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기획연재: 지역문화 현장과 정책의 재구성 ①] 척박하기 때문에 연대로 성장해온 대구 독립영화 씬

CP_NET 2024. 5. 8. 23:12

 
 

편집자 주: [문화정책리뷰]는 20대 대통령 선거 이후 ‘새정부 문화정책 과제를 묻다’라는 기획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새정부에 대한 제안이라기보다는 새정부 구성을 계기로 현단계 정책과제를 살피자는 기획이었습니다. 이 기획에는 100인의 예술가, 기획자, 정책연구자 등이 참여하여 현장의 구체적이고 다양한 과제를 제안해 주셨습니다. 이 기획에 대한 분석기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진단과 제안에는 구체적 현장으로서의 ‘지역’에 대한 여러 관점이 드러납니다. (관련기사: [특집: 새정부 문화정책 과제를 묻다 ⑤] 분석-정책 관심도와 흐름  [특집: 새정부 문화정책 과제를 묻다 ⑦] 분석-정책에 대한 관심과 흐름2)
  
‘지역문화의 현장과 정책의 재구성’은 지역예술과 지역문화의 현장에서 정책이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현장에서는 어떠한 변화와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정책의 작동에서 토대로서의 현장에 주목하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지원사업의 안이냐 밖이냐를 떠나 스스로 자신의 토대를 만들어가는 현장과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정책의 재구성을 전하고자 합니다.

 
 
대구는 1980년대까지 ‘TK’라 칭해지던 한국 권력 지형도의 핵심으로써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을 거치면서 한국 3대 도시이자 산업과 교육의 중심도시로써 자리매김했다. 때문에 근대화 이후에 아카데미를 통해 만들어진 장르 중심의 문화예술의 두께가 유난히 두꺼웠다. 반대로 90년대부터 일어난 민중문화운동과 인디-독립문화예술의 태동, 주류문화에 반하는 반문화현상도 다른 도시보다 더 빠르고 강렬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중심에서 탈락한 주변부의 움직임도 공동체적 면모를 띄고 있었고, 주류사회의 완고함과 충돌하며 맹렬하게 존재를 증명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측면이 크다. ‘유네스코 음악중심도시’ ‘공연문화중심도시’ ‘사진의 수도’, ‘미술의 도시’ 등 자화자찬하듯이 대구가 내세우는 공허한 타이틀 밖에 존재하는 무명씨들, 최전선에서 비틀대는 비주류 문화예술가들이야 말로 대구문화예술의 저력이자 특징이 아닐까?
 
 
오오극장이 만들어낸 변화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대구 영화계는 척박한 환경에 좌절을 거듭하면서도 창작자 집단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기운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2010년대에는 근근이 지역 독립영화의 명맥을 유지해 왔던 손영득, 김홍완, 최창환, 백승빈, 유지영 등 선배 세대부터 워크샵이나 제작 현장에서 만난 고현석, 감정원, 황영, 김은영, 전상진 등 후배 세대 간의 유대가 탄탄하게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영화제작, 시나리오 연구모임 등의 활동을 함께 모색하며 대구 독립영화씬의 새로운 기초를 놓기 시작했다. 기존 독립영화 씬 밖에서는 동성아트홀의 관객모임과 온라인 동호회를 기반으로 한 시민제작 모임이 새로운 움직임을 시작하고 있었다. 오오극장은 이러한 새로운 저변들을 뭉쳐내며 지역 영화계에 새로운 활력을 일으키는 계기로 작동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10여 년 간 잘 운영되고 있던 대구예술영화전용관 동성아트홀이 경영 위기를 맞이하고 있던 터라 굳이 비슷한 개념의 독립영화전용관을 새로 만들 필요가 있냐는 우려와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를 2기 체제로 새로이 구성한 청년영화인들에게는 새로운 구심점과 변곡점이 필요했고, 그들의 호소에 지역문화예술인과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연대하며 오오극장 설립은 강력한 추진력을 갖게 되었다.
 
공적자원의 지원없이 100퍼센트 시민모금으로 만들어진 지역 최초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이 2015년 2월 개관한다. 오오극장은 한국독립영화 상영 쿼터를 70% 이상으로 정하고, <대구영화 연말정산> 등 지역영화 기획전, 개봉 지역영화 장기상영, 관객프로그래머제 도입 등 지역영화를 위한 일련의 사업들이 꾸준히 시도하였다. 연평균 유료관객 10,000명 이상, 설립 초기 월 관객 1,000명 정도를 목표로 했던 오오극장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제외하고는 늘 목표치를 달성해 왔다.. 오오극장이 개관한 2015년은 박근혜 정권 말기였다. 독립영화전용관 지원정책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고, 자력갱생할 수밖에 없었다. 생존을 위한 여러 모색의 과정에서 사회적 경제와 관련된 지원사업을 준비하게 되었다. 애초 극장의 법인을 협동조합으로 추진했던 이유도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지역성을 내세운 오오극장은 마을기업으로 선정되어 시설을 재정비하고 운영비도 확보할 수 있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독립영화전용관 지원사업이 부활한 후에는 극장 운영에서 다소 안정성을 확보하게 된다.

1990년대부터 영화언덕, 제7예술, 씨네하우스, 아메닉, VVF 등 시네마테크 문화의 저변이 활발했던 대구는 그 자양분으로 많은 창작자와 활동가들이 활동해 왔다. 노재원(스튜디오 꿈틀 대표), 한받(야마가타 트윅스터), 원승환(인디스페이스 관장), 김화범(인디스토리 제작이사) 등이 대표적이다. 90년대 유행하던 대학 영화동아리 출신으로는 백승빈(영화감독),(영화 감독), 한상훈(문화 기획자), 김창완(오오극장 프로그래머) 등이 있다. 시네마테크와 대학 영화동아리가 사라진 지금은 관객프로그래머 제도, 영화취향모임 등을 통해 오오극장이 영화매니아들을 영화인으로 매개하는 관문이자 영화인의 산실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오오극장은 지역의 대표인물인 전태일 열사를 추모하는 사업에 함께 하면서 상영회라는 틀을 벗어나 소위 ‘노동영화’를 제작하기로 하였고, 그렇게 완성된 영화가 최창환 감독의 <내가 사는 세상>이다. 이 영화는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노동 3부작으로 자신의 영화세계를 구축해 온 최창환 감독 부활의 신호탄이자, 더불어 지역 사회와 오오극장의 협업이 낳은 매우 소중한 성과이기도 하다. 이를 계기로 오오극장은 영화제작과 배급 등 지역영화 플랫폼으로도 모색을 시작한다.
 
오오극장은 창작자들의 학습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동시대 활동하는 다른 독립영화를 언제든 볼 수 있다. 김현정, 감정원, 고현석 등 신진 감독들은 새벽녘 오오극장이 문을 열기 전 영화를 보고 연구하는 모임을 가지기도 했다. 관객들에게는 개봉작뿐만 아니라, ‘오렌지필름 기획전’ 등 다양한 영화를 지속적으로 소개하였다. 뿐만아니라 관객프로그래머 제도를 통해 관객이 직접 프로그램 운영에 참여하는 시도를 하였고, 관객 프로그래머 출신 중에는 비평활동, 창작활동, 기획활동을 이어가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이처럼 오오극장은 시네마테크와 예술영화전용관이 사라진 지금 그 유일한 대안이자, 어쩌면 자신의 역할을 뛰어넘는 시도를 계속해 오며 2010년대 이후 대구 영화씬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트리거가 되었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는 어떻게 대구독립영화 씬의 핵심 인프라가 되었나
 
대구영상미디어센터는 독특한 역사를 갖고 있다. 2007년 대구영상미디어센터 개관을 앞두고 운영에 참여하려는 두 그룹의 치열한 경쟁이 있었다. 지역 미디어 활동가, 독립영화인들이 한 팀이었고,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DIP)이 또 다른 한 팀이었다. 두 팀의 컨소시엄으로 심사를 통과했지만 선정 이후DIP가 독립영화인 그룹을 완전히 배제시키면서 전국적인 갈등 양상으로 확전 되고 공모사업 재검토에 들어갈 만큼 큰 사건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몇몇은 상처를 받고 지역을 떠났고, 지역 사회의 저항도 있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여러 갈등 속에서 출발했지만 대구영상미디어센터의 역할과 활동은 미미했다. 그로부터 12년 뒤 유의미한 사업 영역이 아니라고 판단한 DIP는 지역 영화인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오오극장의 운영단체인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과 DIP가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컨소시엄으로 대구영상미디어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운영은 전적으로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이 맡았다. 그리고 2023년부터 지금까지 민간위탁 체제로 여전히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이 단독으로 운영을 이어오고 있다.
 
2019년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에 참여하기 시작한 이후 대구영상미디어센터는 큰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미디어 접근성 해소와 지역민의 미디어 역량 강화를 위한 구 단위 미디어센터, 디지털배움터 등이 만들어졌고, 시청자미디어센터 설립도 추진되고 있었기 때문에 대구영상미디어센터는 영화 중점 미디어센터로서 한 발짝 더 과감히 나갈 수 있었다. 이런 가운데 중앙정부의 지역영화 지원정책이 2019년에 시작되면서 대구영상미디어센터를 중심으로 지역영화 지원체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시작된 게 대구영화학교였다. 올해 6기째를 맞는 대구영화학교는 명실공히 지역영화인의 산실로 그 역할을 해오고 있다. 매해 12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고, 이들의 절반 이상이 지역영화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지역영화 제작, 유통 지원사업의 확대, 촬영장비 고급화, 후반작업시설 구축, 창작공간 운영 등 지역 영화생태계가 활성화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점은 대구영상미디어센터가 지역 영화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지역 영화계는 거버넌스가 없었다. 첫 물꼬를 튼 건 2017년 대구단편영화제 때였다. 당시 현장 영화인과 주무부서와의 간담회가 있었는데, 사실 간담회라기보다는 일방적 성토의 장이었다.(이 자리에 참석했던 주무관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훗날 그 자리의 고통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양쪽 모두 이러한 경험이 없었기에 다소 격앙된 분위기와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지만, 이 자리를 계기로 지자체는 현장 영화인들의 존재와 그들의 실질적인 고민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대구영상미디어센터를 매개로 느슨했던 거버넌스는 점차 강화될 수 있었다. 2019년 대구영화·영상진흥조례가 제정되었고, 2023년 대구시는 시의 영화정책 수립을 위해 「대구 영화·영상산업 활성화 방안」 연구를 진행했다. ‘영화’가 시의 정책영역으로 가시화된 것이다. 현재 이를 기반으로 중장기 계획 수립을 위해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과 대구시가 협의를 이어나가고 있다.
 
 
토양은 현장, 지원사업은 거름일 뿐
 
지난 10년, 대구독립영화 씬은 영화문화 저변 확대, 창작자 역량 강화 및 재생산 구조의 확립, 지원제도의 확대, 중앙정부의 지원, 거버넌스 체계의 확립 등 정책과 창작환경의 여러 변화가 이루어진 중요한 시기였다. 그런데 2024년부터 나사 하나가 빠지기 시작했다. 바로 중앙정부의 지원 중단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변화를 멈추게 하거나 혹은 되돌려질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구영화학교’ 사업의 경우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사업을 통해 추진되었으나, 이제는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자체 예산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규모는 축소되었고, 이로 인해 다른 사업 예산을 줄이거나 없앨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급격한 정책기조의 변화는 현장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자, 일부 지역은 자체적으로 주요 사업 예산을 확보해 놓고 있었다. 물론 이 경우도 진흥원과 같은 큰 기관일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이러한 후퇴가 반복된다면 어떤 식의 대비가 필요할까. ‘보이는 손’에 의해 오랜 기간에 걸쳐 발전해온 현장의 역사와 거버넌스의 물꼬가 모두 부정되고 틀어막히는 것을 마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 영화를 포함하여 모든 문화예술인의 운명인 것일까?
 
지금으로서는 이 후퇴의 속도를 더디게 만드는 방법밖에 없어 보인다. 무기력한 시기일 수 있지만, 지역 영화인들의 저력을 믿기에 낙담하지는 않는다. 국제영화제는커녕 영화관련학과도 하나 없는 대구에서 영화인들의 품앗이로 수많은 영화를 제작하고 연이어 국내외 규모 있는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있다. 충무로 밖 지역영화의 현장으로 대구를 주목하면서 ‘대구영화현상’을 만들어냈다.*
 
영화관을 만들거나 미디어센터를 구축하자는 청년영화인들의 다소 무모한 제안에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몸과 마음, 자본을 끌어다 연대하였으며, 독립영화인들의 축제에 인디음악인, 독립출판인, 문화예술활동가들이 모여 선순환이 가능한 축제로 거듭나게 만든 자력갱생과 연대의 저력이 충만하다. 척박하기 때문에 연대로 작은 결실을 맺어온 것이 대구의 독립영화계이고 독립문화예술계의 숨은 힘이다. 물론 자력갱생이라는 토양 위에 정책사업이라는 작은 거름이 더해지자 자라는 속도와 크기가 달라졌다는 걸 확인했지만, 적어도 그 거름이 줄어들고 없어진다고 해서 이 토양이 메말라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정도의 기개는 충분히 갖고 있다.
 
 

* “1990년대 이후 지역영화 제작 역량을 꾸준히 구축한 대표적인 곳은 대구였다. 부산이 부산영화제를 기반으로 성장했다면 대구는 변변한 대학 영화학과조차 없는 현실에서 독립영화인들의 의지가 바탕이 됐고, 이를 담아낸 것이 2000년 시작돼 올해 23회를 맞는 대구단편영화제였다. 다른 지역보다 꾸준하게 이어진 대구 창작활동은 2018년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유지영 감독이 대구에서 제작한 <수성못> 개봉과 2019년 김현정 감독 <입문반>의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수상으로 성과를 잇는 중이다.” (충무로 중심주의 벗어난 지역 영화의 약진” )

 
 
 


권현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센터장. 2006년부터 독립영화계 활동을 시작했으며, 현재는 대구를 기반으로 지역영화 활성화와 영화문화 저변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잡기 어려운 공은 잡지 않고, 치기 어려운 공은 치지 않는다는 신조로 지금까지 가늘고 길게 활동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