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기획연재: 지역문화 현장과 정책의 재구성④] 아산에서 예술하기(조혜경)

CP_NET 2024. 9. 6. 13:48

 

 

편집자 주: [문화정책리뷰]20대 대통령 선거 이후 새정부 문화정책 과제를 묻다라는 기획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새정부에 대한 제안이라기보다는 새정부 구성을 계기로 현단계 정책과제를 살피자는 기획이었습니다. 이 기획에는 100인의 예술가, 기획자, 정책연구자 등이 참여하여 현장의 구체적이고 다양한 과제를 제안해 주셨습니다. 이 기획에 대한 분석기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진단과 제안에는 구체적 현장으로서의 지역에 대한 여러 관점이 드러납니다. (관련기사:[특집: 새정부 문화정책 과제를 묻다 ] 분석-정책 관심도와 흐름, [특집: 새정부 문화정책 과제를 묻다 ] 분석-정책에 대한 관심과 흐름2)
 
지역문화의 현장과 정책의 재구성은 지역예술과 지역문화의 현장에서 정책이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현장에서는 어떠한 변화와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정책의 작동에서 토대로서의 현장에 주목하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지원사업의 안이냐 밖이냐를 떠나 스스로 자신의 토대를 만들어가는 현장과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정책의 재구성을 전하고자 합니다.

척박하기 때문에 연대로 성장해온 대구 독립영화 씬 _ 권현준
 창작열, 동료의식, 지원기관의 노력_ 이승우
 지역문화예술정책은 지역에서! _ 강구민


 

 

 

대학 졸업 후 문화예술활동을 지역에 남아서 해보고자 마음먹고 지역에 남았다. 하지만 결혼과 육아로 고향을 떠나야 했고 모든 활동이 정지된 채 5년 후 2004년 다시 낙향, 학원강사로 생업을 이어갔다. 육아와 가사도 병행하다 건강 악화로 잠깐의 휴식을 가졌다. 다시 연극을 하고 싶었다. 어떻게라도 연결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통 타악을 시작하고 지역 극단에 들어가서 활동을 재개했다.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시작한 활동은 예술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주었지만, 지역 예술계의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실망 또한 적지 않았다.

 

지역의 극단이 설 만한 무대는 없었다. 지원금 없이 연극을 한다는 것이 어려운 현실. 그리고 지원 금액이 얼마나 되는지, 어디에 어떻게 신청하고, 어떤 단체가 얼마큼 지원받고 운영이 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몇 번 안 되는 공연에 배우로 출연 계약서를 써야 하는지도 몰랐다. 적은 금액이라도 출연료를 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 극단 선배의 배려(?)로 외부 사운드오브뮤직 갈라쇼에 출연했다. 객원 출연료는 10만 원. 아동 연기지도와 연출, 연습과 공연을 포함해서 10만 원이었다. 최초로 받은 출연료였다. 예산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함께 고생한 이들이 투명하게 공개하고 논의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인가? 의문이 들 때쯤 극단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즈음인 2008새 세상을 날고 싶은 연이라는 문화패를 결성했으나 구성원의 개성과 주요 분야도, 예술 활동 경험의 폭도, 기량도 천차만별이었던 단체였다. 진보신당 활동가들의 도움으로 당사 지하에 공간을 마련했다. 대기실도 없었지만, 지역의 후원자 부부의 도움으로 단상 정도의 간단한 무대를 준비했다. 초라한 무대라도 공간이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되었다. 사회 문제의식을 공연에 담고자 했다. 무엇보다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로서 진정 예술을 향유하는 예술인이 되고자 했다. ‘누구나 문화예술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라고 생각하던 때였다. 예술 주체가 되지 않길 강요당하는지도 모르는 수동적인 소비자이길 거부하고 싶었다. 예술을 생산하고 누리는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곧 문화예술 운동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9년 창단 공연 <아름다운 사인>을 기획하고 진행하며 많은 부침과 갈등이 있었다. 공연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아무런 지원금 없이 안무비, 작곡비, 객원 출연료, 홍보비, 대관료 등 자체 제작 비용이라고 100만 원도 안 되는 돈을 십시일반 모아 연습을 시작했다. 겁도 없이 공연을 만들었으나 금전적인 빚을 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육아 전담자들에게도 공연 관람 기회를 주고자 연령제한으로 공연장에 들어오지 못하는 아동 돌봄 공간을 별도로 마련했다. 당시로는 획기적이었다. 아산 YMCA의 시간제 돌봄 서비스 시작과 함께 돌봄 선생님들에게 인건비를 지급했다. 관객들에게 그 비용을 별도로 받지는 않았다.

 

공연장을 대관할 비용과 공간을 해결하기 위해 교차로에 무료 광고를 실었는데 지역 모 연극 단체 대표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왜 내 소극장에서 공연하지 않느냐, 단체 만들어서 뭘 하려고 하나, (당시 있지도 않은) 시립예술단 연극단원으로 들어가려는 거냐 등등. 왠지 여긴 내 나와바리인데 내 허락 없이 너희들은 뭐냐고 따지는 느낌이었다. 그 권위적이고 무례한 언행은 지금도 불쾌하다.

 

다행히 우린 천안 백석동의 H교회 예배실을 저렴하게 빌려서 무사히 공연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후원이 컸다. 무엇보다 자체 제작이라는 큰일을 감히 벌린 무모한 대표 덕분에, 정작 출연료를 받지 못하고 고생한 단원들 덕분에 잘 마칠 수 있었다.

 

이후 단체는 해산하고 천안지역 놀이패 신바람에서 객원 배우로 활동했다. 이 시기가 가장 행복하게 연극을 했던 시기였다. 놀이패 신바람은 천안지역 대학 ‘탈패’ 출신의 구성원들이 주축으로 자립한 단체다. 공간 운영비용을 각자 개별 예술교육 강사로, 천안시립 풍물단 비상임 단원으로 받은 급여 등을 쪼개서 나누어 내며 유지하고 있었다. 객원이기에 연습하고 공연하고 소품 정도는 같이 만들었다. 선후배들의 배려로 의견도 적극적으로 내면서 공연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유일한 시기이다. 지원금이 있었던 찾아가는 공연 2회에 60만 원을 받았다.

 

돌이켜 보면 공연 2회에 60만 원을 연습하고 음향, 소품, 의상, 교통비, 식비, 홍보비를 쓰고 나면 무엇이 남았겠나. 출연료를 따로 챙기려면 운영비를 더 감당해야 했을 텐데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연 작품을 하나 만들어 무대에 올리기까지 그 노력과 수고에 비하면 공연비는 너무도 적은 비용이다. 스스로를 착취하며 올리고 있는 공연자들의 현실을 지원금 받고 공연한다고 쉽게 말하는 지자체나 문화재단 혹은 관객들은 알고 있을까?

 

어디나 예술노동을 하는 이들의 처지가 비슷하겠지만, 비수도권 중소도시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 끝없는 자기 착취 없이 불가능한 구조일 수밖에 없다.

 

공간, 사람 그리고 시작하는 이들의 어려움

 

우선 공간이다. 지역에는 공연하기에 적합한 소극장이 없다. 다목적 강당 같은 큰 규모의 공연장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지역의 모든 행사가 거의 다 몰리다 보니 대관 일정을 잡기도 어렵다. 공연장도 턱없이 부족한데 연습실 임대는 더 어렵다. 공연장도 연습실도 빌리게 되면 매월 임대료가 발생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맘 편히 예술활동을 하려면 연습할 공간과 예술활동을 펼칠 무대는 예술인 스스로 부담해서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람. 예술활동은 여러 분야 사람들의 협업으로 이루어진다. 창작활동을 하는 데에 지원금은 마중물이 된다. 그런데 신생 단체는 지원금을 받는 것이 쉽지 않다. 진입장벽이 높아 지원금은 받는 단체만 받는다. 단체는 많고 지원금은 적으니 그렇다. 진입장벽이 높으니 새로운 단체들의 활동이 생겨나기 어렵고 그러니 다시 소수 단체들만 유지된다. 그러다 보니 무대에 서지 못하는 단체들은 다양한 관객들을 만나는 것도 어렵다. 악순환이다. 이러한 정체 속에서 여러 문제 상황이 생겨난다. 예술을 콘텐츠로 하는 사업가, 예술인이라고 하지만 기획사를 운영하는 경영자이거나 다른 사업을 하면서 예술단체 직함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는 중에 지원금을 자신의 개인 사업에 유용하는 사건이 터지기도 한다.

 

공공지원금의 공공성, 투명성은 단지 행정기관에 제출하는 정산자료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공간임대료, 활동비 등등을 부당하게 받았다는 기사들이 끊이지 않는다. 동료 예술인이라 말하면서 지원 규모, 집행내역 등을 동료에게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조율과 협의가 없는 관행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부당하다.

 

지원사업의 문제는 그뿐이 아니다. 동료들과 함께 고생하더라도 내 정체성에 부합하는 예술창작을 해보려 하면 누군가는 예술을 하는 건지 행정을 하는 건지 모를 일을 끝도 없이 해야 한다. 운영, 경영이라는 명목하에 나도 모르게 또는 알고도 누군가의 몫을 협의 없이 착취하게 되는 구조가 된다. 업무처리의 효율을 따지며 표준계약서 작성, 예술인 고용보험 처리 등 예술인 권리와 복지엔 소홀하게 된다.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갈려 나간 이들은 다른 일자리를 찾아 나서게 된다.

 

지자체에서 뱉는 구호는 문화 관광 체육 + 예술이다. 예술을 독자적으로 타 분야 간섭과 통제 없이 독립적으로 말할 수 없나? 그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 건가? 그런 생각에 자괴감이 드는 한편, 그나마 예술이니 예술인을 주제로 한 지역의 큰 축제나 행사에 초청되는 이들은 대부분 대형기획사를 통한 유명 예술인들이다. 이 지역 예술인들과 유명한 예술인들의 출연료 차이는 크다. 모 국악단 연주공연에 초청된 유명한 가창자의 출연료가 연주자 전원의 출연료보다 높았다는 말도 들었다. 화려하고 멋진 무대와 예술작품, 자본과 인력 투자 그에 맞추어 소수의 기획사 사장, 사업가들에게 비용을 우선 지불한다. 이럴 때 정작 출연한 지역 예술인들은 무대에 서기까지 투여된 자신의 시간과 노력에 대한 비용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게 당연하다 생각한다면 지역민들이 보고 싶은 수준 높은(?) 예술작품을 지역 예술인들이 만들어 무대에 서는 모습은 볼 수 없을 것이다. 지역 예술인이 자립하고 생존할 기반은 0% 수렴하니 말이다.

 

상황이 답답해 타 단체 사람들과 지인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공간을 마련하고자 국회의원을 찾아가 사라진 소극장을 다시 만들어 달라 요구도 했었다.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마을 사업, 도시재생 등과 결합해서 요청을 해보면 좋겠다는 답변이었다. 기존에 있었던 시립 소극장이 두 곳이나 사라진 후 요청과 제안이었는데 너무도 먼일처럼 아득한 대답으로 들렸다.

 

소속 없는 개인이라서 그런가 싶었던 터라 ()한국민예총충남지회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 고민 끝에 결합했다. 충남민예총에서는 나와 같은 이들이 조금은 더 나은 기반에서 활동할 조건을 고민하고 목소리라도 낼 수 있기를 기대하며 움직였다. 충남에서 문화예술 창작 기반, 예술과 예술노동, 예술인 지위와 권리에 대한 이야길 꺼내보기라도 하고 싶어서 말이다.

 

총남민예총 초창기에는 예술정책 관련 예산이 없었다. 물론 기존에 지속해서 운영비를 받아오던 예술단체도 예술정책 관련 예산은 0%였다. 충남노동권익센터에 사업신청서를 내고 실태조사를 자체적으로 벌이며 충남 전역을 돌아다녔다. 예술계 실태가 더 여실히 드러났다.

 

2019년 충남 예술인 복지 조례가 뒤늦게 만들어지고 이후 코로나 사태로 예술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문화재단과 충남도에서 실태조사도 하고 토론 자리도 마련했다. 충남민예총 정책위원장 자격으로 토론에 나가 그간 모아 온 자료를 근거로 열변을 토했다. 참석자들이 수긍하고 박수를 보냈어도 현재까지 달라지지 않은 그대로다.

 

자립을 위한 첫 번째 조건,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지역 예술인 두 명과 돈을 모았다. 값싼 건물을 임대하기 위해 발로 뛰었다. 간신히 임대했으나 건물주의 갑질은 상당했다. 그 속에서 임대료, 공사비를 마련하고 직접 내부공사를 하며 아산에 삼동소극장을 만들었다. 공간 하나 만들어보겠다는 예술인들의 생고생은 6개월간 지속됐다. 덕분에 지난해 8월 드디어 개관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갈 길은 멀다. 언제쯤 맘껏 예술하고 살 수 있을까? 뜻을 함께하며 고생을 자처하는 동료를 모아가는 과정은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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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경. 동네 배우, 예술강사, 생태문화공동체 마즐 대표, ()아산 민예총 사무처장. 1991년 대학 시절 연극과의 인연으로 문화 예술운동이란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학 졸업 후 노동자노래패 새암누리라는 지역 노래패 활동을 하게 됐으나 한 편의 노동극에 참여하고는 결혼 육아로 예술 활동과 거리가 멀어졌다. 다시 복귀하는 과정에 여성 가장으로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연극, 전통타악, 놀이 등 다양하고 얄팍한 활동을 하며 지역에서 생존하고 있다. 예술과 노동, 예술인, 예술노동자의 지위 권리 곧 사람답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함께 고민을 나눌 동료를 찾기 위해, 지역에서 예술 활동 지속을 위해 애쓰고 있다.