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사건과 논쟁으로 돌아보는 한국 문화정책⑦] 1996년, 한국 문화향유정책의 기원 4 - 문화복지에서 문화자치까지, ‘문화의집’을 둘러싼 동상이몽

CP_NET 2024. 5. 8. 22:52

 

편집자 주:  “사건과 논쟁으로 돌아보는 한국 문화정책” 기획연재를 시작합니다. 이번 연재는 한국 문화정책의 지형을 두텁게 그려보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사건과 논쟁에 대한 입체적 복기를 통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재의 기원을 살피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시작하며- 기원을 입체적으로 복기하기_ 염신규
이른바” 3S정책1: 유신이 억압하고 있던 것들_ 염신규
이른바” 3S정책2: 개방과 강력한 통제의 공존_ 염신규
1996, 한국 문화향유정책의 기원 1_ 염신규
1996, 한국 문화향유정책의 기원 2_ 염신규
1996, 한국 문화향유정책의 기원 3_ 염신규

 

 

1996삶의 질 세계화를 위한 문화복지 기본구상을 통해 처음 제기된 문화의집 조성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정책이었다. 삶의 질을 경제적 영역이 아닌 구체적인 일상생활 영역에서 문화롤 통해 다뤄보겠다며, 그 최우선과제로 읍면동 마을 단위의 생활권역에 문화의집 조성을 추진한 점이 그렇다. 이전까지 문화시설은 시군구 단위로 조성되었다면 문화의집은 처음으로 읍면동 단위에 국가가 조성한 문화공간이었다. 그동안 (문화정책이랄 것도 없는) 문화정책이 대규모 문화시설 건립과 공급정책 중심이었다면, 본격적으로 향유자 중심의 문화정책으로의 전환을 표방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 민간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읍면동 생활권역의 문화공간 조성과 문화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최초의 읍면동 생활권 단위 문화공간의 탄생

 

지금이야, 특히 도시의 경우, 조금만 눈 돌리면 문화공간과 문화프로그램 찾는 일이 어렵지 않은데 1990년대 중후반은 지금과는 굉장히 다른 환경이었다. 휴대폰과 PC가 확산되는 과정이었고 동네에서 접할 수 있는 문화공간과 프로그램은 전무했다. 문화생활이란 것은 저 멀리 도심에 있는 공연장, 박물관, 미술관을 가야지만 가능했다. 문화생활은 잘 차려입고 차를 타고 멀리 가서 할 수 있는 관람의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등장한 문화의집은 멀리 가지 않고 동네에서 슬리퍼 신고 갈 수 있는 문화공간을 표방하며 지역주민이 일상생활에서 쉽게 문화를 접하는 통로가 되었다. 무엇보다 관람의 형태를 넘은 문화교육이나 문화활동이 이루어졌다는 점이 당시의 상황에서는 혁신적이었다. 읍면동 단위에서 문화공간을 조성하고 지역주민이 직접 활동한다는 점이 행정에서도 신선한 일이었는지 1990년대 후반의 문화체육관광부 선진지 견학 프로그램에 문화의집 방문이 빠지지 않았고 한국문화정책개발원의 소식지에도 문화의집 소식은 단골로 등장하였다.

 

문화의집의 첫 구상은 지역주민들이 생활 주변에서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작은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다양한 문화프로그램과 문화정보서비스를 제공하여 문화체험 기회를 확대하는 문화전파 교육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2011년까지 500개소 조성을 목표로 하였다. 이를 위하여 「문화의집 모델 및 운영방안에 관한 외국사례 조사연구(1996, 한국문화정책개발원), 문화의집 모델 개발(1996, 스튜디오 메타)이라는 두 개의 연구가 진행되었다. 문화의집 모델 및 운영방안에 관한 외국사례 조사연구에서는 독일 사회문화센터, 스웨덴 문화의집과 민중의집, 이스라엘 커뮤니티센터, 일본 공민관, 영국과 미국의 아트센터 사례를 통해 문화의집 역할과 기능을 가늠해 보며 한국 실정에 맞는 문화복지시설 조성을 강조하였다. 문화의집 모델 개발에서는 문화의집의 역할과 운영철학, 공간 구성, 프로그램, 운영인력, 중앙본부 등 운영 전반을 설계하였고 이를 토대로 문화의집이 전국에 조성되었다.

 

문화의집 모델 개발에서 제시한 문화의집은 문화적 삶을 위한 생활의 문화화와 문화의 생활화를 주요 방향으로 삼았다. 문화 환경으로서의 문화의집, 프로그램 수행 장소로서의 문화의집, 지역의 특성과 지역민의 내면적 욕구에 걸맞은 기능을 지닌 개성 있는 장소로서의 문화의집을 강조했다. 프로그램의 성격으로 문화적 환경체험 문화욕구 발생 창조적 삶 개척을 제시하며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한 문화적 삶, 삶의 질 향상, 문화복지 국가 실현을 비전으로 제시하였다. 두 개의 연구가 공통적으로 강조한 부분은 문화의집을 통해 실현하고자 한 문화복지 정책은 문화기본권과 문화자치에 근간한다는 점이다.

 

 

일단 시작은 했지만... 법적 근거의 한계와 정책의 난맥상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기본구상과 설계는 좋았으나 이것을 실행하는 과정은 그렇지 못했다. 계획은 계획일뿐이 된 것이다. 문화의집 운영에 관한 법적 근거 마련, 프로그램 개발, 운영인력 양성, 재원 마련 등에 대한 계획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었고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도 꽤 큰 포부와 비전을 가지고 준비했다. 하지만 실행 계획은 오로지 조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문화의집을 담당한 부서가 도서관박물관과인 것도 한계로 작용하였다. 시설 관리 부서로 문화복지 정책과 문화의집에 대한 이해도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 정책 담당자들이 잘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일단 시작하고 나중에 보완하자인데 문화의집도 일단 시작했지만 보완은 되지 않았다. 문화의집의 시작은 당시로서는 센세이션 했는지 모르겠지만 법적 근거와 운영계획의 부재라는 태생적 한계는 이후 두고두고 문화의집을 어렵게 만들었다. 문화의집의 법적 근거는 <문화예술진흥법><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있다. <문화예술진흥법> 시행령 제22항 별표 1. 문화시설의 상세 분류에 지역문화복지시설로 되어있다. 2019년 지역문화활동시설로 개정되었다. 비록 별표이지만 문화의집의 성격을 지역주민이 생활권역에서 문화예술을 이해하고 체험하며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서 관련 프로그램과 지식 및 정보를 제공하는 복합문화공간이라고 규정했다. 시설 설치에 대한 부분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규정되어 있는데 동법 시행령 별표2. 박물관 또는 미술관 등록요건에 2종 박물관의 하나로 문화의집이 들어가 있다. 문화의집 담당부서가 도서관박물관과여서 우선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들어갔다는 웃픈 현실이 문화의집의 법적 근거가 가진 한계이다.

 

1996년 조성을 시작한 후 문화의집은 2004년 지방이양사업으로 결정되기까지 총 152개소가 국고와 지방비 매칭으로 조성되었고 국고 지원 없이 지자체가 자체 조성한 문화의집까지 셈하면 157개가 조성되었다. 조성 비용은 마사회 기금 등을 활용하여 국고 2, 지방비 2억을 매칭하는 방식이었다. 지금은 80여 개가 문화의집 간판을 달고 있으나 실제 문화의집으로 운영되는 곳은 30여 곳이다. 공간은 유휴공간 활용을 기본으로 하였는데 당시 지방자치제 출범과 함께 진행되었던 동사무소 통폐합으로 인해 문화의집의 70% 정도가 동사무소 2, 3층에 자리잡았다. 이 외에 문예회관, 도서관, 문화원, 여성회관, 복지관 등에 조성된 경우가 많았고 독립건물을 사용하는 문화의집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또 특수 문화의집으로 청소년 교도소, 장애인복지관, 은행(아산농협과 달서신협), 기업복지회관(영암삼호중공업)도 있었다. 유휴공간 리모델링은 비용을 크게 들이지 않고 당장 문화공간을 조성할 수 있는 방식이었는데 기존 시설이다 보니 이미 노후화된 건물이 많았고 조성 후 유지, 보수가 되지 않으면서 문화의집은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낡은 공간이 되어버렸다. 다양한 공간에 자리잡은 점은 다양한 운영주체들이 있어 초기 문화의집의 역할과 정체성 관련하여 일관된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생활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운영은 시···동 공무원 직영 방식과 민간 위탁운영 방식이 공존했는데, 민간 위탁운영은 30% 이내였다. 대체로 민간 위탁운영이 운영이 잘 되는 편이었고 직영은 공무원이 운영하는 만큼 안정성은 있었으나 평균 1년 단위로 담당자가 바뀌어 운영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려웠다. 공무원들에게는 한직이거나 잠시 쉬었다 가는 보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서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역량 있는 공무원이 배치될 경우 민간 위탁운영보다 더 전문성을 보인 곳도 있었다.

 

좌충우돌하며 역할을 찾아가던 문화의집이 조성 후 맞은 최대 위기는 2004년 지방이양사업 결정이었다. 문화의집 운영은 조성 후 5년 차까지는 연차별 차등 지원 방식으로 국고와 지방비 매칭으로 이루어졌다. 운영비를 5년 간 지원한 것은 이 기간 동안 지자체 나름대로 자생방안을 찾으라는 것이었는데 문화체육관광부와 지자체 둘 다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 이것도 2004년 지방이양사업 결정과 함께 삭감되고 대체 재원으로 복권기금이 투입되었다. 얼마가 되었든 운영비 지원이 없어진 점은 문화의집의 약한 뿌리를 흔드는 결정이었다. 이후 지방이양사업에 대한 평가를 통해 문화의집은 지역 현장의 최일선에 있는 문화공간으로 국가 정책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결과가 제시되고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이를 반영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으나 다음 해 정부가 바뀌면서 없는 일이 되었다. 문민정부에서 시작한 문화의집은 IMF 직격탄을 맞은 국민의 정부에서 최대로 조성되었고 참여정부에서 꺾였다. 조성 시작한지 채 10년도 되지 않아 유명무실한 정책이 된 것이다.

 

이후 2010년대에 생활문화 정책이 등장하며 문화의집과 연계를 모색했으나 낡은 정책사업 대신 새로운 정책사업으로 생활문화센터 조성이 제시되었다. 연구자들은 생활문화센터를 문화의집 2.0 버전이라고 칭하기도 했지만 문화체육관광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었다. 생활문화센터 조성과 운영 관련해 문화의집협회 구성원들도 다방면으로 결합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문화의집협회와 연결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여 개인 자격으로 결합하였는데 이때 강조한 것은 문화의집의 전철을 밟지 말자는 것이었다. 법적 근거 마련, 운영인력 확보, 지속적 운영관리(네트워크) 등 세 가지가 주요 이슈였다. 당연히 받아지지 않았고 생활문화센터 역시 시설 조성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그나마 다른 점이라면 지역문화진흥원이라고 하는 지역문화를 다루는 공공기관에서 주도하였다는 점 그리고 신청서 상에 운영인력에 대한 계획을 넣도록 한 점이지만 이것으로 운영인력 확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웠다. 생활문화센터가 지속적으로 확장되는 가운데 문화의집과 다른 점이라면 지역문화재단이 운영주체로 등장한 것이다. 민간 위탁운영이 가질 수 없는 안정성과 사회 변화를 읽고 대응하는 기획력은 문화의집이 갖기 어려운 것이었다. 생활문화 정책이 본격화되고 이제는 너나 할 것 없이 주민 주체와 시민력을 말하는 환경의 변화 속에서 일부이긴 하지만 생활문화센터는 대응력이 있다는 점이 문화의집과 다른 길을 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했다.

 

문화의집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문화프로그램이 전무하다시피 했지만 지금은 온갖 시설과 기관에서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 내용이 어떻든 간에 누구나 문화를 말하는 시대인 것이다. 지금은 문화의 주체로 주민을 꼽는데 누구도 주저하지 않지만 문화의집의 초창기에는 그것은 낯선 개념이었다. 문화향유 정책이 수요자 중심을 표방했지만 그 내용은 계몽적인 것이 많았다. 국민들 노는데 세금 지원해야 하냐는 이야기를 최근까지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 사업의 성과를 보여주기에 조급한 측면이 있는데 몇 년 전 있었던 예술동아리 1만 개 양성 정책은 정책 관계자들이 문화향유 정책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국민 창의력 향상은 필요한데 노는데 지원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딜레마 속에 수치로 확인되고 관리가 가능한 쉬운 길을 택한 것이다. 문화향유 정책을 다시 되짚어보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수 십년 간 문화향유 정책을 펼치고 있음에도 왜 여전히도 국민 문화활동은 동아리 수로 귀결되는지,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을 받은 국민들은 문화를 향유하는 것이 아닌 전문적 기능 습득에 목을 매는 것인지, 예술 저변은 넓어지지 않는지 말이다.

 

 

삶의 문화를 향한 문화의집의 고군분투

 

문화의집 앞에는 ‘생활 속 문화체험 공간’ 이라는 말이 붙는다. 이 말처럼 문화의집을 잘 나타내는 말은 없다. 생활 속에서 문화를 만나고 체험하며 자신의 문화를, 자신의 문화적 삶을 가꾸어가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문화의집을 설명하는 말은 이렇다. ‘지역주민의 다양하고 자율적인 소규모 문화활동 중심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상호교류와 소통에 기반한 예술창작 및 문화체험, 예술교육 등을 통해 문화창조적 활동을 직접 영위할 수 있는 기초 단위 문화공간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만지고, 만드는 공간이다. 기존의 문화공간이 보고, 듣고, 느끼는 곳이었다면 문화의집은 거기에 더해 만지고 만드는 문화창조적 활동을 영위하는 공간으로 역할하였다. 문화의집이 위치한 지역, 환경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주민 주체 발굴과 주민 주도의 활동을 중심으로 지역 문화공동체에 대한 지향을 그 밑바탕에 깔고 움직여왔다.

 

정부 정책에서 배제된 이후 문화의집은 문화의집협회를 중심으로 문화의집의 정체성에 걸맞는 역할,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뿌리내릴지 모색했다. 2006년 문화의집 역할의 확산에 공감하는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문화의집 운영 TFT를 구성하여 문화의집에 지원금을 배분하는 것을 넘어 문화의집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에 초점을 맞췄다. 문화의집을 권역별로 나눠 만나며 컨설팅을 진행했다. 문화예술교육과로 담당부서가 변경되면서는 지원금을 문화예술교육 운영에만 사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2010년부터는 문화예술교육 안에서 움직이더라도 문화의집 특성에 맞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는 목표로 시민 주체를 강조하는 시민문화예술교육을 시작했다. 처음엔 동아리를 중심으로 했다면 이후 동아리에 한정하지 않고 시민을 문화의 주체로 호명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이어나가 2014년에는 시민문화예술활동으로 그 폭을 확장했다. 이 과정에서 2013년부터 컨설팅이 아닌 협력기획을 시도하였다. 각각의 문화의집이 가진 다른 특성과 차이를 반영하여 지원사업의 목적에 일방적으로 맞추는 것이 아닌 지원사업의 목적과 문화의집 고민 사이의 간극을 메꾸며 문화의집의 고민으로부터 출발하자는 취지였다.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컨설팅이 아닌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협력기획 과정은 문화의집의 운영방식에도 부합하였다. 코로나 시기에는 슬기로운 불편생활을 슬로건으로 이웃과 지구와 함께 공존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문화의집이 말하는 문화란 삶의 방식이고 곧 어떻게 살 것인지를 질문하고 찾아가는 과정으로 활동을 확장해 갔다..

 

지원사업은 지원목적에 일방적으로 맞춰야 하는 한계가 있었지만 문화의집은 지원사업을 통해 다양한 실험을 전개했다. 정책이 유명무실화 되면서 정부는 사업비를 지원하면서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이 점은 정부의 간섭 없이 문화의집의 가능성과 역할을 자유롭게 실험하고 모색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문화의집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시설이 아닌 애초의 취지대로 지역주민이 직접 문화를 만드는 문화적 거점공간이라는 공감대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계속 줄어들다 지금은 프로그램 지원마저 전무한 상태가 되었다.

 

문화의집의 성과는 문화를 보다 손쉽게 만나며 지역주민 스스로 삶의 문화를 창출하는데 기여했다는 점이다. 모이고 관계 맺으며 함께 살아가는 동네 속 문화공간의 역할을 만들어왔다. 존재가 미미했을지 모르지만 그 역할을 꾸준히 이어왔다. 처음 지방이양사업 결정 후 문화체육관광부뿐 아니라 많은 지역문화활동가들도 문화의집은 없어져도 된다, 얼마 안 가 사라질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국가 주도로 공간이 조성되고 직영 운영이 많다 보니 관변단체처럼 인식되기도 해 굳이 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들이었고, 지원이 끊겼으니 자연히 사라질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문화의집이 계속해서 질문하고 모색하며 나아가는 동안 또 많은 지역문화활동가들이 주민 주체 문화활동의 중요성과 문화의집의 역할에 공감했다. 문화의집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 세 가지를 꼽자면 첫째 지역주민의 필요와 문화적 욕구인데 문화의집과 함께 지역주민도 성장하면서 지역주민에게 필요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둘째 문화의집 운영자의 헌신으로 평균 1.8명의 운영자가 하루 100명의 지역주민을 상대하였고 프로그램 기획부터 시설 관리에 이르기까지 안 하는 일이 없었다. 셋째 문화의집협회를 구심으로 한 네트워크로 각자도생이 아닌 연대하며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았다.

 

문화의집의 한계 또한 명확하다. 공간 개선이나 재원 마련 등의 문제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법적 근거의 문제와 운영인력의 부족이었다. 법적 근거의 부재는 내내 문화의집에 대한 지원 근거가 없어 지원할 수 없다는 정부의 면피용으로 작동했다. 운영인력의 부족은 문화의집을 시설 관리 차원에 머물게 했다. 운영인력의 수도 부족했지만 전담인력의 유무와 책임자 유무가 크게 작용했다. 문화의집의 70%에 달하는 직영 문화의집 중 전담인력을 배치한 곳은 거의 없었고 있다 하더라도 권한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직영이든 민간위탁이든 마찬가지인데 1명이라도 전담인력이 있는지, 책임과 권한 모두를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운영의 질이 달라졌다. 관장공모제도 제시해봤지만 예산 문제와 각기 다른 지자체의 사정으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문화시설 조성 정책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문화의집과 생활문화센터 사이에 생활친화적 문화공간 조성사업이 있었고 또 생활문화 영역은 아니지만 지역의 다양한 유휴공간을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사업들이 이어지고 있다. 대규모의 공간은 그나마 현장 실사나 지역조사 등 지역의 의견을 수렴하며 만들어가는 과정이 생기기도 했는데 작은 생활권 문화공간은 여전히 그렇지 못하다. 만들어주긴 할 테니 운영은 알아서 하라고 던져놓는 식이다. 운영자의 개인기에 기대는 것이 아닌 공간 조성 시 운영자를 중심에 놓고 계획을 수립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공간을 만들고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상황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공간은 문만 열고닫는다고 운영되는 것이 아니다. 문화의집을 통해 바라본 바 하나의 문화공간이 지역에 자리 잡기까지 최소 5년의 시간이 걸렸다. 지역과 관계맺고 지역주민의 신뢰를 얻는 시간이 그만큼 걸린 것이다. 이 시간이 지나야 지역주민에게 문화사랑방 같은 공간이 되는 것이다. 백화점 문화센터가 생기기 시작한 때쯤 많은 문화의집 이용자들이 백화점 문화센터로 몰려간 일이 있었는데 대부분 6개월 안에 돌아왔다. 거기서는 기브 앤 테이크식으로 관계는커녕 상호교류나 소통조차 없는 고객님으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또 머무를 수 없는, 프로그램 운영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함께 놀고 사는 재미, 나를 알아주고 말걸어주는 운영자가 없었던 것이다. 나로부터 출발해 서로 관계 맺으며 나와 공동체의 삶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생활문화공간의 기본 역할이다.

 

또 하나 생활문화공간에 중요한 것은 시대와 함께 호흡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그램 운영공간으로 동아리 활동공간으로 기능하는 것만이 아닌 지역과 지역주민의 다양한 이슈와 요구들을 찾아 문화적으로 관계와 과정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에서 어떤 문화공간이 될 것인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늘 질문하고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생활문화공간 운영자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고민을 나누는 네트워크도 꼭 필요한 부분인데 점점 각자도생의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생활문화공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 현재진행형의 공간이어야 한다는 점은 문화의집이든 다른 시설이든 마찬가지이다. 문화의집의 이야기로 시작해 생활문화공간의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것은 이제 문화의집과 같은 문화공간들이 지역에 많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민간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문화공간들을 만들고 운영하는 중이다. 삶의 문화를 말하는 문화의집의 가치와 철학은 문화의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한정된 것이 아닌 다양한 생활문화공간과 함께 공유하는 가치가 되었다. 다시 정책으로 돌아가자면 개별 시설을 지원하는 형태 보다는 공공과 민간을 아울러 생활문화공간들이 지역에서 어떤 문화적 배경으로 존재할지, 어떻게 문화적 환경으로 역할할지, 지역생태계 차원에서 생활문화공간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겠다.

 

 


우지연. 하루의축 이사. 한국문화의집협회 사무처장으로 12, 이사로 5년 일한 후 퇴사하여 지금은 문화의집을 통해 배운 삶의 문화를 화두로 새로운 활동을 만들어가고 있다. 문화의집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문화활동의 기본은 관계임을 알게 되었다. 공간에 한정되지 않은 조금 더 넓은 세상에서 문화를 매개로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과 관계를 만드는 활동을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