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리뷰] 지역현장을 고민하는 우정의 어워드 - 2023 내일의 기획자 어워드 후기

CP_NET 2023. 4. 17. 22:18

 
 
‘2023 내일의 기획자 어워드’ 시상식이 3월 31일 전남 광양에서 열렸다. 2022년에 이어 두 번째 열린 행사다. 올해는 김태유 진한컴퍼니 대표, 이유미 인디053 마을문화팀장 두 명이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각각 진해와 칠곡에서 활동 중인 두 사람 외에도 춘천 소양하다의 윤한 대표, 나주 신혜빈 독립기획자가 최종 후보로 올랐다.
 
수상자와 후보들의 면면에서 보듯 ‘내일의 기획자 어워드’는 지역의 문화기획자를 발굴하고 응원하겠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아니, 발굴이란 말에는 오해가 있을 수 있다. 기획자들은 유적지처럼 발굴되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지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역동하는 존재들이니까. 그저 운이 좋아 문화예술계의 한켠에서 살아남았고 나름의 기반을 다지게 된 이들이 지역에서 고군분투하는 후속 세대들을 지지하는 뜻을 담아내기 위한 작은 이벤트라고 보면 좋겠다.
 
 
느슨하게 만나고 궁리하기
 
‘내일의 기획자 어워드’의 첫 시상은 2022년이었지만 시작은 2021년이었다. 서울과 부산, 대구와 광주, 경상, 전라, 충청, 강원 등 전국에서 활동하는 문화기획자들이 모임을 가지며 월 단위 온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지역문화, 문화도시, 문화인력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사실, 사안에 대한 토론을 하고 정보를 나누는 것도 필요했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고 동료애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러다보니 지역에서 기획자가 자리 잡고 성장하는 환경에 주목하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세대들이 좀 더 안정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고민하며 만들어낸 것이 ‘내일의 기획자 어워드’다. 굳이 의미를 부여해서 정리하자면 기획자들의 만남이 빚어낸 우정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름에서 보는 것처럼 뚜렷한 조직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느슨하게 만나고 궁리하는 형태다.
 
1회에는 모임에 참여하는 기획자들이 자체 추천한 후보들 중에서 수상자를 선정했다. 가급적 지역에서 활동하는 기획자, 후속 세대라고 할 만한 젊은 기획자, 공공기관이 아니라 민간단체에서 활동하는 기획자 등의 원칙을 두었다. 올해에는 방식을 좀 바꿔 일반 추천을 받고 2차에 걸쳐 선정 과정을 진행했다. 1월 11일부터 31일까지 온라인을 통해 추천받은 16명의 후보를 두고 구성원들이 1차 심의를 거쳐 4사람의 최종 후보를 선정했다. 최종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2차 심사를 진행해 수상자를 최종 결정했다. 과정을 이렇게 바꾼 것은 외연을 넓히는 한편으로 동료를 찾아 이야기를 듣는다는 취지를 더 키우기 위한 것이었다. 사실, 초기 논의를 진행할 때는 1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추천받은 후보 전체를 만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기도 했으나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최종 후보 4인의 인터뷰로 대체되었다. 후보자들의 개별 인터뷰는 페이스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내일의 기획자 수상후보 인터뷰1 - 윤한 소양하다 대표 
내일의 기획자 수상후보 인터뷰2 - 김태유 진한컴퍼니 대표 
내일의 기획자 어워드 수상후보 인터뷰3 – 신혜빈 독립기획자 
내일의 기획자 수상후보 인터뷰4- 이유미 (사)인디053 마을문화팀장

 
후보자들의 인터뷰에서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지역에 대한 애정이었다. 어린 시절 떠나고 싶었던 지역이 떠나고 싶지 않은 곳으로 변하는 과정은 여러 가지로 인상 깊었다. 사는 지역에 재미를 더하고 싶었던 활동이 의미를 더하고, 의미가 다시 지역에 대한 책임감으로 바뀌는 이야기도 마찬가지. 숨겨진 맛집이나 술집을 아는 것을 넘어 지역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애정이 더 커진다는 이야기는 생동감이 넘쳤다. 후보자들은 자신의 활동과 기획이 발 딛고 있는 지점을 뚜렷하게 인식하고 다음 단계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을 어떻게 남길 것인지, 지역의 장소성을 어떻게 매력적으로 살려갈 것인지, 지역과 주민들이 소비되지 않는 활동은 어떻게 가능한지, 후속 세대들이 자리 잡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모두 공유하고 있었다.
 
‘내일의 기획자 어워드’는 수상만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것을 지향하지 않는다. 시상식을 마친 후 이어진 네트워크 자리에서는 선정자와 후보자, 어워드를 준비한 기획자들이 허심탄회하게 현재의 고민을 공유하며 앞으로의 계획들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각자의 도시를 방문하거나 초대하는 일에 대한 논의가 오간 것은 물론이다. 개인적인 친분을 넘어 어떤 연결인가가 중요하겠지만 우선은 서로 발견하고 지지하는 마음을 확장하는 것이 당분간 ‘내일의 기획자 어워드’가 가진 목표가 될 것이다.
 
사실, 대단한 공신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큰 상금을 주는 것도 아닌 작은 상 하나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고 모이고 일을 도모하는 것을 통해 제시하고 싶은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일차적으로는 지역의 척박한 현실에서 활동을 이어나가는 기획자들에 대한 지지와 응원이지만, 결국 제도를 넘나드는 활동의 기반이 튼튼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활동의 지향이 제도 안쪽으로만 국한된다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정책을 견인하고 제도와 시스템을 구비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시스템의 바깥을 상상하고 일들을 만들어나가지 못한다면, 시스템 내부의 견고함 역시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지역에서의 활동이 당장 제도적 기반을 굳건히 가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제도적 기반을 만들어가는 일이 지금 대부분 지역 활동의 당면 과제다. 소박한 시도지만, 우리의 응원이 지역 기획자들의 안정적인 활동 환경을 만드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했으면 한다.
 
조금 거창해 보이지만, ‘내일의 기획자 어워드’에 담고 싶었던 내용이다. 주변사람들과 만나 환대의 열매를 나누고 일상에서 가능한 일들을 꾸준히 해나가는 일은 언제나 중요하다. 제도와 정책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게 아니라 시스템의 안팎을 넘나들며 조금 다르게 살아내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아닐까. 이제 다시 내년의 어워드를 준비하며 다양한 동료들과 좀 더 자주 만나고, 또 다른 만남과 기쁨의 씨앗들이 여기에서부터 뿌려지고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일의 기획자 어워드는 지역의 문화기획자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수상자가 받는 상금은 구성원들이 펀딩한다. 현재 15명의 기획자가 참여중이다. 연말 연초에 걸쳐 진행되는 어워드 진행 외에는 부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기획자들의 폭넓은 교류와 다양한 논의를 지향하고 있다.
문의 redanth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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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호.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활동가, <컬처뉴스> 편집장을 지냈고 부천문화재단, 제주문화예술재단에서 일했다. 함께 쓴 책으로 나의 아름다운 철공소, 노년예술수업, 생애 전환 학교등이 있다. 스무 살 무렵 빼어난 재능들에 주눅 들어 창작에서 도망친 후, 예술 동네 근처에서 얼쩡거리며 문화 정책과 기획 관련 일을 해 왔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왕성한 문화 소비자가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