 중소서점의 몰락이 가속화되었고 그 여파로 중소 도매서점의 도산도 잇달았다.

 

이런 상황에서, 출판유통시장의 안정과 지역서점 보호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2002년 ‘출판 및 인쇄진흥법’에 도서정가제 개념이 처음으로 담겼다. 하지만 당시의 도서정가제는 반쪽짜리였다. 전자상거래를 통한 도서의 판매는 10% 할인이 가능한 반면 오프라인 서점은 할인을 금지했고, 구간(발행 18개월이 지난 도서)은 무제한 할인이 가능하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은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오히려 지역서점과 중소 출판사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무제한 구간 할인으로 인하여 신간보다는 구간이 시장 판매량의 절대량을 차지했고 규모가 작은 지역서점은 할인할 여력이 없었다. 때문에 인터넷서점과 대형체인서점의 매출액만 키우는 결과를 낳았고, 신간 출간의 의지를 잃은 출판사는 구간의 할인 이벤트에만 매달려 출판사의 수익구조도 악화되었다.

 

 

도서정가제 시행 배경과 변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도서를 판매하는 모든 서점이 독자에게 10% 할인과 5%의 경제상이익을 제공하는 것을 허용하는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이 2014년에 제정되어 지금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이 방안도 지역서점에게는 만족스러운 해결책이 아니었다. 지역서점은 도매서점을 통해 책을 공급받아 판매마진이 크지 않으므로 10%할인과 마일리지 5% 등의 경제상이익을 제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약이 있는 출판문화산업진흥법임에도, 이 법의 시행 이후 출판서점시장은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변화를 겪고 있었다.

 

첫째, 등록 출판사의 증가다. (2010년 35,626사 -> 2014년 47,226사 -> 2019년 70,135사) 2014년 이전 구간 판매량의 비중이 높던 시기에는 신생 출판사가 시장에 진입하기가 어려웠다. 큰 폭으로 할인할 만한 구간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4년 이후 신간의 경쟁력이 향상됨에 따라 좋은 책은 언제든지 독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신간 위주로 재편된 출판시장에서, 참신한 기획력을 갖춘 1인 출판사 또는 작은 출판사들이 가파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둘째, 신간 발행 종수 증가다. (2010년 40,291종 -> 2014년 47,589종 -> 2019년 65,432종) 신간 발행 종수는 2014년 현행 도서정가제 도입 이후 급격히 증가했다. 여기에는 신생 출판사의 증가도 한몫했지만, 기존 출판사 역시 구간의 할인 판매에서 신간 출시로 매출의 중심을 옮겼다. 그 결과 베스트셀러 목록이 신간 중심으로 복원이 되었다.

셋째, 대형체인서점과 온라인서점에서 무제한 구간 판매가 사라지면서 오프라인 지역서점의 감소세가 둔화되었다. 2009년 2,846개에서 2013년 2,331개로 급속하게 줄어가던 지역서점은 2017년 2,050개로 감소폭이 둔화되었으며 2015년 97개이던 독립서점은 2018년 416개로 크게 늘었다. 가구당 월평균 서적구입비의 지속적인 감소세(2010년 21,902원->2018년 12,054원)를 감안하면 놀라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또 주요 인터넷서점도 2015년 이후 영업이익이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했다. 불완전한 도서정가제를 담은 2014년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이지만 출판생태계 구성원(저자, 출판사, 서점, 독자) 모두가 이전보다 나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출판서점계가 크게 반발하며 개악이라고 주장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개정안의 주요 내용과 출판서점계의 비판을 하나 하나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도서전 할인판매 허용

문화체육관광부는 ‘서울국제도서전’과 ‘대한민국 독서대전’을 대표로 허용하자는 입장이다. 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주관, 주최하는 그외 도서전에 대해서도 검토하자고 한다. 출판서점계는 그간 도서전에서 할인판매를 하면서 도서전의 본래 목적이 훼손되었다고 본다. ‘서울국제도서전’은 본래의 취지인 ‘국제도서전’에 맞추어 진행되어야지 무분별한 도서할인장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역에서 개최하는 ‘대한민국 독서대전’도 지역 독자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고 효율적이고 창의적인 독서법 등을 나누는 독서 커뮤니티 활성화에 중심을 두고 개최하는 행사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독서대전’에서 행해지는 무분별한 할인판매는 행사기간 전후로 지역서점의 매출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판매대금은 서울에서 내려와 할인 판매하는 일부 출판사들이 싸들고 가져갔다. 이런 부작용을 수없이 겪었던 출판서점업계는 2014년 이후 도서전도 도서정가제를 지켜야 하는 공간으로 만들어갔다. 출판사 역시 도서전을 판매의 공간이 아닌 홍보의 공간으로 활용하기 시작해 이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장기 재고도서 할인판매 허용

장기 재고도서의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발행 3년이 지났고 주문이 없은 지 1년 이상인 도서를 장기 재고도서라 정의하고 큰 폭의 할인판매를 허용하자는 안을 냈다. 출판서점계가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은 1년 이상 주문이 없는 도서는 할인을 해도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2014년 이후 확립된 신간 중심의 시장을 다시 돌이킬 수는 없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소위 악성재고 처리에 대한 출판사의 고민을 언급한다. 그러나 실제 출판사에서 파기하는 악성재고의 양은 2014년 이전 구간 무제한 할인을 하던 당시와 비교하여 전혀 늘어나지 않았다. 출판사는 이미 구간의 재고를 잘 관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패한 책은 할인한다고 더 판매되지 않으며 할인으로 독자를 유인한다면 그것은 독자를 기만하는 일이 될 것이다.

 

전자출판물에 대한 20~30% 할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시한 통계에 따르면 전자출판물 가격은 종이책 정가 대비 68% 내외다. 즉 출판사는 이미 실물 도서를 만들지 않는 점을 감안하여 정가를 30% 이상 낮게 책정하고 있다. 또 상당수의 출판사는 전자출판물에 대한 인세를 종이책보다 높게 책정하여 저자에게 지급하고 있다. 전자출판물에 대한 할인 여력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20~30% 할인을 요구한다면 출판사는 전자출판물의 정가를 인상하고 저자에 대한 인세를 낮출 수밖에 없다. 즉 정가를 올리고 할인을 하라는 요구가 된다. 그리고 주요 서점의 경우 전자출판물 유통 부문에서 적자를 내고 있다. 서점 역시 현재 추가 할인의 여력이 없다는 뜻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안대로 간다면 전자출판물 시장은 크게 위축될 것이다.

 

웹기반 콘텐츠 연재물(일반적인 웹소설, 웹툰 등)에 대한 도서정가제 적용 제외

웹툰, 웹소설의 매출에서 연재 중인 출판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70% 이상이다. 이에 대한 도서정가제 적용을 유예할 경우 무차별적인 할인 경쟁이 일어날 것이다. 이는 자본이 넉넉한 카카오와 네이버 등 포털 기반 대형 유통사와 중소형 웹툰․웹소설 플랫폼의 불공정 경쟁 상태를 초래한다. 포털 기반 유통사업자는 풍부한 자금력을 기반으로 큰 폭의 가격할인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고 결과적으로 이는 출판사의 공급가 인하 압력과 마케팅 비용 전가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작가에게도 전가될 것이다. 급속하게 늘어나는 웹기반 콘텐츠 연재물 시장의 성과를 카카오와 네이버와 같은 포털 기반 대형 유통사에게 몰아주고 작가와 출판사는 콘텐츠 생산 의욕을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 2014년 이전 할인의 폭이 컸던 종이책 시장에서 이미 겪었던 일로, 대자본 서점은 매출을 꾸준히 늘렸고 지역서점은 몰락했다. 웹툰과 웹소설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질 것이 자명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도서정가제 개선을 위한 민관협의체’를 구성하여 지난 1년간 16차례에 걸쳐 협의를 진행하여 최종 합의안을 도출하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는 합의한 내용은 무시한 채 위에 열거한 4가지 안을 들고 나와 스스로의 성과를 부정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합의안을 파기한 이유에 대해 공식적인 해명을 해야 함은 물론, 기존 합의안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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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경. 도서출판 따비 대표. 한국출판인회의 유통정책위원장. 1995년 여름 출판사에 취직했고, 잠시 동네서점을 운영했으며, 인터넷서점에서 기획일을 한 적도 있다. 출판사 한울, 현실문화연구, 디자인하우스 등을 거쳐 2010년 출판사를 창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