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기획연재: 사건과 논쟁으로 돌아보는 한국 문화정책 ⑨] 사반세기를 향해가는 지역문화정책 – 2001년 “지역문화의 해”2 (염신규)

CP_NET 2024. 8. 7. 21:34
편집자 주:사건과 논쟁으로 돌아보는 한국 문화정책기획연재를 시작합니다. 이번 연재는 한국 문화정책의 지형을 두텁게 그려보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사건과 논쟁에 대한 입체적 복기를 통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재의 기원을 살피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시작하며- 기원을 입체적으로 복기하기_ 염신규

이른바” 3S정책1: 유신이 억압하고 있던 것들_ 염신규

이른바” 3S정책2: 개방과 강력한 통제의 공존_ 염신규

1996, 한국 문화향유정책의 기원 1_ 염신규

1996, 한국 문화향유정책의 기원 2_ 염신규

1996, 한국 문화향유정책의 기원 3_ 염신규

1996, 한국 문화향유정책의 기원 4 ‘문화의집’을 둘러싼 동상이몽_ 우지연

사반세기를 향해가는 지역문화정책 2001지역문화의 해”1_ 염신규

 

 

2001지역문화의 해를 맞으며 다시 본격적인 정책 논의가 불붙었지만 지역문화정책에 대한 관점은 복잡하고 다양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지역문화를 바라보는 관점과 위치, 즉 시좌(視座)가 다양하게 존재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백가쟁명 토론회에 참여했던 100여 명의 토론자들의 관점이 하나로 묶인다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고 지역문화란 이름으로 서로 다른 방향의 이야기들이 오가거나 상충하는 경우도 존재했다.

 

 

복고, 보호, 자원, 자치- 지역문화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

 

당시 등장했던 몇 가지 의견들만 살펴보자. (인용은 <백가쟁명식 대토론회> 발제문이다.)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문제의식은 지역문화의 위기이다. 주로 황폐화된 지역문화라고 표현되었는데 그 원인에 대하여 조선시대의 유교문화, 일제 식민지 문화, 해방 이후 분단으로 인한 이데올로기 편향 문화, 미국 일변도의 낮은 수준의 소비문화,, 타 종교 문화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 문화, 서울 중심의 자본주의적 중앙 집중 문화를 들고 있다.(“지역문화활성화 방안”, 최근식 서해안풍어제 사무총장) 이중 몇 가지는 필자가 봤을 때는 과도한 확대해석이란 느낌을 받지만 근대화 이후 한국의 문화가 중앙 집중의 서구적 근대 문화를 중심에 두면서 지역 고유성을 가진 문화가 쇠퇴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즉 지역문화의 부흥을 강조하는 관점이 단지 지리적인 중앙-지역의 균형 찾기 차원이 아니라 20세기 중후반 이후 한국의 문화적 흐름이 가져왔던 근대적 관점의 발전전략에서 사장되었던 문화적 다양성을 다시 찾아보자는 흐름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복고주의적 관점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데 여러 논자들의 주장에서 반복된다. 지역문화를 고유성을 가진 전통적인 문화로 해석하면서 이것이 상실되어가고 있는 것이 지역의 공동체적 삶이 사라지는 것인 동시에 민족문화가 사라지는 것으로 연결하여 해석하고 있다.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에는 뱃동우라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백두대간의 한 줄기에 형성되어 최근까지 11집이 살다가 모두 떠나고 지금은 빈집만 남아 있다. 즉 마을이 없어진 것이다. 강원도에는 근래에 들어 급속한 속도로 산간마을이 사라지고 있다. 강원도의 산간마을들은 대부분 전통적인 삶의 방식으로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이루며 살아왔다. 따라서 마을이 없어지는 것은 지역의 전통문화가 함께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지역문화 자원으로서의 발굴이 우선되어야”, 김진순 코리아루트 대표) 20년 이상 지난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이런 문장 자체가 매우 생경하게 들리지만 당시 지역문화에 대한 관점에는 도처에서 이런 복고적, 혹은 보호적 입장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런 복고적인 지역문화 관점에 기반하고 있음에도 지역문화가 지역주체성의 중심이자 정체성이란 시각이 강하게 주장되기도 한다. “지역문화는 그 지역인들의 주체성과 본질을 밝혀주는 핵심적인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그 지역 사람들로 하여금 결집력과 자긍심을 고취시켜 주는 구심체 역할을 한다. 즉 지역 주민들은 자기 지방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익히고 이해하면서 지역의 주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지역문화의 현실과 실천과제”, 엄흥용 영월향토자연구회장) 또한 이런 지역 정체성의 확립이 주민들의 자긍심 고취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지역의 관광소득과 연계되어 문화산업 발전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과거로부터 이어져오는 것들을 지켜내고 발굴하는 것에 대한 지원을 통하여 새로운 문화산업의 가능성을 키우자는 것인데 지역문화를 미개발된 자원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문화자치를 통한 문화민주화의 가능성으로 지역문화를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했다. 민속학자 임재해 교수의 발표문에서 그런 측면이 잘 드러나는데 그는 지역문화 전문가들이 지역문화 지식으로 지역에서 자신의 문화기득권을 강화하는 일보다 지역주민을 위해서 문화 봉사를 적극적으로 하는 문화민주화 작업에 특히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문화민주화가 실현된다”라고 주장하며 지역문화의 산업적 활용보다는 지역문화를 통해 지역의 일상을 되살려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의 주장을 좀 더 살피면 지역문화의 토대인 농촌공동체가 죽어가고 있는 현실을 외면한 채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살리자는 것은 문화와 사람, 문화와 사회의 관계를 포착하지 못한 채 문화기득권을 독점적으로 향유하려고 하는 한갓 문화주의일 따름이며 그래서 지역문화의 해를 이벤트로 소비하는 것에 대한 강한 반발감을 표시하고 있다. “유별난 지역문화를 구경거리로 개발하여 한국방문의 해나 월드컵 대회 때 외국 관광객을 끌어들이겠다고 하는 얕은 문화상품 속셈에서 벗어나야한다는 것이다. 이분법적으로 구분될 수는 없고 기본적으로 지역문화에 대한 다소 복고지향적 입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선 비슷한 측면도 있지만 지역문화를 활용되어야 할 자원으로 바라보는 시각과 황폐해져가고 있는 지역을 되살리기 위한 실천적 과제로 바라보는 시각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현재까지 문화도시 등 지역에 기반한 문화정책을 설계하거나 평가하는 관점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역문화네트워크 창립

 

여하간 2001지역문화의 해를 통해 다양한 만남의 계기를 마련하기 시작한 각 지역의 지역문화전문가들은 그다음 해인2002년 인천, 공주 광주, 고령, 경주를 순회하며 5차례 준비모임을 하고 20033월 경주에서 지역문화네트워크를 발족했으며 아래과 같이 지역문화활성화를 위한 10대 과제우리의 다짐을 발표했다.

지역문화네트워크의 10대 과제

1. 문화분권화의 추진
2. 지역의 문화적 삶의 질 향상
3. 지역문화정책 및 행정체계의 개선
4. 지역문화 전문인력 양성
5. 시민의 문화 참여제도 활성화
6. 문화교류와 문화프로그램 활성화
7. 지역문화시설 활성화
8. 지역문화 재정 확충
9. 지역문화 정보화 추진 및 문화정보시스템 활성화
10. 지역간 문화교류의 활성화


우리의 다짐

1. 우리는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독창적인 지역문화를 창출하는데 앞장선다.
1. 우리는 지역문화의 주체는 지역주민임을 자각하고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주민문화 개발에 봉사한다.
1. 우리는 지역문화가 더 이상 모방과 복제이기를 거부하고 자주적이고 개성있는 문화를 발신하는 밑거름이 된다.
1. 우리는 지역문화네트워크를 넓히고 심화시켜 교류와 협력과 경험을 토대로 참다운 지역문화 시대를 펼쳐 나간다.
1. 우리는 우리의 다짐을 실천하기 위하여 자치단체나 국가의 문화정책에 공동으로 대처해 나간다.

 

지역문화네트워크는 창립 이후 격월간의 공동대표자회의와 지역순회 모임을 갖고 지역의 문화이슈와 문화정책 등에 관한 토론회와 개최 지역 문화답사를 경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으며 지역문화활성화와 문화분권을 위한 대토론회등을 진행하여 국가 문화정책에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후 지역문화진흥법제정을 제안했으며 실제 그 법안의 내용에 깊숙이 관여하기도 했다. 지역문화네트워크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지역문화진흥법 제정이 참여정부 당시 기정사실처럼 진행되는 분위기였으나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에 맞물려 현실로 실현되는데 실패했다. 실질적으로 가장 큰 이유는 당시 국회 관련 상임위가 언론관련법 때문에 극한대립을 하며 이와 별 관련 없는 문화 관련 법안까지도 모두 진행될 수 없게 된 부분이 컸다. 이 법안은 꽤 긴 시간적 공백을 두고 정체되다가 2013년 박근혜 정부 시기에 제정되기에 이른다. 다음 호에서는 참여정부 시기와 이명박 정부 시기 당시의 지역문화정책의 주된 변화들과 지역문화진흥법 관련한 내용을 다루게 될 것이다.

 

 

 


염신규. 본지 편집위원.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 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 겸임교수.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문화예술분야에서 발을 들여놓았으며 창작자, 기획자, 정책활동가 등 깊이 없이 다방면으로 경험을 쌓았다. 최근에는 문화정책(제도) 연구와 문화 연구의 틈새를 메우기 위한 작업들을 고민하고 있다. 특히 관심 있는 분야는 국민국가 성립 과정에서의 문화적 제도화의 문제, 노동자 문화정체성에 대한 비전형적인 방향에서의 탐색 등을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